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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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랑스런 서산인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정치부문 안원기 의원, 행정부문 홍건표 팀장, 경제부문 배대순 대표, 문화부문 박만진 시인.   정치부문 안원기 의원 행정부문 홍건표 팀장 경제부문 배대순 대표 문화부문 박만진 시인 제14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자랑스런 서산인상 수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정균)는 지난 9일 각계각층의 추천으로 접수된 후보자들의 공적내용을 엄정히 심사해 정치, 행정, 경제, 문화 등 4개 부문에서만 수상자를 결정했다. 제14회 자랑스런 서산인상에는 △정치부문 안원기(58) 서산시의원 △행정부문 홍건표(50) 서산시 도시과 지구단위계획팀장 △경제부문 배대순(67) 토탈방재 대표이사 △문화부문 박만진(73) 시인이 각각 선정됐다. 안원기 의원은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복리증진을 위한 각종 봉사활동과 열정적인 의정활동으로 시민들이 행복한 서산 만들기에 항상 낮은 자세로 노력하는 의정활동을 펼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홍건표 팀장은 1996년 공직 입문 이후 시청 수도과, 지역발전정책과, 성장전략과, 도시과 등에 근무하면서 서산 입주기업의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 서산발전에 기여했다. 배대순 대표는 2007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일자리창출과 친환경기업 녹색성장에 적극 참여하면서 노사화합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남다른 봉사정신으로 어려운 이웃돕기에도 적극 참여했다. 박만진 시인은 흙빛문학회 회장, 서산문화원 부원장, 한국시민협회 심의위원, 서산시인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서산지역 문학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는 등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에 적극 기여해 왔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후 6시 30분 잠홍동 르셀웨딩컨벤션에서 열리는 서산타임즈 2019년 송년의 밤 행사와 함께 진행되며 수상자에게는 순금으로 특별 제작된 행운의 열쇠 패가 수여된다. 한편 서산타임즈가 지난 2005년 제정한 자랑스런 서산인상은 서산발전과 서산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맡은 분야에서 묵묵히 노력을 기울인 명망 있는 인사를 발굴하여 주는 상으로 올해로 14회째를 맞았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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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1
  • “러브레터가 시(詩) 였지요”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나태주 시인. 그는 러브레터가 시였고 러브레터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모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시는 나태주(74)시인이 쓴 ‘풀꽃’이다. 나 시인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시인으로 각광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된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나 시인이 되어야 한다. 지난 8일 저녁에 나 시인과 자리를 같이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박한 지식에 시를 쓴다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통달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시는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작품 중 백미(白眉) 같은 것입니다. 언어에는 영혼이 들어 있습니다. 언어에는 인간을 살리고 죽이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살리는 것을 축원이라 하고 죽이는 것을 저주라고 합니다. 마땅히 시는 사람을 살리는 축원의 의도를 담아야 하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시가 사람을 살립니다. 시가 세상을 밝게 합니다. 이것은 제 믿음이고 또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상은 어떻게 떠오르는 걸까? 이에 대해 그는 아무 때나 떠올린다고 했다. 심지어는 목욕을 할 때도 떠오르고 잠을 잘 때 꿈속에서도 시를 쓰는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이성적 작업이 아니라 철저히 감성적 작업이고 더 나아가 영혼이 작동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시의 원천은 자연과 인간과 세상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시상을 선물합니다. 특히 요즘엔 자동차를 타고 가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시를 씁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시가 떠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시를 쓴다는 그는 이것을 유목(노마드, nomad)의 시라고 했다. 나 시인은 언제부터 시를 썼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그는 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사모하는 마음을 표한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러브레터가 시였고 러브레터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다만 러브레터의 대상이 한 여학생에서 세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그는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주 5회 정도 전국 강연을 한다. 3년 전부터 그렇게 불려 다니는데 횟수를 줄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건강하다는 얘기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 그리고 잠을 오래 자기가 그의 건강비결이다. 