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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잔인한 2014년 4월
    그 옛날, 예언이라도 한 것일까. 4월은 정말 잔인하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아이들을 잃는 나라. 직업윤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맡기는 어이없는 나라. 이 나라가 이처럼 허술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나라인지 차마 몰랐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 48분. 이 땅의 남쪽, 진도 앞 바다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열일곱 열여덟 푸른 청춘들이 무책임한 어른들만 믿다가 속절없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대한민국이 우왕좌왕하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면서 하루가 가고 이틀 사흘이 흘러 벌써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들 곁에 다가선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저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서 간절한 희망으로 어른들을 기다렸을 아이들은 어찌 됐을까. 그 어린 것들이 해맑게 웃으며 다시 가족 품에 안길 수 있을까. 4년 전, 천안함이 폭침됐을 때 이 땅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조국을 지키다 검푸른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었다. 그 뼈저린 경험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리는 그저 담담했다. 먼 나라 망망대해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우리의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생각했고, 나라의 힘을 믿었다. 대형 여객선을 운행하는 항운회사의 경륜을 기대했다. 그들의 직업윤리를 철저히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육지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그 곳, 손만 내밀면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 곳에서 아이들은 나오지 못했다. 아니, 나올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구원해줄 손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장은 배를 버렸다. 선원들도 선장을 따라 뭍으로 탈출했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의 생각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철저한 배신이었다. 행정 당국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처 이름까지 바꿔가며 ‘안전’을 강조했지만 ‘안전 매뉴얼’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지휘체계 혼선에 책임 떠넘기기 등 각 부처의 대처능력은 기대 밖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어린 생명이 살아나오길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2014년 4월. 참 아프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불 꺼진 선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차가운 바다 속은 또 얼마나 춥고 두려웠을지, 보고 싶은 이름들을 얼마나 목 놓아 불렀을지, 대답 없는 이들을 얼마나 원망했을지,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을지…. 아, 정말 아프다. 어른들은 무책임했다. 다 해줄 것처럼, 다 들어줄 것처럼 아이들을 안심시켰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 한 목숨, 제 자리 보전하기에 급급했다. 그 끝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통한가. 간신히 살아온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인솔교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진도 앞바다, 그곳에 잠긴 우리 아이들은 해야 할 말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들에겐 꿈이 있고, 희망찬 미래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게 번지는 집단적 분노를 가라앉히는 길이다. 그 분노를 조금이나마 달래는 길이다.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분노 그 자체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이것밖에 안 되는지 너무나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이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철저하게 버림받은 저 어린 생명들을 위해 뭐라 말할 것인가. 치밀어 오르는 화가 분노로 쌓이는 시간. 그 시간에 밀려 봄날이 간다. 저 여리고 안타까운 생명을 뒤로한 채 잔인한 4월의 봄이 간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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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3
  • 선거, 품위 있게 할 수 없나
    민주주의를 처음 시행했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선거는 훌륭한 사람을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고, 그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지금처럼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와는 차이가 있었다. 바로 부적격자를 골라내는 일이었다. 뽑는 것이 아니라 싹수가 노란 사람을 색출하는 일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것은 같아도 발상은 완전히 다르다. 6.4지방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당 지지율이 높은 서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바로 주민들의 지지를 못 받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1차 관문인 ‘컷오프’가 엊그제 발표됐다. 