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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8.09.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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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올해 27세이신데 아직 군대를 갔다 오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줄 알았다. 보통 남자들은 대학생 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가 아프셔서 군대를 면제 받으신 줄 알았더니 전혀 아픈 곳도 없어 보이셨기 때문에 더욱 더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대학생이었던 사촌오빠가 있었다. ‘이었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오빠가 지금은 군인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갈 때 우리 이모는 굉장히 많이 슬퍼하셨다. 하긴, 나 같아도 부모님과 2년을 떨어져 지내라고 하면 눈물먼저 나올 것이기에 이모가 이해가 되긴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양성평등’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여자인 나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항상 체육시간에는 “남학생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피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피구를 하기 전에 항상 불만이 가득했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사촌오빠나 담임선생님의 입장이 되면 역시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군대를 갔고 가야 하시니 말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길을 걷다 보면 ‘양성평등’ 이라는 말이 단지 말 뿐으로 끝나는 경우를 더욱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들을 보거나 피구를 재미없어 하는 여학생들을 보면 ‘왜 꼭 남녀로 나누어서 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같이 모두가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이 체육시간인데, 누구는 하고 싶어도 남자라는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성별에 따라 나누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3월에 우리 반이 6반과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조금 이상한 축구를 했었다. 운동장에 반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고 축구공은 두 개를 놓고 하는 축구였다. 조금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남자나 여자 모두 즐겁게 공을 찼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양성평등은 금방 이루어지는데 아직까지는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교통 표지판 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시내에 나갔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신호등에는 남자 그림만 있었다.

“엄마! 왜 신호등에 남자만 있어요?”

“어! 그건 남자가 더 튼튼하고 힘도 세니깐 그러는 거야.”

 또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서 길을 가고 있는데 엄마 손을 잡고 가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엄마! 왜 표지판에 엄마 손잡고 가라는 표지판은 있는데 아빠 손잡고 가라는 표지판은 없어?”

“그건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그렇고 또,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를 더 잘 챙겨주잖아.” 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표지판과 신호등에 어느 한 쪽만 나오는 것이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엄마들도 회사 때문에 아빠 손을 잡고 다니는 일도 많은데 말이다. 아예 신호등에서 사람을 없애거나, 교통표지판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걷는 그림으로 바꾸면 될 텐데, 왜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왜 여자가 항상 위를 쳐다봐야 하는데?’ , ‘뭐야, 그럼 이 말을 만든 사람들도 엄마가 있었을 텐데...’ 그래서 양성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래야만 해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하늘의 신은 제우스로 남자고, 대지의 신은 가이아라는 이름의 여신이니까.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땅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우주에 간 것처럼 붕 떠있으면 어떻게 집을 짓고 어떻게 농사를 짓고 그러겠니? 반대로 땅만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태양은 어디에 있어야 하지? 즉, 그 말은 하늘과 땅은 둘 다 똑같게 소중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하늘이 귀하고 소중한 만큼 땅도 귀하고 소중하다. 우리에게 모두 다 필요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둘 다 우리에게 모두 다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뿐인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여자라는 이유로 반드시 피구를 해야 할 필요도 없고, 남자라는 이유로 군대를 반드시 가야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일단 나부터가 ‘양성평등’을 실천에 옮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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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김현서(학돌초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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