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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의 인물’에 ‘서산의 인물’은 없다
    충청남도(도청) 홈페이지에 ‘충남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충신, 독립운동가, 청백리/학자, 효자/열녀, 예술인 등 5개 분야에 40명이 올라있다. 충신으로는 백제 때 계백, 고려 때 최영, 조선시대 김종서, 이순신장군, 성삼문 선생 등 여덟 분이다. 독립운동가로는 김좌진 장군,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 열 분, 청백리/학자로는 이색, 김장생, 윤증 선생이 있고, 효자/열녀 분야에는 아홉 분, 예술인으로는 장영실, 이지함 등 여섯 분이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 선생은 효자/열녀와 예술인 두 분야에 올라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서산 출신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서산 출신 인물가운데 충남의 인물로 소개할 만 한 분은 없는지 또는 마땅히 선정해야할 분이 빠진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할 일이다. 먼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천문학자인 금헌(琴軒) 류방택(柳方澤) 선생을 들 수 있다. 선생은 천문역법과 천체운행 추산에 밝아 1395년(조선 태조4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제작하는데 대표적 인물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 왕조의 운명을 내다보기 위하여 천체 관측과 그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천문도를 갖고자 하여 제작된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 남아있는 고대 석각 천문도가운데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고 그 가치와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선생은 인지면 애정리에 소재한 송곡사에 배향되었고, 지금도 여러 형태로 추앙되고 있다. 송곡사 인근에 선생의 이름을 딴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을 세웠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발견한 소행성을 ‘류방택 별’로 헌정하여 하늘에 떠 있는 별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만원 권 뒷면에는 천문관측기인 혼천의(渾天儀)와 함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들어가 있다.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우리 민족문화 100대 상징물로 선정하였다. 2014년 충남도에서 발행한 <충청남도 지적사(地籍史)>에도 ‘우리나라의 과학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천문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 6월, 천상열차분야지도 기념우표 7만 300장(낱장 49만 2100장)을 발행했으나 순식간에 품절되어 추가발행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류방택 선생은 충남을 뛰어넘는 과학자인 것이다. 조선 개국의 중심인물인 무학(無學, 舞鶴)대사도 꼽을 수 있다. 출생지에 관하여는 여러 지역에서 주장하고 있으나 설화의 대부분은 인지 애정리, 모월리, 부석 간월도라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간월도는 무학대사가 수행 중 달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학대사는 새 왕조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고, 서울을 수도로 정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불교 중흥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될 점괘를 뽑았다는 일화를 비롯하여 조선왕조의 운명을 암시하는 등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태조 이성계에게 말했다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豚眼只有豚 佛眼只有佛).”는 고사는 요즘도 회자되고 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린 현동자 안견(安堅) 선생도 무겁게 보아야 한다. 선생의 출생지에 대하여도 이론이 있으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특히 <호산록(湖山錄)>의 기록으로 볼 때 서산 지곡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 박팽년과 함께 도화원을 유람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이야기하여 사흘 만에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도 그림이려니와 안평대군의 제서와 신숙주, 이개, 하연, 정인지, 김종서, 최항, 박팽년, 성삼문, 서거정 등 당대 내로라하는 20여 명 문사들의 찬문이 더해졌다는데 그 가치가 크다. 이밖에도 신라시대 부성 태수를 지낸 고운 최치원 선생, 금남군 정충신 장군 등 여러 인물을 꼽을 수 있겠다. 현재 충남도 홈페이지에 있는 충남의 인물가운데는 출생지가 충남이 아닌 분이 상당수 있음을 감안할 때 출생지를 두고 다소 이론이 있다하여 대상인물 선정기준의 제약 요건은 아니라고 본다. 서산의 인물을 현창하고 역사, 문화를 찾아 보존하는 것은 서산의 정체성을 찾고 시민들의 자부심을 북돋우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니 무엇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산출신 또는 연고를 둔 큰 인물이 ‘충남의 인물’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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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6
  • 지나간 역사 잊지 말아야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요, 소설가이신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이 지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그날’, 그토록 염원하던 ‘그날’이 과연 어떤 날일까요? 바로 조국 해방의 날이요. 광복일입니다. 그 얼마나 간절하고 비장한 소망이요, 바람이었던가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합니다. 아무리 아프고 쓰린 상처의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 잊혀가듯 그렇게 감격스러워했던 해방의 감격과 기쁨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점점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그토록 바라던 이 나라가 해방된 지 벌써 77년이나 되었습니다. 당시 출생한 아이는 벌써 80이 가까워가는 나이가 되었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열두어 살 먹은 소년은 이제 90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광복의 기쁨을 느꼈던 20세의 청년들은 100세가 되어 이미 많은 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광복의 의미를 지금에 와서 되새겨 본들 당시만 하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나간 역사를 절대로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은 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살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에서 광복(光復)이라 했습니다. 해방의 ‘그날’은 말 그대로 빛을 회복한 날이었습니다. 