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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번의 스타 영업소장…힘이 솟았다
    이창씨는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 제대 후 신성대, 한서대를 거쳐 동국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수 추천으로 해태제과에 취업한 그는 회사와 사회 그리고 가정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창(46)씨는 늘 깔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업을 하려면 깔끔해야 합니다. 거울 앞에서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고, 턱을 당기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는 등 숱한 노력을 해왔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전에는 못 듣던 ‘인상 좋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영업의 성패에서 첫인상은 중요하니까요” 해태제과 서울2지점 분당영업소장인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JC가 인연이 되어 알고 있는 그는 필자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청년리더이다. 직원 10명으로 년 매출 80억 이상이 목표라는 그는 13년 동안 서산과 공주 등에서 해태제과 영업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매월 회사에서 주어진 목표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려 무려 7차례나 ‘STAR영업소’로 선정됐다. 회사는 프랑스 등 11개국의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며 사기를 북돋았다. 당연히 본사 임직원들도 그의 사회생활을 높이 평가했다. 기업 이미지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사 측의 사기진작은 그에게 더욱 새로운 힘을 솟아나게 했다. 그는 이렇게 새롭게 돋는 힘을 서산사회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3년 서산청년회의소 회장 당시 시작한 사랑의 의료봉사를 8년째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 봉사는 JC회원인 예닮치과 정현두(38)원장의 소개로 의대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된 의료연합동아리(MS)와 인연이 되어 매년 겨울과 여름 2회씩 서산 관내 의료 취약지역에서 서산JC, 신성대 총동문회 등이 주최하고 있다. 그는 또 2014년 충남세종지구 JC회장(45대), 2015년 한국JC 여성청소년 정책실장으로 출산장려 캠페인, 전국 청소년 나라사랑 글짓기 대회를 직접 주관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무부 법사랑위원,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 충남지부 홍보위원장, 서림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서푸른 실천연대 사무국장, 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생활안전협의회 사무국장, 서산시사회복지협회 이사,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서산시후원회위원, 직장새마을운동서산시협의회 감사 등 공익적 가치를 위한 삶에도 소홀함이 없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암초, 음암중, 서산공고 졸업 후 서울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 제대 후 1999년 신성대 관광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뒤늦게 시작한 학구열은 한서대 경영학사(2005), 동국대 경영학 석사(2008)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특히 그는 신성대학 재학 당시 4500여 학생들의 직접 선거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그때 자취하는 학생들에게 방값인상을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학교인근 집주인을 찾아 일일이 호소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그의 진정성을 믿고 표를 주었다. 이를 본 정양숙 교수(전 국회의원)가 그를 해태제과에 추천했다. 2015년 신성대 총동문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신성대 개교 20주년에 즈음하여 학교발전기금 1천만 원을 기탁하는 등 모교사랑도 특별하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라, 이것이 자신을 위한 삶이다” 평소 국가유공자로 자부심이 강했다는 아버지(이재동 1928-2020) 말씀이 생활신조가 되었다는 그는 고교1학년 때 꿈은 의사와 판사였다. 돈이 없는 사람도 의료나 법에서 평등하게 도움을 받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 꿈을 사회생활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2019년 11월 8일 법무복지의 날을 맞아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는 모범적이다. 어머니(채묘순. 80)에게 마트를 차려드렸더니 어머니는 그가 충남세종지구 JC회장에 당선되자 선뜻 활동비를 지원 했다. 어머니는 평소 정직하게 벌어 보람 있게 돈을 써야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산위원회 사무국장인 누나(이만, 47)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다. 가족으로는 부인 노정인(42)여사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공휴일도 없이 고객 점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방문하여 물건을 진열해주는 특유의 근면함과 진정성, 여가시간을 내어 이웃을 찾아 봉사하는 삶을 사는 그는 앞으로 계속 주민의 복지와 지역발전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 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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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 ‘신한류 발전소 충남도 가능’
