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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과 자랑
- 옛날에는 자기 자랑을 매우 부끄러워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자랑하는 것조차 덕스럽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누라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여 자기 PR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도를 넘어 자기 자랑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팔불출이라 여기는 아내 자랑, 자식 자랑은 대를 이어 손자까지 자랑합니다. 엊그제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가 이웃 테이블에서 오십 대 주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억지로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며 자기 자식들을 자랑했습니다. 어느 분은 스마트 폰을 꺼내어 손녀가 재롱 떠는 동영상을 일행들에게 보여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단체 카톡방에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랑하는 글을 자주 봅니다. 자기 글이 어디에 실렸다느니, 자기 시화가 어디에 걸렸다느니 하는 등 모임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까지 올려놓아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회 있을 적마다 자기 업적을 자랑합니다. 모든 걸 자기가 다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랑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랑이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으로 동기 부여의 계기가 된다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달라서 부담감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그걸 자제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요, 자존감이라 생각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자기 자랑의 심리 상태는 열등감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나를 인정해달라는 욕구, 우월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꽉 차 있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깡통이 아예 비었든지, 아니면 꽉 채워졌다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무언가 조금 들었을 때 제일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제일 부잣집은 양조장집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잣집인데도 양조장 댁은 늘 수수한 옷차림이었습니다. 남들 다하고 다니는 액세서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그녀를 무시하거나 낮춰보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농협의 모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예금유치가 지점장 근무 평가의 절대적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고액 예금주는 책임자의 중점 관리 대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몇 천만 원을 예금한 분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부터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가끔 지점장에게 노골적으로 술 접대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몇 억 원을 예금하신 분은 그림자처럼 슬그머니 왔다 가셨습니다. 물론, 사무실이 좁은 관계로 창구를 피해 지점장실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거래가 끝나면 아무 티도 내지 않고 슬그머니 나갔습니다. 잠언에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영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의 신앙 칼럼에서 영국인과 한국인과의 모습을 비교한 글을 보았습니다. 한국인은 겉으로 울고 영국인은 속으로 운다고 했습니다. 기뻐할 일이 있으면 영국인은 겉으로 축하해주고 한국인은 속으로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영국 여성들은 화장을 잘 하지 않아서 얼굴에 주근깨가 그대로 보이는데 한국인은 화장하지 않은 본 얼굴을 대하게 되면 새로운 신자가 온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영국은 오랜 기독교 문화 속에 살아왔기에 외면보다는 내면을 더 중시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정보화 시대요, PR 시대를 살면서 남에게 알리는 건 참으로 중요합니다. 서울 어느 거리에서 ‘이 편한 치과’ ‘속 편한 내과’란 간판이 있다고 합니다. 재치 있는 이름이므로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근사한 간판을 걸었다고 해도 의사의 실력이 못 미친다면 고객은 발길을 돌리고 맙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지나친 자기 자랑으로 타인의 마음에 불편함을 주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gigic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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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인 빈곤, 국가적 해결이 시급하다
- 한국 사회에서 노인 빈곤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기준으로 35.7%에 달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독일과 영국이 각각 11.8%로 비교적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한국의 노후 복지 체계가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심각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노인 빈곤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 건강 악화, 세대 간 갈등과 같은 문제를 유발하며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 한국의 공적 사회지출에서 노령 및 유족 관련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3.5%로, OECD 평균인 8.2%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이탈리아는 GDP의 16.0%를, 프랑스는 13.9%를, 독일은 10.4%를 노령 관련 지출에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지출은 노인층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기에 현저히 부족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많은 노인들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만으로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6.4%로 OECD 평균에 비해 낮다. 독일의 52.9%나 네덜란드의 89.2%와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란 개인의 은퇴 전 평균 소득에 비해 연금이 얼마나 대체해 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에서는 은퇴 후 연금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특히 단독 노인가구의 경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3.8%, 부부 노인가구는 27.7%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 국가에서 공적연금이 노인 소득의 70~80%를 차지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문제의 또 다른 원인은 기초연금의 한계다. 한국의 기초연금은 높은 수급률에도 불구하고 금액이 낮아 실질적인 빈곤 감소 효과가 미미하다. 유럽 국가들은 기초연금을 최저소득 보장 제도로 활용해 노인 빈곤율을 한 자릿수로 낮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의 낮은 보험료와 짧은 납입 기간은 연금 수령액을 더욱 줄어들게 한다.