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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마트의 ‘1+1’은 거짓·과장광고 해당
    [요지]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원고들이 전단을 통하여 한 1+1 광고 등 가격할인광고가 ‘거짓·과장의 광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4. 28. 선고 2019두36001 판결) [사례]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원고들이 전단을 통하여 1+1 행사 광고를 하였는데, 1+1 행사 광고에 표시된 판매가격은 ‘광고 직전 판매가격’의 2배보다는 낮았으나, ‘광고 전 20일 동안 최저 판매가격’의 2배와는 같거나 그 2배보다 높은 경우 거짓·과장광고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법원 판단]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이라 한다)은 상품 또는 용역에 관한 표시·광고를 할 때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하는 부당한 표시·광고를 방지하고 소비자에게 바르고 유용한 정보의 제공을 촉진함으로써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제1조). 이에 따라 표시광고법 제3조 제1항 제1호,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표시광고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3조 제1항은 ‘거짓·과장의 광고’를 부당한 표시·광고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거짓·과장의 광고’란 사실과 다르게 광고하거나 사실을 지나치게 부풀려 광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일반 소비자는 광고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 문장, 단어, 디자인, 도안, 소리 또는 이들의 결합에 의하여 제시되는 표현뿐만 아니라 광고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사항, 관례적이고 통상적인 상황 등도 종합하여 전체적·궁극적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광고가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지는 보통의 주의력을 가진 일반 소비자가 그 광고를 받아들이는 전체적·궁극적 인상을 기준으로 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20. 선고 2017두59215 판결 등 참조). 「부당한 표시·광고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 고시」(2015. 10. 23. 공정거래위원회고시 제2015-1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이 사건 고시’라 한다)는 ‘II. 3. 가격에 관한 표시·광고’ 항목에서 ‘자기가 공급하는 상품을 할인 또는 가격인하 하여 판매하고자 하는 경우에 허위의 종전거래가격을 자기의 판매가격과 비교하여 표시·광고하는 행위’를 부당한 표시·광고의 하나로 규정하면서[나. (1)항], 위 ‘종전거래가격’의 의미에 대하여 “당해 사업자가 당해 상품과 동일한 상품을 최근 상당기간(과거 20일 정도)동안 판매하고 있던 사실이 있는 경우로서 그 기간 동안 당해 상품에 붙인 가격. 단, 위 기간 중 당해 상품의 실거래가격이 변동한 경우에는 변동된 가격 중 최저가격을 종전거래가격으로 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고시는 부당한 표시·광고의 세부적인 유형 또는 기준을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므로, 어떤 사업자의 표시·광고 행위가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로서 표시광고법 제3조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표시광고법 제3조 및 표시광고법 시행령 제3조의 규정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지, 피고가 이 사건 고시에서 예시한 내용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8. 7. 20. 선고 2017두59215 판결 등 참조). 다만 할인 또는 가격인하의 방법으로 자기가 공급하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표시·광고가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업자가 광고에 기재한 판매가격과 비교되는 종전거래가격을 거짓으로 표시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때 ‘종전거래가격’을 해석할 때에는 과거 20일 정도의 최근 상당기간 동안 최저가격으로 판매된 기간이 매우 짧거나 그 판매량이 미미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고시의 규정내용이 표시광고법 제3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거짓·과장의 광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부당한 표시·광고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 고시」의 규정내용이 표시광고법상 ‘거짓·과장의 광고’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고 하면서, 위 광고에 해당하는 상품들을 ‘광고 전 20일 동안의 최저 판매가격’으로 판매한 기간이 매우 짧거나 그 판매량이 미미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위 광고는 표시광고법상 ‘거짓·과장의 광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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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7
  • 공무원 조사 거부 요양병원 업무정지는 위법