나 시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출간한 시집의 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수시로 책이 출간되어 세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100권은 넘고 150권은 안될 것이라고 했다. 나 시인에게 서산은 어떤 도시일까?  한 마디로 그에게 서산은 “넓고 깨끗한 땅”이었다. 또 사람은 자연의 아들이기에 서산 사람 또한 서산의 자연을 닮아 순후하다고 했다. 그래서 서산을 좋아하고 서산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필자와는 충남문인협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살가운 인품이 좋아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70대 중반의 나 시인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그는 ‘잘 늙는 것’과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관을 이야기하자 “일생을 두고 한가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바뀌는 것”이라며 젊어서는 ‘최선을 다하자’였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자’가 삶의 모토(motto)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또 바뀌었다고 했다. ‘밥 안 얻어먹기와 욕 안 얻어먹기’다. 밥은 앞으로 얻어먹고 욕은 뒤로 얻어먹는 것이라며 이 두 가지만 지켜도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장담했다. 여기에 보탠다면 ‘요구하지 않기와 거절하지 않기’다. 그러나 요구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 이라고 했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서천의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되면서다. 그는 교직을 직업이라 여기고 시인을 본업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는 공주문화원장으로 활약했습니다. 8년을 근무하면서 공주시의 지원으로 공주풀꽃문학관을 건립하고 풀꽃문학상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행운이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표작 ‘풀꽃’에 대해 작고 사소해서 사람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고 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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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1
  • “경청이 희망을 만듭니다”
    특전사에서 비행기 낙하훈련 중 무릎을 다쳐 골절 후유증으로 지체6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는 김진우 지부장. 그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 희망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장애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이 희망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김진우(64)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서산시지부장은 “누워 있는 와상 환자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인간애를 갖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화를 나눈 이 와상환자가 자신의 소유 토지 3천평을 복지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는 것. 그러나 김 지부장은 받을 준비가 안 돼 받을 수가 없다며 한사코 거절한 사연을 소개했다. 이런 사연을 듣자니 그 장애인의 삶이 나의 삶이요,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 지부장은 특전사에서 비행기 낙하훈련 중 무릎을 다쳐 골절 후유증으로 지체6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전역과 동시에 포항제철(현 포스코) 예비군 연대장 추천으로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비서로 채용되어 20년을 근무했다. 그 후 김포공항 관리 공단, 대전 엑스포 파견 근무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남들이 모르는 장애인이었던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보면서 이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장애는 불편하나 불행하지 않다”는 헬렌켈러의 명언이 그의 인생 가치관이 되었다. 그러던 중 사단법인 한국신체장애인 복지회(중앙회)의 시군구 지부장 모집에 응시해 서산시지부장을 맡았다. 당시 뜻을 함께 해준 손관호(61ㆍ다모아 할인매장대표) 수석부회장, 문준하(61ㆍ준하광고 대표)부회장, 최선아(57ㆍ사회복지사ㆍ성광출판사ㆍ서산명함사 경영) 사무처장 등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열정으로 2015년 1월 서산시지부를 설립했다. “장애인들은 평생 인간적인 대접이나 대우를 받아보지 못한 분이 많이 계십니다. 만나서 인생사, 가족사 등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 그분들은 새로운 삶을 찾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분들이 무언가를 받으려고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일방적인 생각을 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분들이 남에게 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회원에 가입하고 본인도 힘들지만 자기 보다 더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든 장애인에게 희망을 만들어 달라며 후원금을 놓고 가십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42세 뇌병변 아들을 돌보는 73세 어머니께서 농사 진 쌀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는 주고받는 작은 정성과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지 모른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임원들은 장애인전문상담봉사를 위해 한국전문상담학회에서 심리상담사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 지부장이 설립 후 4년 동안 임원들과 사랑과 헌신으로 순수 봉사 해온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사회의 소외된 곳을 찾아 인정을 전하는 그들이 고마웠다. 