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 등 상대적으로 경제적 취약 계층이 노인 빈곤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노인 빈곤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해외 선진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네덜란드는 모든 국민이 기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89.2%에 달한다. 이를 통해 노인 빈곤율을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다. 독일은 연금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크레디트 제도를 통해 낮은 소득자의 연금 수령액을 보장한다. 또한 퇴직 이후 일정 기간 납입을 인정해 경제적 불안을 완화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노인 복지에서 의료비 지원, 주거비 보조와 같은 정책을 통해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연금 개혁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료를 현실화하고 납입 기간을 연장하며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기초연금 지급액을 최저생계비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 실질적인 최저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노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재취업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노인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맞춤형 재취업 프로그램과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소득을 보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의료비와 주거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사회적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대 간 공정한 재분배 정책도 중요하다. 노인 복지의 부담이 지나치게 젊은 세대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하며, 이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인 빈곤 문제는 단순히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직결된 문제다. 노인의 경제적 안정은 세대 간 신뢰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정부와 사회는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한국의 노인들이 빈곤 속에서 존엄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변화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구조로의 전환은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방안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는 진정으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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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인 빈곤, 국가적 해결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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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AI디지털교과서를 불청객으로 만들었나
-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 2년간 학교 현장에서는 혁신을 강조하는 다양한 교육정책들이 잇달아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교육공동체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소통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미 4년간 4조 7천억원이란 어마어마한 재정이 투입된 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의 앞날은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당초 정식 교과서로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충청남도교육청의 경우 도내 728개 학교 중 약 12%인 85개교만이 AIDT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시작부터 그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는 불청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AIDT사업은 그 시작부터 교육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번 AIDT는 이미 십수 년 전 ‘디지털교과서’란 이름으로 학교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기존의 종이 교과서에 비해 명확한 이점을 보여주지 못한 채 그 단점과 인프라적 한계가 명확하여 결국 현장에 널리 정착하지 못하고 잊혔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이번 AIDT 사업은 기존 민간업체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낮은 수준에서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에서 제기되는 ‘AIDT 사업이 민간 개발사들의 이익 보전을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냐’라는 볼멘소리 역시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또한 예전 ‘디지털 교과서’도입 시기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족한 디지털 인프라 부족, 디지털 기기 유지·보수·관리의 어려움, 콘텐츠의 빈약함 등의 문제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존 기기들에 대한 유지·보수·관리 비용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예산과 대책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AIDT의 효용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해 봐야 할 것입니다. AIDT는 교육활동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미래 교육에 필요한 것은 AI기술 자체를 도입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임이 밝혀지고 있고 인터넷중독과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학생들에게 AIDT를 종이 교과서로 대체하려고 하니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참 흔하디 흔한 말이 되었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합니다. 이번 AIDT사업의 혼란은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전문가는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입니다. 교육부와 교육청 등 교육행정기관이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데 있어 현장교사들의 목소리와 전문성을 외면하는 풍토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AIDT사업도 입안과정에서부터 교사들과 같은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면 지금의 혼란과 불필요한 예산낭비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AIDT는 물론 유보통합, 늘봄학교, 교육발전특구, 고교학점제 등 앞으로도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교육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교육행정과 현장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여 최선의 길을 찾아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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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AI디지털교과서를 불청객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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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전립선치료는 무엇일까?