컷오프를 통과해 2~3명을 두고 벌이는 당내 경선은 2차 관문이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2차 관문이 사실상의 본선과 진배없는 곳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공천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싸움은 치열할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막상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고 보면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단지 자리를 두고 다툼만 있는 것으로 보여 아쉬울 뿐이다. 선거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방하거나 비난을 통해 상대방을 흠집 내는 일이다. 상대방에게 욕하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돈이 들지도 않고, 무엇보다 상대보다 내가 더 선명하게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도가 넘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같은 흠집내기 선거운동은 상대방의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경우에 따라 도대체 저 후보는 왜 출마했지 할 정도로 정체성이 없는 경우도 목격한다. 선거판에 ‘광’ 팔러 나온 것도 아니고, 돈 쓰려고 나온 것도 아니다. 단지 남 욕하러 나온 건가 할 정도의 인사도 없지 않다. 특히 후보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곳일수록 정도는 더하다. 이들의 출마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착각에 의해 출마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시장이 돼야 하고, 왜 도의원이 돼야 하며 왜 시의원이 돼야 하는가. 출마자들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혹은 “지역에 봉사하기 위해”라고 흔한 답을 한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된 출마자다.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왜 출마를 했는가’에 대해 유권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이유 하나쯤은 갖고 나와야 한다. 그게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자신 스스로 왜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고, 유권자가 보기에도 정체성이 없다면 잘못된 출마다. 개인을 위해서도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상대방에 대한 막말과 비방이 출마 이유일 수 없고, 또 그것으로 시장ㆍ도의원ㆍ시의원이 되지도 않는다. 물론 선거에 비방이나 비난이 없다면 이 또한 밋밋한 것이나, 격조 있게, 품위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대에 있어 선거를 두고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결정판이라는 말이다. 특히나 선거가 지역주민들의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선거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출마자들 스스로 품위 있는 언행이 앞설 때 가능할 것이다. 요즘 서산 선거판을 보면 선거로 인해 이미 갈라진 지역 민심이 선거 후에 더욱 심화돼 자칫 심각한 지역 민심 분열로 치닫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감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공정선거 분위기를 깨는 혼탁 선거, 진흙탕 선거가 안 되도록 시민들이 제발 후보 다잡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재차 지적하고 거듭 촉구해 본다. 제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선거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정책선거를 방해ㆍ회피하는 후보들에게 엄격한 잣대 들이대 보기를 주문한다. 치열하고 가감 없는 정책 공방을 통해 참 일꾼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것이 바로 이번 지방선거의 이유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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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6
  • 예비후보들, 경청하라!||데스크칼럼_이병렬 편집국장
    입은 하나, 귀는 둘이다. 포유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고등동물은 한 개의 입, 두 개의 눈과 귀를 갖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이동해야 한다. 입이 하나인 이유다. 대신 상대가 접근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고 또 들어야 한다. 눈과 귀가 각각 둘인 까닭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톰슨가젤이나 시베리아 산악지역의 사슴은 조용히 풀을 뜯는다. 이들은 먹이활동을 하는 중에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고개를 높이 들고 귀를 쫑긋 세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먹이가 되는 약자뿐 아니라 먹이를 찾는 강자도 마찬가지다. 톰슨가젤과 사슴을 각각 먹잇감으로 삼는 사자와 호랑이는 사냥의 순간엔 포효하지 않는다. 몸을 수풀에 가린 채,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사냥감을 응시하며 다가갈 뿐이다. 야생동물이 아닌 인간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많이 보고 많이 듣는 대신, 말은 적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이롭다. 입이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이니, 듣는 것의 절반만큼 말하라고도 한다. 굳이 이런 기계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적게 말해서 손해 보는 경우보다 말을 많이 하여 화를 입은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은 분명하다. 경청이라면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그의 아들인 이건희 현 회장 사이에 전해지는 일화도 있다. 