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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0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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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 경연이 붐을 이루고 있다. 흙속에 묻힌 보석이 깜짝 빛을 받고 반짝이며 이름처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신데렐라로 탄생한다. 출연자들이 뿜어내는 끼와 재능은 자정을 잊은 시청자들의 귀와 눈을 붙잡아 놓았다. 열 살 이쪽저쪽 아이들도 뒤지지 않는다. 경연에서 입상한 초등학생의 이름을 도로 이름으로 붙인 곳도 있다. 코로나로 학당 수입이 끊겼다는 훈장님은 어린 딸의 출연료가 가계의 주 수입원이라고 했다. 다른 노래자랑 프로에서도 아이들이 깜찍함을 넘어 당돌할 만큼 끼를 뽐낼 때 관객은 탄성과 함께 흥겨움에 묻힌다.

옛날에도 신동이 있었고 소년 천재는 많았다. 자극과 동기부여, 노출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이 많아지고,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집중하여 키울 수 있는 요즈음에는 출중한 재능이 더욱 가깝게 보이는 것이다. 시간 압축시대라서 그런지 아이들에게서 동요는, 건너뛰고 실종되다시피 했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노래 부르며 고무줄놀이 하는 모습이 가마득하다. ‘누가누가 잘하나?’에서 맑은 목소리, 천진하게 부르는 동요를 들은 지는 또 언제였던가 싶다.

올해 55일은 제100주년을 맞이하는 어린이 날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되는 어린이날 노래1948년 윤석중 선생이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어른이 되었다. 선생은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1,300여 편에 이르는 동요와 동시를 어린이들에게 안겨주었다. 졸업식장에서 눈시울을 적시게 한 졸업식 노래도 선생의 손에서 나왔다. 1956년에는 새싹회를 창립했다.

선생은 서산과는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열세 살 때 이 문학지 신소년에 입상한 천재로 알려지면서 동요, 동시창작에 전념했다. ‘동요하면 윤석중이고 윤석중하면 동요로 대표될 만큼 온 생애에 걸쳐 동요창작에 열중했다. 동시집 24, 동화집 5권 등 30여 권의 작품집을 내었다. 선생이 서산에 온 것은 1935년 결혼하고 나서다. 5년 전 외할머니가 물려 준 땅이 있는 음암면 율목리에 신식으로 집을 짓고 이주한 아버지가 사는 곳이었다. 선생의 장녀와 장남이 서산에서 출생했다. 이때 선생은 10년 동안 명천 항에서 제물포를 거쳐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2003년 별세한 선생은 문인 최초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서산은 내게 아픈 기억과 또 아버지를 그리는 곳이기도 합니다.”라고 하면서 마을의 느티나무가 거목으로 자랐을 것으로 추억하기도 했다. 선생의 부인 박용실 여사는 서산은 선생님의 평생 고향이었다. 큰 고향이었다. 그 분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술만 드시면 서산을 생각하며 우셨다고 했다. 작품 가운데는 서산을 배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전한다. 율목리에는 선생의 시 우리 마을 느티나무가 시비로 세워졌고 세계적 아동문학가 석동 윤석중 세거지라는 비석을 세워 선생을 기리고 있다.

전국 곳곳 지자체에서는 유명 인사나 예술인이 태어나거나 활동한 지역을 지역의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기념관을 만들거나 작품 활동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을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서산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한 분이 윤 선생이다. 노인으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몇 개쯤은 부르며 자란 동요가 공통의 정서요 자산이다. 선생은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이고 서산이 추켜 새울 수 있는 보물이다.

동요를 살리는 운동이 필요하다. 전자기기에 빠져 입보다 눈이 바쁜 어린이들에게 순수함을 길러주고 꿈을 키워줄 수 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메마른 마음을 씻어주고 어린 시절을 되찾게 하는 효과도 바라볼 수 있다. 동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시 널리 불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나아가 훌륭한 인물을 선양하는 일에 서산시와 지역에서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윤석중 문화제같은 예술행사를 만들어 창작 동요제, 동요 부르기 대회, 동시백일장 등을 콘텐츠로 전국규모의 어린이 잔치를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낙토樂土 서산동요·동시의 메카 서산으로 동심의 아름다움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 윤석중 선생에 관한 부분은 2008년 서산시에서 펴낸 서산의 역사인물(윤석중 편, 집필 노경수)월간문학20225월호 가상 인터뷰’(글 정두리)에서 인용,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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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실종시대, 윤석중 선생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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