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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4.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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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jpg


화창한 봄날이란 말이 바로 이런 날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조차도 잠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 지난 419일 서산문인협회 회원들이 서산지역에 있는 문화 유적을 탐방하였다. 어두컴컴한 코로나19의 동굴이 거의 끝자락이 보이는 듯도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고남저수지였다. 저수지를 둘러싼 벚꽃이 활짝 피어 반겨주었다. 선경이 따로 있을까? 둘레에 쌓인 활짝 핀 벚꽃과 파란 하늘이 저수지에 내려앉아 하나가 되어있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가로림만으로 옮겼다. 서해안 특유의 갯벌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갯벌을 바라보며 가난했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는 사무국장의 말에 문득 보릿고개 시절, 나문재에 보리밥을 비벼 먹던 그때가 떠올랐다. 솔감저수지를 거쳐 굴포운하 유적으로 향했다. 사실 굴포운하의 유적을 와보고 싶었다. 말만 들었지, 사실 혼자 찾아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고장에 국책사업의 유적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 이전에 후손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런데도 굴포운하의 유적조차 모르고 산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팔봉면 진장리에 있는 굴포운하의 유적지로 향했다.

막상 가보니 다소 넓은도랑에 불과했다. 허망했다. 굴포운하에 관한 설명을 기록한 표지판이 없더라면 평범한 도랑쯤으로 여길만하다. 안내 표지판 설명에 의하면 굴포운하의 위치는 태안군 인평리와 도내리를 거쳐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와 어송리를 잇는 구간으로 고려 인종 12(1134)부터 조선 현종 10(1669)까지 535년간 삼남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안전하게 조운하기 위해 시행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운하 건설의 유적지라고 했다. 굴포운하 전 구간 약 6.8km 중 개통된 약 4km 구간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미개통된 약 2.8km 구간 중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은 약 700m(14m~63m)라고 했다.

운하의 유적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 지금은 그저 한낱 커다란 웅덩이, 풀만 무성한 습지로 변해 있었다. 도로 아래 운하라고 한 고랑에는 논으로 변해 있었다. 양편엔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겨우 2.8km 구간. 수많은 양민의 피와 땀이 묻히고, 설계하고 추진했던 당시의 위정자들의 안타까움과 탄식이 서린 곳이 바로 여기다.

충남 태안 마도 인근 해역은 예로부터 험난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배가 지나가기 어렵다 해서 난행량(難行梁)이라 이름했고, 후에 편()하고 흥()하라는 염원을 담아 안흥량(安興梁)’으로 고쳤다고 했다. 이렇게 험한 뱃길임에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라도를 비롯한 3남 지역의 세곡(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서울(개경. 한양)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반드시 통과하는 해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기록에 보면 1395년부터 1455년 사이 66년간 안흥량에서 발생한 해난사고는 파선이나 침몰 된 어선만도 200여 척이나 되었고, 인명피해 1,200, 손실된 미곡(米穀)158백 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굴포운하란 것이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여 험난한 안흥량을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려 인종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무려 500여 년이 넘게 공사를 하였지만, 전체 7구간 중 4km만 운하를 내고 나머지 구간은 실패하고 말았다. 만일 굴포운하가 계획했던 대로 완성되었더라면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보다 무려 400년이나 앞섰다고 하니 세계의 운하 역사가 바뀔뻔했다. 웅덩이로 변한 굴포운하 유적지를 보면서 한때 거대한 국책사업의 하나였던 유적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굴포운하의 유적지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개통하여 유람선이라도 띄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없는 것을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시대다. 선조들이 그렇게 염원했던 운하를 후손들이 완성해서 미곡(米穀) 대신 관광객을 태우고 유람하는 모습을 천국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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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굴포운하가 완성되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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