이 전 회장은 아들에게 傾聽(경청)이라는 글을 붓으로 써서 선물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좌우명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전 회장은 매년 연말 일본 도쿄의 호텔에 머물면서 현지의 재계와 정계 인물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경청을 중시한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경청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귀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듣기는 듣되, 흘려듣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치단체 등이 각종 개발행위에 앞서 요식적으로 하는 공청회나 세미나, 일의 방향을 이미 정해 놓고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여론조사 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말이 경청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민생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유권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현장에서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예비후보들이 유권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귀담아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그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정도의 탐방이라면, 아니함만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청은 자치단체나 기업에 한정해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하위직보다는 단체장이나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고위직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 이들은 듣는 시간보다는 말하는 기회가 훨씬 많은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말을 귀 기울여 듣되, 가려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경청의 숨은 뜻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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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6
  • 사회의 목탁, 서산의 목탁
    목탁이란 불교에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하는 의식도구다. 목탁은 ‘목어(木魚)’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큰절에 가면 종루에 나무로 된 기다란 물고기 모양의 목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운데에 긴 구멍을 내고 있어 목탁채로 두드리면 구멍 안에 소리가 울려 목탁 특유의 음향이 새어 나온다. 불전에서 행하는 제반 의식은 물론 독경을 할 때와 대중에게 공양 시간이나 운력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때 사용한다. 목어가 처음에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진데 대해서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덕이 높은 스님이 가르침을 주고 있는 제자 중 유독 한 제자만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 이에 스승은 신통력으로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물속에 던졌다. 하지만 제자는 참회는 커녕 물속에서 더 재미있게 놀고만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등에다 커다란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그랬더니 물고기는 헤엄도 멋대로 칠 수가 없을뿐더러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후회를 한 물고기 제자는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스승은 가여운 마음에서 수륙재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날 밤 스승의 꿈에 제자가 나타났다. 다음 생에서는 참다운 수행의 길을 걷겠다며, 자신의 등에 난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막대로 쳐 주기를 간청했다. 스승은 그의 말대로 물고기에 난 나무로 물고기 모양의 법구를 만들어 치면서 수행자들에게 경각심을 줘 깨달음을 갖게 했는데 점차 물고기 모양이 사라지고 둥글게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의 목탁이 됐다. 목탁은 그것을 두드림으로써 수행자가 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 드는 것을 경계하고 그 소리로 하여금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덧붙여 사회가 바로 되도록 이끄는 공기(公器)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흔히 언론을 ‘사회의 목탁’이라고 한다. 언론이 사회의 불합리한 문제를 널리 알려 환기시키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에 비춰볼 때 과연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서산사회에서의 최근 언론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에게 일단 되물어 보니 더욱 자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 앞선다. 언론의 본령인 사회의 목탁으로서 제 역할을 다 했는지 아니면 독이나 되지는 않았는지. 더구나 지역 언론의 역할과 책무가 날로 제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망국적인 지역사회 분열과 반목을 치유하는데 적극 발 벗고 나섰고, 시민 화합과 소통, 지역발전 등을 앞당기는데 최선을 다 했는지. 오히려 그 어떤 의도를 갖고 오히려 이를 조장하거나 권력의 무기가 되어 약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는지 한편으론 무척 우려도 된다. 사실 지역 언론이 시민과 호흡을 같이 하는 실익적인 지역 대변자 구실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다면 설 자리가 없다. 시민을 위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서산의 목탁’이 될 자신이 없다면 더 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6.4 지방선거를 앞둔 서산지역 언론이 보다 청명하고 밝은 목탁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더욱 쫑긋 세우고,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혜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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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9
  • 여러분의 ‘신용’카드 안전하십니까?