    대한민국이 세계문화의 중심이 되고, 충남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본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그는 자신에 대해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시대 기획자’라고 했다.   김현식(64)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한때 필자와 정치적 동지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29일 내포의 충남문화재단을 방문했다. 충남문화재단은 충남의 문화예술정책과 사업 개발, 지역고유문화육성,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및 복지지원, 문화기획자 및 마케터 양성, 소외계층 문화복지, 도민대상 문화예술교육지원, 생활문화활성화지원, 국제문화예술교류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를 위해 총 400건이 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ICT기반 문화콘텐츠(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와 유물유적 발굴 보존 및 학술연구(충남역사문화연구원)를 제외한 문화예술관련 모든 업무는 재단에서 맡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신정권 때 대학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내로라하는 여러 굵직한 정치인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된 뒤 강제징집으로 군에 입대했고, 제대 뒤에는 출판사와 홍보기획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면서 뒤늦게 방송계에 입문했다. 한국문화와 경제를 세계에 알리는 다언어 국제위성방송인 아리랑TV에서 10년을 근무했다. 그는 재직 중 국내 케이블 TV, 아시아 위성방송, 글로벌 국제방송까지 실무 책임자로 사업을 입안 실행하여 NHK와 CCTV를 따돌리고 한류의 초석을 다진 일은 평생 가장 자랑스런 일이었다고 했다. 대표이사 취임 4개월째를 맞는 김 대표는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일을 기획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르네상스 시대 기폭제가 될 문화의 달 50주년 행사를 내년에 충남에 유치했다는 그는 문화대국 코리아 선언 등 충남을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충남은 ‘한국정신문화의 본향’임을 주장할 상징, 인물, 콘텐츠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계룡산은 동양사상의 정수인 주역공부의 도량으로 논산 연산에서 주역을 완성한 ‘정역’의 김일부 선생이 있고, 실학의 효시인 보령출신 토정 이지함 선생의 토정비결이 있으며, 성리학에서 노론의 송시열과 소론의 명재 윤증 선생 등이 있다. 또한 송나라 출신학자 정신보가 고려고종24년(1237) 서산간월도에 정착하여 고려 한인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투쟁의 영웅들이 가장 많은 독립운동 성지가 바로 충남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와 대화 속에 문화, 역사, 인문학 등 해박한 지식과 논리를 뛰어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 지역의 새로운 문화 창조에 대한 비전은 깊이를 더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충남문화재단을 문화충남 건설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이 포부이다. 이를 위해 금년에 문화비전 2030을 수립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금 대중문화의 한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제는 고급한류 즉, 정신문화의 신한류가 필요할 때라며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시대 기획자’로 새로운 문화운동의 주역이 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그는 서산은 리아스식 해안을 가진 문명의 발상지로 서산만의 독특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 인물을 바탕으로 차별화 된 문화 예술 발전 전략을 펼쳐나가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김 대표는 문화는 산업의 쌀이며 복지의 완결요소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충남을 국토의 중심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에 성원을 부탁했다. 연기 출생으로 서울 용문중ㆍ고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김근태, 이해찬, 조성우 등 선배들과 민청련 창립, 김근태 의장 고문사건에 저항 농성을 주도하다 안기부 남산 지하실에 갇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경동교회(강원용 목사시무)에서 청년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아내 양지혜(59)여사를 만나 결혼하여 1남을 두고 있다. 신혼 초에 운영하고 있던 유치원을 전교조 교사들의 집회장소로 제공했다가 생업을 망가뜨려 아내에게 평생 죄인으로 살고 있다는 그의 생활신조는  “불가능은 없다. 안되면 되게 하라,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다. ‘문화가 빛나는 충남, 예술이 숨 쉬는 마을’을 만드는 일은 주민이 주체가 되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그는 도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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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 “농민들 만나면 아버지 생각나죠”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부친의 영향으로 평생 농협인이 되었다는 김 조합장. 그는 농민들을 만날 때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못다 한 효도를 조합원에게 한다는 심정으로 조합원과 농민을 섬기는 조합장이 되겠다고 했다.   김기곤(60) 대산농협 조합장은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업을 아는 전문가임은 틀림이 없는 듯했다. 얼마 전 행사장에 만난 김 조합장은 전 국민이 붉은 악마로 변신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산시와 대산농협의 육성한 ‘뜸부기와 함께 자란 쌀(뜸부기쌀)’이 전국 최고의 쌀이 되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며칠 후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지난 20일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농업인이 부자 되고 존경받는 사회를 위해 조합원과 함께 꿈이 있는 농촌을 만들겠다”며 말문을 연 그는 2002년 당시 대산농협 미곡종합처리장장으로 근무하면서 ‘뜸부기 쌀’사업에 참여한 장본인으로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이런 그를 보면서 농촌과 농민, 농업을 위한 열정과 진정성이 조합원들의 믿음으로 이어져 조합장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는 서산시장이었다. 