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멘토, 그리고 ‘어른’

가기천의 일각일각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1.01.12 15:2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가기천.jpg


새해를 사흘 앞둔 날 늦은 밤이었다. 진동으로 입을 막아놓은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밤중에 웬일이지?’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오래 전,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퇴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초임 시절, 들었던 말을 가슴에 품고 공직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때를 잊을 수 없다며 내일 퇴임식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때의 상사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통화를 마쳤을 때는 밤이 이슥했다.

공주시청에서 일할 때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신규 발령받은 새내기였다. 조용한 성품의 그와 때때로 이야기를 나눴다. 상사라기보다는 선배로서,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과 행동방식을 이야기 해주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넓게 보라. 높이 올라야 멀리 볼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초임 시절의 일이라 유독 기억에 남았을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그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었을 것이면서도 한 세대 전에 맺은 인연을 인생의 전환점에 떠올린다는 것이 고맙고도 한편 쑥스럽기까지 했다. 30여 년 직장인으로 지내면서 국장급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숱한 일을 겪었을까? 그동안 좋은 말을 해주고 도움을 준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현직에 있을 때,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가 어느 군의 과장으로 승진하여 나간 후 보낸 손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군수로부터 기획안을 인정받았다. 그 때 익힌 것이 큰 힘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관료출신으로 깐깐하다고 알려진 민선 군수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스스로도 대견했던 모양이었다. 평소 그에게 ‘99도로는 물을 끓이지 못한다. 100도까지 높일 수 있도록 해보자’라며 독려했었다. 뒤돌아보면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음이 다행스럽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고전이다.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공직생활을 하는 중에 직간접으로 북돋움과 가르침을 준 선배와 상사가 여럿이다. ‘멘토(mentor)’라 할 수 있다. 읍사무소에서 일할 때였다. 햇병아리 시절 맡은 업무는 재무계 ‘수입사무’였다. 세목, 수납부가 무엇이고 일계표, 불입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막막한데다 세금은 날마다 들어오는데 ‘유용(流用)’했다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전임자는 서울시로 전출했으니 물을 수도 없었다. 이때 다른 계의 계장이 준 귀 뜸과 자극으로 두 달 만에 읍면 재무계장을 대상으로 사례발표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군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슬기롭게 처리하는 과정과 그 일을 발전의 계기로 삼은 선배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도청에서는 ‘화장실에서도 일만 생각한다.’는 상사로부터 일에 푹 빠져 전심전력을 다하는 자세를 익혔다. 그 분은 일거리는 엄청나게 주면서도 사적인 일까지 발 벗고 나서 해결하여주는데 혼 힘을 다해주었다. 어느 최고관리자로부터는 체계적인 일처리 방식, 민원을 해결하는 요령, 온화함과 단호함, 소탈함과 호사로움까지 두루 보면서 두고두고 보석 같은 지침으로 삼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을 ‘꼰대’라는 말로 외면하려 한다. 나이든 사람은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는 이야기로 자기를 과시하고 가르치려 든다. 이처럼 세대 간 벌어진 틈을 메우고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멘토와 멘티(mentee)는 다르다. 멘토는 멘티에게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얻기 어려운 경험을 조언하여 과거와 다른 현재를 만들어 주고, 나아가 현재와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하여 주는 사람이다.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깨닫게 하는 역할이 크다. 넌지시 방안을 제시하고 푸념이나 하소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지혜를 들려주고 고충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역에도 그런 의미의 멘토, 즉 ‘어른’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도 있다./ 가기천(전 서산시 부시장)

태그

전체댓글 0

  • 6096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멘토, 그리고 ‘어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