    [요지]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조사를 거부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이 폐업한 후 그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대하여 위 종전의 조사 거부를 이유로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있는지 여부 (대법원 2022. 4. 28. 선고 2022두30546 판결) [사례]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조사를 거부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이 폐업한 후 그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대하여 위 종전의 조사 거부를 이유로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있는지 여부. [대법원 판단]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1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업무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처분대상도 없어졌으므로 그 요양기관 및 폐업 후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0두39365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검사 또는 질문을 거부ㆍ방해 또는 기피한 경우에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및 의료급여법 제28조 제1항 제3호에 의해 받게 되는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 원고가 운영하였던 종전 요양기관이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조사를 거부한 후 폐업하였고, 그 후 다시 새롭게 요양병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자 보건복지부장관이 원고가 종전 병원에서 이루어진 위법한 조사거부를 사유로 하여 새로 개설한 이 사건 병원에 대하여 업무정지를 명하는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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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선생님, 선생님.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외손녀 등굣길을 보살펴 주었다. 마침 입학할 무렵 이사하여 주위가 낯선 데다 학교도 서먹하니 얼마 동안은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 손을 꼭 잡았었는데, “이제 혼자 갈 수 있다”며 엘리베이터에도 함께 타지 말라고 손 사레를 친다. 그래도 미심쩍어 재빨리 계단으로 내려가 멀찌감치 따라가곤 한다. 책가방을 메고 실내화 가방에다 물병까지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안스럽기 그지없다. 가방이 무거워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삶에 허리가 휘는가 싶다. 등교 시간에는 교문에서 교장선생님이 맞이해 주신다. 두 달이 지났다. 수백 명 학생을 하나하나 “사랑합니다.”라며 맞아주고 어깨를 감싸 주기도 한다. 차에서 내리는데 불편한 아이가 있으며 달려가 손을 잡아 준다. 즉석에서 학부모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묻고 듣는 부모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비록 몇 마디에 지나지 않지만 학부모에게는 금쪽같은 기회일 게다. 여러 번 마주하다 보니 필자와도 낯이 익었다. “잘 적응할 거예요. 잘 돌보겠습니다.”라는 말에 믿음과 고마움이 배어난다.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진정 교육자요 참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든든함이 솟는다. 선생님은 가르치고 깨우쳐 주는 분이다. 학습만이 아니다. ‘무언의 느낌’으로 얻는 배움의 가치, 자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나름의 관점과 판단력도 길러진다. 선생님이 좋으면 공부에 의욕이 솟고 신바람이 인다. 초등학교 때가 더욱 그렇다. 입학 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 한 분 한 분을 떠올린다. 일학년 담임 오문섭 선생님은 천방지축 코흘리개 개구쟁이들에게 학교생활의 규칙을 알려주고 급우들과 지내는 요령을 깨우쳐 주셨다. 성백선 선생님, 박희영 선생님, 유석동 선생님이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담임선생님이다. 장석인 선생님, 이상복 선생님은 2학년, 5학년 때 한 달 쯤 임시 담임이었다. 샌님 선생님도, 호랑이 선생님도 있었다. 6학년 때 김상기 선생님은 음암면 부산리에 사셨는데 필자가 중학교 입학시험 보는 날, 걸어서 학교 앞을 지나 양유정 옆 우리 집까지 오셨다가 되돌아가는 불편을 무릅쓰고 학교까지 데리고 가주셨다. 엔간한 사랑과 정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서울로 전근하여 교장으로 마친 다음 국정교과서 심의위원을 하셨다. 서울에서 뵌 적이 있는데 옛날 일을 어제처럼 말씀하셨다. 5학년 때는 갓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임한 이상무 선생님이 담임이셨다. 선생님은 청년교사의 의욕과 패기로 학습에 온 힘을 쏟았다. 많은 추억을 남겨주셨다.당시로는 흔하지 않게 「학급문고」를 만들어 위인전, 어린이 명작소설 수 십 권을 마련하고 마음껏 읽게 하셨다. 덕분에 하루, 이틀에 한 권 씩 읽었다. 선생님은 「우리의 소리 함」을 만들어 개선·건의사항이나 급우들이 잘한 일을 써넣게 했다. 매주 학급회의 때 함을 열어 여기에서 나온 의견을 서로 토론하게 하고 스스로 실천하도록 했다. 착한 일을 한 학생은 칭찬해주셨다. 이러니 책 읽는 분위기가 생겼고 좋은 일을 하려는 분위기가 돌았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자화상’, ‘즉흥시인’, ‘해조음海潮音’, ‘임기응변’ 등 무슨 뜻인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런 멋있는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괜히 지식인이라도 된 듯 우쭐해지기도 했다. 쉬는 날에는 선생님들과 교외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셨는데, 어느 날은 같이 가자고도 하셨다. 선생님과 함께 댁에도 갔을 때는 책꽂이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의 지식과 상식이 거기에서 나왔는가 싶었다. 숙제 물 끝에 장난스럽게 ‘이상무’라거나 ‘이상 끝’이라고 쓰면 개구쟁이들의 짓궂음을 짐짓 꾸중하면서 “아무 것도 표시하지 말거나 ‘끝’이라고만 쓰라”고 하셨다. 