현재 임원 26명, 회원 1086명으로 업무가 폭주하여 자비 부담이 늘고 있어 감당하기가 어려워 걱정이라며 독지가의 후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매년 장애인들과 장애우(장애인을 돕는 사람)가 함께 하는 나들이 사랑나눔 캠프, 장애인 가요제 꿈 나래, 장애 학생들의 지원을 위한 사랑의 끈 연결 운동과 나눔의 천사 구제 의류 활동 등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또 서산시 관내 나눔의 천사 저금통에 모아진 돈으로 장애가정 생활지원금과 장애학생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는 1981년 보건복지부 87호로 등록, UN에 가입된 장애인 복지 단체이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는 김 지부장은 태권도 5단 등 종합 무술 유단자로 가나 영농조합법인 회장이다. 어려운 일도 테이블에 내놓고 공동 의제로 토론하다 보면 제일 좋은 방식이 나온다는 김 지부장. 장애인에게 삶의 의욕을 주어 희망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했다. 그의 기쁨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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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4
  • “벤처경제가 서산이 나아갈 방향”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서산의 나아갈 방향은 제시한 정창덕 송호대 총장. 그는 융합 벤처산업 육성과 인재 양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세계 선도를 서산이 갖추어야할 3대 조건으로 제안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현재와 같은 2% 미만 경제 성장으로는 좋은 청년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700만 생계형 자영업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계부채가 1500조 더 늘어날 우려 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를 예측하고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 이것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현대인이 생존하는 길이다. 지난 15일 필자와 10여년 넘게 교류하고 있는 강원도 횡성 소재 송호대학교 정창덕(59) 총장이 서산을 방문했다. 정 총장은 일상의 정보를 지인들과 공유하는 부지런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KBS 객원 해설위원 등 국내는 물론 외국 초청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창출과 자산 관리 등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날도 정 총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서산으로서는 벤처경제만이 살길 이라고 서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산업이 변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몸 고생보다 생활속의 마음고생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농업화시대의 손발 경제에는 육체노동이 지배했다면, 정보화시대의 두뇌경제시대는 정신노동 이었고, 미래는 생활속의 감성노동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삶의 현장 각 분야에서 사다리를 제 위치에 놓을 수 있는 리더가 요구되고 미래의 새로운 큰 목표 하에 뉴스타트(New start)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창업 벤처 3만개시대, 일자리 500만개를 만들기에 4차 산업혁명산업ㆍ창업벤처출현=벤처 아이템기술과ㆍ농업ㆍ제조업ㆍ각 산업분야ㆍ융합된 거대한 국내외 시장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인도와 같은 거대한 내수시장이 없기에 거대한 내수시장을 대체할 4차 산업형 산업규모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해결책에 대한 방안으로 창업 벤처를 년간 1만~2만개 이상 늘여야 하고 동시에 창업초기 엔젤 VC M&A 등의 고작 1조원 미만 수준 즉, 국내외확장 시장을 GDP 5%를 적정 임계치로 보고 평화통일경제에 대비하여 80~100조 규모로 크게 늘여야 한다고 했다. 결국, 창업뱅크 플랫폼 초혁신을 유도하여 인공지능ㆍ스마트ㆍ온라인 M&A 마켓시장과 대기업의 사내벤처가 활성화되면 3년 내에 구글 같은 벤처 10개, 잠재 창업 벤처 5만개가 출연되는 일거리 생태계가 조성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4차 산업형 인재중심의 일거리와 일자리 700만개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대학이 나서서 1만 명 규모의 ‘벤처 일자리창출 주식회사’를 설립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총장은 본격적인 4차 산업시대에 서산이 갖추어야 할 3가지를 제시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농업ㆍ제조업ㆍ기타산업을 융합하여 벤처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벤처경제를 통해 협력하여 웰니스 지역서비스러닝, 협동조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인성실천 봉사단을 만들어 지역과 국가와 나아가 세계적 봉사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각 분야에서 인성을 갖춘 진정한 봉사 4차 산업 핵심인재 전문인이 탄생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가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혁신 사고로 지역과 협력하고 국가에 이바지하는 신산업, 신사회, 신국가의 확고한 철학으로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 그래서 모름지기 선도국가를 이룰 수 있는 각 분야 일꾼들이 나와서 미래 산업, 교육, 경제, 종교 문제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성공모델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 인삼, 단호박,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등 서산의 모든 분야에 4차산업융합형 벤처를 일으켜야 한다. 한편 정 총장은 1960년 전북 임실군에서 출생했다. 단국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산업경제 석사, 카이스트(KAIST)에서 경영정보 박사학위를 취득 했다. 이어 미국 인디애나대와 UCLA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 교육대학원 객원 교수, 중국 하얼빈대 석좌교수, 고려대 컴퓨터 정보학과 교수,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국가 전략회의 위원, 청와대 정책 기획자문위원, 강릉영동대학교 총장, 안양대학교 총장을 거쳐 2017년 8월부터 송호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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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6
