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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1.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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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수.jpg

 

 

예나 지금이나 판·검사는 두려우면서도 무척 우러러 보이는 존재다. 죄를 묻고 처벌을 요구하거나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직업이어서 범죄자는 물론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그들의 존재 앞에서는 위축되기 십상이다. 뭔가 없는 죄도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기분 때문인데, 오죽 했으면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상을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까.

1970년대 권위주의 시절 이야기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별안간 총성이 울렸다. 재일동포 청년 문세광의 소행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단상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황급히 피해 연설대 아래로 몸을 숨겨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단상 위에서 청중들을 향해 마주보고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영수 여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후 뇌수술을 받았으나 그날 오후 7시경 향년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 육영수 여사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국민장 영결식은 1974년 8월 19일 오전 10시 중앙청(현재 경복궁) 광장에서 조문사절과 내외인사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평소 따뜻한 미소와 자애로운 성품으로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격려하고 위로하던 영부인을 갑자기 잃은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잠겼다.

한편 그 무렵 서산에서는 검찰 고위간부가 술을 잔뜩 마시고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대전지방검찰청 S지청 고위간부가 대전지방검찰청으로 발령을 받고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동료 검사들과 같이 회식을 했다. 영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인데도 이웃한 예산군 덕산온천으로 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고, 통금시간이 되어서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검사들을 태운 관용차는 인적이 끊기고 왕래하는 차량도 없이 깜깜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덕산면 광천리 고갯길을 넘어 오면 해미읍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찰관이 차를 멈춰 세우고 차 안의 취객들을 향해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 있던 지청장이 대뜸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새끼 바리케이트 치워.” 하며 고함을 질렀다. 경찰은 단순히 술주정꾼의 행패로 여기며 계속 신분증을 요구했다.

지청장은 계속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호통을 치다가 “내가 누군지 모르면 이 차를 잘 보란 말이야!” 하면서 경찰에게 주먹까지 휘둘렀다. 정신이 얼얼하도록 뺨을 맞은 경찰이 손전등을 비춰 차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로소 검찰청 마크가 찍힌 관용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은 억울하기도 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그들을 그냥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는 경찰로서는 고양이 앞에 쥐새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엘리트 검사로서 우월한 신분을 이용해 안하무인격으로 말단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태도는 지나친 횡포가 아닐 수 없었다. 뺨을 맞은 경찰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관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그대로 보고했다.

다음날 아침 지청장은 기분 좋게 일어나 짐을 싸다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상부에서 발령을 취소한다는 전화였다. 오지 근무를 마치고 잔뜩 기대했던 대전행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서산에서 평생 공직생활을 하고 은퇴한 어르신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다. 물론 지금 이런 검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먼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검찰공화국’이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법조인으로서의 신념 때문에 검찰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잘한 일이다. 아무리 힘있는 사회 지도층이라도 용납하기 힘든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려 심판을 받는 일에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야 약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법치주의 국가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5공화국 군사정권 때처럼 생사람 잡아 죄인을 만들지 않은 이상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허성수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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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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