    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3개 가운데 나는 2개를 갖고 있다. 불안한 마음에 카드사 홈페이지를 찾았다.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주민번호를 넣고 공인인증서 확인 절차를 거치자 개인 정보 가운데 유출된 항목이 떴다. 15개나 됐다. 성명, 주민번호, 카드이용실적금액, 직장주소, 직장전화, 직장정보, 카드결제계좌, 카드결제일, 휴대전화, 자택주소, 자택전화, 주거상황, 카드신용등급, 카드신용한도금액 등이다. 나보다 유출 항목이 더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발가벗고 거리를 다니는 거나 같아 영 찝찝하고 불안하다. 솔직히 검찰의 발표가 나고서도 무감각했다.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났다는데도 그러려니 했다. 한마디로 무신경했다.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카드런’이라고 해도, 재발급이니 해지 사태가 벌어져도 그랬다. 나의 무신경과 무감각에 경종을 울린 것은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말이었다. 그는 경제장관회의 직후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 줬지 않느냐”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금융 정책 총책임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는 ‘카드대란’이라는 중대 사태의 원인과 본질 그리고 대책까지 모두 헛다리를 짚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왜 사단이 났는지, 시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1천만 명 넘게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하고, 왜 500만 명 넘게 카드를 재발급 받겠다고 아우성치며 줄을 서고, 해지도 못 미더워 회원 자격마저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고민도 해 본 것 같지 않았다. 금융은 신뢰라고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신용은 서 있을 자리를 잃는다. 신용이 무너지면 답은 뻔하다. 사람들은 금융기관과 경제 정책 당국에 신뢰를 접으려 한다. 2차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대는데도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카드사와 은행 창구에 불이 났다. 문의 전화도 수용량을 넘겨 폭주하자 불통이 돼 버렸다. 직접 창구를 찾는 이들의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창구 직원과 전화 상담사들은 고객들의 불만과 하소연을 듣느라 죽을 맛이다. 이번 사건은 전적으로 금융기관의 무감각, 부주의의 산물이다. 억울한 금융 소비자 책임을 언급할 일이 아니었다. 현 부총리는 “카드 발급 신청을 직접 해 보기라도 했는가”라는 지적을 받아도 싸다. 물론 다른 ‘나으리’들도 더 나을 게 없다. 오십보백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중에는 불법 유출된 정보가 넘쳐난다. 건당 10원대에서 비싼 것은 몇 만 원까지 팔린다고 한다. 개인 신상에서 금융 정보는 물론 외부로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개인 병력(病歷)까지 돈으로 교환된다. 괜히 대리운전, 인터넷, 통신사, 보험사 등에서 전화가 오는 게 아니다. 정보가 돈이라는 말은 진부하다. 이게 악용되면 사람도 죽이고 가정도 파괴한다.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보다는 금융기관 봐주기에 가깝다. 서민들은 억울하다. 필요한 정보라고 요구하는데 거부할 재간이 없다. 부총리급 정도나 되면 금융기관에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몰라도 서민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급전이 필요해서든, 사탕발림 경품에 눈이 멀었든 정보제공 요구에 응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보 관리를 잘못했다고 욕을 먹으니 말이다. 길거리에서 사무실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카드 발급 행사는 제지를 받지 않는다. 수십 장의 카드 발급 신청서를 들고 다니는 외판 사원들의 몫도 무시하지 못한다. 개인 금융 정보는 이런 환경에서 공개된 상태로 불안하게 돌아다닌다. 현실을 보고도 가만있다면 총체적인 감독 부실, 관리 부실이다. 아예 감독과 관리 ‘부재’에 가깝다. 금융 감독 기관이 아니라 비호 기관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이 과정에서 개인 정보가 새나갔다면 누구 책임인가. 몇 푼 되지도 않는 경품에 혹해서 정보를 ‘순순히’ 제공한 사람을 탓해야 하나. 자녀 학원비나 반찬값이라도 마련하려고 나온 카드 판촉 아주머니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무차별 마케팅에 나선 카드사의 책임인가. 이런 현실을 눈감고 못 본 체한 정부 책임인가. 당장 지갑 속 카드를 꺼내 확인해 보라. 신용을 도난당한 여러분의 ‘신용’카드는 안전한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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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06
  • 후회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후회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선택의 문제다”라고 설파했다. 선택을 잘하면 행복한 삶을 살지만 선택을 잘못하면 불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칼라일’은 인생에는 3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직업의 선택이고 둘째는 ‘누구와 사귈까’하는 결혼의 선택이고 세째는 ‘누구를 믿을 까’하는 친구나 동업자등 믿을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의 선택이다. 모든 선택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선택을 잘하면 유익하고 혜택도 있지만 선택을 잘못하면 그로 인해 고생을 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즉 인생은 선택의 과정이고 매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선택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좌우되듯이 지역의 발전도 유권자들이 어느 일꾼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다운 일꾼을 선택할 때 지역은 발전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려고 하는 일꾼을 선택할 때 지역이 낙후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는 6월 4일이면 도지사와 교육감, 그리고 서산시장과 시의원, 도의원 등을 뽑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벌써부터 선거전이 시작됐고 많은 입지자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어느 입지자는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한번 일을 하고 싶다”며 선거전에 뛰어 들었는가 하면 어느 입지자는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도전했다는 등 출마의 변도 각양각색이다. ‘지역발전과 지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명의식을 가지지 않고 ‘시장’과 ‘의원’ 이라는 완장을 한번 차고 행세를 하고 싶은 속셈이 많은 함량미달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띤다. 