  • “서산에 평화통일의 씨앗 심고파”
    ▲국가유공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국가와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윤만형 회장. 그는 정부 통일정책과 관련한 자문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통일미래시대를 준비하는 평화의 씨앗을 서산에 심는다는 각오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제19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서산시협의회 윤만형(54ㆍ사진)회장은 국가평화 통일 정책의 목적과 취지가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윤 회장은 국가유공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작고한 부친(윤의권, 1928-2015)께서는 전쟁 중에 수류탄을 맞아 파편이 몸에 박힌 채 평생을 사셨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달에 한번 돈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는 그는 그것이 국가에서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국가와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러한 다짐은 윤 회장이 성인이 되면서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학시절에 특전사를 지원, 707 특수임무대대에서 군 생활을 하며 투철한 국가안보관을 정립했다. 또 학창시절에는 학교 대표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와 진실을 중시하는 성격이었다는 것의 윤 회장 지인들의 평가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회장 임명장 받았다는 그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는 한반도 평화통일 정책수립 및 추진에 관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자 범국민적 통일기구”라고 설명했다. 또 서산시협의회는 당연직으로 도ㆍ시 의원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의 인사 46명으로 구성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요즈음 청년세대의 통일관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청년들은 통일을 하면 독일의 경우처럼 더 어려워 질것이라는 견해가 있다며 북한 이탈 주민의 북한 실상, 6.25 참전 용사들의 실제 체험담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을 이해시키는 통일교육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소통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 중 하나라는 그는 “정부 통일정책과 관련한 자문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려 한다”며 “자문위원들도 이런 적극적 소통자세를 가지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통 서산시협의회는 오는 12월 15일 르셀 웨딩홀에서 북한이탈 주민 소통과 화합의 장을 가질 계획이다. 또 12월 중에 예비 사회인 고3 학생을 대상으로 통일 퀴즈대회와 지역 주민 평화 통일 공감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민주평통 서산시협의회 역대회장 초청 간담회를 갖고 평화통일에 대한 지혜와 경험을 공유할 계획이다. 윤 회장은 군대생활을 통해 인간으로써 한계를 느낄 정도로 고된 훈련은 강인한 인내력과 국가관을 가진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여기에 내조의 힘도 강조했다. 1999년 3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부인 하은주(47)여사는 서산시 동문동에서 아름다운이들 피부 관리 숍을 운영하면서 1남1녀를 잘 키우고 윤 회장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든든한 반려자요, 후원자라고 했다. 자녀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바른 행동과 어떠한 일을 했을 때 결과가 나올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을 가르친다. 윤만형 회장은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 통일은 우리들 마음에서부터 시작 된다”며 “시민과 함께 새로운 한반도 시대 구현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그것은 지금의 평화와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졌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현재 해양구조물을 설치하고(수중공사업), 바다 폐기물을 수거(어장정화정비업)하는 (주)고려수중개발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지난해 위더스 평생교육원에서 인터넷으로 사회복지사를 취득한 학구파로 서산시축구협회장, 충남도축구협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 서산시체육회 부회장, 서산FC(유소년 축구) 단장을 맡고 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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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0
  • 정치후원금 기부, 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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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3
  • 39살에 대학 도전, 원동력은 ‘딸’