국어 교과서에, 강소천 선생이 쓴 「가을 뜰에서」라는 동시가 있었다. 선생님은 이 시에 2/4박자로 곡을 붙여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며 옛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찬 서리에 함빡 피어난 가을 꽃. 국화와 코스모스가 한층 더 사랑스럽다. 또 하나 빨간 가을 꽃, 텃밭의 고추가 꽃처럼 예쁘다.」 필자에게는 그냥 동시거나 노래만이 아니다. 그때로 돌려주는 타임머신이다. 교직의 첫 제자들을 아껴주고 북돋아주신 선생님, 실력과 열정과 낭만이 넘치던 이상무 선생님이 떠오르곤 한다. 신입생과 한 학년씩 올라간 학생들이 어떤 선생님을 맞을까 궁금증과 어설픔에서, 어느덧 새잎이 푸름으로 짙어지듯 점점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는 시기이다. 새로운 만남으로 맺어지는 사제관계에서 선생님에게는 잊히지 않는 제자가 있고, 제자도 잊을 수 없는 스승이 있을 것이다. 며칠 후면 스승의 날이다./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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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엊그제는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이유는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과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퇴조해가는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을 확산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였으며, 그 뒤 1973년에 명칭을 어버이날로 바꾸어 국가적인 행사로 삼고 있습니다. 유교를 숭상한 우리 조상들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효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쳤으며 효자를 선발하여 표창하였고, 과거시험 과목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곳곳에 효자비를 세워 효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고 효행록을 발행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귀감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불효자에 대하여는 엄하게 다스렸지요. 불효자는 과거시험도 볼 수 없었습니다. 부모를 구타하거나 욕설을 한 사람에게는 극형이나 징역형에 처했습니다. 효도의 개념이나 방법도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부모가 병에 걸려 위중한데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먹였다면, 그 아들을 효자라 하겠습니까?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참 모자란 사람이라 할 겁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사표 내고 3년 동안 산소 옆에 움막 치고 있다면, 틀림없이 토픽감이 될 게지요. 지금은 부모가 늙어도 자식들이 모시고 봉양할 수도 없습니다. 나이 들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효는 인간의 기본적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은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열 달 동안 입덧으로 고생하시고 출산의 고통을 이겨 내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길러주고 가르쳐 주신 그 은공을 모른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부모님의 은공을 잊지 않는 마음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무가 아닌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효도가 참 효도입니다. 전에 요양원에서 봉사할 때 나는 여러 형태의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많은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한결같은데 자식들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 않고 매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부모님을 뵙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가는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엎드려지면 코 닿을 데 살면서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자식도 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자식이 보고 싶어서 여러 번 연락해도 오지 않았습니다. 꾀를 내기를 동네 사람이 문안차 왔을 때 땅속에 돈 항아리를 묻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돈 묻은 곳이 어디냐? 득달같이 달려와 물었습니다. 거짓말도 못 하느냐고 해서 그 이야기가 온 요양원에 한참을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치매 걸리신 구십 되신 노모, 저녁 식사 후 침실에 오셨는데 어르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기니 반찬으로 나온 갈치 생선 한 토막이 젖가슴에서 툭 떨어졌습니다. “큰 애 줄려구, 큰 애 줄려구…” 이를 들킨 노모는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며칠 후 면회 온 아들이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에게 가 있습니다. 효는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을 잘 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면 그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자주 전화를 드리고 가끔 자녀와 함께 찾아와 얼굴을 뵈어 드리면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그 자녀에게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효를 가르치게 됩니다.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불경에도 부모 섬기는 것이 곧 부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은 자신이 복을 받는 일입니다. 효는 이해타산이 아닙니다. 논리적이거나 합리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님께 효도하여 복도 받고 은공도 갚는다면 이것이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어버이날을 맞아 다시 한 번 효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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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1