- 전립선은 정액의 30% 가량을 생성하는 생식기관으로, 방광 출구의 요도를 감싸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전립선의 크기가 커지는데, 그로 인해 남성은 점차 소변으로 인한 여러가지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소변이 잘 안나오거나 자주 마렵고, 자다가도 소변 때문에 깨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점차 증상이 심해지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립선에 관련된 각종 영양제, 치료제, 수술이나 시술에 대한 광고입니다. 최근에는 비뇨의학과 의사들이 직접 제작한 기사나 영상물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일반인 입장에선 홍보 목적인지, 정보 전달 목적인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전립선에 대한 약물치료, 수술(홀렙수술), 시술(리줌)에 대한 개념과 장단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① 약물치료 진료실에서 만나는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소변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오는 사람들이고, 그 중 70 ~ 80%정도는 투약만으로 증상이 상당히 호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약물은 약효가 있는 기간 동안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투약을 중단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② 수술(홀렙수술) 현존하는 수술적 치료 중 홀렙수술은 거의 모든 전립선 크기에서 시행할 수 있고, 적절한 시기에 수술한다면 전립선 관련 투약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효과가 우수합니다. 다만, 홀렙수술은 역행성 사정(방광 내로 사정이 되어, 요도로 정액이 나오지 않음), 발기부전의 가능성이 있어, 모든 연령에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취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마취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시행하기 어렵습니다. 전립선을 절제하는 방식의 수술(홀렙, TURP, 워터젯)은 모두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립선수술의 후유증이나 마취 부담 때문에 비침습적인 치료 방법(유로리프트, KTP, HPS등)이 그동안 여러가지가 개발되었는데, 대부분 5년 이상 추적 연구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증상이 재발하여 추가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것이 단점입니다. ③ 시술(리줌, Rezum) 하지만 최근 리줌(Rezum)에 대한 5년 추적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장기적으로도 낮은 재발률(5%), 낮은 성기능 관련 합병증(2%)를 발표하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요도로 기구를 삽입하여 전립선에 증기를 쏘는 방식이며, 전립선조직이 3개월에 걸쳐 퇴화되면서 요도의 압박이 풀리는 원리입니다. 시술 시간은 10~20분 내외 소요되며, 기존 전립선수술에 비해 마취 선택의 폭이 넓어 상대적으로 고령에게도 시행이 가능하며, 성기능 관련 합병증도 거의 나타나지 않아, 젊은 환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전립선의 형태나 크기에 따라 리줌을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합니다. 또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홀렙수술에 비해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개개인의 전립선의 형태와 크기는 모두 조금씩 다르며, 비슷한 전립선을 가졌다고 해도 환자의 여건에 따라 다른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전립선비대증 치료 방법에 따라 노년기의 삶의 질에 많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가능하다면 약물, 시술, 수술을 모두 시행할 수 있는 병원, 전문의에게 적절한 상담을 받는 것이 최적의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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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그 후
- 지난주 산악회 회원들이 강릉으로 등산 겸 봄나들이를 떠났다. 주문진 수산시장에 들르는 일정도 있었다. 필자도 같이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저녁 무렵 일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문진 「서산건어물상회」에 들렸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주차한 곳에서 좀 떨어졌는데도 일행 열다섯 명은 일부러 찾아가서 이것저것 샀다는 것이었다. 사장에게 ‘필자 이야기를 하며 찾아왔다’고 하니 얼른 알아보며 가격을 깎아주고 덤도 주더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가을, 주문진에 갔을 때 기사는 버스를 수산시장 주차장에 세우고 물건을 사는 시간을 주었다. 필자는 동행한 10여 명을 서산건어물상회로 가자며 앞장서 이끌었다. 고향의 아는 사람이라며 이왕이면 거기로 가자고 권했었다. 6년 만에 찾았지만, 필자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일행에게 전통차를 내주고 특별히 대해주었다. 박 사장은 종종 서산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면서 팔봉 승마장 회원들도 다녀갔다고 했다. 쉽게 오가며 만날 수 있는 시대라 하더라도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서 느끼는 감정은 남다른 것이다. 당시 일행들은 흡족함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필자는 올해 나들이에는 동행하지 못했지만, 일행들은 지난해 박 사장으로부터 받은 좋은 인상을 가졌기에 또 갔던 것이었다. 물건을 골라주고 덤에 후하더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군것질하라고 쥐 포 두 박스를 들려주는 인심도 보여주었다니 박 사장이 고마웠다. 굳이 찾아간 회원들도 고마웠다. 박 사장에게 전화하여 정담을 나누었다. 서산건어물상회와 인연은 7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간다. 설악산 등산을 마치고 일행을 태운 버스가 주문진 수산시장 거리를 지날 때 창밖으로 ‘서산건어물’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버스는 얼마를 더 가서 어느 건어물 가게 앞에 세웠다. 기사는 ‘잘 아는 가게’라며 이왕이면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주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필자는 반가운 이름 ‘서산’을 외면할 수 없었다. 빠듯한 시간을 셈하며 잰걸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무더위에다 서두름까지 더한 걸음은 온몸에서 땀을 솟아나게 했다. “상호가 서산이라서 찾아왔다”라며 눈에 띄는 대로 몇 가지를 들고 가격을 묻자, 가격표에서 얼마를 뚝 접어주고 명란젓 한 병을 안겨주었다. 한 고향이라는 공통분모의 정이 느껴졌다. 늦을세라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되었다. 