그 빛을 얻기 위해 중국 상해에서 임시 정부를 설립하고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제와 싸웠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의사와 열사들이 광복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졌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은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집 잃은 어린이와 같습니다. 세상에 나라를 잃고 망국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것인가를 일제 36년간을 통하여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비록 연합군의 승리로 얻는 해방이지만, 3.1운동 같은 독립운동으로 우리 선조들의 분명한 독립 의지가 있었기에 떳떳하게 광복을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인 동시에 건국절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한민국은 기쁨도 잠시, 민족의 최대 비극 6.25 동족상잔을 맞아 남북이 분단된 채 74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굽이굽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란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누리호 발사로 우주 과학 기술 국가가 되었고,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라는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선박 건조량, 자동차 생산, 반도체 생산, 인터넷 정보화 지수 등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음악, 영화, 게임 산업 등 문화 강국으로 위상을 뽐내고 있으며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 임윤찬 같은 피아니스트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번영은 보릿고개를 이긴 근면, 자립, 자조의 새마을 운동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품고 피와 땀과 열정을 모아서 이룩한 열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기적의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간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론 분열과 부정부패,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나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수치의 역사를 잊으면 반드시 수치를 반복한다’라는 역사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남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하는 이유입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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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6
  • 타인의 말에 너무 민감하지 말라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세네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동물’을 ‘사회적 동물’로 전환 시킨(김홍중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말이지만, 어쨌든 인간을 표현한 말 가운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듯합니다. 인간관계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며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여 간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화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코로나19가 주춤하는 사이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파가 넘쳐납니다. 다시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 추세에 있는데도 선뜻 지난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인간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합니다.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건강 악화, 경제 상황의 곤란, 사회적 갈등 등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은 역시 관계 속에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란 걸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오히려 남의 눈치를 덜 보게 되어 편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기 의사에 반하여 행동하거나 꾸미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피에로는 겉으로 웃고 속으로 운다’는 속담처럼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강박관념에 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여 보는 것 같고 모두 나에게 관심을 두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시간에 쫓겨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신발을 벗고 앉아야 할 자리인지라 양말에 신경이 쓰여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날에도 그 양말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내가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라는 김재식 작가가 쓴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너무 오랫동안 상상하는 건 의미 없는 소모적인 일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쓸데없는 미련을 두는 것이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지나간 자기 검열은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걸로 됐다. 지나간 일을 너무 곱씹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칭찬하는지 아니면 나를 비난하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칭찬하면 기분이 좋고 비난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완전한 듯 타인의 잘못만을 지적하고 비난합니다. 그러기에 지나치게 타인의 평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한때는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두려워했습니다. 목사로 설교를 해야 하고, 작가로서 글을 쓰는 입장이고 보니 타인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타인의 평가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 전도서 (7장 21절, 22절)를 읽다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려니와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비난하고 비난당하는 건 사람들의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비난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종도 주인이 없는 곳에서는 주인의 흉도 볼 수 있다며 너 자신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얼마나 명쾌한 말씀인가요? 타인의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게 만족한 존재가 되는 것일 겁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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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9
  • 비방 목적의 판단기준과 증명책임은?