  • “동요 실종시대, 윤석중 선생을 떠올린다”
    트롯 경연이 붐을 이루고 있다. 흙속에 묻힌 보석이 깜짝 빛을 받고 반짝이며 이름처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신데렐라로 탄생한다. 출연자들이 뿜어내는 끼와 재능은 자정을 잊은 시청자들의 귀와 눈을 붙잡아 놓았다. 열 살 이쪽저쪽 아이들도 뒤지지 않는다. 경연에서 입상한 초등학생의 이름을 도로 이름으로 붙인 곳도 있다. 코로나로 학당 수입이 끊겼다는 훈장님은 어린 딸의 출연료가 가계의 주 수입원이라고 했다. 다른 노래자랑 프로에서도 아이들이 깜찍함을 넘어 당돌할 만큼 끼를 뽐낼 때 관객은 탄성과 함께 흥겨움에 묻힌다. 옛날에도 신동이 있었고 소년 천재는 많았다. 자극과 동기부여, 노출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이 많아지고,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집중하여 키울 수 있는 요즈음에는 출중한 재능이 더욱 가깝게 보이는 것이다. 시간 압축시대라서 그런지 아이들에게서 동요는, 건너뛰고 실종되다시피 했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노래 부르며 고무줄놀이 하는 모습이 가마득하다. ‘누가누가 잘하나?’에서 맑은 목소리, 천진하게 부르는 동요를 들은 지는 또 언제였던가 싶다. 올해 5월 5일은 제100주년을 맞이하는 어린이 날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되는 ‘어린이날 노래’는 1948년 윤석중 선생이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어른이 되었다. 선생은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등 1,300여 편에 이르는 동요와 동시를 어린이들에게 안겨주었다. 졸업식장에서 눈시울을 적시게 한 ‘졸업식 노래’도 선생의 손에서 나왔다. 1956년에는 「새싹회」를 창립했다. 선생은 서산과는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열세 살 때 「봄」이 문학지 『신소년』에 입상한 천재로 알려지면서 동요, 동시창작에 전념했다. ‘동요하면 윤석중이고 윤석중하면 동요’로 대표될 만큼 온 생애에 걸쳐 동요창작에 열중했다. 동시집 24권, 동화집 5권 등 30여 권의 작품집을 내었다. 선생이 서산에 온 것은 1935년 결혼하고 나서다. 5년 전 외할머니가 물려 준 땅이 있는 음암면 율목리에 신식으로 집을 짓고 이주한 아버지가 사는 곳이었다. 선생의 장녀와 장남이 서산에서 출생했다. 이때 선생은 10년 동안 명천 항에서 제물포를 거쳐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2003년 별세한 선생은 문인 최초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서산은 내게 아픈 기억과 또 아버지를 그리는 곳이기도 합니다.”라고 하면서 마을의 느티나무가 거목으로 자랐을 것으로 추억하기도 했다. 선생의 부인 박용실 여사는 “서산은 선생님의 평생 고향이었다. 큰 고향이었다. 그 분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술만 드시면 서산을 생각하며 우셨다”고 했다. 작품 가운데는 서산을 배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전한다. 율목리에는 선생의 시 「우리 마을 느티나무」가 시비로 세워졌고 ‘세계적 아동문학가 석동 윤석중 세거지’라는 비석을 세워 선생을 기리고 있다. 전국 곳곳 지자체에서는 유명 인사나 예술인이 태어나거나 활동한 지역을 지역의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기념관을 만들거나 작품 활동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서산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한 분이 윤 선생이다. 노인으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몇 개쯤은 부르며 자란 동요가 공통의 정서요 자산이다. 선생은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이고 서산이 추켜 새울 수 있는 보물이다. 동요를 살리는 운동이 필요하다. 전자기기에 빠져 입보다 눈이 바쁜 어린이들에게 순수함을 길러주고 꿈을 키워줄 수 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메마른 마음을 씻어주고 어린 시절을 되찾게 하는 효과도 바라볼 수 있다. 동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시 널리 불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나아가 훌륭한 인물을 선양하는 일에 서산시와 지역에서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윤석중 문화제」같은 예술행사를 만들어 창작 동요제, 동요 부르기 대회, 동시백일장 등을 콘텐츠로 전국규모의 어린이 잔치를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낙토樂土 서산’에 「동요·동시의 메카 서산」으로 동심의 아름다움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주 : 윤석중 선생에 관한 부분은 2008년 서산시에서 펴낸 「서산의 역사인물」(윤석중 편, 집필 노경수)과 「월간문학」 2022년 5월호 ‘가상 인터뷰’(글 정두리)에서 인용,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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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무슨 꽃이 피었나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1일은 입양의 날, 15일은 스승의 날, 16일은 성년의날, 21일은 부부의날 등등, 참으로 가정을 위한 행사가 겹겹이 있는 달입니다. 