김 조합장은 대산 출신이다. 그가 농업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데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부친(김영환, 1925-1987)의 영향이 컸다. 부친께서는 평소 부지런하셨다. 근검절약하면서 4천여 평 농사를 지어 4남 3녀를 고등교육까지 마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자식사랑과 교육열은 그 어느 부모보다도 높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돕던 농사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편하고 수지맞는 농사” 방법은 없을까 늘 궁리한 것이 평생을 농협인으로 살게 된 이유다. 그는 1987년 근흥농협(당시 조합장 함정경, 서산군 근흥면)에 근무를 시작으로 농협인이 되었다. 그 후 대산농협에서 상무와 전무를 거쳐 2019년 3월 실시한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조합장으로 취임하기까지 30여년을 농협에서 잔뼈가 굵었다. 대산농협에 근무하면서 그는 농촌을 잘 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좋은 쌀을 만들어 높은 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기행전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과 서산이미지 가치 상승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다. 쌀 브랜드 ‘뜸부기와 함께 자란 쌀’도 이즈음 탄생됐다. 쌀 작목반(반장 이한우)을 조직, 전량 계약재배를 했다. 좋은 품종 선택하고 우수 농산물 인증제도(GAP)에 맞춰 재배하여 적기 수확을 하도록 했다. 수확한 쌀은 전량 농협에서 수매했다. 수매가격도 일반벼에 비해 40kg 포대 당 4000원 비쌌다. 이렇게 수매한 벼는 저온사이로(15˚C) 보관하면서 완전미로 도정해 충청권과 수도권 대형 마트에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60여 계약농가가 280㏊에서 생산한 쌀은 2000톤에 이르렀다. 쌀을 구매한 소비자들로부터 미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TV 방송을 비롯한 각 언론이 이런 사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김 조합장은 당시 서산시 담당팀장이었던 임종근(57. 현 농식품유통과장)씨와 함께 수도권 대형 유통매장을 찾아 시식회를 갖는 등 ‘뜸부기 쌀’판촉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 조합장은 장장 당시 2005년 고품질 쌀 생산 유공으로 농림부장관표창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표창을 받은 데는 당시 김용호 조합장의 공이 컸다고 했다. 이제 김 조합장은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재배 농가와 계약 재배하고 수매하여 판매해 주고 있다. 앞으로 농심과 CJ 등 대기업은 물론 대산에 있는 기업에 전량 판매하여 조합원들이 마음 놓고 농사짓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크다. 이를 위해 그는 요즈음 대산농협 자산 지난해 말 2700억 원을 가진 현재 1700명의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국내는 물론 덴마크 등 선진국 농협과 농업을 벤치마킹 등 열심히 뛰고 있다. 농업인들의 작고 큰 모임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농협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조합장은 명지초와 대산중, 서산중앙고(서산농고 32회, 농업토목과)를 거쳐 단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했다. 해병대 학사장교로 임관 3년 3개월 복무 후 중위로 전역했다. 가족으로는 1991년 근흥농협 근무 할 때 지인의 소개로 첫눈에 반해 결혼한 문옥기(58)여사와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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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4
  • “삶 속의 희로애락 시에 담겨 있지요”
    ▲여중 시절 국어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문학소녀의 길을 걸었다는 김가연 시인. 시인은 독서와 여행, 사람과의 만남, 모든 자연을 통해서 시의 소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얻은 상상력을 기록함으로써 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디카시집 ‘해미읍성, 600년 역사를 걸어나오다’를 펴낸 김가연(57) 시인이 지난 12일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녀가 펴낸 ‘디카시집’이 궁금했던 터라 반가웠다. 아울러 시인이 되기까지 그녀의  삶이 어떤 것일까를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2009년 ‘열린시학’에서 ‘달콤한 초록’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간의 배후’(2013), ‘푸른 별에서의 하루’(2108)를 펴냈다. 이번에 펴낸 디카시집은 그녀의 세 번 째 시집으로 서산에서 10여년이 넘게 시를 써왔다. “시가 이젠 제 삶이되었어요. 삶 속의 희로애락이 시 속에 담겨 있죠. 시인은 삶의 이야기를 시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영혼의 대언자입니다” 그랬다. 그녀의 말대로 이번에 펴낸 디카시집은 해미읍성에서 살아온 영혼들의 대언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디카시집은 그녀가 지난 5년여 동안 사시사철, 조석으로 직접 사진을 찍어가며 떠오른 시상을 함축된 시어로 표현한 것으로 국내 문학계에서도 흔치 않은 시집이다. 특히 이 디카시집은 시를 읽는 독자를 섬세히 배려했다. 독자들이 이 시집을 들고 해미읍성을 거닐며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에 따라 편집하는 등 문학적 열정이 응집되어있다. 필자는 1995년 흙빛문학회에서 시인을 만났다. 당시 시인의 시 낭송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성미 넘치는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문우로써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지면에서 출생한 그녀가 시인이 된 데는 여중 시절 국어교사의 영향이 컸다. 40여 년 전이다. 당시 담임교사인 국어선생님이 예능에 재능이 있다며 교내 백일장에 추천하면서다. 