    [개요] 명예훼손에서 ‘비방의 목적’의 판단기준과 증명책임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2도4171 판결) [사례] 피고인이 고등학교 동창인 피해자로부터 사기 범행을 당했던 사실에 관하여 같은 학교 동창들이 참여한 단체 채팅방에서 ‘피해자가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감방에서 몇 개월 살다가 나왔다. 집에서도 포기한 애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라는 글을 올린 행위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안. [대법원 판단]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정한다. 이 규정에 따른 범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공공연하게 드러낸 사실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것임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는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것인지와 별개의 구성요건으로서, 드러낸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해서 비방할 목적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규정에서 정한 모든 구성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11471 판결 참조). ‘비방할 목적’은 드러낸 사실의 내용과 성질,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표현 자체에 관한 여러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 여기에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란 드러낸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그밖에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무원 등 공인(公人)인지 아니면 사인(私人)에 불과한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침해의 정도,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11471 판결 등 참조).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의 내용, 작성 경위와 동기 등 여러 사정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글을 작성한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비방할 목적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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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9
  • 세월을 아껴라
    덮습니다. 물론 지금이 중복을 지나고 며칠 되지 않았으니 더운 건 당연하겠지만, 참으로 덥다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 해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억지로 몇 가지는 했지만, 하루를 허송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 중독 아닌가?’ ‘이렇게 더울 때는 쉬어도 돼’ 또 다른 내가 위로하고 변명하지만, 그래도 손에 쥔 것 없는 하루가 찜찜합니다. 문득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직장 후배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 배움을 시작하여 정년 후에도 학업을 계속해서 모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를 만난 후, 문득 인생의 황금기를 그냥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직장 일에 충실했지만, 내 개인적 계발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새록새록 흘러간 시간이 아쉽기만 합니다.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쏘아버린 화살과 내뱉은 말, 지나간 시간과 게으름의 결과라고 합니다.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 지나간 세월은 갈수록 안타까워집니다. 그래도 정년 후에 나름대로 이것저것 좌충우돌 살아왔습니다. 스스로 위로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땐 시간이 이렇게 귀한 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무한정한 시간일 줄 알았습니다. 그랬으니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소카 왕이 남긴 죽음의 교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왕의 동생이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하루는 국법을 어겼다고 했습니다. 왕은 동생에게 일주일 뒤에 처형하겠다며 특별히 은총을 베풀어 그 일주일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어차피 일주일 후에 죽을 몸이니 마음껏 즐기다 죽자’라고 마음먹고 첫날에는 온종일 진수성찬에 여자들과 즐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험상궂게 생긴 장사가 나타나 ‘이제 죽을 날이 엿새 남았다’라고 외치며 지나갔습니다. 다음날에도 와서 ‘이제 닷새 남았다’ 다음날에도 이런 식으로 죽을 날을 알려 주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죽을 때가 열두 시간 남았다고 알려 주더니 매시간 찾아와서 남은 시간을 말해주었습니다. 드디어 처형 시간이 되어 동생이 왕 앞으로 끌려왔을 때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일주일 동안 잘 지냈느냐?’ 그러자 동생이 잔뜩 풀이 죽어 ‘험악한 저 사람이 시시각각 죽을 시간을 세고 있는데 무슨 재간으로 즐길 수 있어요?’ 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때 왕이 말하기를 ‘저 사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승사자는 매일매일 너를 찾아와서 죽을 날짜를 셈하고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동생은 크게 깨닫고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다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그걸 망각하고 살뿐입니다. 남은 시간을 알려 주는 생명 시계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평균 수명의 나이가 가까워질수록 조바심뿐입니다. 지금만 같은 생각을 진즉 했더라면 좀 더 멋진 삶을 살았을 걸 하며 남은 생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고 했으니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시간을 돈으로 따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라고도 합니다. 누구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주었지만, 활용하는 시간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인생의 성공 실패는 90%가 시간 관리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허송한 날은 살지 않은 날과 같다. 오늘 하루를 오르지 않으면 어찌 산을 오를 수 있으며 오늘 하루를 흐르지 않으면 어찌 바다로 내려갈 수 있겠는가?’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생각난 글을 메모해 두었던 ‘오늘’이란 글입니다. 게을러지는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 다그칩니다. ‘세월을 아껴라!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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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3
