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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서산천수만세계철새기행전에 초대합니다||[특별기고] 김일상 서산시 생태환경관리사업소장
    날마다 그치지 않는 빗줄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에 조급했건만 오랜만에 10월의 햇살아래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따사로운 햇살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더욱 선명한 아름다움의 빛을 듬뿍 발하는 것도 시월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세계최대의 철새도래지인 부석면 천수만 일원에서 오는 26일부터 11월 25일까지 한 달간 2007서산천수만세계철새기행전이 열린다. 서산천수만세계철새기행전은 2002년부터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제로 힘차게 비상하는 천수만의 새들처럼 생동하는 도시, 행복한 서산의 이미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본 틀을 바탕으로 개최되어왔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10월 중순부터 날아드는 수천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는 환상적인 비행의 고수들이다. 전 세계의 90%인 35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군무를 바라보면 모두가 넋을 잃고 급기야는 탄성을 지른다. 그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며 날아올라 하늘과 호수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모습은 세계최고의 자랑거리로 세계유산등록인 유네스코에 등록해도 손색이 없는 서산만이 갖고 있는 커다란 자랑거리이다. 또한 이곳에는 국내 철새 도래지의 서식환경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천수만 생태관이 있다. 이 생태관은 행사안내관, 생태체험관, 새소리동영상관, 철새 영상관, 천수만 철새관, 생태마당관, 서산시홍보관 등 7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또 장터와 체험마당에서는 서산지역 농특산물이 전시 판매되며, 나무곤충 만들기, 짚공예 만들기, 철새엽서보내기, 종이 접기 등의 체험마당을 통해서는 어린이들의 체험의 산 교육장으로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큰 효과가 기대된다. 부대행사로는 부석사 산사체험과 품종별로 아름다운 가을국화 전시, 시화전, 철새사진전시, 서산우체국에서의 철새를 주제로 한 우표 전시회 운영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철새기행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천수만생태관의 주요프로그램인 동시에 최대 볼거리는 가창오리 군무를 주제로 한 탐조투어라고 할 수 있다. 탐조투어버스는 철새전문가들과 탐조가이드의 안내로 하루에 7번을 관람할 수 있으며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철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소리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화려한 복장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철새들을 관찰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수려한 자연경관인 철새가 도래하는 간월호는 바닷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된 아름답고 앙증맞은 느낌의 간월암을 볼 수 있으며 백제의 미소인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하여 보원사지, 개심사, 해미읍성, 천주교순교 성지등 다양한 문화재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산재해 있다. 이처럼 철새는 서산의 상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서산은 이 천혜의 환경자원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반을 쌓는데 주력하고 있다. 세계철새도래지인 천수만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하늘로부터 선사받은 우리 서산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보고이며 비전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자연환경! 서산시는 물론 시의회와 시민 모두가 그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만이 우리 서산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보존하여 21세기 서해안의 길잡이로 주민소득과 연계된 관광지로써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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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06
  • [논단] 진실한 삶은 아름다운 인생||나순의 한국걸스카우트 서산시지구협의회장
    진실한 삶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다. 진실한 삶은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결코 손해 보는 삶이 아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현대에 와서 더욱 더 요청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쨌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어렵게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과제이다. 가장 큰 길을 떳떳이 가야할 고위 공직자들 허영심으로 허무를 쫒는 35세의 젊은 여성의 잘못된 마당발은 종합대 총장의 입을 묶었고 원로 종교인을 구설수에 올리고 말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제 빨리 다시 올바로 끼웠으면 많은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들통이 나지 안했다 해도 이들은 잘못된 삶이 양심에 걸려 계속 자기를 괴롭힐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삶속에서 가장 으뜸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대다수의 화(禍)는 거짓말에서 온다. 사소한 일에도 진실을 저버리면 시간문제이지 언젠가는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교훈을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봐왔건만 어쩌다가 그들은 이렇듯 수렁에 빠지고 마는지 측은지심까지 생긴다. 아무 이득도 없이 상습적으로 거짓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노랫말에도 ‘진실’이란 단어가 많이 인용되는 것이다. 진실은 기업에서도 가장 우수한 경쟁력이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쉽게 한마디로 대답할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기에 어디에 행복의 기준을 두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우리인간들이 행복이라는 욕구에 급급하여 너무 난발하니까 신이 깊은 바다 속 산꼭대기 정상에까지 행복을 감춰 놓았다. 