첫 출전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칭찬과 관심으로 어느 새 문학소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인의 꿈을 갖게 된 계기다. 고향을 떠나 수원에서 유학을 하며 보낸 여고시절에도 그녀는 매일 또박또박 시를 쓰듯 일기를 썼다. 여고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던 중 시를 쓰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다. 당시 인연이 된 사람이 유현민(50)씨다. 1995년 유씨와 함께 서산태안문학단체인 흙빛문학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경수(60, 동화작가)교수를 만났다. 노 교수의 권유로 한서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수월하진 않았지만 노력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 결과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 만학도인 그녀에게 윤흥길 교수(소설가)의 강의는 문학적 소양을 키워 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 영향으로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다. 2005년 한국문인협회 서산시지부 창립 회원으로 참여해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시인은 흙빛문학회 10대 회장(2007~2011)을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지곡 부성초 방과후 교실, 인지 작은도서관 지도강사, 해미도서관, 서산문화원 지역문화학교, 서산시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에서 시 창작 강의 등 문학과 관련된 일이라면 꾸준히 참여해 왔다. 현재는 서산문화원 이사, 서산소식지 편집위원(서산시 발간, 2002~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충남문인협회 회원으로 문학적 기량을 뿜어내고 있다. 요즘 그녀는 장석주 시인의 ‘은유의 힘’시론을 읽고 있다고 했다. 시의 소재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시의 소재는 이렇게 독서뿐만 아니라 여행, 사람과의 만남, 모든 자연을 통해서 얻는다는 그녀는 이를 통해 얻은 상상력을 기록함으로써 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흙빛문학회(회장 이자영), 한국문인협회 서산시지부(지부장 전승진), 서산시인회(회장 박만진) 등 동인들과 어울리며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김 시인은 문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남편 김태동(60)씨가 제일 고맙다고 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시를 통한 그 가치와 의미가 독자들에게 널리 소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냈다. 이 바람에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15세 문학소녀의 꿈과 아름다움이 오버랩으로 다가온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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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6
  •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
    어린 시절 할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노래와 가까워 졌다는 가수 금채안. 지난 6월 3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그녀는 ‘트로트 미스코리아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이란 피켓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서산하면 떠오르는 유명가수가 되고 싶어요. 서산시민과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는 멋진 가수가 되겠습니다” 금채안 가수. 본명 김도형, 1970년 서산(수석동)출생, 일명 트로트 미스코리아 가수 금채안씨를 지난 8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녀는 6월 3일 방영된 KBS TV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를 시청하면서 20여 년 전이 떠올랐다. 생활전선에서 뛰던 부지런한 그녀였다. 이날 TV화면에는 ‘트로트 미스코리아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이란 피켓이 보였다. 고향에 대한 그녀의 애정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채안 가수는 어렸을 때 할머니(송옥희 1915-2011)가 동네잔치가 있을 때마다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성장했다. 또 부친(김영식 1938-1979)은 콩쿨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그녀 나이 5~6세였다. 구구단도 함께 외우고, 함께 노래도 불렀다. 아버지 친구들이 복주머니를 주면서 앞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그녀 나이 8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가정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어머니(안연희 1949-)는 매일 남의 집일을 다니느라 5남매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1남4녀 중 둘째 딸로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면서 배울 기회도, 꿈꿀 시간도 없어 할머니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녀는 노래 등 예술에 끼와 소질, 노력, 열정도 대단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천안 청운여고를 다녔다. 오산초등학교와 서산여중을 다닐 때는 미술과 음악 등 예능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혜전대학도 교수 추천으로 장학금으로 다녔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미장원에서 허드렛일 하다 미용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림도 배워 전시회 출품도 하고, 새벽에 우유, 신문 배달로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 6년 동안 키운 조경수 판 돈 등 2천만 원을 서울 가양동 CJ스튜디오 트로트x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방송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현혹에 몽땅 사기를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눈앞이 캄캄해 죽으려 했지만 고생하면서 나를 키워준 어머니 생각에 가수의 꿈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2008년부터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춘희, 서산출신 유창(서울무형문화재 41호), 유지숙(무형문화제 제21호) 보유자로부터 전수 받았다. 