  • 계약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개요] 계약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2다225767(본소), 2022다225774(반소) 판결) [사례] 원고는 이 사건 토지를 사업지로 한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➀이 사건 토지 소유권(12억 원) ➁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회사법인 15개(12억 원) ➂인근 주민들과의 합의 관련 권리(3억 원)를 피고에게 매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같은 날 이 사건 토지에 관한 매매계약서가 따로 작성되었음) 매매잔대금을 청구하는 사안. [대법원 판단]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계약의 형식과 내용, 계약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75017 판결 등 참조). 계약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을 것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당해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사항에 관하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의사의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으면 된다(대법원 2006. 11. 24. 선고 2005다3959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과 이에 따라 장래 체결할 본계약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사가 명확하거나 일정한 형식을 갖춘 본계약 체결이 별도로 요구되는 경우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매매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한 합의가 있었음에도 법원이 매매계약 성립을 부정하고 별도의 본계약이 체결되어야 하는 매매예약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매도인인 원고와 매수인인 피고 사이에 양도 대상으로 삼은 ➀이 사건 토지, ➁15개 회사 주식, ➂주민동의 관련 권리를 개별적인 거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던 점,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이 특정되어 있고, 잔금 지급시기 등 의무 이행 방법도 정하고 있는 점, 해제권을 유보하기 위한 전체 매매대금 27억 원의 20%에 가까운 5억 원의 해약금 약정 등은 장래 본계약 체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당사자들이 체결하는 매매예약 내용으로 보기 어려운 점, 향후 당사자의 의사 합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표시한 사항도 없는 점 등의 이유로 매매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보아, 매매예약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22-08-03
  • 허구를 쫒는 비극은 소설 속의 일일까?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은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마틸드는 미녀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만큼 생활도 호사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문교부의 하급 관리의 아내가 된 그녀는 항시 불만스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어느 날 문교부 장관 내외가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고 몹시 기뻐한다. 하지만 바로 파티에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다는 고민에 빠진다. 이를 본 남편 르와젤이 여름휴가 비용으로 아내 몰래 모아두었던 돈으로 아내 마틸드의 야회복을 마련해 준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목에 걸 목걸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 마틸드는 친구이고 부자였던 포레스트로부터 호사스러운 목걸이를 빌려서 걸고 파티에 나갔다. 야회복에 화려한 목걸이까지 착용한 마틸드는 다른 어느 여인보다도 아름다웠고 기풍 있게 보였다. 여기에 타고난 그녀의 애교가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들뜨고 기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춤을 춘다. 즐겁고 신나는 파티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다음 날 이른 새벽이었다. 즐겁고 신났던 파티를 잊지 못한 마틸드는 주인공처럼 놀았던 파티에서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하여 거울 앞에 다가선 순간 깜짝 놀란다. 친구에게 빌린 값비싼 목걸이가 목에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허둥지둥 목걸이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부부는 의논 끝에 잊어버린 목걸이와 똑같은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그 목걸이를 구입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까지 팔아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빚까지 얻고서야 비슷한 목걸이를 구해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그로 인해서 진 빚을 온갖 고생 끝에 다 갚는 동안 세월은 10년이나 지나버렸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마틸드의 얼굴은 아름다움이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마틸드는 친구 포레스티에를 거리에서 만난다. 그리고 목걸이를 잊어버린 이야기며 목걸이를 돌려주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 말을 들은 친구 포레스티에는 놀라면서 말한다. “어마나, 그때 빌려준 건 가짜였는데!” 허구를 쫓다가 인생을 낭비한 모파상의 목걸이란 단편의 줄거리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하구’라고 전문가들이 그토록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나쁜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몫이요, 국민들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교훈은 ‘안보 없는 평화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난민은 644만여 명 이상이나 된다. 전 국민의 20%에 육박한다. 이들 난민은 어린이와 여성이 전체의 90% 이상이다. 이는 허구를 쫒다가 지불하는 대가요, 고통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동상이몽의 ‘평화 쇼’도 허구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도 허구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교수는 EBS ‘위대한 수업’ 신년 특집 4부작에 출연해 ”기술발전과 인류가 점점 더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석기 시대의 선조보다 수천 배는 강력해졌지만, 행복은 배로 커지지 않았다. 