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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5.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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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고운 산야의 여인네 치마폭 둘러 놓은듯했던 그 빛깔도, 연한 아기 속살 드러내듯 연둣빛 잎사귀의 수줍음도, 그 속에 하얀 빛의 개살구 개벚꽃 들의 환한 빛들의 향연들이 꽃비가 내리는 듯 바람에 흩날리며 화려했던 그 모습이, 어느새 진해지는 녹음들로 인해 점점 멀어져 간다.

예전엔 만인들을 반기는 꽃으론 코스모스가 전부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언제부턴가 거리거리 가는 곳마다 영산홍의 흐드러짐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봄은 들에서부터 오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더니,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계절의 여왕답게 온 들과 산이 화려하다.

좋아하는 넝쿨장미가 피기 시작한다. 어디서 아카시아 향내도 솔솔 풍겨온다.

누가 내게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머뭄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음~ 이맘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카시아가 핀다. 해질녘 노을이 아름답다는 노랫말도 있지만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 속에, 그 향내 짙은 그 속에, 해질 무렵 그 시간에 들판에 서면 난 이유도 없이 마구 가슴이 뛰고 설렌다. 이놈의 해질녘 바람 따라 후~욱 풍겨오는 아카시아 꽃의 그 향내는 정말 나를 미치게 한다고 표현하면 좀 과격한 것일까?

분명 오월의 빨간 넝쿨장미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도도하고 아름답지만, 나를 미치게 하는 그런 맛까진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는 글귀에 가슴 짜릿한 전율이 스치는 건 왜일까? 아!  내 세월이 꽃처럼 지고 있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

어릴 적 어머니께서 콧노래로 흥얼거리시던 무언가 애잔하게 아쉬워하는 듯 했던 그때의 그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제 내 나이, 그때 어머니의 그 나이 그 모습이 되었는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늘 인생의 봄을 살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자신을 세뇌 시키며 살고 있다. 흘러간 그 옛날은 아름다운 것이다. 서쪽새 우는 밤엔  서쪽새를 떠올리기 보다는 서쪽새가 울고 있던 그때의 시간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올려지고 그리워지듯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무수한 찰나가 모여 억겁으로 이어지듯 나에게 주어진 찰나에 가까운 짧은 시간들을 더 없이 충실하게 보람 있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반면에, 한 찰나 한 찰나를 즐기며 한세상 사는 것이 남는 장사인거 같기도 한 결코 인생에 있어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없는 아리송한 삶을 살아가는 게 우리 인간사 인 것이다.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인간의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유행가 가사의 한 대목이다. 가슴 설렘과 아릿한 순수함을 항상 마음 한켠에 간직하며, 언젠가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왜 그렇게 설렘을 주었었는지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모두가 서로 공감으로 느껴준다면 그 또 한 행복한 일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의 표현은 사탕을 선물하는 즐거움이고,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은 붉은 장미 한 다발을 들고 기다리는 마음이란다.

이런 소녀 같은 막연한 기대감도 갖지 말라면 너무 삭막한 세상일 것이고, 이렇게 가슴 한 켠 채울 수 없는 시림을 그냥 계절병이라기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오월의 밤공기!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코끝을 스치는 훈훈한 훈풍에 아카시아 향내가 날아들면서, 어린 모를 심어놓은 논에 와글와글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늦은 밤의 처량한 가슴 채우는 듯 하면서도 정겨운 소쩍새 우는소리, 난 이래서 시골이 좋다. 봄밤!! 이렇게 좋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요즘 들어 부쩍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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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숙 기자의 ‘줌마저널’③||오월의 밤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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