당시 <서산타임즈>에 ‘서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라는 제목으로 그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지난해 다시 찾았다.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 태어난 고향에서 자라고 일하며 일생을 마쳤다. 평생 100리 밖을 나가본 사람은 20%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객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도시로 나간 사람이 자리를 잡고 친척이나 후배를 부르기도 했다. 향학열이 높아지고 직장을 찾아 도시로 나가고 객지로 떠났다. 그곳에서는 고향 사람끼리 모여 향우회를 만들고 수시로 만나면서 끈끈한 정을 쌓았다. 고향 소식을 나누고 향수를 달랬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문화’가 엷어졌다. 향우회, 동문회, 종친회가 예전에 비하여 점점 시들해졌다. 서로 의지하려 하지 않고 고향이나 고향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적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주의가 늘어나는 원인도 있다. 홀로 지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애향심의 유전자는 남아있다. 일제 치하에서 가수 백년설은 눈(雪)을 바라보며 ‘고향 설’ 노랫말을 썼다. 나라를 잃은 민족에다 고향을 떠난 실향민에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짠하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오/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일세// 소매에 떨어지는 눈도 고향 눈// 눈 위에 부서지는 꿈도 고향 꿈/ 길 위에 흩어지는 꿈도 고향 꿈/ 인정은 서툴러도 눈은 정다워/ 고향을 그려보니 고향을 만져보니/ 가슴 쓰리다.” 필자가 서산에서 근무하던 1970년대 서산읍 인구는 2만 8천명쯤이었다. 설령 인사는 하지 않고 지내는 사이라 하더라도 안면이 있었다. 대부분 서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학교에 다녔던 연유였다. 서로 친분을 맺고 교유하며 지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세거민보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굳이 고향 사람, 타향 사람을 가리고 맺으며 살아가는 세상도 아니다. ‘서산건어물상회’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는 외지에 나갔을 때 고향 사람을 만나면 더 반가워하고 힘껏 도우며 지냈으면 하는 것이다. 객지에서 나름 터전을 잡을 때까지의 노고를 인정하고 애향심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출향인들도 서산건어물 박 사장처럼 고향 사람을 만나면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외지에서 서산으로 와서 기반을 닦은 분들은 고향 사람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줌으로써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면 좋을 것이다. 인연을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진항의 서산건어물상회에서 떠올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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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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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힘
- 꿈꾸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실이었던 어머니는 동생을 낳다 돌아가셨습니다. 배다른 형들은 그를 몹시 미워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편애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년은 곧잘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은 ‘꿈쟁이’라고 하며 더욱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가 17세 되는 해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들에 나가 가축을 돌보는 아들들과 가축의 안부가 궁금해서 소년에게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를 발견한 형들은 동생을 죽이려고 궁리했습니다. 차마 죽이지 못하고 마른 웅덩이에 넣었지만, 이도 못 할 짓 같아 노예상에 은 20개를 받고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돌아가 소년이 입던 옷을 보여주었습니다. 짐승의 피를 묻힌 옷을 본 아버지는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슬퍼했습니다. 노예상은 그 소년을 왕의 경호실장 집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형통했습니다. 마음에 든 주인은 그를 집안일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관리하는 가장 가까운 종으로 삼았습니다. 마님은 청년에게 자꾸 눈길을 주더니 하루는 그를 자기 침실로 가자고 유혹했습니다. 마님은 청년의 옷을 붙잡고 잠자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옷도 버린 채 그녀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이를 분히 여긴 그녀는 남편에게 청년이 자기를 덮치려 했다고 모함했습니다. 경호실장은 청년을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어느 날 왕의 신하 둘이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술 맡은 관리였고 하나는 음식을 맡는 사람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리가 꿈을 꾸었습니다. 포도나무가 세 가지가 있는데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는 꿈이었습니다. 청년은 그가 사흘 후에 복직할 거라고 해몽했습니다. 실제로 관리는 사흘 후 복직하여 그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청년을 잊어버렸습니다. 2년 후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매우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강가에서 올라와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피골이 상접한 암소 일곱 마리가 토실토실 살진 일곱 마리 암소를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통통하게 잘 익은 이삭 일곱 개를 쭉정이 이삭 일곱 개가 먹어 치우는 꿈도 꾸었습니다. 답답한 왕은 꿈을 해몽하는 신하를 찾았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마침 술 맡은 관리가 해몽을 잘하던 청년이 생각나서 왕께 아뢰었습니다. 왕은 그를 불러 꿈을 해몽하게 했습니다. 꿈 이야기를 들은 그는 왕에게 두 가지 꿈은 같은 뜻이라며 일곱 해 동안 풍년이 들 것이고 이어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이니 슬기로운 사람을 뽑아 잘 대처하라 조언했습니다. 이에 왕은 그를 총리로 삼아 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앉혀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나라에서 두 번째 높은 총리대신이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은 기독교인이라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란 걸 아실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7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풍년이 들자 나라 성읍 곳곳에 차곡차곡 곡식을 보관했습니다. 