인간은 점점 더 큰 힘을 얻는 데는 능숙해졌다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재자는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으로 실수를 숨기거나 전가하려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 아래서는 언론자유가 있고 견제하는 권력이 있어서 실수를 폭로하거나 지도자나 정부를 교체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그걸 통해서 발전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만 하면 민주주의를 인정 하고, 51%의 유권자가 표를 준 정당의 정부가 되면 이 정부를 민주주의 정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다수결 독재’일 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모두에게 항상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다수 의견뿐 아니라 소수 의견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소수 의견이 무시되고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과 이득만 반영되는 ‘팬덤(fandom)’정치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절대자를 향한 종교적 숭배와 같은 정치 팬덤은 비판과 반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표시하면 배신자요, 악마로까지 매도되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허구를 쫒으며 인생을 낭비 했던 목걸이의 주인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김성윤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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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밝은 세상을 향하여
    신문을 펼쳐 들면 제목만 보아도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온통 세상이 어지럽고 부조리하고 죄악이 들끓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강국, 질서와 치안의 천국, 불과 70여 년 만에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연일 신문에는 가시 돋친 제목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어느 지인이 보내 준 글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이며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느 외교관이 우리나라의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 글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발언하면 한국 언론은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라고 쓴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율법은 간음한 여인에게는 돌로 쳐 죽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로 한 것입니다. 돌로 쳐 죽이라 하면 사랑과 용서는 거짓이 되고 용서하라고 하면 율법(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언가 쓰시며 침묵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재촉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무리가 다 물러가자 그 여인에게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말라며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뒤 다 잘라내고 위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한다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한 것인가요?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한 건 분명한 사실이 아니냐? 또는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놔 준 건 분명한 사실 아니냐? 또 한 예를 들었습니다. 예수가 위선적 바리새인들에게 분개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꾸짖은 데 대하여 한국 언론은 <예수, 국민들에게 X새끼 발언 파문>이라고 쓴다고 했습니다. 이런 예(例)를 14가지나 나열하여 꼬집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뒤집거나 왜곡하여 표현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자기 말이 자신의 세상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앞에는 희망이 놓여 있고, 매사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 앞에는 좌절과 포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분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타인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고 슬픔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납나다. 긍정적 기사를 읽으면 희망이 솟고 부정적 기사를 읽으면 분노가 치솟습니다. 의도된 악의적 문장 하나가 얼마나 세상을 어둡게 하고 어지럽히는지요? 사람들에게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 하고 교통순경은 사거리라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 하며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의 대답이 틀렸는가요? 아닙니다. 보는 입장이 다를 뿐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같은 비판 보도라도 새로 출범하는 정부를 진심으로 걱정해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뉴스의 톤이 있고, 아예 정부가 좌초되기를 바라는 식으로 읽히는 톤이 있다”라는 어느 방송국 노조의 성명을 보았습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세 가지 버릇을 고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 생각을 하는 마음 버릇을 고치는 일이요, 둘째는 비난과 불평하는 입버릇을 고치는 일, 셋째는 찌푸린 얼굴의 몸 버릇을 고치는 일이라 했습니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마음도 아름다워집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따뜻한 비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밝은 말, 밝은 글로 가득한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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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자격 상실 조합원의 미납 부담금 납부 의무는?
    [개요] 지역주택조합이 조합원 지위를 상실한 조합원들에게 미납 부담금을 청구한 사건(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1다284356(본소), 2021다284370(반소) 판결) [사례] 원고 조합이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여 조합원 지위를 보유하지 않게 된 조합원들에게 조합가입계약 상 미납한 부담금을 청구한 사건 [대법원 판단] 지역주택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법률관계는 근거 법령이나 조합 규약의 규정, 조합 총회의 결의 또는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약정에 따라 규율된다. 지역주택조합사업은 무주택자들이 주택 마련이라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합설립 준비단계에서부터 사업부지의 확보, 조합의 설립과 사업계획승인, 아파트 등 주택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절차를 진행하여 시행되고, 조합원은 사업의 진행과정에서 그 진행단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업비에 충당할 부담금을 납부할 의무를 진다. 