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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해석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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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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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가까이 숨 가쁜 나날이었다. 조금은 지쳐가는 걸 느끼면서도 보람 있는 삶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처럼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겨울에 들어섰는데도 청명하고 포근한 날씨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천수만 간월호로 차를 몰았다. 바다와 간척지 사이를 갈라놓은 천수만 방조제(지방도 96호선)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차 안으로 들어오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시원하다. 평온함을 준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생긴다. 궁리까지 갔다가 유턴하여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끝없이 펼쳐진 간척지가 보였다. 넓은 들판엔 검은 흙만 드러나 보였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늦가을의 쓸쓸함이 온 들녘을 가득 채웠다. 한 달 전만 왔어도 황금물결 치는 곡창을 보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일었다. 길가에 있는 간이 전망대 옆에 차를 세웠다. 바로 옆에 큰 입간판이 있었다. 그 유명한 물막이 공사에 쓰인 유조선과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도 붙어있다.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의 빨라짐을 느꼈다. 나는 발끝만 보고 살았다. 그분은 지도를 보며 살았다. 나라의 국토를 넓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셈할 수 없는 천혜의 수산자원 보고를 잃었다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식량의 문제를 생각하면, 그 당시의 판단이 그르다고만은 할 수 없을 듯하다. 안내문 끝에 이런 글이 있었다. ‘가지 않는 자에게는 길이 없지만, 가는 자에게는 없는 길도 만들어 간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어떤 눈으로 삶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정주영 회장의 중동 건설에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났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중동 건설에 뜻이 있어 관리를 파견했는데 보고 받기를 중동지방엔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고 따라서 물도 없고 보이는 건 모래와 자갈뿐이며 술과 여자도 없어 근로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동에 다녀온 정주영 회장은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일할 수 있으며, 모래와 자갈이 지천이니 자재 조달이 쉽고 술과 여자가 없으니 돈을 낭비하지 않아 좋고, 물은 오일을 싣고 온 유조선에 물을 퍼가면 되고,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더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불리한 조건들이 정주영 회장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온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중동 건설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어디를 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세상은 달리 보이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이런 긍정적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초속 8m의 무서운 급류로 인해 집채만 한 바위와 돌을 부어 넣어도 금세 떠내려가는 물막이 공사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기상천외한 유조선 공법을 생각해 낸 그 원동력도 바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결과물일 것이다. 같은 사물도 상하좌우로 또는 가까이 멀리서 볼 때 그 모습이 달라 보인다.

휑한 바람만 부는 간척지 벌판에 몇 무리의 철새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보기엔 황량한 들판이었지만, 철새들에게는 겨울을 날 희망의 보금자리다. 시각을 바꾸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자기를 노예상에게 판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요셉의 가족을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해석했다. 요셉이 만일 원수를 만났다고 시원하게 복수를 했더라면 어떻게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이룰 수 있었을까?

며칠 전, 15주나 앞당겨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됐다. 몸무게는 겨우 288g에 불과했다. 1%의 생존율에 도전한 서울 아산병원 신생아과 김애란 교수는 아이의 몸무게를 뒤집어 팔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그 이름을 불러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이름대로 그 아이는 이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눈으로 삶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도 세상도 변한다. 새삼 고 정주영 회장의 삶이 더욱 돋보이는 하루였다./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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