그 후 2013년 청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청춘열차’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충남방송이 주최란 전국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활발한 가수 활동을 벌였다. 2015년 데뷔곡 ‘어이할꼬’로 서산시청 앞에서 쇼케이스(showcase)를 가졌다. 2017년 ‘오빠가 좋아’2집 앨범 발표를 서산시 문화회관에서 전영록 가수, 최병서 개그맨과 함께 개인 콘서트인 ‘금채안의 음악여행’을 민옥선 국장 등 펜클럽의 후원으로 가져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도형(금채안)이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의 바램이 KBS 방송에 나왔으니 소원을 들어 드린 셈이 되었다며 미소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요즈음 코로나19로 공연이 없어 몹시 어렵다고 했다. 현재 남예종 예술원 트롯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금채안 가수는 2016 국제 베스트 모델선발대회에서 ‘선’, 2019년 할리우드 트리프트 모델대회 포토제닉상 등 아름다운 미모와 매력에다 트로트로 이제 한국을 넘어 베트남 글러브랜드 하노이 공장 준공기념공연에 초청되는 등 세계를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양원, 보육원 등에 노래로 재능기부, 군부대 위문, 소년소녀 가장돕기 사랑의 콘서트 개최 등 밝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언론단체로부터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우리 서산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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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서산시 예술인센터 건립 위해 최선
    ▲서산예총  기반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용상 서산예총 회장. 그는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서산시예술인센터’건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은 사랑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행복해집니다. 이 예술이란 에너지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용상(68)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서산시지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달 28일 서산 JC특우회서다. 그는 “서산에서 예술활동을 하시는 분이 많은데 (한국예총 서산시지회)회원이 350여 명에 불과한 것은 회원단체의 입회자격이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인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며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단체가 예총이다. 예술인이 함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 회장은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중앙이사와 충남도지회장을 맡고 있다. 인정초와 부석중, 서산중앙고(서산농고 제23회 축산과)를 졸업하고 1972년 당시 서산군청 잠업지도원으로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마을 방문을 할 때 농촌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순간이 지나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벌써 40여 년이 흘렀다고 한다. 70년대는 당시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소중한 재산인데 어떤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 것은 부처님 오신 날 호수에 비친 연등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지혜’라는 제목으로 제3회 전국공무원 서화전에 출품했는데 특선을 차지한 것이다. 입법ㆍ사법ㆍ행정부 등 공무원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총무처가 주관한 행사였다. 서산은 물론 충남의 경사라며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이후에도 제6회(1996년) ‘성도’로 은상, 제15회(2005) ‘그날의 함성’으로 은상, 제19회(2009) ‘6쪽마늘 축제’로 특선 등의 수상경력과 함께 2010년 충청도 사진전에서는 ‘삶의 현장’이란 제목의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룹전 60여회 개최 등 전문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서산 사진동우회장, 전국사진작가협회 서산지부 5~6대(2006~2011)지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다변화 문화의 시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공직자의 창조성을 키우는 일로 알고 시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2006년 필자가 서산시장 당시 공무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안견의 출생지인 지곡면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 후 공보관을 거쳐 회계과장으로 공직을 마쳤다. 여러 가지 애환도 있었지만 동료 공직자와 시민들의 사랑에 항상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서산시복지재단 사무처장을 마치고 한국예총 서산시지회(회장 최차열) 사무국장으로 무보수로 4년 간 봉사했다. 그는 사무국장으로 업무 활성화에 주역하면서 서산예총 기반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2018년도 서산예총 정기총회에서 7개 회원단체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제9대 서산예총 회장에 취임했다. 