곧이어 말할 수 없는 흉년이 7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애굽뿐만 아니라 중동 곳곳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의 형제들은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가고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된 이복동생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가 두려워 목숨을 구걸하자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요셉의 용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서가 이런 위대한 역사를 만든 것입니다.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다’라는 영국 속담처럼 용서는 어쩌면 가장 큰 복수일지도 모릅니다. 고난주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은 아담이 지은 원죄로부터 인류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희생이셨습니다. 용서합시다.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고 평생 잊지 못할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는 건 마음에 칼을 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칼은 날을 세워 마음을 후벼놓습니다. 그때마다 아파하며 괴로움에 시달립니다. 용서는 마음에 들어 있는 칼날을 빼버리는 일입니다. 용서는 바로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미움과 상처를 지워버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수가 아닐까요? 고난주간, 용서의 참 의미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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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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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불행에 환호하는 공멸의 함성
- 오늘날 대한민국은 역설적인 광경 속에 놓여 있다. 누군가의 불행, 나아가 국가 전체의 위기조차 타인의 행복으로 소비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전직 권력자가 구속되며, 국가의 중심축이 흔들리는 마당에도 거리에선 환호성이 울린다. 우리는 언제부터 공통된 불행 속에서 서로 등을 돌리는 국민이 되었는가? 대한민국이 오늘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 희생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전쟁의 참화, 산업화의 고통, 민주화를 위한 눈물. 그 모든 세월을 견디며, 우리는 "하나 된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 단결했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지녔다. IMF 외환위기 당시, 결혼반지를 비롯한 금붙이를 서슴없이 내놓으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의 손길은 이 나라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뜨거운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공동체라 부르기 부끄러운 처지다. 정치권은 사사건건 대립하며 타협은 실종되었고, 대통령 탄핵은 이제 하나의 정치 이벤트가 된 듯하다. 국가 원수가 헌법기관으로서 기능하기도 전에 광장에서 심판당하고, 그 장면에 사람들은 전율하며 환호한다. 이것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사실상 정치적 내란에 가까운 행태다. 세계의 사례를 보라.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욕심과 무책임한 선동의 결과로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국민이 굶주리는 나라로 전락했다. 리비아는 카다피 축출 이후 수십 개의 무장 세력들이 권력 투쟁을 벌이며 국민들은 안전을 잃고 고향을 떠났다. 스리랑카는 포퓰리즘과 부패가 결합된 정치 운영의 결과로 국가 부도가 현실이 되었고, 대통령은 야밤에 도주했다.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 이후 아직까지 피 흘리는 내전과 민주주의의 붕괴 속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 모두 정치권이 국민 대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결과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한편, 오늘 우리는 참담한 불균형 속에서 살아간다. 수개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은 방탄조끼를 입고 경호를 받으며 법정을 오간다. 반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1,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훔친 노숙인은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말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또 있었던가? 우리는 이제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잃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 명을 넘었고, 초등학생의 5%는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인구 구조는 변했지만, 이에 대한 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새로운 국민과 함께 살아가야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외국인 혐오와 이주민 차별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을 조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며 ‘표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은 이제 일상화되었고,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뉜 국민들은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승리로 인식한다. 나라가 잘 되는 것보다, 상대 진영이 무너지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여긴다. 국회의사당 안은 극한 대립으로 마비됐고, 광화문 앞 광장과 유튜브 속은 선동과 증오로 넘친다. 원로들과 석학들은 지금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고령화, 저출산, 청년 실업, 지방 소멸, 외교 고립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정치권은 과거 청산과 내부 투쟁에만 혈안이다. OECD 국가 중 출산율 꼴찌, 노인 빈곤율 1위, 자살률 1위라는 오명 속에서도 ‘국민 삶’은 관심 밖이다. 