이 같은 입지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지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일을 하는 일꾼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유권자들에게는 진정 지역발전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다. 지연· 학연· 혈연 등에 얽매여 선택을 해 놓고 자신이 선택을 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비방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누구를 선택해 놓고 ‘잘못하느니’, ‘형편이 없느니’, ‘자기 잇속만을 챙기느니’하고 비방을 한다는 것은 나무위에 올려놓고 흔들어 대는 꼴이다. 이는 결국 그런 사람을 선택한 자신을 비방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참다운 일꾼을 보지 못하고 각종 연(緣)과 정(情)에 이끌려 입지자를 선택을 할 경우 그 잘못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언제까지 이같은 일을 되풀이하려고 하는가. 내가 행사해야 하는 권한을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까지 주면서 대신 하도록 위임해 주면서 함량미달인 입지자를 선택할 것인가 되돌아 봐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참다운 일꾼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일에 들어가 오는 6월 4일에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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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7
  • 靑馬의 기상으로 생동하는 서산 만들자||2014년 새해를 맞아
    희망에 찬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2014년 새해는 60년만에 찾아온 청마(靑馬)의 해다. 말은 성격이 곧고 진취적이며, 활달한 특징을 갖고 있기에 예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동물이다. 이 중에서 청마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말이라 해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행운을 가져온다는 청마의 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내게도 행운이 함께 하리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이란 앉아서 기다리는 자에게는 오지 않고, 현명한 판단과 용감한 실천력을 구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철저히 준비하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력을 구비할 때 행운이 찾아든다. 준비되지 않고, 허약한 민족에게는 아무리 청마의 해라도 행운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다. 연초 서산시는 12층 규모의 특급 관광호텔 건립을 위해 투자유치 협약을 갖고 연내 착공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삽조차 뜨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호텔 건립과 관련 서산시는 20여 년 전부터 나섰지만 지금까지 흐지부지되면서 시민들로서는 서산시가 ‘늑대 소년’은 아닌지를 의심케 했다. 결국 시행사 측 말만 믿은 서산시의 판단 착오 탓이 크다. 서산 축협의 일부 임직원들의 배임과 횡령 의혹도 지역의 이미지를 먹칠한 사건이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을 두고 시민들간의 찬반 대립도 아쉬움이 크다. 성완종 국회의원의 선거법 위반에 따른 당선 무효형 선고도 지난 1년 내내 안주거리로 등장했다. 모두 지역의 부담으로 남아있다. 지난 5년 간 답보상태에 있던 서산바이오웰빙특구 사업이 계획을 변경하여 결실을 맺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역발전을 위한 성과다. 이로써 새해에는 부석면 일대 특구지역이 집중력과 추진력에 탄력을 받을 것이다. 1단계 완공 시점이 2015년이지만 이런 추세라면 기대난망이다. 지난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역사적인 해였다. 시민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통합과 인사 대탕평,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약속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개월 동안의 국정은 갈등과 분열이 심화됐고 국민통합은 이뤄내지 못했다. 포용과 화합은 실종됐다. 정치개혁과 민생정치는 구두선이 되고 말았다. 여야는 정치쇄신을 대선과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소득도 없이 정쟁으로 한해를 마감했다. 철도노조 파업 막판에 여야가 중재에 나서 파업철회를 이끌어냈지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은 극에 이르고 있다. 태동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게 국민 눈이 쏠리는 이유를 여야는 곱씹어야 한다. 새해는 지방권력을 재편하는 지방선거의 해다. 1명의 시장을 뽑는 선거에 대략 예닐곱 명이 출사표를 던질 전망이다. 경쟁률이 6~7대1에 이른다. 도의원 2명, 시의원 13명을 뽑는 지방의원 선거도 엇비슷하다. 서산이 생동하게 하려면 역동적인 정치리더로 판이 짜여야 한다. 책임감과 균형감각, 지역과 주민에 대한 열정이 깊다면 금상첨화다. 정치를 대충 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제돼야 마땅하다. 리더가 치열성이 없으면 지역이 달라지지 않는다. 시민 판단과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마의 기상으로 생동하는 서산이 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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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2
  • 칭찬하지 않을 바에야 침묵이 낫다||데스크칼럼