시민들이 고맙고 예총회원들이 고맙다는 한 회장은 오늘이 있기까지는 내조의 힘이 제일 컸다고 했다. 고교시절 탁구동호인 인연으로 26세 때 오수희(현68세) 여사와 결혼하여 2녀를 두었다. 인지면 산동2리 이장이셨던 아버지 한창수(1928~1983)씨는 한 회장이 31세 때 작고하셨다. 6남매의 맏이였던 그는 앞이 깜깜했다. 그때 부인이 공무원 봉급과 농사지으면서 어머니 (유연화, 현 90세)를 모시고, 어린동생들을 대학을 가르쳐 출가시켜 잘 살도록 자리를 잡아준 것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았다. 한 회장의 소망은 ‘서산시 예술인센터’를 만드는 일이다. 서산시의 협조로 지금의 예총사무실을 확대하여 예술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예술인들과 함께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연극, 국악, 사진, 연예도 공부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성실함과 열정으로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원해보았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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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3
  • 국회의원회관 ‘명당’ 은?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방 300개 중 명당은 어디일까? 국회의원들은 당선인이 계속 나온 방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에 관한 좋은 기(氣)를 받고 싶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최근엔 718호를 명당 중에 명당으로 꼽는다. 이 방은 국회의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오른 정세균 의원실로, 입주를 희망하는 의원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현 국회의장인 문희상 의원이 썼던 454호도 명당이다. 이곳을 거쳐 간 의원들의 선수만 따져도 15선 정도다. 과거에는 지난 2015년 12월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이 방의 주인이었는데, 이 전 의장은 비례대표 4선을 포함해 8선이나 했다. 7선을 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사용했던 1001호에 눈독을 들이는 의원도 많다. 외부와의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당선을 향한 좋은 기운을 받고 싶다는 의도다. 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의원실도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대통령의 정기’를 받으면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 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머문 325호의 권칠승 의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썼던 312호 조응천 의원 둘 다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지낸 638호의 김승희 의원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반면 의원직 상실형이 나오는 등 임기를 단명한 방이나, 주인이 자주 바뀐 사무실은 기피대상 1호다. 국정을 농단해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이완영 의원이 쓴 545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황영철 의원이 머물렀던 618호도 기피대상 중의 하나다. 아파트와 같은 로열층으로 여겨지는 6층~8층을 선호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층에 위치한 방은 국회 잔디밭과 분수대가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한강변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그러나 이들 층에 위치한 방은 선수가 높은 다선 의원이나 유력 대선주자 실세의원 차지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8.15 광복절 등 역사적인 날을 상징하는 방도 인기가 많다. 참고로 성일종 국회의원은 423호실을 사용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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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제2의 안견(安堅)이 되고 싶었다”
    ▲평생 동안 영혼을 바치는 예술가로 살고 싶다는 박수복 해인미술관 관장. 그는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 서산에 대한 애정이 제2의 안견을 꿈꾸는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박수복(55) 해인미술관장은 국제적으로 루카스 박(Lucas Park)으로 통한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서산을 토양으로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했다. 최근 미국 글로벌 옥션 이베이에서 국내 4번째로 그의 작품이 선정되는 등 한국을 넘어 유럽, 미국시장까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유명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그와 인터뷰를 위해 지난 23일 한서대 평생교육원 예술인문노블레스 최고위 과정에서 만난 후 지곡면에 있는 해인미술관을 방문했다. 유년기부터 그림만 그렸다는 박 화백은 20여 년 전 무심코 서산이 좋아 안견 출생지 지곡에 정착했다. 안견을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한 그는 제2의 안견이 되고 싶었다. 서산바다 폐선박을 그린 서양화‘초혼’이 2000년 국전에 입선했다. 초혼은 ‘죽은자를 부른다’는 뜻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고 싶었다. 선박이 바다가 그리운 것처럼,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심정을 화폭에 담았다. “물감 살 돈이 없어 3000원으로 먹물 1통을 구입해 양동이에 부어 폐지에 한 달간 그림을 그린적도 있습니다” 7살 무렵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다. 그림을 그리다 아버지에게 들키면 두 손을 들고 벌을 서야했다. 그러면서도 벌을 서며 흘린 눈물을 물감 삼아 발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를 본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랐다. “수복이는 그림으로 평생 먹고 사는 세계적인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며 밤새 아버지를 설득하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어머니는 이튿날 물감, 붓, 크레파스, 도화지 등을 사주었다. 