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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도 넘치면…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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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7.2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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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내와 함께 외식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으나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건만, 찾아간 식당마다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요즘은 불경기라 그런지 아니면 여유가 생겨서인지는 몰라도 휴일엔 문 닫는 점포가 많아졌습니다. 걷다 보니 제법 멀리 오고 말았습니다.

문득 그 근처에 있는 손칼국수 집이 생각났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단골 삼아 자주 들렀던 칼국수 식당이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칼로 썰어 끓여주는 손칼국수 집이었습니다. 기계로 빼는 국수와는 다르게 구수하고 어쩌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맛에 자주 찾았었습니다. 연세가 많아서 고만두시지나 않았을까 했지만, 여전히 문을 열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반가웠지만, 할머니도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홀에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곧 칼국수를 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아내는 할머니에게 여러 번 조금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는 아내의 부탁과는 다르게 한 그릇 가득하게 국수를 내오셨습니다. 바지락도, 애호박도 햇감자도 푸짐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국물을 떠먹어보니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옛날 먹던 바로 그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습니다. 처음 느낀 맛은 먹을수록 점점 사라져 버리고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반 정도 먹다가 남기고 말았습니다.

정성껏 만들어 주신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내도 다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식당을 나오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기가 쑥쓰러웠습니다. 칼국수는 조금 부족한 듯, 할랑할랑하여 국물까지 들여 마셔야 제 맛을 느끼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문득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장과 자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장은 매사 적극적이고 자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자공이란 제자가 묻기를 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물으니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란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다고 묻자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여 이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의 유래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 말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꼭 기억해야 할 말인 듯했습니다. 어느 행사장에 가서 진행자의 속도 모르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축사라든가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을 참견하는 사람도 피곤합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란 말처럼 지나치게 겸손해도, 몸 둘 바를 모르도록 과도하게 하는 칭찬도 난처하게 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식한 건 좋지만, 지나치게 유식하여 가르치려 드는 글을 보면 어쩐지 위화감이 들기도 합니다. ()에서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는 예술적 기법입니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시들은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문과 단어의 배열로 일반 독자들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성경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의로운 체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로운 체하지 말라, 그러다가 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전도서 716)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칼국수 집 할머니는 배고팠던 시절 넉넉하게 푸짐하게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겁니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학창 시절 외웠던 이조년의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의 시구가 떠 올랐습니다.

내외가 싸운 사람처럼 묵묵히 걷다 보니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아내가 불쑥 한마디 했습니다. “많이 주면 아무리 맛있어도 맛있게 먹은 것 같지 않아요아내도 과유불급이란 말을 생각한 걸까요? ()도 넘치면 오히려 폐()가 됩니다.

음악도 지나치면 소음이 됩니다. 훌륭한 설교(說敎)도 넘치면 설교(泄敎)가 되겠지요. 스스로 돌아보며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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