    인간관계에 있어 최고의 의사전달수단은 말이다. 그러나 말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말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은 ‘부족함’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오해라는 게 싹이 튼다. 말한 사람의 속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 종종 충돌과 갈등을 부른다. 갈등과 충돌은 서로의 관계에 균열을 야기하며 나아가 자신마저 해치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사자성어가 구화지문(口禍之門)이다. 즉 말이란 입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입이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말은 퍼지는 속도와 거리가 가히 놀랍다. 사마난추(駟馬難追)란 성어와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無足之言 飛于千里 (무족지언 비우천리)’라는 속담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전자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가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뜻으로 말의 확산속도, 후자는 말의 확산거리에 각각 무게를 두고 있지만 똑같이 ‘입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려 충렬왕때 편저된 명심보감에도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나와 ‘입조심’을 주문하고 있다. 내년 6.월 4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후보 예정자나 시민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말’이다. 13명의 시의원과 2명의 도의원, 1명의 시장을 선출하는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수많은 입후보 예정자들은 이미 선거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나름대로 이미 사무실을 차려 놓고 활동하는 가하면 포럼이라는 것을 발족,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고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른 입후보 예정자나 지지자들을 상대로 근거가 있든, 없든 많은 말을 쏟아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서는 입지자는 시장 입후보 예정자를 포함해 시의원과 도의원 입후보 예정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50~60명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각자 입을 통해 상대 후보를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말의 포문을 열기 시작하면 서산은 이들이 퍼 붇는 말만으로도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하다. 그동안 잘 지내왔던 이웃들이 원수지간이 될 우려가 높아 선거가 끝난 후 서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게 되며 그 후유증은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의 발목을 잡게 된다. 시민들은 서로 얽혀 있는 이웃이고 형제다. 설마 ‘내가 험담과 비방을 해도 상대가 알겠는가’하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발 없는 말이 빠른 속도로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남을 향해 총을 쏘면 상대도 나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은 뻔 한 이치다. 결국 남을 험담하는 것은 자신을 험담하는 것으로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다를바 없다. 말의 ‘부족함’의 속성을 깨닫고 지역의 화합과 발전 및 자신을 위해 상대를 칭찬하지 않을 바에야 아예 침묵을 지키는 ‘입조심’이 낫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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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01
  • 부끄러움(羞惡之心)을 아는 사회
    추석 연휴 몇 사람이 만나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사림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원자폭탄,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이 있는데 무언지 아느냐고. 수많은 인명을 한꺼번에 앗아가고 도시를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 수 있는 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이 있다니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하길 원자폭탄,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은 지탄(指彈)이라고 했다.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이란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세상에 내놓을 때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조신하라고 가르쳤다. 언론에 종사하는 필자로서는 누구보다 와 닿는 이야기다. 일부 잘못된 기자들의 행태로 인해 기자라는 직업이 손가락질 받기 쉬운 직업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나도 모르게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는지 뒤돌아보곤 한다. 더욱이 남이 잘못했다는 비판의 글을 쓸 때는 내 허물은 없는 지,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옳은지, 또 다른 시각은 없는 지 등등을 살펴본다. 나아가 기사 안에 비판의 당사자가 변명을 할 수 있는 여지와 애정을 남겨놓곤 한다. 필자는 편집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자이기 전에 사람이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또 지탄받지 않도록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 행사장 단골손님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성완종 국회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이후 추석 전까지도 국회의원 선거 입지자들의 잰걸음이 분주했기에 이들의 실종에 다소 허탈한 마음까지 든다. 이들 국회의원 입지자들은 성 의원이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보인 행보라 시민들의 눈총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 시민들은 이들의 행보에 최소한의 양심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추석 연휴 이후 모습을 감춘 데는 이유가 있다. 추석 전 주요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지 3개월이 경과된 사건 모두에 대한 최종심 판결을 이달 중에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10월 국회의원 재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성 의원에 대한 판결이 이달 중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회의원 입지자들은 성 의원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도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양심이라는 도덕적인 의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것을 맹자는 사단설(四端說)로 설명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어질어서 어려운 남을 측은하게 여긴다. 