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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에게 책임이란?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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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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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겨울, 영화 타워링을 관람했다. 미국에서 만든 재난영화였다. 샌프란시스코에 135층으로 세워진 세계 최고층 빌딩 글라스 타워’. 맨 꼭대기에 위치한 연회장에서는 빌딩 개장 기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때 81층 배전반에서 일어난 스파크가 인화물질로 옮겨 붙어 불이 났다. 영화는 소방관들이 불길 널름거리고 매캐한 연기 자욱한 건물에 진압하여 불을 끄는 과정과, 연회장에 갇혀 있던 이들이 가까스로 탈출하는 긴박한 장면을 담았다. 초대형공사를 하는데 얼마 되지 않는 비용을 아끼고자 값싼 전기 자재를 쓴 것이 원인이었다. ‘책임 의식으로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충남농촌진흥원에서 경리사무와 재산관리업무를 담당할 때였다. 진흥원에서는 온실과 실험실에서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가공공장에서는 동력전기를 쓰는데 영 개운치 않은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윗분들께 말씀드리고 예산을 전용하여 수선계획을 세웠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인 대수선 공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동력선에서 누전차단기가 자주 나가자 퓨즈 대신 구리선을 사용한 것을 발견하였다. 퓨즈를 박스 채 구입하여 주고 아낌없이 사용하라고 했다. 2회 하는 안전점검을 매월 실시했다.

도에서 관리하는 지방도와 중장비운영을 관장하는 사업소의 서무계장으로 일할 때였다. 용접작업을 할 때 정비사들이 절연장갑과 안전화를 착용하여야 하는데 이를 꺼려했다. 불편하고 작업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고가인데 비하여 예산이 부족한 원인도 있었다. 다른 예산을 돌려 충분하게 지원했다. 만약에 인명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장비 부족이 원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불도저, 굴삭기, 그레이더 등 수 십대의 중기를 운영하는데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 바퀴가 있어 스스로 운행할 수 있는 장비는 모두 보험에 가입하기로 하고 예산을 요구했다. 개소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두말없이 예산을 세워주었다. 중장비라 고액이다 보니 그 해 보험료가 칠백만원 쯤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와 장비 파손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대덕군 어느 면에서 쉬쉬하고 있던 자동차사고 보상 문제가 불거졌다. 대전시로 편입하는데 사무인계인수 과정에서 표면화된 것이었다. 군에서 면에 보험료를 내려 보냈지만 담당자의 업무소홀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 사이에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피해자 측에서 수시로 치료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요구했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면에서는 그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다 결국 드러났다. 예산을 세워 처리했다. 담당자는 문책을 면할 수 없었다.

상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군 식산과장으로 있을 때였다.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보관창고를 일제 점검하는데 위반사항은 그날그날 시정조치를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전체 점검이 끝난 후 일괄 조치지시를 하는데, 그 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날그날 통보했다는 것이었다. 마침 점검 기간 중 어느 창고에서 화재가 나서 전소되고 많은 양의 양곡이 소실되었다. 수사당국에서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군에서는 미비 또는 위반사항을 신속하게 시정조치한 관계로 무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음에 담았다.

공직자의 업무에는 책임이 따른다. 한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하는데 소극적이라거나 안 된다고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데에도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판단의 문제는 관용 받을 수도 있지만 법을 어기거나 반드시 실행하여야 할 일을 소홀히 하면 책임을 면할 도리가 없다. 감사에서 위법·부당한 행정처분 사항이 발견되면 확인서와 함께 관리자 조서를 받는다. 행위자와 관리자의 책임소재와 경중을 따져 문책대상자를 가리기 위한 조치이다. 실무자는 물론이고 관리자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무자는 우선 내부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제때, 꼭 해야 하고 관리자는 잘 챙기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것이 결국 공직자 자신과 조직을 위하는 일이다.

앞에서의 사례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 보이는 업무에 대한 잘못은 문책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공직자에게는 이 보다 더 큰 책무가 있다. 바로 시민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는 것, 지역의 미래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온갖 열정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만일 못한다거나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엄중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마련이다./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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