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3요’의 물결이 다가오는데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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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4.1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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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에 있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젊은 직원에게 오더를 주면 일부는 “이걸 왜 해야 하나요?”라는 물음이 돌아온다고 한다. 이유를 설명해줘도 끝내 수긍하지 않아 난감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규정에 있는 일이다.”라고까지 말하지만 “그렇다면 규정을 고쳐야지요.”라는 대답이 올 때는 당황스럽기조차 했다고 한다. “비록 규정이 잘못되어 고쳐야 할지라도 고칠 때까지는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다독여야 하는 현실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회식을 하자고 하면 “아이와 약속이 있다.”,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알려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시간외수당을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출근도 약속이나 한 듯 9시 정각에 맞춰 단체로 사무실에 들어온다고도 하니 그 노력이 가상하다할까?

 

최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3요’ 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면 젊은 직원 가운데는 “이걸 요?” “제가요?” “왜요?”라며 되묻는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하여 임원들을 대상으로 ‘3요’의 의미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자료로 만들어 나누어준 기업도 있다고 한다. 모임에서, 이런 세태를 글로 쓰고 싶다고 하니,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오히려 경향을 부추기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이유였다. 필자의 글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무엇이든 시간문제일 뿐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성세대들이 하루라도 빨리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쓰기로 했다. 변화하는 상황을 공감케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야기를 덧붙인다.

요즘 어느 부처의 Z세대 수습사무관가운데 일부의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괴담처럼 전해진다고 한다. 한 사무관이 병가를 내면서 사유에 ‘과장님 잔소리’라고 써냈다고 한다. 어느 과장은 수습사무관에게 일을 시켰는데 “못하겠다.”며 거절했다. 과장이 이유를 묻자 “나중에 저의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비상한 기개에 눌려 과장은 차마 나무라지도 못했다고 한다. 전후 맥락이 지워진 불균형한 서사가 어쩐지 의심스럽다. 과장의 상습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지른 SOS 신호는 아닐까. 정말로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면? 참된 공직자라면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게 맞는다.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좇아 너도나도 민간 기업으로 떠나는 시대에 공직에 뼈를 묻겠다는 결의를 오히려 높이 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엘리트들의 세계에서 나왔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 아니어도’라고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럴까? 하지만 한편 새겨볼 필요가 있다.

 

도청으로 전입하자 계의 막내인 필자는 일찍 출근하여 선배들 캐비닛에서 서류 상자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다. 상사는 물론이고 선배가 퇴근하지 않으면 허드렛일을 맡아하거나 하릴 없이 기다렸다. ‘가사 불구’ ‘개인사정 불구’하고 오로지 사무실이 생활공간의 전부다 시피 했다. 도민이 아니라 ‘임명권자이신’을 강조하는 상사의 권위주의가 마음에 거슬릴지라도 군말 없이 해야 했고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당시는 규범이었다. 요즘은 퇴근시간이면 “먼저 가겠습니다.”며 총총히 사라지는 젊은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중간관리자가 제일 난처하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3요’현상을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쯤으로 보는 듯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요새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정도쯤으로 여겨도 될까?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사고와 행동방식에는 간극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하지만 상사의 “그냥 하라”는 말만큼 공허한 지시가 없다. 어쩌면 ‘3요’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시키는 사람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서일 수 있다. 그러자면 상사가 먼저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물음에 대처할 수 있는 논리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직장에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이 엷어지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본’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직장인의 로망으로 여기는 승진이나 인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물결을 거스르거나 막을 수 없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오게 할 수는 없더라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니까. 기성세대가 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동기부여만 된다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세대들이다. 일견 MZ세대들의 당돌한 모습이 부럽다. ‘다만’이라는 단서는 생략한다.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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