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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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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7.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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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17세기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 핀 레인의 초상화와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년에 모든 부와 명성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부인과 자식마저 떠나보내고 극심한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그린 최후의 자화상인 일명웃는 자화상의 이야기였습니다. 내 메모장에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옮겨 놓았습니다. ‘손가락만 갖다 대도 금방 먼지로 바스러질 것처럼, 몸도 마음도 푸석푸석해 보이는 노파가 등마저 굽은 초라한 몰골로 헤벌쭉 웃고.’ 이어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했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받아들였으며 그 감정 그대로 자화상에 담았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코코슈카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림을 보고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추하고 부서진 소름 끼치며 절망적인, 그러나 그토록 멋지게 그려진 그림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상징인가?’ 화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유명하게 한 건 바로 정직함이었습니다.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건 거울입니다. 반듯하면 반듯한 대로, 찌그러지면 찌그러진 대로 비춰주는 게 거울입니다. 찢어지거나 구겨져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울을 가까이 두고 수시로 들여다봅니다. 거울은 방에도 있고 거실에도 있으며 목욕탕이나 현관에도 있습니다. 문득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거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거울이 아주 귀했던 시절, 과거 시험을 치른 선비가 한양 장터에 갔다가 거울을 발견하고 그걸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걸 아내에게 보여주자 예쁜 색시가 자기를 보고 있어 과거 보러 간 줄 알았더니 어디서 첩을 데리고 왔다며 통곡하고, 그 거울을 빼앗아 확인하던 시어머니는 바싹 마르고 쭈그러진 늙은 여인이 있는 걸 보고 기왕 데려오려거든 젊은 여자를 데려올 게지 라며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그걸 보던 시아버지가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아이고! 아버님!’ 하며 넙죽 절했다고 합니다.

나도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보았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니 나도 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젊어서는 외탁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아서 그런지 내 얼굴 어디에도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영락없는 늙은 아버지 모습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가, 옷매무새가 바른가 점검하고 바로 잡습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말이 있습니다.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처럼 잡념과 허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 할지라도 비춰주는 건 오직 겉모습뿐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마음마저 비춰주는 내면의 거울은 없는가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좋은 책과 좋은 말씀, 명상이나 기도가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지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내가 변명하고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내면의 거울은 나에게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 나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누가 남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내가 가장 잘 보이는 거울이 아닐까요? 토사구팽이란 말을 유행시킨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아내가 젊어서는 곱고 얌전했는데 지금은 무섭다고 했습니다.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한 조순형 전 국회의원도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아내와 상의한다고 했습니다. 재야 운동가 장기표 씨는 세상 사람들 모두 장기표가 훌륭하다 해도 집사람이 당신은 형편없어하면 완전히 황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남자들 모두 비슷한 대답을 할 듯합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도 잔소리를 들었으니 영 자신이 없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도 그의 악처 크산티페 덕분에 유명한 철학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양약은 입에 쓰다고 했습니다, 충고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나를 비춰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지요. 오늘도 내면의 거울을 보며 마음 매무새를 바로 잡아 봅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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