인간들은 행복을 먼 곳에서만 찾으려 하니까 더 깊은 곳 더 가까운 곳 인간의 마음속에 묻어두고 가장 힘들 때 꺼내보게 하였다. 자기마음 속에 있는 행복을 꺼낼 줄 아는 자만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요란한 것도 아니다. 그저 수수하고 특히 사소한 것에서 느끼고 음미하는 것이다. 이런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순간 하늘로 치솟다가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는 게 인간들이 쫒고 있는 행복일까? 자신이 지금 행복하면서도 행복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많이 가지고도 더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 점잔은 위치에서 예쁜 여성만 밝히는 신사 이들 모두 빗나간 행복을 쫒고 있다. 이웃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평소 생활 속에서 어떻게 베풀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하다. 분수에 맞게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행복할 것이다. “참아서 되는 일은 있어도 분노해서 되는 일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귀여움과 예쁨을 한 몸에 받던 미남 태극전사가 경기를 하다 관중석으로 뛰어들어 국가 선수로서 품위손상 벌금 징계를 받았다. 2002년 월드컵 때 필자는 태극전사들이 하도 예뻐 저와 같은 아들 하나 두었으면… 했다. 성미 급해도 손해지만 인내할 줄 몰라도 손해다. 그중 품위손상이 제일 손해다. 한번 실추된 인격은 좀처럼 회복이 어렵고 평생 동안 꼬리표가 붙어 다닐 것이다. 관중석에서 야지를 한다 해도 유명한 선수는 참았어야한다. 참는 것도 사람의 능력이다. 능력이 없으면 못 참고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져 주면서 사는 인생살이 손해 본다고 생각지 말자. 져 주고 이기는 삶! 말이 되는지 모르지만 한번 길게 생각해보는 사색의 향기로 남겨둔다.<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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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06
  • 발행인 칼럼-추석 잘 지내셨습니까?||이기우
    깐깐 오월, 미끄럼 유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속담이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정직과 소박함으로 지내온 농사꾼은 5월부터 6월까지는 눈코 뜰 사이 없는 농사일로 피곤하고 7월이 돼 쉴 틈이 생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는 8월을 맞이한다고 해 이러한 농사속담이 생겨나게 됐다. 그래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고도 한다. 조제모염(朝濟暮鹽),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먹거리 부족에 허덕였던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해 만사가 부러움 없는 풍성한 8월은 농부가 신선이 되며, 가족 모두가 행복을 실감하는 계절이다. 하늘의 도움으로 풍년이 들었기에 하늘에 감사하고 조상의 음덕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사실에 조상에 감사의 제를 올렸다. 가을의 한 가운데 날이기에 중추절(仲秋節)이라고 했다.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모처럼 오순도순 가족애를 키우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고향 떠난 자식들이 부모, 형제를 찾아 귀향하는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사회적 문제가 됐다.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핵가족화 되면서 귀향길의 교통대란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일컬어 ‘명절 주부증후군’. 명절이 되면 젊은 주부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거에 경험했던 스트레스가 회상돼 다양한 형태로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의 일종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머리가 아프고 불안해 육체적 질환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년전 보건복지부에서는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몇 가지 수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너명 남짓이 사는 집안은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궁궐처럼 넓고, 주방은 마치 마을잔치를 치뤄도 충분할 정도로 편리하고 넓게 장만돼 있지만, 가족 대소사 모두를 외부에서 치르는 우리의 현실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이는 단출한 가족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에 길들여진 주거화경의 변화에 기인하는 삶의 변화양태로 해석된다. 명절증후군이 주부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이는 주부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하나 건너 외아들, 외동딸이며 모두가 왕자, 공주처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젊은이들은 더불어 생활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 모이는 건 오손도손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옥조이는 불편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추절을 보내면서 한숨짓는 농부의 모습이 떠오르고 깜(?)도 되지 않는다던 사건 사고들이 증폭돼 언론에 보도되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나 만남의 소중함을 되찾아 값진 교감을 더불어 나누는 중추절을 보내면서 내성을 키워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찾아보도록 하자.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다정다감한 이야기와 덕담을 나누며 올 중추절을 슬기롭게 보내고 활력을 충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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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30
