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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고객 감동’이었을까?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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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2.0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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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2월 초순이었으니 꼭 이 무렵이었다. 서산읍사무소 민원실에서 일하는 어느 날  우편물을 받았다. 백설 같은 하얀 봉투에 파란색으로 인쇄된 주소는 꽤 알려진 기업이었다. 봉투 안에는 자녀가 취직하는데 필요한 호적등본을 보내달라는 메모와 삼천 원짜리 우편환이 들어있었다. 그때 한 달 봉급은 팔천 원 쯤 이었다. ‘취업용 구비 서류로는 신원증명원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호적등본과 함께 보냈다. 보낸 금액 중에서 수수료 100원을 제하고 나머지는 우편환으로 바꿔 넣었다. 며칠 후 그 회사의 고위 임원인 민원인이 전화했다. 신원증명원이 없었다면 낭패를 볼 뻔 했는데 잘 챙겨 보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수수료 잔액을 왜 보냈느냐고도 했다. 그러더니 회사로 직장을 옮길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제의에 잠시 당황했지만 큰 회사의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뿐더러 서울로 갈만한 형편이 되지 못해 사양했다. 아마 그 분으로서는 신청하지 않은 서류까지 발급하여 보낸 ‘판단력’과 소정의 수수료만 제하고 되 보낸 ‘청렴성’을 짐작하면서 괜찮게 보았던 모양이었다.

당시 인구 3만이 넘는 서산읍의 민원실 직제는 ‘호병계’로, 호적, 병무, 민원업무를 3명이 처리했다. 호병계장은 출생, 혼인, 사망신고 등 호적관련 신고를 받아 호적부를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병사담당은 징병검사와 입영, 전역신고 등의 업무를 보는데 출장이 잦았다. 공무원 초년생인 필자는 창구에서 호적, 제적 등초본, 인감증명, 신원증명원, 납세완납증명, 미과세증명, 농지관련 증명 등 여러 종류의 민원을 처리했다. 그 무렵은 졸업, 입학, 취업 시기라 민원실은 장터처럼 북적였다. 호적 등초본은 글자나 숫자 하나라도 잘못 쓰면 안 되었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제적 등초본이었다. 제적부는 재산상속과 병역관련 일에 주로 쓰였다. 제적부에 쓰인 연호(年號)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까지 개국(開國), 소화(昭和) 등 7가지, 광복 후에는 단기를 사용하다 1962년부터 서기로 바꾸는 등 시대마다 모두 달라 일일이 대조표를 보며 환산해야 했는데 자칫 착오하면 문제의 소지가 도사리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어로 기재된 것까지 있으니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행정전산화나 컴퓨터 출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복사기도 없던 때라 일일이 손으로 써야했는데 대부분의 공부(公簿)가 한자로 되어 있어 능률도 떨어졌다. 분량이 많은 호적등본, 제적등본은 근무시간에는 처리할 수가 없어 밤에 냉기 감도는 사무실에서 손을 비비며 써서 다음날 교부했다. 시간외 수당은 물론이고 급식비조차 없을 때였다. 제일 신경을 써야 하는 민원은 인감증명서였다. 부동산매매, 금전차용, 재정보증에 쓰는 핵심문서이니 만큼, 아무리 인물과 도장을 살펴본다고 해도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제3자가 하는 대리신고, 대리발급은 더 어려웠다. 곳곳에서 담당자가 문책 당하고 변상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몇 달, 몇 년 뒤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민원서류를 대부분 손으로 작성, 발급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민원인이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당시에는 대부분 그런 형편이라 도시에서는 이른바 ‘급행료’라는 말이 돌았다. ‘과시하고 싶은’ 유력자는 담당자에게 부탁하면 발급하여 갖다 주고 ‘수고비’를 챙긴다는 소문도 있었다. 시골에서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행정이 전산화되고 대부분 컴퓨터로 출력하는 요즘은 오기(誤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민원인이 오래 기다리지도 않는다. 더욱이 전국 어디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고, 가정이나 사무실,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떼 볼 수 있으니, 예전의 민원실 풍경은 전설이 되었다.

고객 만족이란 무엇일까? 고객이 ‘원하는 것을 흡족하게 처리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동’이란 ‘원하는 것 이상까지 알아서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행정서비스,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덧붙이자면, 조직 안에서 구성원 간 신속하고 긍정적인 협조 관계가 ‘대 시민 봉사’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부에서는 삐걱거리는데 과연 시민에게는 감동 주는 행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가기천/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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