세계적인 마켓플레이스‘이베이(ebay)’에서 선정된 신몽유도원도(3억2천만원), Myth(5억5천만원) 두 작품 모두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애틋한 기억을 담았다. 신몽유도원도는 꿈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꽃밭에서 놀던 추억을 상상한 그림이고 Myth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의인화된 여신으로 어머니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화백의 아버지는 대종가의 종손으로 12남매를 두었는데 박 화백이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고1때 어머니를 잃었다. 할머니(허연지)의 친정, 진외가가 남농 허건(1907~1987)일가이다. 박 화백의 아버지 고향이 전남 진도라는 사실을 알았다.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미산 허형에 이은 3대와 의재 허백련 등 남농가게의 예술혼이 박 화백에게 흐르는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작가는 끊임없이 창작해야 한다. 창작을 위해 정신과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참선과 명상으로 살았다. 20년 차도(茶道)생활은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작가의 에너지가 작품에 담겼을 때 관객은 감동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박 화백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배고픔만 안고 붓 하나 믿고 서산에 왔다. 인생에서 목표는 마음먹고 50년은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그는 안견미술관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지곡면 대요리 날개산 자락 1만여 평의 자연 속에 있는 해인미술관을 건립했다. 지금 이곳 미술관에는 국내외에서 많은 관람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의 미술관을 보면서 필자가 80년 대 방문했던 프랑스 밀레의 생가와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을 그렸던 보리밭이 떠올랐다. 그곳은 잘 보존 되어 있었다. 넓은 들, 연꽃 있는 해인미술관을 생각해 보았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접목시킨 힘, 영감을 통한 순간적 스케치로 음악과 감상하는 예술적 액션퍼포먼스를 하는 퍼해밍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박 화백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동일한 테마로 30~50점 이상 그리지 않으며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는 그를 보며 피카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사상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영감과 지혜를 얻어 상상력을 펼친다고 했다. 심오한 가치를 찾아 예술을 통해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켜 인간이 행복하고 고귀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그림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또 신(神), 하느님, 사랑, 행복, 마음 등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지만 이를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체코브루노대학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SBS대전방송에서 8년 동안‘화첩기행’을 진행했다. 지난 20일 KBS대전방송 다정다감 프로에 방영 된 박 화백은 현대미술 거장으로 국내외에서 130여 회의 전시회를 갖고 한국을 빛낸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는 7월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18개국 저명화가가 참여하는 제27회 한국국제미술대전 운영위원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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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6
  • 국회에 와인 72병이 묻혀있다?
    ▲국회 앞 해태상   대한민국 국회는 이목을 끌만한 비밀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먼저 국회의사당 정문을 나서면 양쪽에 해태상이 있는데 이 해태상 10m아래에는 와인 72병이 묻혀 있다. 무슨 사연일까. 지난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될 때 소설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악귀를 물리치고 화기(火氣)를 막는 해태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는데, 예산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해태제과가 3000만원을 들여 해태상 암수 한 쌍을 조각해 국회에 기증했고, 그 아래에 해태주조 상품이었던 ‘노블와인’을 각각 36병씩 묻었다. 이 와인은 100년 뒤 2075년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꺼내 건배주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건물자체에 숨겨진 비밀도 흥미롭다. 우선 돔(dome) 모양의 의사당 지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평평하게 설계했다. 그러나 권위가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름 50m, 높이 20m규모의 돔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외곽에 서 있는 앞 뒤 기둥 8개, 양옆 기둥 4개에도 의미가 숨어있다. 이 기둥을 모두 합하면 24개로 1년 24절기 내내 전국 8도의 국민을 생각하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내부도 이야기 거리가 있다. 본 회의장에 있는 전등 수는 365개다. 국회의원들이 1년 내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국회도서관 지하에는 각 건물을 이어주는 지하통로도 있다. 이 통로는 지난 1984년 국회도서관을 신축할 때 설치됐다. T자형 모양이며 길이가 460m에 이른다. 날씨가 궂을 때 국회의원, 국회 관계자, 출입기자들이 애용한다. 벽에는 전ㆍ현직 의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기증한 그림 등이 걸려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기관과 관련한 사연도 있다. 본래 지난 1987년 개정된 헌법 부칙 3조, ‘국회의원 임기는 국회의원 선거 후 국회의 최초 집회일로부터 개시한다’에 따라 임기가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 이후 변화가 있었다. 당시 4월 26일에 선거가 치러졌지만, 원내 정당들이 국회운영 일정에 대한 합의를 하는 데 오래 걸리면서 개원을 5월 30일에 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 날짜에 임기가 시작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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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0