  • [옥녀봉]평화 누릴 수 있는 참된 세상 만들기||도신 서광사 주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갖기를 원한다. 그리고 갖지 못함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행복을 위해 갖고자 했음에도 불행해지는 우리 인간들의 삶, 이런 어리석음이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온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다. 부처님께서는 무명(無明)속을 헤매는 중생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길을 제시했는데 이는 평화로운 길이다. 평화(平和, peace)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전쟁이나 분쟁 등이 없이 세상이 평온한 상태’, ‘인간 집단 상호간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를 생각함에 있어 이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전쟁이나 분쟁 등 다툼을 전제하고 있는 소극적인 평화다. 진정한 평화는 다투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기 때문에 다툼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경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평화로울 수 있을까. 또한 개인이 느끼는 평화로움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평화의 형태, 나아가 국가간에 있어 평화로운 협력 관계, 궁극적으로 온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과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쉽게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최초의 시도는 ‘평화’를 배우는 것이다. 미국의 비영리 기관인 평화교육센터(Center for Teaching Peace)소장으로서 평화 교육에 힘쓰고 있는 콜먼 맥카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누군가 우리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구체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민족 내부의 전쟁을 겪었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보다도 평화에 대한 학습과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더 없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면서 “21세기와 그 이후는 전쟁의 재앙을 멈출 수 있는 세기가 될 것이다”라는 중요한 말을 한 바 있다. 지난 20세기는 실로 전쟁의 세기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잔혹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21세기 이후에는 전쟁이 주는 약탈의 이익보다 평화가 주는 화합의 이익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닫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를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예측과 희망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평화를 알고 이해함은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실현할 수 있는 평화로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평화로움, 나아가 전 세계 온 인류 차원에서 꿈꿔볼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21세기 초입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화는 부처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 모두 온 인류의 진정한 스승이신 부처님을 닮아가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참된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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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30
  • [타임즈논단]무엇을 심어 가꾸었나||백성현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산과 들엔 온통 추수할 것들이 많다. 열매를 맺는 나무는 풍성한 열매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나름대로 한해를 결산한다. 들녘엔 농부들의 바쁜 손길이 추수하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 도 모른다. 봄부터 논과 밭을 돌며 부지런히 씨를 뿌려놓았으니 가을이 되어 그래도 거둬 드릴게 많아 다행이다. 나는 내 삶이라는 텃밭에 무엇을 심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가며 잘 가꾸었는가. 언제나 가을이면 “많은 씨를 뿌린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뿌린 자는 적게 거두어드린다”는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도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한곳, 제대로 씨앗을 뿌리지도 가꾸지도 못했음을 돌이켜 반성하기보다 일상의 부족함을 투정으로 일관했던 자만이 부끄럽다. 언제, 어디에 씨를 뿌렸고, 추수해야 할 밭은 어딘가. “밤은 밤나무 밑에 가야 줍고 상수리는 상수리나무 아래 가야 줍는다” 상수리를 줍겠다고 소나무 밑에 가서 아무리 헤매봐야 헛수고만 할 뿐 평생 얻을 게 없다. 좋은 농부는 씨를 뿌려야 할 곳과 거두어 드릴 시기를 바로 안다. 씨를 뿌리기 위해선 먼저 밭을 비워야 한다. 묵은해의 농작물을 걷어 내고 땅을 갈아엎어, 새찬 겨울 추위와 눈 속에 마냥 속살을 내보여야 한다. 그래야 씨를 뿌릴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된다. 지난해의 마른 곡식 줄기를 그대로 밭에 두고서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린다 해도 곡식이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철지난 나뭇잎은 새로운 결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들은 자기가 태어난 자연의 일부인 대지에 훌훌 옷을 벗어 던진다. 그리고 썩어져 다음해의 튼실한 결실을 맺을, 좋은 토양을 만들어 간다. 자연은 버림으로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황폐하게 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곧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명예나 권력에 대한 미련과 재물에 대한 탐심이 버리는 것을 인색하게 한다. “많은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는 가장 많은 결실을 얻는다”는 진리를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나무들이 대지에 훌훌 낙엽을 벗어 던지듯 일상의 생활에서 갖는 미움과 질투, 시기하는 마음을 버릴 줄 아는 아량과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악한 생각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권력이나 명예, 물질로부터의 겸손함을 의미한다. 씨는 생명이다. 그러나 씨앗 그대로 있으면 싹을 틔울 수 없다. 땅이 있어야 한다. 땅은 비옥한 땅도 있고 메마른 땅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기라는 싹을 위해 비옥하고 기름진 땅만을 고집하며 메마른 땅을 마다한다. 