또 본래 올바라서 의롭지 못한 일을 하게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남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하고 불의와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수오지심(羞惡之心) 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양할 줄 아는 예절(辭讓之心)과 시비를 가 릴줄 아는 지혜(是非之心)가 합쳐지면 인간의 네가지 본성이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을 동물과 차별 짓는 품성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고 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염치’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고 염치가 있기 때문에 지탄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을 ‘내 탓’보다는 ‘네 탓’으로 돌리면서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염치없는 사회는 서로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불태우며 공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재선거를 바라는 입지자들의 행보도 그래서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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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5
  • 내년 기초선거 출마 방식 결정 시급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내년 6월 4일은 실시된다. 이날이 선거일로 정해진 것은 관련법에 따른 것으로, 공직선거법은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 만료일 전 30일부터 첫 번째로 돌아오는 수요일’을 선거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예비후보 등록은 시ㆍ도지사 및 교육감의 경우 선거일 전 120일인 내년 2월 4일부터며, 광역의원, 기초의원 및 시장은 선거기간 개시일 전 90일인 2월 21일부터 가능하다. 아울러 후보자 등록기간은 내년 5월 15~16일 이틀간이며, 공식 선거운동기간은 5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다. 현직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 보고는 선거일 전 90일인 3월 6일부터 6월 4일까지다. 이처럼 내년 지방선거의 모든 일정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가장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기초단체장ㆍ의원(기초선거)에 대한 출마 방식이 선거일 300일도 안 남은 현재까지 정해지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더욱이 이 문제는 지난 대선 당시 유력 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각각 정당공천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민주당은 당원 투표를 거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폐단을 막자는 게 명분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여야가 기초단체장ㆍ기초의원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방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는 12년간 잠정 폐지한 후 부작용 여부를 면밀히 살펴 최종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몰제’를, 민주당 기초자치선거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는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고 지방선거 후보자가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해 표시하는 ‘정당표방제’를 도입키로 각각 의견을 모았다. 이와 함께 여야는 기초 공천 폐지로 여성 등 정치적 소수자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이들을 배려하기 위한 방안도 각각 제시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결론은 난 셈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아직까지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해가 쉽게 안 간다. 물론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놓고 정치권 등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에 대한 불안감도 생각해야 한다. 하루가 급한 이들에게 무한정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정치권의 갈등 양상이 상호 이해와 신뢰 부족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다면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른 시일내에 여야가 최종 결정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결정을 내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장ㆍ단점이 적지 않은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단점은 최대한 보완된 방식을 택해야 한다. 특히 정당공천이 없어질 경우 유권자들은 뭘 보고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후보를 찍느냐는 반대 여론과 지난 2003년 ‘기초선거 후보자의 정당 표방 금지’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초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요, 바탕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으면 지방자치를 하는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현명한 보완책 마련과 판단을 기대하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점을 중앙 정치권이 헤아려 주어야 한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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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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