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05.10.12 19:27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조선시대 대표적 산수화가인 안견은 어느 때부터인가 서산을 상징하는 화가로 자리잡았다. 안견은 본관이 지곡(池谷)으로,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까지 지냈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떠오르게 한다. 북송(北宋) 때의 화가 곽희(郭熙)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화가의 장점을 절충, 많은 명작을 남겼는데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의 수묵산수화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칭작품(傳稱作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적벽도(赤壁圖)’등이 있다. 요즘 일각에서는 또 안견의 출생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아직까지 고증된 명확한 자료가 발견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곡면에 기념전시관이 세워졌고 시에서는 안견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한 각종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안견의 예술 영역을 보다 확대하는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보존과 개발확대는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문화자원을 지역 관광성 상품으로 활용하는데도 관심이 크다.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는 국가 경제발전시책과 반드시 병행해야 할 중요사업이다. 서구와 동양권 선진사회는 이미 문화예술의 관광상품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문제에 접근하며 도전적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한 문학기념관 사례를 보면 지난 10여년동안 지역별로 특색있는 문화예술기념관을 보완해서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일본 이와테(岩手)현 출신의 아동문학작가 미야자와 켄지(宮澤賢治) 문학기념관은 연간 30여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지역 테마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켄지 작품속의 한 구절인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라는 글이 그가 태어난 100년후에 다시 조명돼 100만명의 관광인원을 기념관에 불러 들였다. 교육을 생산이라고 말하듯 문화예술도 생산이다. 서산에서도 겉모양만 단장할게 아니다. 문화예술자원의 확대 재생산에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안견 예술혼, 문화자원으로 확대개발해야||2005 안견문화제 개최에 즈음하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