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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04.2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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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제아무리 맵시를 자랑해도 개심사 종루 한쪽에 서 있는 늠름한 늙은 매화의 기품을 벚꽃은 감히 넘보지 못한다. 가을날의 단풍, 눈 내린 겨울날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한 줄기가 내려온 상왕산 중턱 가파른 비탈을 깎아 터를 잡았기 때문에 수덕사나 가야산(남연군 묘) 같은 호방함은 없다. 그러나 저 멀리 내다보는 시야는 서해바다로 뻗어가는 시원스러움이 있고 양쪽 산자락이 꼭 껴안아주는 포근함이 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중에서


◆ 코끼리왕의 품에서 마음을 열다

서산 IC에서 32번 국도를 타고 운산으로 가다 한우 개량사업소 쪽으로 빠지면 넓은 삼화목장을 볼 수 있다. 그 삼화목장을 끼고 돌다보면 개심사 입구 표지판이 나오고 시멘트 길로 3㎞가다보면 개심사 입구가 나온다.

개심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일주문이다. 통상 일주문은 일직선상 기둥위에 지붕을 얹는 형태로 보통 산과 사찰의 이름이 적혀있다. 마찬가지로 개심사 일주문에도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라고 산과 사찰의 이름이 적혀있다. 여기 적혀있는 말은 코끼리 왕과 같은 산세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명필 해강 김규진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위로 오르면 경사가 심하지 않은 산책로가 나온다. 울창한 나무와 길옆에 흐르는 개울을 지나다보면 맑은 공기에 의해 절의 이름처럼 점차 마음이 열리게 된다. 산책로 끝에 나오는 계단에는 ‘세심동 개심사(洗心洞 開心寺)’라고 적혀있는 바위가 보인다. 마음을 씻는 곳이란 뜻이다. 그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인절미를 가위로 잘라 고물을 묻혀 파는 노인의 뒤로 어느덧 개심사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전통과 조화의 아름다움

개심사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네모반듯한 연못이 보인다. ‘코끼리가 마실 물’이란 풍수지리학적 의미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라’는 불가의 의미를 두고 있는 그 연못은 주변에 심어진 아름다운 나무와 연못 한가운데 외나무다리 하나가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꼭 사진을 찍게 되는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개심사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떨어진 벚꽃송이가 연못위에 앉아 마치 눈이 내린 듯 아름다워진다.

연못을 뒤로하고 작은 나무에 숨겨져 있는 듯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범종이 보이고 해탈문 안쪽으로 대웅전과 심검당이 있다. 대웅전은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지어 현재 그 당시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갖고 있고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을 쓰고 있어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을 쓰고 있는 타 건축물에 비해 그 양식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심검당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358호로서 제작년도는 대웅전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화강석재를 견치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주두위에 공포를 짜올린 주심포계 양식이다. 크기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대웅전은 마치 자를 대고 자른듯 곧은 모양을 띄고 있지만 심검당은 나무 원형 그대로 기둥을 세워놓고 그대로 굳혀놓았다. 올곧음과 부드러움, 엄숙함과 자유분방함, 어울리지 않게도 맞닿아있는 두 건물을 보면 그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 인상깊이 남는다.


◆ 꽃과 나무 그리고 부처님의 공간

개심사는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하는데 의자왕 14년(654) 지었다는 것이 현재 일반적이다. 1941년 대웅전을 해체하고 수리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천년간 지속되어온 터에서 500여년을 이어져온 개심사지만 2000년대 들어오기 전까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오랜 세월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나서 유 청장이 그 아름다움을 극찬한 개심사도 덩달아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오래된 나무와 꽃의 아름다움은 인터넷을 타고 이젠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로 거듭났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불교 성지라는 이유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과 나무의 환상적인 배치도 그 몫을 단단히 한다. 보통 하루에 4~5백명, 주말에 7~8백명이 다녀가지만 벚꽃이 필 때면 하루 천명이 오갈만큼 이곳의 벚꽃은 매우 유명하다. 손때 안 묻은 커다란 나무에서 벚꽃이 흩날릴 때의 감동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이곳을 꽃놀이의 공간만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곳은 6~7명의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이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공간임으로 경건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꽃과 나무와 부처님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어느 하나만 느끼기엔 개심사의 풍광이 너무 아깝다.


◆ 예의를 갖춘 관람문화의 필요

이처럼 아름다운 개심사이지만 한편으론 아름답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계곡 여기저기 숨겨있는 쓰레기, 경고문이 붙어있지만 자연스럽게 범종을 치는 사람들.

사람 손에 묻지 않고 천년을 이어져온 개심사는 최근 관광객들의 무질서에 신음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시에서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도와주고 있지만 개보수만이 근본해결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인식의 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벚꽃이 한참 필 무렵의 개심사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경내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락을 먹거나 스님들 숙소를 함부로 열어보는 등 상식선 이하의 행동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개심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편안한 휴식을 오랜 시간 전해주었다. 이제는 우리가 개심사를 배려할 차례이다. 방문하는 한명 한명 개심사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개심사는 다시 천년동안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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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문화재탐방] ③ 개심사||꽃과 나무와 부처님이 함께 어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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