    ▲29세에 위암으로 5년 시한부 삶을 살았던 노경수 작가. 절망에 빠졌던 그녀를 일으켜 만학에 도전하게 한 건 당시 17개월 된 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동화작가 노경수가 학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서른아홉 살 때였다. 스물아홉 살에 위암으로 5년 시한부 삶을 살게 됐던 그녀, 절망에 빠졌던 그녀를 일으켜 만학에 도전하게 한 건 당시 17개월 된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아이를 어떻게 키우다 죽어야 하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는 게 없었어요. 아이와 함께 동화를 읽기 시작했지요. 읽다가 보니까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학교 다닐 때 독서광도 아니었고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읽다가 보니 쓸 수 있겠더라고요.” 독서를 통해 시작한 창작에의 도전은 1997년 MBC창작동화공모에서 「동생과 색종이」로 대상을 수상하며 시작됐다. 같은 해 서산으로 이사한 그녀는 39살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하고 문학특기생으로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소설가 윤흥길 교수 문하에서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단국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아동문학을 전공하여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졸업식 노래’와 ‘고향 땅’작사로 유명한 윤석중 아동문학가에 대한 연구다. 윤석중 아동문학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꿈을 주기도 해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아이를 향한 꿈이, 생명력을 증대시켰고 오늘의 저를 있게 했어요.”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간 2004년부터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기 시작한 그녀는 2018년까지 서울여자대학교, 한경대학교, 단국대학교, 한서대학교, 우석대학교 등 한 학기 평균 3개 대학을 다니면서 아동문학론, 아동문학창작실습, 글쓰기 같은 과목을 맡아 강의했다. “강사법이 통과되면서 강의 자리를 잃기까지 쉬지 않고 겸임교수로 강사로 많은 강의를 하고 다녔어요. 길에서 보낸 시간도 참 많았지요. 덕분에 창작에 몰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창작에 전념할 때이구나, 생각했지요. 올핸 강연도 조금 다니고 한국아동문학인협회에서 창작 강의도 조금 하면서 집필하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었고 감동이었다는 그녀는 투병생활 4년 차에 둘째 아이를 출산한다. 2007년 출간한 테마 수필집 『엄마를 키우는 아이들』은 그녀가 두 아이와 함께 공부한 여정을 쓴 이야기이다. 이 책으로 BOOK TV <저자와의 대화>에 출연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후 『오리부부의 숨바꼭질』, 『집으로 가는 길』, 『씨앗바구니』, 『쉿, 갯벌의 비밀을 들려줄게』,  『‘하얀’ 검은 새를 기다리며』 등의 동화집을 출간했다. 2019년에는 해미천과 천수만을 배경으로 쓴  『‘하얀’ 검은 새를 기다리며』가 서산시의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에서 아동도서부분에 선정되어 성연중학교, 언암초등학교 등에 기쁘게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질 때는 몰랐는데요, ‘엄마’는 죽을 때까지 불리는 이름이더라고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좋은 엄마’를 향한 저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는 거지요.” 그녀에게 꿈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당시 17개월이었던 딸은 경인교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 투병생활 중에 얻은 아들은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부하는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본 주부들 중에는 그녀 모습에서 용기를 얻어 늦게 학문에 도전, 새로운 삶을 사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단국대학교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단국문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면서 “꿈은 삶의 이정표이며 그 여정에서 얻는 기쁨과 감동은 생명력을 증대시키는 비타민”이라고 했다. 한편 노 작가는 1960년 공주출생으로 서산에서 19년 동안이나 살았다. 현재는 경기도 광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공주와 마음의 고향인 서산을 오가고 있다. “서산은 정서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문학적 상상력을 주는 공간이에요” 그녀가 서산을 자주 찾는 이유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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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2
  • “양반의 고장, 서산 명성 찾을 터”
    평생을 농촌 계몽과 농업인의 발전을 위해 살아온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당선인. 그는 이제 문화 활동 실천으로 시민들이 고귀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최상임 작가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가 저술한 ‘역사의 연구’에서 그는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서로 협력하는 민족만이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 한다. 게으르고 거짓말을 하며,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민족은 다른 민족의 식민지배나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준엄한 교훈이다” 라고 말했다. 편세환(81) 서산문화원장 당선자를 지난 3일 필자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삶의 가치관에 대해 “농사와 같이 진실하게 서로 협력하면서 부지런히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나이 81세. 서산문화원장 출마여부를 놓고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지혜를 서산 문화 발전을 위해 써 달라는 권유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당선 직후 “서산문화원장 임기 4년 동안을 인생의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했다. 