가정을 한문으로는 집가(家)자와 뜰정(庭)자를 쓰지요. 한마디로 가정이란 집안의 뜰이라는 말이지요. 뜰에는 꽃이 있어야 하고 어우러져 피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가정이란 말은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안락해집니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천국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가정을 작은 천국이라 했지요. 어느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겠다고 화구를 챙겨 길을 떠났다지요. 길을 가다가 목사님과 군인과 신혼부부를 만났습니다. 이들에게 차례로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어냐고? 그러자 목사님은 ‘믿음’이라 했고, 군인은 ‘평화’라고 했습니다. 신혼부부는 당연히 ‘사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화가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믿음’ ‘평화’ ‘사랑’을 한 폭에 그려 넣을 수가 있을까? 아무리 궁리하고 연구해도 그릴 수가 없어 낙심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힘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빠!”하고 달려들어 안기는 아기들. 그 순간, 화가는 자기를 아빠라고 믿어주는 천진한 아기들의 눈동자에서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었는데도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아내에게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화가는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하는 식탁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가정은 믿음의 꽃과 사랑의 꽃과 평화의 꽃이 어우러져 피는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가정은 인간들만 가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가정이 있고 동료애가 있다고 합니다. 늑대는 일부일처로 부부가 무리를 이끌 때 수컷은 사냥하고 암컷은 육아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어느 한쪽이 죽기 전에는 바람도 안 피우고, 자기 가족이 위험에 처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할 정도로 가족애가 지극하다고 합니다. 동굴 벽에 붙어 사는 박쥐들도 동료애가 강하다고 합니다, 흡혈박쥐의 경우에는 매일 자기 몸무게의 반 이상이 되는 피를 먹어야 하는데, 40시간 정도 피를 먹지 못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동료가 있으면 자신들의 위에서 피를 토해 나눠 준다나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황제펭귄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황제펭귄은 영하 50도에 이르는 남극의 한파 속에서 암컷은 알을 낳아 수컷의 발 위에 올려놓는답니다. 발등의 털로 알을 품은 수컷들은 몇 초만 드러나도 얼음이 되어버릴 알을 지키기 위해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발에 알을 품은 수컷들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몸을 맞대어 밀집된 커다란 똬리를 튼다고 합니다. 먼저 몸으로 방풍벽을 핀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겹겹이 껴안으면서 바깥보다 10도나 높은 따뜻한 내부의 공간을 만들어 강강술래 모양을 하면서 안에 있는 펭귄이 바깥으로 바꾸면서 견뎌 낸답니다. 이것을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만드는 허들링이라 부르지요. 이들은 그렇게 가정이란 뜰의 꽃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점점 가정이 허물어져 가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짐승들도 가꾸어가는 가정이 어느 순간부터 비스킷 조각처럼 부서지는 것 같습니다. 거의 절반가량의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선 노인들까지 이혼의 대열에 끼어들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아예 결혼조차 하지 않고 살겠다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요? 결혼을 해도 1% 미만의 출산율은 어찌합니까?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요? 아주 잠깐이지만,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 살아봤습니다. 외로웠습니다. 말할 수 없이 고독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그렇게 매달리나 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잠시나마 심심함을 달래줄지언정 펄펄 끓는 이마를 짚어 주지는 못합니다. 손잡아 따뜻한 체온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목마를 때 물 한 종지 떠주지 못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 한번 가정의 소중함을 느껴봅니다. 노력해야지요.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의 그림자. 지금 내 집 뜰에는 무슨 꽃이 피었나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모두 믿음과 사랑과 평화의 꽃을 곱게 피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시기를 권합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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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횡단보도 먼저 진입해도 보행자 보호의무 당연