그러나 황폐하고 메마르다 해서 씨뿌리기를 주저하거나 씨앗을 그대로 썩히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좋은 이웃은 자기의 삶을 가꾸고 윤택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토양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 자기 몫의 싹을 띄우려고 만들지 도무지 자신이 주변사람들을 위한 좋은 토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한 알의 밀알보다 밀알이 떨어져 싹을 틔울 수 있는 기름진 한 줌 옥토가 아쉽다. 생명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주변의 토양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토양이 병들어가고 있다. 각종 범죄가 판을 치고, 도덕과 윤리가 실종 된지 오래 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토양은 준법환경이다. 그러나 평소 주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유명인사들 까지도 어떤 검색의 자에 비춰지면 오히려 더 많은 부정과 부패, 위법과 탈법과 편법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절망감을 느낀다. 이런 토양에서는 씨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거둘게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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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30
  • 출향인사는 영원한 우군(友軍)
    출향인사는 영원한 우군(友軍)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사회에서 가장 많이 따지는 것이 출신성분이다. 그중에서 졸업한 학교나 고향을 가장 많이 따진다.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일수록 고향사람에 대한 향수가 남다르다. 1년에 한 번 년초에 열리는 재경서산향우회나 재인서산시민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보면 그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출세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학연과 지연이다. 또한 권력 뒤에는 언제나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연고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고를 잘 활용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잘 활용하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느 도시건 고향사람들의 모임인 향우회가 있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서산이 고향인 사람들의 모임도 많다. 재경서산향우회를 비롯해 인천, 대전, 안산, 부산 등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들이다. 이외에도 파악이 안돼서 그렇지 전국 각처마다 향우회가 조직돼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출향인사들은 대부분 평상시에는 회원간 친목을 도모하고 고향사람끼리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고향에 일이 생기면 지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물심양면으로 관심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에는 지곡면 중왕2리와 (주)고암이 1사1촌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이 자매결연을 적극 주선한 이는 재경서산향우회 유영환 사무총장이다. (주)고암 최종만 회장도 고향이 팔봉이며 향우회 총무부회장의 직책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이번 자매결연식에 직접 참석하여 고향에 대한 연민을 강조하며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1사1촌 자매결연을 추진해온 유영환 사무총장도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자매결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고향 농어촌을 위해 출향인들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출향인사들에 대한 DB를 구축해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서산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서산출신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앙정부 내에만 해도 서산출신 공무원이 꽤나 된다고 한다. 기업체 대표들도 여럿이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중견기업을 알차게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각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서산발전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향인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출향인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지역별은 물론 직능별로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다 보면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급한 일이 생겨도 어디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몰라 활용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정기적으로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때문에 매년 한 번씩 날을 정해 홈커밍데이를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홈커밍데이는 대학이나 단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출향인사들이 고향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있다든지 친척이 있으면 평상시에도 서산을 찾을 수 있겠지만 완전히 서산을 떠난 사람들은 이러한 계기가 아니면 서산에 올 이유가 없다. 홈커밍데이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는다면 출향인 관리도 용이해질뿐더러 출향인들 에게 서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서산시가 출향인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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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8