그나마 남은 건 우리 아이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공교육의 붕괴, 부모의 무관심, 사회의 불안정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 모든 혼돈과 퇴행의 근본에는 형편없는 정치가 있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 사과하지 않는 권력,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이 나라를 쥐어흔들고 있다. 정책은 인기 영합적이고,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만 골몰한다. 그 와중에 헌법 정신과 국가 비전은 사라졌고, 국민의 목소리는 정치적 ‘콘텐츠’로 전락했다. 우리는 다시 묻고 싶다. 이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이대로 가면 우리의 후손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는 금반지를 내놓았고, 배를 굶주려도 이웃과 나누었다. 그런 국민이 왜 지금은 서로를 미워하며, 상대의 몰락을 환호하고 있는가? 대체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제는 SNS라는 공간 속에서 증오가 빠르게 확산된다. 가짜뉴스는 진실보다 빠르게 퍼지고, 진실은 공격당한다.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편 가르기와 조리돌림만 남았다. 그 안에서 젊은 세대는 정치 혐오와 사회 냉소에 빠지고 있으며, 어른 세대는 과거의 기억만을 되새긴다. 세대 간, 지역 간, 이념 간 갈등이 교차하며,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국민 하나하나가 깨어나야 한다. 정치권을 감시하고,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며, 이 나라의 뿌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불행에 환호하는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의 후손에게 '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재탄생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오! 대한민국이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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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 봄이 왔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봄의 한가운데를 장식하는 건 벚꽃이라 하겠습니다. 아주 짧은 동안 와르르 하얀 웃음으로 세상을 물들였다가 미련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벚꽃. 그래서 사람들은 그 순간을 놓칠세라 벚꽃을 찾아 나섭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벚꽃 군락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곳은 단연 삼화목장(지금의 서산 한우목장)이었습니다.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몰려가 아름다운 벚꽃 향기에 취해 봄을 즐겼습니다. <서산소식> 3월호 운산 한우목장 웰빙산책로 표지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서산 한우목장 웰빙산책로는 이미 지난해 12월 19일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길가의 벚꽃 몽우리가 금방 터질 듯합니다. 한우목장 웰빙산책로가 떠올랐습니다. 막상 벚꽃이 만개 될 때쯤이라면 인파에 몰려 제대로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운산 시내에서 해미면 방향으로 초록마을을 지나 문수사를 거쳐 4km 정도 가니 한우개량사업소가 나오고 거성1리에 가축병원/유전체은행 건물 옆에 바로 웰빙산책로 덱(deck)이 나타났습니다. 월요일 오후 3시인데도 대형 버스 2대와 50여 대의 승용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덱 길에 들어섰습니다. 초입에 양산이 준비되어 필요한 사람은 사용하게 하는 배려도 있었습니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어디서 오셨는지 물으니 서울, 인천, 수원 등 외지 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셨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를 보고 해미읍성을 찾아가다 산책로를 보고 들어왔다고도 했습니다. 지역에 사시는 분을 만나 들어보니 엊그제 날씨가 좋지 못했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이제 정말로 서산 한우목장 웰빙산책로가 완전한 서산의 자랑거리가 되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벤치가 있어 쉬어가게도 했고 덱 반쪽은 계단식으로 나머지는 평지처럼 만들어 노약자나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상에는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바라보니 눈만 좋으면 세상 끝까지 볼 수 있을 듯 사방이 탁 트였습니다. 어느 산 정상에 올라도 이보다 더 멀리 그리고 많이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덱 길을 걷다 보니 마치 평지를 걷는 듯했습니다. 바로 눈 아래에 아기자기한 풀꽃들이 방싯거리고 가녀린 풀잎이 나풀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걸으면서 이렇게 좋은 웰빙산책로를 만들어 준 관계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최초에 이 광활한 푸른 초원에 산책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는 동조자를 모았고 뜻을 함께한 사람들은 면사무소나 시청으로 달려가 산책로를 만들어 달라고 청원했을 겁니다. 관청에 계신 누군가는 이를 좋게 받아들여 중앙에 건의하고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오늘의 훌륭한 이 웰빙산책로가 만들어졌습니다. 필자 같은 사람은 그 누군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관심이 오늘의 이 훌륭한 산책로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산책로가 완공되기까지 물경 십여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추진상황을 읽어 보니 20여 가지 굵직한 추진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애로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필자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운산한우목장(농협중앙회한우개량사업소)은 우수한 씨수소를 선발하여 우량 정액을 생산 및 공급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이 막중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목장에 방역 문제는 가장 큰 난제였을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난관을 이겨내고 이런 훌륭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를 추진한 이완섭 시장님의 뒷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애초에 설계의 덱 높이 1.5m를 50cm로 낮추고 철제 난간을 로프로 교체하였으며 지그재그로 된 덱 길을 유선형으로 바꾸어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10억 원의 예산 절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런 보람으로 이렇게 좋은 자연 친화적 산책로가 탄생하였습니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관심이 세상을 바꾼 사례’가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서산 한우목장에는 흰 눈 같은 벚꽃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누런 풀밭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신하면 얼마나 환상적일까요? 