앞으로 서산문화원의 발전 방향에 대해 그는 “문화라는 것은 우리 삶속에서 서서히 발전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방향과 목표를 조용한 전진, 알찬 문화 창달에 역점을 두어 인문을 통한 시민의 인성 계발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또 “최소한 삼강오륜의 윤리관을 바탕으로 양반의 고장, 서산의 옛 명성을 되찾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0년 서산향토문화연구회원으로 서산문화원과 인연을 맺은 편세환 당선자는 2015년 서산문화원 이사, 2016년 서산문화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다 지난10월 15일 임시총회에서 제9대 서산문화원장으로 당선됐다. 서산문화원 설립 후 처음 실시된 경선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문화원 회원(문화 가족)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시민과 함께 호흡을 나눌 수 있도록 내부의 성숙을 다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각종 분야별 문화학교를 자율적으로 내실 있게 운영하여 신바람 나는 활동으로 문화수준을 높여 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방문화원은 법률로 정해진 공공성을 띤 사단법인 이지만 아직까지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는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이다. 또 문화의 속성상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투자한 만큼의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보듬어야 할 준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시민들이 이해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세환 당선자는 서산문화원이 서산시민의 행복 추구와 후세를 위하여 시민 모두가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함께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고 이를 통해 자기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는 도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당선자는 운산초, 해미중, 서산중앙고(전 서산농고) 임업과 11회 졸업하고 공군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34년 근무하다 서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관으로 퇴임했다. 1998년 문예한국 시 분야에서 ‘봄’외 5편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밤에 뜨는 태양’발간을 시작으로 제6시집과 합동시집 5권에 참여했다.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거쳐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고 활동으로는 천수만 AB지구 간척과 그 성과(2007년), 석동 윤석중과 서산(2009년), 서산이 낳은 법장스님의 위대한 정신(2009년) 등이 있으며 2002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 당선자는 장수 집안으로 문화 예술ㆍ가정으로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 윤대봉(103세) 여사는 슬하에 5형제를 뒀다. 편 당선자가 장남이며, 둘째(범권ㆍ농업)는 음암면 도당4리 이장을, 셋째(인환)는 서산시농업기술센터소장을 역임했다. 넷째(선환)는 사진작가로 현재 서산예총 사무국장이며, 다섯째(현범)는 온양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편 당선자 부인 허권순(80)여사는 효심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어버이날에 서산시장과 대한노인회 음암분회장으로부터 각각 효부상을 받았다.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취임식은 11일 오후 5시 서산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열린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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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6
  • 가로림만의 해양생태계 1년 추적…KBS 특별기획 방영
    KBS 대전방송총국은 오는 5일 저녁 7시 40분 가로림만의 해양생태계를 1년간 추적한 기록을 특별기획으로 방영한다고 밝혔다. 특별기획은 가로림만의 생태와 어민들의 생활상을 1년간 담아냈다. 특히 6개월간의 긴 추적과 기다림 끝내 국내 최초로 점박이물범이 모래톱 위에서 무리 지어 휴식하는 장면도 포착해냈다. 가로림만은 지난 2016년 국내 최초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근에 자리한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에선 해마다 크고 작은 환경오염사고가 잇따르고, 79개에 달하는 방조제로 인해 갯벌 생태계는 점점 망가지고 어족자원은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 가로림만 사람들과 자연이 공존하고, 생태가치를 보전하는 데 필요한 일을 찾기 위해 KBS대전 취재진은 일본과 독일을 찾았다. 인구 2만 8000명의 작은 시골, 일본 사가현 가시마시에선 1년에 단 하루 아리아케해 갯벌에서 특별한 올림픽이 열린다. 지정된 구역에서 이뤄지는 갯벌올림픽, 이른바 가타림픽이다. 가타림픽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에만 3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가타림픽 등을 통해 매년 350만 명이 이곳을 찾고 경제유발효과는 600억 원에 이른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바덴해 갯벌은 보존이 잘 이뤄진 세계최대 갯벌이다. 바덴해 갯벌 전 지역을 자연보호법에 따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독일은 갯벌의 90%는 절대 제한구역, 10%는 허가에 의해 출입할 수 있는 구역으로 나눴다. 이중 단 1%만 휴양구역으로 지정해 엄격한 관리가 이뤄진다.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음에도 매년 1억 명이 찾는 바덴해의 인기에는 갯벌환경의 교육적 기능과 보전의 철학이 숨어있다. 지난 3월,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최종용역보고회가 열렸다. 갯벌 복원을 시작해 다양한 시설과 갯벌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0년 예비타당성 조사 선정 및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갯벌을 활용해 다양한 시설을 유치하고, 생태관광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갯벌을 지키고 보전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KBS대전 관계자는 “가로림만의 생태와 어민들의 모습을 1년간 기록하고, 6개월간의 추적 끝에 점박이물범의 휴식장면을 카메라에 포착했다”며 “2014년 이후 행방이 묘연한 붉은발말똥게를 비롯해 서식지 위협으로 흰발농게, 거머리말의 모습이 사라지는 가로림만의 위기 또한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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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3