    [요지]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한 운전자에게도 뒤늦게 횡단보도에 진입한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지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0도17724 판결) [사례] 피고인이 화물차를 운전하여 피해자보다 먼저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에 진입하고 피해자가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다가 화물차 적재함과 충돌한 경우에도 차량운전자에게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가 인정되는지 [대법원 판단] 자동차의 운전자는 횡단보행자용 신호기의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때에는 횡단보도에의 진입 선후를 불문하고 일시정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고, 다만 자동차가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한 경우로서 그대로 진행하더라도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지 않거나 통행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라면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이러한 법리는 그 보호의 정도를 달리 볼 이유가 없는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보행자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보다 먼저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에 진입한 경우에도,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통행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 아니고서는 차를 일시 정지하는 등으로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도8675 판결 참조). 이러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피고인이 운전한 화물차가 보행자인 피해자보다 먼저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에 진입하였더라도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지 않거나 통행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 아니고서는 차를 일시 정지하는 등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반하여 화물차를 일시정지하지 않은 채 횡단보도를 통과한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 따른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한 경우로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6호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위와 같은 의무 위반이 교통사고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아, 피고인의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자의 상해발생사실에 대하여 유죄라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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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만약에 굴포운하가 완성되었다면
    화창한 봄날이란 말이 바로 이런 날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조차도 잠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 지난 4월 19일 서산문인협회 회원들이 서산지역에 있는 문화 유적을 탐방하였다. 어두컴컴한 코로나19의 동굴이 거의 끝자락이 보이는 듯도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고남저수지였다. 저수지를 둘러싼 벚꽃이 활짝 피어 반겨주었다. 선경이 따로 있을까? 둘레에 쌓인 활짝 핀 벚꽃과 파란 하늘이 저수지에 내려앉아 하나가 되어있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가로림만으로 옮겼다. 서해안 특유의 갯벌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갯벌을 바라보며 가난했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는 사무국장의 말에 문득 보릿고개 시절, 나문재에 보리밥을 비벼 먹던 그때가 떠올랐다. 솔감저수지를 거쳐 굴포운하 유적으로 향했다. 사실 굴포운하의 유적을 와보고 싶었다. 말만 들었지, 사실 혼자 찾아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고장에 국책사업의 유적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 이전에 후손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런데도 굴포운하의 유적조차 모르고 산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굴포운하의 유적지로 향했다. 막상 가보니 다소 넓은도랑에 불과했다. 허망했다. 굴포운하에 관한 설명을 기록한 표지판이 없더라면 평범한 도랑쯤으로 여길만하다. 안내 표지판 설명에 의하면 굴포운하의 위치는 태안군 인평리와 도내리를 거쳐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와 어송리를 잇는 구간으로 고려 인종 12년(1134)부터 조선 현종 10년(1669)까지 535년간 삼남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안전하게 조운하기 위해 시행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운하 건설의 유적지라고 했다. 굴포운하 전 구간 약 6.8km 중 개통된 약 4km 구간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미개통된 약 2.8km 구간 중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은 약 700m(폭 14m~63m)라고 했다. 운하의 유적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 지금은 그저 한낱 커다란 웅덩이, 풀만 무성한 습지로 변해 있었다. 도로 아래 운하라고 한 고랑에는 논으로 변해 있었다. 양편엔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겨우 2.8km 구간. 