푸른 바다 한가운데 서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2.1km의 초록 파도가 출렁거리는 목장길. 마치 꿈속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이제 이곳은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개심사로, 해미성지로, 서산동부시장으로, 간월도로 이어지는 관광 띠의 한 축이 될 것입니다. 관심이 세상을 바꿉니다. 관심을 기울일 때 세상은 좋아집니다. 필경 서산 한우목장길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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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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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비상하는 한서대학교의 미래 비전
- 1992년, 교육자 함기선 박사는 ‘창의, 신념, 공헌’이라는 건학이념 아래 서산시에 한서대학교를 설립했다.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항공, 디자인, 보건 분야에 특화된 교육체계를 구축해왔으며, 항공특성화 교육기관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며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연구와 노력을 거듭한 끝에 한서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소속의 국제항공우주교육기구인 알리칸토(ALICANTO) 정회원이 되었으며, 미국 항공교육인증위원회(AABI)의 공인을 받아 항공운항, 항공정비, 항공교통관제 등 다양한 과정에 국제적 신뢰를 더했다. 현재는 드론, 무인항공 시스템 등 미래형 항공 분야를 아우르는 교육과정으로 산업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한서대학교는 현재까지 총 4만 1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국내를 넘어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 왔다. 이들은 항공사 조종사, 정비사, 관제사, 물류 전문가,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산업 현장에서 한서대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제주항공 등 국내 주요 항공사는 물론, 해외 민간항공사서에도 활략하며 한국 항공교육의 우수성을 세계에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더 나아가, 한서대 출신 인재들은 자율비행 드론, 도심항공교통(UAM) 분야의 창업과 연구개발을 선도하며 항공산업의 미래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한서대학교가 단순한 학문 교육 기관을 넘어, 글로벌 산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혁신을 이끌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서대학교는 서산시와의 전략적 협력을 기반으로 교육과 연구의 외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지역 항공 산업 생태계의 주도적 조성과 활성화를 위해 민·관·학 협업 모델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전문성과 지역의 산업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대표적 상생 사례로, 향후 서산을 중심으로 한 미래 항공산업 클러스터 형성의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도심항공교통(UAM) 분야에서 서산시는 한서대학교와 협력하여 ‘그린 UAM-AAV 핵심부품 시험평가 기반구축’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수소전기 기반의 미래항공기체(AAV) 및 UAM 핵심부품에 대한 성능과 신뢰성 평가를 위한 시험 장비 구축, 시제품 제작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을 포함하며, 2026년까지 서산바이오웰빙연구특구 내에 조성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항공특성화 대학으로서 보유한 비행장, 시뮬레이션 센터, 드론 실습장 등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시험비행 환경 조성 및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 운영 등 실증 기반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민·관·학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대표적인 혁신 모델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은 협력을 토대로 한서대학교는 향후 100년을 내다보며 글로벌 항공교육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권의 항공대학과 복수학위 및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영어 기반의 항공전문 수업 및 외국인 교수 초빙을 통해 교육의 국제화를 더욱 가속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서대학교는 항공 산업분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세계적 권위를 지닌 CES,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Award: Product Design 2024), 스파크 디자인 어워드(Spark Design Award)에서 인정받은 기술의 사업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더불어 서산시와 연계하여 항공 기업을 유치하고 기술 허브를 조성하는 등 지역의 청년 인재 양성과 정주 여건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서대학교는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항공교육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최근 서산시가 유치한 총 사업비 3,110억 원 규모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종합실증센터와 이미 추진 중인 도심항공교통(UAM) 산업 기반 조성에 따라 항공 특성화 대학으로서 이와의 연계를 모색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SAF 및 UAM 분야에서 연구·기술개발, 시험·인증 시스템 구축, 전문연구소 설립, 기술개발과 시험인증 시스템 구축, 조종사 및 정비 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 실증 비행 테스트베드 조성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학은 전략적 연구소 운영, 국제 항공 컨퍼런스 공동 개최, 산학 연계 실습 확대 등 항공산업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실질적인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대학의 성장과 지역의 발전이 선순환 하는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서대의 글로벌 도약은 단순한 해외 진출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에 깊이 뿌리내리며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진정한 글로벌 리더, 그것이 한서대학교가 꿈꾸는 미래이자 반드시 실현할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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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비상하는 한서대학교의 미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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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영덕 고속도로의 종점, ‘영덕’을 위로하자
