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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1.08.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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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 선생의 생전 모습.

경술국치 당시 서산경찰서 게시판에 나붙은 ‘한일합방 포고문’을 찢어버린 의사 이철영(李喆榮, 1884 ~ 1945,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추서하려는 움직임이 서산지역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이철영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10년 8월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 사실을 알리는 포고문을 찢어버리고 이를 게시한 서산경찰서 게시판을 불사르고 항거하다가 체포 구금돼 공주형무소로 이감 중 왜경 순사부장 재등상웅(齎藤常雄)을 척살하고 피신했다.

이후 이의영(李宜榮)으로 개명하고 30여년간 은거생활을 하면서 당진군 송악읍 기지리에서 한학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서거했다.

이에 서산지역에서는 군민장(君民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서산유림에서는 1960년 시청 앞에 의사 추모비를 세워 기개와 충의를 높이 사고 있다.

음암면향토발전추진회(회장 김낙중)와 이철영선생추모회(회장 서두석)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모두 10여 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 등에 ‘이철영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지정’을 요구했으나, 관련부처에서는 ‘활동내용에 대한 객관적 입증자료의 보완’을 요구한 상태이다.

서두석 이철영선생추모회장은 “최근 이철영 선생관련 자료가 일부 발견되고 증인이 확보되면서 국가유공자 지정에 힘을 쏟고 있다.”며 “경술국치 100년을 넘기면서 선생의 웅혼한 기개와 족적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철영 선생은 조선 중기 좌의정을 지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12대 손으로 자는 윤숙(允叔) 호는 정우(靜寓)이다.



시청 앞에 세워진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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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암출신 이철영 선생, 국가유공자 추서 움직임||경찰서 게시판 ‘한일합방 포고문’찢는 등 항거하다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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