이에 관계 법령에 따라 제정된 조합 규약이나 조합가입계약에서 조합원의 의무로서 부담금 및 기타 비용에 관한 납부의무를 정하고, 조합원 지위를 상실한 경우 납부한 부담금에 대하여 별도의 환불 범위, 방법 및 시기 등을 정하고 있다면, 이러한 지역주택조합사업과 조합가입계약의 성질, 조합 규약이나 조합가입계약의 내용, 당사자들의 의사, 조합원 부담금 납부의 성질, 형태와 방법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조합원이 그 지위를 상실하여 계약관계가 종료된다 하더라도 이는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이 소멸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조합가입계약 체결 당시는 물론 지역주택조합 설립인가 신청일까지도 조합원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자는 조합 설립인가 신청일 이후부터, 조합가입계약 체결 당시에는 조합원 자격요건을 충족하였으나 조합 설립인가 신청일 이후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한 자는 그 지위를 상실한 이후부터는 그 후 이행기가 도래하는 부담금을 납부할 의무를 면하지만, 그 전에 발생하여 이행기가 도래한 부담금은 이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원고 조합이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여 조합원 지위를 보유하지 않게 된 조합원들에게 조합가입계약 상 미납한 부담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조합원 지위 상실 시점을 기준으로 조합원 지위를 상실한 이후부터는 그 후 이행기가 도래하는 부담금을 납부할 의무를 면하지만, 그 전에 발생하여 이행기가 도래한 부담금은 이를 납부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지위 상실 시점 구분 없이 원고 청구 부담금을 전부 인용한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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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7
  • 어느 양조장 주인의 호소문을 읽고…그 후
    지난해 3월,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정세균 총리님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읽었다. 공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계 기관의 조사가 오랫동안 이어져 너무 힘이 드니 총리께서 살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호소문을 읽고 2021.3.17. <서산타임즈>에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이 양조장은 국산 쌀과 수입쌀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농관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무려 7개 월 째 단속반원이 여러 차례 현장을 조사하고 5,000장 이상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추가 자료 요구와, 심지어 거래하는 정미소를 찾아가 서류를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공장장과 경리직원은 물론이고 지체장애인까지 불러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안되면 나올 때까지 털려고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의문까지 들었다는 것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에 정신병,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잘잘못을 가려 처벌할 것은 엄중하게 조치하되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매듭지어 되도록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 양조장 대표와 처음 연락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칼럼 쓰기를 전후하여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었다. 신문에 실린 호소문만 읽고 쓴 것이었다. 뒤늦게 연락하게 된 동기는 충남인재개발원(공무원교육원)에서 ‘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어서였다. 강의를 앞두고 수강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어 전화했다. 대표는 그 칼럼을 읽었는지 1년 3개월이 지났는데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잘 알려지다시피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저술한 책 가운데 하나이다. 다산 선생으로는 고통과 좌절의 세월이었겠지만 후세들에게는 보배와 같은 많은 저서를 남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민심서는 고을 수령 즉 사또가 지키고 실천하여야 하는 지침서이다. 이 가운데 형전(刑典)편에 ‘검초(劍招:조사 취조))가 여러 날 걸린 것을 한 날에 한 것처럼 기록하는데, 이는 마땅히 고쳐야 할 일이다.’라고 일렀다. 즉, 여러 날 조사하고도 한 번에 한 것으로 기록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폐단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령이 하는 일이 수령에게는 비록 자질구레한 일일지라도 백성에게는 실로 큰일이니, 판결을 빠르고 명백하게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공무원들은 일상으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일이므로 일을 수행함에 있어 주민의 입장이 되어 신속하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있는데다, 가까운 곳이라 찾아가 만나고 싶었다. 전화했으나 계속 통화중이라 몇 번 시도 끝에 약속하고 찾아갔다. 꾸밈없는 인상의 임 대표는 의욕이 넘쳤다. 이름도 양조장이 아니라 ‘양조원’이었다. 한적한 시골 길가에 자리한 양조원은 주로 막걸리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농촌의 여느 양조장과는 달랐다. 대표는 하던 일을 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마주 앉았다. 먼저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언론에 호소한 후, 정부기관 등에서 조사하였고 엄중한 처분은 없이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 이제 평온을 되찾고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도 했다. 큰 과오가 없었는지, 관계기관에서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일에 부담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한 편 찌꺼기라도 남은 기분이었다. 이어 제품 카탈로그를 보여 주었다. 표지에는 ‘전통과 이야기가 있는 우리 술’, ‘공주 밤으로 만든 좋은 술’이라는 표제와 함께 여러 종류의 술병 사진이 배치되었다. 알밤막걸리에서부터 좁쌀동동주, 찰옥시시 막걸리에다 구기자주, 오디 와인까지 다양했다. ‘왕율 증류주’도 있었다. 증류주하면 안동소주를 연상했는데 우리 고장에서도 만들고 있음에 큰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 대표는, 며칠 전 경기도에서 열린 술 박람회에 참가하는 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종업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공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술밥 짓는 솥, 밤 까는 기계, 발효실, 증류 시설, 창고 등 예상보다 넓고 설비도 많았다. 양조업계의 어려운 실상을 들었다. 더욱이 한 때 반짝하다 사라지는 향토주(鄕土酒) 이야기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자신은 반드시 넘어서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지역 업체를 육성하는 일, 이 또한 공직자와 기관, 지역에서 함께 새겨야할 일로 여겨졌다. 공직자들의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 주민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옛 시절을 뒤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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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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