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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8.08.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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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레 뚫린 도로로 인해 명천1리는 당진, 서산, 대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성연면 명천1리(이장 이풍호)는 조선시대부터 명천리라 불리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마을이다. 과거에는 한때 성연면보다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는 지정학적으로 서북부에 돌출한 반도 지형인 서산지역은 육로교통이 불편, 인천과 서울로 가는 길은 명천포구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명천포구는 고려조와 조선조에 있어 조세곡(租稅穀)을 수납하던 조창과 서산의 외항기능인 창촌으로 유명세를 더했던 곳이다. 한창 시절 명천포구에는 나라의 조운선과 개인의 짐을 실어 나르던 범선, 그리고 현 옹진군 덕적도와 자월도 등의 도서로부터 생산된 수산물 등을 실어 나르던 어선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근대인 1928년에는 처음으로 명천-인천 간에 현대적인 정기여객선(150t급)이 취항하면서 항포구로 변신하며 명실 공히 서산지방 제일의 문호(門戶)로 불리기도 했던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 마을 고로들의 아스라한 추억 속에서 살아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전해내려 오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과거 해상교통의 핵심 중심지였던 명천포구의 영향 탓인지 최근에 들어서는 각종 공장들이 입주하고, 인근 해성리 지역에 대규모 서산2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기로 결정되면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4차선 도로가 개통되는 등 새로운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마을에서 예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마을주민들은 말우리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옛날 험한 이 고개를 넘던 선비가 말이 실족하는 바람에 낙마하여 죽었다고 하는데 이를 슬퍼한 말이 3일 밤낮을 울다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3반 지역은 명천윗삼거리라 불리기도 하는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도보 여행자들로 인해 주막거리가 형성 되어 번화한 곳 이였다고 한다. 방관식 기자

 

명천1리 사람들


마을에 각종 공장들이 들어서기 위해 터를 닦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명천1리 주민들은 고향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한편, 정감어린 과거의 자취가 모두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농촌 현실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인지 마을 주민들은 내실 있는 발전을 소망하는 눈치였다.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들어 보았다.


▲황영수(73)씨 = 옛날에 비해 변한 거라면 길이 확 뚫린 게 제일 크게 변한거지. 사람은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지금 나도 70이 넘은 나이지만 근처 공사현장에 가서 노동일을 하고 있어요. 하루 가서 열심히 일하면 쌀 반 가마 값은 받으니까 농사짓는 것 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어요. 앞으로 많은 공장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도 동참해서 같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흥복(76)씨 = 22살 때 시집와서 지금껏 살고 있지요. 옛날에는 이 마을 고개를 넘어야만 당진 대호리 친정에 갈 수 있었어요. 그저 소달구지 한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었는데 지금이야 격세지감이지요. 이런 시골 동네에 4차선 도로가 옛날 같으면 꿈이나 꿀 수 있었나요.

▲이팔옥(93) = 17살에 시집 왔을 때는 산골짜기 마을이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근처에 포구가 있고 해서 사람들이 자주 왕래 했는데 지금은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워요. 고맙게도 요즘은 이곳에 공장이 생겨서 우리 손자도 회사에 다니면서 돈도 잘 벌고 있어요.

▲장계순(76)씨 = 요즘 길 뚫리고 이것저것 공장 들어온다고 시끄럽지만 여기 원래부터 사는 사람들은 하나 변한 게 없어요. 오히려 옛날보다 사람 구경하기가 더 어려워 졌지.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은 구경하기 힘들어요. 이 동네 이름이 당골인데 옛날에 유명한 당집이 있었다고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김창식(48)씨 = 고향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다 돌아 온지 10년 됐네요. 다시 돌아와 보니 동네 인심이 옛날 보다 조금 못해진 것 같아요. 하긴 이런 사정이 이곳 뿐만은 아니겠죠. 워낙 농촌 경기가 어려우니까 옛날 같은 끈끈한 정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작년에 천오백 원 하던 밸브가 지금은 이천오백 원으로 올랐으니 올라도 너무 심하게 오르는 것 같아 앞으로 농사짓기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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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발견-마을기행 38] 성연면 명천1리||해상교통의 중심지 ‘명천포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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