  • “좋은 학교가 지역을 발전시킨다”
    ▲서일 중고등학교를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만들고자 혼신의 노력을 펼치고 있는 조한구 이사장. 그는 “학교가 더욱 발전하고 훌륭한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조한구(75) 학교법인 창호학원 이사장을 만난 것은 제39회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이다. 그는 서일중학교(1967년)와 서일고등학교(1974년, 당시 지곡중고)를 설립하여 1만100여명((중 47회 4,271명, 고 44회 졸업 7,327명)의 지역인재를 육성한 인물이다. 1974년 필자는 지곡고등학교 개교식에 당시 이관현 서산군수와 함께 참석해 책장을 기증하며 조 이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날 필자를 만난 조 이사장은  “우리 지역의 자녀들을 세계적 인재로 키우는 것이 꿈”이라며 “성공한 제자들을 볼 때 마음이 뿌듯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조 이사장은 지곡 부성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공덕초로 전학하여 수도중학교, 수도공고(전 경성전기공고 기계과), 건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에서 교육행정학 석사, 필리핀 라살아레네타 대학에서 교육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 제대 후 강원도와 경기도에 교편생활을 시작한 그는 마지막으로 팔봉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부친이 설립한 지곡 재건중학교를 폐교하고 충남교육청(당시 충남교육위원회)의 권유로 서일 중ㆍ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개 학급 학생 50명과 교사 7명으로 시작한 학교는 오늘날 학생 800여명, 교직원 100여명에 이르는 명문사학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의 바탕은 학교설립을 위한 토지(45,884)와 학교건축비용을 선뜻 내준 조부(조재천, 1895~1952)와 부친(조창호, 1925~1973)의 영향이 컸다. 더불어 조 이사장의 애향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함께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제일 가치 있는 일이라는 신념을 지녔던 조부는 성연(명천항)과 서울 마포를 돛단배(증선)로 오가는 거상이었다. 부친(조창호)은 지곡면 출신 1호 대학생으로 중앙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주한 원조기관 세계구호위원회에 근무한 인재였다. 그의 어머니 박옥자 여사(91세)는 부잣집 외동딸로 경기여고 2학년 때 태평양(대동아) 전쟁 위안부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하숙생이었던 아버지(대학1년생)와 결혼했다고 한다. 교육 불모지인 고향에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받기 어려운 고향 사람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부친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과감히 육영사업에 뛰어든 그는 그토록 소망하던 학교의 개교를 채 못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혼신의 노력으로 정성을 기울여왔다. 학교는 학생들의 창의력, 영감, 이상(꿈)을 키워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특기와 취미가 맞는 학생이 원하면 동아리를 개설하고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하는 등 끼와 적성과 소질을 살릴 수 있도록 100여개의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또 정신력과 예절, 체력을 키우기 위해 전국 유일하게 전용 검도장을 짓고 검도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도내 고등학교 최초로 골프를 정규 필수과목으로 선택했다. 이외에도 협동심과 인내심을 길러 주고 자연과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하는 학교 4-H 활동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으로 2016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서울대 11명을 비롯하여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에 1,400여명, 미국 뉴욕주립대학 등 외국 명문대에 20여명이 진학하는 등 서일고가 지역의 세계적 인재 요람으로 성장했다. 조한구 이사장은 “좋은 학교가 지역을 발전시킨다. 그러기 위해 서일 중고등학교를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만들고자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더욱 발전하고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사립학교 규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창의적인 선진국 교육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8세 때 이병옥 여사(70, 現사회복지법인 꿈나무 어린이집 원장)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둔 그는 그간 국가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2003년에 국민포장, 2019년에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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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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