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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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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3.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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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립도서관에서 도서 목록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무삭제 완전판이란 안네의 일기를 발견하였다. 무삭제라는 호기심에서 5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책을 빌렸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지지난해 읽었던 괴벨스의 전기가 생각났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하나는 피해자로, 하나는 가해자로 각각 어떠한 생각과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마치 동전의 앞뒷면을 나란히 놓고 보는 것 같았다. 괴벨스와 안네는 비록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가해자 피해자 모두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한 세상인데 왜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다 가야 했는가?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삶을 담은 일기를 남겼다. 후세들은 그들이 남긴 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해서 그들이 가해자로 또는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악과 선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같은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빛과 어둠,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빛을 보면 사랑과 감사와 희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둠을 보면 세상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가해자인 괴벨스는 1923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폐렴과 골수염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으로 신체적 열등감을 가지고 자랐다.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자 자신의 신체적 결함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증오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 온갖 선전 선동으로 나치를 도와 유대인 학살의 원흉이 된다.

대중은 거짓말을 듣고 처음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승리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선동은 한 문장만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가 남긴 선전 선동의 문구들은 오늘날 보아도 섬뜩한 악마의 외침이다. 얼마든지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후세에게 교훈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로 살다 간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가족으로 태어났다.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네덜란드로 거처를 옮겼다. 1942년 독일의 점령하에 그들은 안네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의 별관으로 피신하여 19448월에 비밀 경찰에게 잡힐 때까지 2년여를 숨어지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잡힐 때까지 기록한 일기가 바로 유네스코에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

밤에 침대에 누우면서 선한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이 세상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할 때 나의 마음은 환희로 넘칩니다.” “ 나는 어떤 불행 속에서도 항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바로 그 생각만큼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여태까지 나는 가끔 우울해했지만, 결코 절망한 적은 없습니다. 은신처에서의 생활은 위험한 모험이기는 해도 동시에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가해자는 힘이 있었고 자유가 있었지만, 증오와 불안과 변명 속에 세상을 탓하며 살았다. 피해자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면서도 행복과 감사로 살았다. 누가 세상을 이겼는가? 돌아보면 한 뼘 인생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잠깐 머물다 간다. 한때의 권력이나 영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들인가? 그런데도 오늘 이 세상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성별이라는 이름으로, 종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안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에 의해 짓밟힌 연약하고 힘없는 안네가 지구촌 곳곳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소련과 우크라니아 전쟁 소식을 듣는다. 역사는 반드시 오늘의 괴벨스를 기억하고 부끄러운 그 이름을 심판하리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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