수많은 양민의 피와 땀이 묻히고, 설계하고 추진했던 당시의 위정자들의 안타까움과 탄식이 서린 곳이 바로 여기다. 충남 태안 마도 인근 해역은 예로부터 험난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배가 지나가기 어렵다 해서 난행량(難行梁)이라 이름했고, 후에 편(安)하고 흥(興)하라는 염원을 담아 ‘안흥량(安興梁)’으로 고쳤다고 했다. 이렇게 험한 뱃길임에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라도를 비롯한 3남 지역의 세곡(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서울(개경. 한양)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반드시 통과하는 해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기록에 보면 1395년부터 1455년 사이 66년간 안흥량에서 발생한 해난사고는 파선이나 침몰 된 어선만도 200여 척이나 되었고, 인명피해 1,200명, 손실된 미곡(米穀)은 1만 5천 8백 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굴포운하란 것이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여 험난한 안흥량을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려 인종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무려 500여 년이 넘게 공사를 하였지만, 전체 7구간 중 4km만 운하를 내고 나머지 구간은 실패하고 말았다. 만일 굴포운하가 계획했던 대로 완성되었더라면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보다 무려 400년이나 앞섰다고 하니 세계의 운하 역사가 바뀔뻔했다. 웅덩이로 변한 굴포운하 유적지를 보면서 한때 거대한 국책사업의 하나였던 유적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굴포운하의 유적지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개통하여 유람선이라도 띄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없는 것을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시대다. 선조들이 그렇게 염원했던 운하를 후손들이 완성해서 미곡(米穀) 대신 관광객을 태우고 유람하는 모습을 천국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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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한 인용 여부
    [요지] 부부의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혼청구를 인용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1므15398 판결) [사례] 부부가 별거 중 상호 공유하는 토지에 관해 민사소송을 벌이고, 쌍방 고소로 함께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안에서, 이혼청구를 한 원고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해야하는지 아니면 예외적으로 이혼청구를 인용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민법 제840조 제6호에서 정한 이혼사유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란 부부 사이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 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한쪽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혼인계속의사의 유무, 파탄의 원인에 관한 당사자의 책임 유무, 혼인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당사자의 연령, 이혼 후의 생활보장, 그밖에 혼인관계에 관한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야 하고,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부부의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된다면 파탄의 원인에 대한 원고의 책임이 피고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이혼 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므14763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원·피고는 장기간에 걸쳐 별거생활을 하였고, 혼인기간 중에 서로 재산에 관한 민사소송을 하였으며, 상호간 형사고소를 하고 끝까지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고수하여 함께 형사처벌 받았다. 또한 위 민사소송이 조정으로 끝난 다음에도 당사자 사이에 서로 이해하거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고 통상적인 수준의 부부나 가족으로서 상호작용이 없이 기능적이고 형식적인 혼인관계만을 유지하였다. ② 원고는 이혼을 강력하게 원하고 애정과 신뢰의 상실로 피고와 실질적인 부부 공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 피고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나, 부부관계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의지보다는 주로 자녀나 손녀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피고의 이혼이 성년 자녀나 그 가족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고, 나아가 형식적인 부부관계를 존속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들의 복리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③ 피고는 원고가 별거 당시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사람과 부정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피고가 제출한 자료나 기록에 나타난 사정만으로는 그것이 원·피고의 혼인관계 파탄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원·피고 사이의 혼인기간에 있었던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피고의 혼인관계는 이미 부부 공동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원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며, 파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이 당사자 사이에 동등하거나 비슷하게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원고의 이 사건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취지로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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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벚꽃과 봄비