  • “가정의 화목이 부자를 만들어 주었어요”
    맨손으로 펜션을 짓기 시작한 최금순 대표. 그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오직‘신용’이 바탕이었다. 사진=최상임 작가     필자는 지난 9월 변호사인 아들과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를 돌아보고 권력과 부의 상징인 금개구리 서식처인 두웅습지를 방문 했었다. 마침 박열(45) 학암포 번영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겨울연가 펜션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런 방문이었는데 온 가족이 있었다. 배에서 금방 잡아온 큰 도미, 우럭회로 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이날 박열 회장의 어머니 최금순 여사의 고난과 역경 속에 성공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돈 한 푼 없이 230평 3층 규모의 펜션을 건축한 용기, 은행을 정년퇴직한 지인이 45억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흥미까지 있었다. 지나던 스님이 학암포는 학이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나는 형상인데 바로 이 땅이 학의 가슴에 알을 품고 있는 땅으로 너무 좋은 터라는 말에 수십 년 동안 땅만 믿고 지켜왔다고 했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이날은 헤어졌다. 그리고 지난 29일 최 여사가 부군 박기화(77)씨와 함께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지난 9월의 약속을 지키려 찾아왔다고 했다. 최 여사는 “진실을 이길 장사는 없다, 우정도 진실에서는 변할 수 없다. 지금도 8살 때 근흥면 용신리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 15명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 수시로 연락하면서 친자매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돈보다 인간관계가 우선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44년 전 지금의 터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행상을 하고 돌아오니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 버려 젖먹이 막내와 어린 5남매가 남의 집 추녀 밑에서 떨고 있었다. 그 후 남의 집 창고에서 몇 년 동안을 숙식해야만 했다. 그래도 부부는 열심히 살았다. 약속을 지키고 신의를 생명처럼 여겼다. 이들 부부를 지켜본 한 지인이 방 12개가 있는 민박집을 운영해 보라고 권유했다. 집값도 한 푼 받지 않았다. 벌어서 갚으라고만 했다. 부부는 지인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손님이 오면 가족처럼 대했다. 바다에 나가 잡은 고기를 손님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 당시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고객이 지금까지 찾아오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물론 이들이 찾아오면 돈도 받지 않고 푹 쉬라고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됐으니까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예산 삽교에서 출생했다. 8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태안군 근흥면 용신리로 와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병원 등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남3녀 중 장녀인 최 여사는 생계를 위해 학암포로 황금조기를 구입하러 갔다가 마포중고를 졸업하고 항해운수 전무로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했지만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남편이 간경화로 20년을 고생했다. 여기에 큰 아들이 뇌막염으로 병환에 있으니 그녀의 머리에 생선이 담긴 고무다라는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소형선박을 구입해 멸치잡이를 했고, 굴을 구입해 서산동부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서해수산 정제탁 사장은 그녀를 대단히 신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옷 장사, 보험외판원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다시 돈이 모이자 땅 100여 평을 구입했다. 인근 토지의 4사람의 지분은 외상이었다. 보잘 것 없는 땅이었지만 경운기와 소달구지로 땅을 메웠다. 그리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7년 전이었어요. 벽돌, 철근, 못 하나 모두 외상이었죠. 담보도 없이 신용으로 농협, 수협, 대한생명, 새마을금고 등 대출로 펜션을 지었습니다” 2012년 8월 1일 드디어 펜션을 준공했다. 인생의 억지가 통하는 것은 신뢰라는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해 9월 한국서부발전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라 할까 펜션수입이 상상을 초월 했다. 3년 만에 큰 채무는 모두 갚았다. 최 여사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생계에 얽매여 열심히 살다 보니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사랑한다’를 수십 번이나 외친다고 했다. 2남 3녀에 며느리, 손자, 손녀, 외손자까지 매일 카톡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가족의 생일,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주는 가정의 화목을 위한 사령탑 역할을 하는 최 대표의 가족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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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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