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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7.20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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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정세균 총리님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읽었다. 공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계 기관의 조사가 오랫동안 이어져 너무 힘이 드니 총리께서 살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호소문을 읽고 2021.3.17. <서산타임즈>에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이 양조장은 국산 쌀과 수입쌀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농관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무려 7개 월 째 단속반원이 여러 차례 현장을 조사하고 5,000장 이상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추가 자료 요구와, 심지어 거래하는 정미소를 찾아가 서류를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공장장과 경리직원은 물론이고 지체장애인까지 불러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안되면 나올 때까지 털려고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의문까지 들었다는 것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에 정신병,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잘잘못을 가려 처벌할 것은 엄중하게 조치하되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매듭지어 되도록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 양조장 대표와 처음 연락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칼럼 쓰기를 전후하여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었다. 신문에 실린 호소문만 읽고 쓴 것이었다. 뒤늦게 연락하게 된 동기는 충남인재개발원(공무원교육원)에서 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어서였다. 강의를 앞두고 수강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어 전화했다. 대표는 그 칼럼을 읽었는지 13개월이 지났는데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잘 알려지다시피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저술한 책 가운데 하나이다. 다산 선생으로는 고통과 좌절의 세월이었겠지만 후세들에게는 보배와 같은 많은 저서를 남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민심서는 고을 수령 즉 사또가 지키고 실천하여야 하는 지침서이다. 이 가운데 형전(刑典)편에 검초(劍招:조사 취조))가 여러 날 걸린 것을 한 날에 한 것처럼 기록하는데, 이는 마땅히 고쳐야 할 일이다.’라고 일렀다. , 여러 날 조사하고도 한 번에 한 것으로 기록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폐단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령이 하는 일이 수령에게는 비록 자질구레한 일일지라도 백성에게는 실로 큰일이니, 판결을 빠르고 명백하게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공무원들은 일상으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일이므로 일을 수행함에 있어 주민의 입장이 되어 신속하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있는데다, 가까운 곳이라 찾아가 만나고 싶었다. 전화했으나 계속 통화중이라 몇 번 시도 끝에 약속하고 찾아갔다. 꾸밈없는 인상의 임 대표는 의욕이 넘쳤다. 이름도 양조장이 아니라 양조원이었다. 한적한 시골 길가에 자리한 양조원은 주로 막걸리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농촌의 여느 양조장과는 달랐다. 대표는 하던 일을 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마주 앉았다.

먼저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언론에 호소한 후, 정부기관 등에서 조사하였고 엄중한 처분은 없이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 이제 평온을 되찾고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도 했다. 큰 과오가 없었는지, 관계기관에서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일에 부담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한 편 찌꺼기라도 남은 기분이었다.

이어 제품 카탈로그를 보여 주었다. 표지에는 전통과 이야기가 있는 우리 술’, ‘공주 밤으로 만든 좋은 술이라는 표제와 함께 여러 종류의 술병 사진이 배치되었다. 알밤막걸리에서부터 좁쌀동동주, 찰옥시시 막걸리에다 구기자주, 오디 와인까지 다양했다. ‘왕율 증류주도 있었다. 증류주하면 안동소주를 연상했는데 우리 고장에서도 만들고 있음에 큰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 대표는, 며칠 전 경기도에서 열린 술 박람회에 참가하는 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종업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공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술밥 짓는 솥, 밤 까는 기계, 발효실, 증류 시설, 창고 등 예상보다 넓고 설비도 많았다.

양조업계의 어려운 실상을 들었다. 더욱이 한 때 반짝하다 사라지는 향토주(鄕土酒) 이야기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자신은 반드시 넘어서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지역 업체를 육성하는 일, 이 또한 공직자와 기관, 지역에서 함께 새겨야할 일로 여겨졌다. 공직자들의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 주민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며, 옛 시절을 뒤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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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양조장 주인의 호소문을 읽고…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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