    4월 초순인데 벌써 여름이 온 듯하다. 아직도 옷걸이에는 두꺼운 겨울옷이 걸려 있는데 마치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 어떤 성급한 젊은 사람은 반바지에 반 팔 티를 입고 거리로 나왔다. 이음새 없이 찾아온 계절의 순환에 화들짝 놀란 봄꽃들은 순서 없이 마구 꽃망울을 터트린다. 제일 먼저 샛노랗게 봄을 여는 개나리가 미처 피기도 전에 온갖 봄꽃들이 쏟아져 피었다. 하룻밤을 지났더니 온천지가 하얗다. 전에는 벚꽃 단지가 따로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에 가도 벚꽃 천지가 되었다. 하얀 눈꽃처럼 송이송이 무리 지어 핀 벚꽃. 활짝 핀 벚꽃길을 걷다 보면 세상 근심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그 기쁨을 며칠 누리지 못함이 아쉽다. 삽시간에 피었다 삽시간에 진다. 눈 깜짝할 새 피었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게 벚꽃이다. 더군다나 이상하게 벚꽃만 피었다 하면 나타나는 게 봄비다. 봄비는 가물다가도 어김없이 벚꽃만 피기만 하면 찾아온다. 가만 나 둬도 빨리 질 꽃인데 무슨 심통인지 바람까지 몰고 와 꽃잎을 떨어뜨리고 간다. 올해에도 어김없다. 느닷없이 내일모레 이틀간 비 예고가 있다. 봄 가뭄으로 이곳저곳 산불로 온 나라가 애를 태웠는데 벚꽃이 핀다니까 다급히 쫓아온 봄비다. 요즘 일기예보는 영락없이 잘 들어맞는다.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분다. 감리교 뒤 도로에는 벚나무 가로수가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뭉클뭉클 꽃이 피어 하얀 구름처럼 나무마다 매달려 있다. 조급한 마음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길을 오갔다. 우산을 들고 나섰다. 가로수 벚꽃 길을 걸었다. 벌써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에 목말 타고 내린다. 봄비와 꽃비가 어우러져 내린다. 인도(人道) 위에는 물기 머금은 꽃잎이 멀리 가지 못하고 하얗게 쌓여 있다. 꽃의 반은 나무에 매달려 있고 반은 땅에 떨어졌다. 우산을 접고 길을 걷는다. 나풀나풀 춤추며 내려오는 꽃잎은 머리에도 앉고 어깨에도 앉고 옷에도 붙는다. 꽃가루를 뒤집어쓰며 꽃길을 걷는다. 언제 이런 호강을 해보나? 곧 터져 나올 듯한 시(詩句) 하나 붙잡지 못하고 꽃길만 걸었다. 문득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꽃잎 사이로 언뜻 초록색이 보였다. 꽃잎 사이로 연초록 잎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봄비가 숨어 있던 잎새를 재촉했을까. 순간, 자연의 놀라운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꽃은 나무의 목적이 아니다. 피었다 지는 게 당연한 순서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그러므로 생명을 이어가는 거다. 봄비가 심술을 부리는 듯하지만, 결코 야속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고마운 시련이다.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꽃과 같은 청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벚꽃처럼 청춘의 때는 그리 길지 않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지나는 게 청춘의 날이다. 더구나 새삼스럽게 부딪히는 시련은 왜 그리 많은지? 그러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아픔도 봄비처럼 지나고 보면 고마운 시련이다. 아플수록 더 성숙해지고 강해져 다가올 인생을 이겨 낼 힘이 되어 준다. 내게도 청춘의 때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활짝 핀 벚꽃 같은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바람과 함께 찾아온 사나운 봄비의 기억만 있을 뿐이다. 4‧19, 5‧16 같은 사회 변혁기에 개인적으로는 나를 가장 사랑해 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차례로 내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주위에 가까이 이끌어 주실 분들도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을 해야 하는 서투른 항해를 할 수밖에 없는 청춘이었다. 어린 동생들을 바라보며 ‘내 생은 없다’라는 절망과 결단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거친 파도를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도 있다. 젊어서 한 고생은 희망의 씨를 뿌리는 일이다. 또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간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래도 봄비가 밉지 않다. 비는 물이다. 물은 생명이다. 꽃잎을 떨어뜨리는 바람도 야속하지 않다. 꽃 사이로 피어난 새파란 나뭇잎이 희망처럼 더 푸르게 보인다. 순식간에 지나갔던 청춘의 기억을 불러내어 꽃길을 걸어간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봄비를 생각하며 행복해한다./김풍배(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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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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