- 솟구치는 불기둥, 널름거리는 불길이 긴 띠를 이루며 산등성이를 휘감아 달리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마치 미국, 캐나다, 호주 대륙에서 며칠씩 타오르던 산불을 우리나라에서 보는가 싶었다. 기나긴 대피 행렬, 화염과 연기를 뚫고 달리는 자동차는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분명 우리나라 영남지방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이었다. 지난 3월 21일부터 시작되어 열흘 동안 꺼질 줄 모르던 산불은 축구장 6만 7천여 개의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영향 구역은 4만 8천여㏊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의 80%에 이르는 넓이이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을 입는 등 7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기동이 어려운 노인들의 피해가 컸다. 환갑이 넘은 민간 진화대원들이 장비도 못 갖춘 채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숨진 비극도 있었다. 헬기 조종사가 헬기를 몰고 출동하다 추락해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아직 정확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시설 피해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본 잠정 집계로 건물 총 6,192개소가 피해를 보았다. 경북 지역에서만 주택 3,265채가 전소됐다. 문화재 피해도 컸다. 천년고찰인 의성 고운사의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가 불탔다. 국가유산청에서는 30건의 문화재가 피해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잃었고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밭과 비닐하우스가 탔고 농기계도 화마를 견디지 못했다. 소, 돼지, 닭 등 가축도 잃었다. 공장이나 운동시설도 잿더미로 변했다. 산불 형태와 규모는 점점 변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나고 더 크게 번질 것이다. 한반도의 봄이 고온·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산불도 산이 높은데다 강한 바람, 건조한 공기, 높은 기온 등 악조건 탓에 더 크게 번졌다.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을 거쳐 영덕으로 확산하는 데 고작 한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르게 번지는 불은 인력과 장비만으로는 끄기 어렵다. 앞으로 산불은 이전과 달리 많은 피해를 낼 수 있다. 국토의 6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이상기후까지 겹치며 거의 해마다 큰 산불이 난다. 2017년 강릉‧삼척 산불은 4일간 1천여ha를,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은 213시간 동안 1만 6천여 ha를 태웠다. 꼭 2년 전인 4월 2일 같은 날 홍성과 금산 대전 등 충청 지방에서도 대형 산불이 나서 사흘째 되어서야 껐다. 홍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피해 면적이 1천 3백여 ha에 이르렀다. 금산에서 일어난 산불이 대전까지 번져 이틀 넘게 9백 ha를 태웠다. 산불은 그 자체로도 큰 피해를 주지만 민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오래전 가야산에서 해마다 산불이 일어나 별별 소문이 돌았고 원인을 찾고 예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산불 발생 원인은 입산자나 성묘객 실화가 34%로 가장 많고 논밭 두렁 태우기와 쓰레기 소각이 24%, 담뱃불 실화 7%, 건축물 화재 6%, 불장난 등 기타 29%로 나타났다. 이번 영남 지역 참화는 라이터를 켠 성묘객, 예초기 불티를 방치한 작업자 등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데 도대체 그들의 의식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조심만 하면 예방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행정과 소방 당국에서 깃발을 꽂고 방송하고 산림 감시원을 배치하여 예방과 계도 활동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주의하고 조심하여야 한다. 애써 가꾼 숲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이를 회복하려면 최소 20년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솔가지 하나만 꺾어도 엄한 처벌을 받았다. 농촌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산림간수였다. 그런 엄중한 단속과 함께 대대적 나무 심기, 연료전환으로 지금의 푸른 산, 울창한 숲을 가꿀 수 있었다. 산불 발생과 진화 상황 보도에「서산 영덕고속도로」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비록 재난 상황이지만 ‘서산’이라는 말에 눈, 귀가 쏠렸다. 서해안 서산에서 동해안인 경북 영덕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된 것이다. 대게로 유명한 바로 그 영덕이다. 도로는 단순히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게 하는 시설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오가게 하고 생각을 소통하며 문명을 전파하고 공유하게 한다. 도로는 사람으로 치면 혈맥과도 같다. 서산 영덕고속도로는 우리나라 허리를 가로질러 서해와 동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다. 도로라는 매개체로 동서가 연결되는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교통량이 늘어날수록 ‘서산 영덕’소리를 자주 듣게 될 것이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더라도 도로이름을 함께 쓰는 관계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처럼 위로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싶다. 서해안 기름유출사고를 당했을 때 서산에도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고마움을 이번에 갚았으면 한다. 모든 피해지역에 지원의 손길을 펼쳐야 하는데, 고속도로 명칭에 함께 이름이 들어간 영덕을 자매결연 맺은 듯 여기고 위로한다면 더욱 뜻이 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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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영덕 고속도로의 종점, ‘영덕’을 위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