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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6.01.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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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농군의 자식이야”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얘기를 하는 경우 어떤식으로든 낯가림을 덜기위해 연고를 끌어들이는 것은 보통이다. 학연과 지연을 동원하고 게다가 사돈의 8촌까지 들먹이게 마련이고 그것조차 어려우면 우리는 다같은 농군의 자식이 아니냐는 말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면 대부분은 호의(?)적인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농군의 자식이라는 표현에는 감성의 코드가 숨어 있다. 농군이라는 표현에는 이해타산에 밝지 않은 순박하고 정겨운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 있으며 그 감성은 아마도 고향, 시골, 농촌, 쌀 등의 단어에도 함께 깃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 간에는 이러한 농군의 자식이라는 감성의 코드가 작용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것이 젊은 세대들은 농군의 자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후세대들이 도시로 나와서 양육한 자녀들인 현재의 20,30대 농군의 자식이 아니기에 농촌에 대해 무감각하다. 따라서 이러한 감성의 코드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최근 쌀개방 문제로 시위중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물론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농촌인구는 2004년 말 현재 341만명으로 10년전에 비해 200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농가의 평균연령이 57세로 노령화 되어 있어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서산의 농가인구도 2004년말 현재 전체인구 15만여명 가운데 약4만명이며 전체 유입인구는 증가추세이나 농가인구는 거꾸로 감소하고 있다.

농촌인구가 전체국민의 10%에도 못 미치고 주된 여론 주도층이 20,30대 인점을 감안하며 이같은 냉담함이 그리 놀랄일도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우리사회가 농업경쟁력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으며 이로 인해 오로지 자신들만의 노하우와 형편을 고려 각자의 활로를 눈물겹게 모색하고 있을 따름이다.

향후 쌀개방에 따른 농업의 변화와 구조조정은 급격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국민의 무관심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농업의 회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이다”라는 농민의 절규를 곱씹어 봐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지원만으로는 농업을 살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당위의 문제에 근접할 수 없을 것이다.

편중된 산업만을 바탕으로 한 발전은 사회 불균형과 부의 편재를 가속화하여 결국 다양성을 토대로 한 건강한 사회구성원관의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농업을 살리는 일은 농업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제고시키는 일이다. 국민 모두가 우리들 양식과 생명의 원천으로 농업을 생각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농업의 문제를 우리문제로 생각하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

우리모두의 근원을 따져보면 누구나 농군의 자식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오늘도 우리에게 양식과 흙과 향수를 제공하고 있는 농촌에 등을 돌리는 일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농군의 자식이라는 낭만적인 감성의 부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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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군의 자식이요||[자문위원 논단] -심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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