  • 출향인사는 영원한 우군(友軍)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사회에서 가장 많이 따지는 것이 출신성분이다. 그중에서 졸업한 학교나 고향을 가장 많이 따진다.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일수록 고향사람에 대한 향수가 남다르다. 1년에 한 번 년초에 열리는 재경서산향우회나 재인서산시민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보면 그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출세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학연과 지연이다. 또한 권력 뒤에는 언제나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연고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연고를 잘 활용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잘 활용하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느 도시건 고향사람들의 모임인 향우회가 있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서산이 고향인 사람들의 모임도 많다. 재경서산향우회를 비롯해 인천, 대전, 안산, 부산 등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들이다. 이외에도 파악이 안돼서 그렇지 전국 각처마다 향우회가 조직돼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출향인사들은 대부분 평상시에는 회원간 친목을 도모하고 고향사람끼리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고향에 일이 생기면 지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물심양면으로 관심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에는 지곡면 중왕2리와 (주)고암이 1사1촌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이 자매결연을 적극 주선한 이는 재경서산향우회 유영환 사무총장이다. (주)고암 최종만 회장도 고향이 팔봉이며 향우회 총무부회장의 직책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이번 자매결연식에 직접 참석하여 고향에 대한 연민을 강조하며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1사1촌 자매결연을 추진해온 유영환 사무총장도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자매결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고향 농어촌을 위해 출향인들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출향인사들에 대한 DB를 구축해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서산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서산출신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앙정부 내에만 해도 서산출신 공무원이 꽤나 된다고 한다. 기업체 대표들도 여럿이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중견기업을 알차게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각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서산발전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향인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출향인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지역별은 물론 직능별로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다 보면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급한 일이 생겨도 어디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몰라 활용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정기적으로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때문에 매년 한 번씩 날을 정해 홈커밍데이를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홈커밍데이는 대학이나 단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출향인사들이 고향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있다든지 친척이 있으면 평상시에도 서산을 찾을 수 있겠지만 완전히 서산을 떠난 사람들은 이러한 계기가 아니면 서산에 올 이유가 없다. 홈커밍데이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는다면 출향인 관리도 용이해질뿐더러 출향인들 에게 서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서산시가 출향인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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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6
  • [독자논단] 조력발전소 백지화 되어야 한다||신권범/서산시 지적과 지가관리담당
    서산지방은 바다에 접해있는 지세로 대산반도, 부석반도가 형성되어 있다. 지형으로 보면 98.1㎞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형성되어 바다생물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갯벌이다. 낙지, 굴, 조개류, 해태, 꽃게, 우럭, 농어, 가자미, 쭈꾸미, 망둥어, 장어, 전어, 숭어 등 열거할 수 없도록 많은 어패류들이 산란과 함께 살고 있어 많은 지역 어민들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옹기종기 크고 작은 29여개의 섬들이 있어 주변 경관 또한 아름답고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들어 매년 철새축제와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서산지방은 이런 바다의 영향을 받아서 수해, 풍해 등 연중 자연재해가 없는 천혜의 고장, 살기 좋은 상서러운 곳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난데없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천혜의 갯벌지인 대산읍 오지리와 태안군 이원면 내리 사이의 가로림만에 2㎞의 방조제를 쌓아 조력발전소 건립계획을 추진 중 이라니 참으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를 건립하게 되면 세계 5대 갯벌중 하나인 객벌면적이 조간대에 30.3%(22.3㎢), 최소 조간대에 69.8%(34.9㎢)감소, 해수 교환율 18.9%감소 등이 온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 80년대 어족자원의 보고인 천수만 A,B지구를 매립하고 얼마나 후회하였는지 입안자들은 모르고 있는가 보다. 그곳의 매립을 본 세계의 전문가들은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한 대표적인 사례라 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매립 전 부석면에 12,000여명이 거주하면서 어업을 주 수입으로 생계를 영위하였지만 아무대책 없는 매립으로 6,000여명이 생계를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우리는 보았다. 매립이 끝난 지도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치유되지 않아 잘못된 매립정책으로 인한 경제, 사회적 손실, 환경적 피해 등 지난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서산, 태안 연안 어민들이 생계를 마다하고 공청회 장소마다 쫓아다니면서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겠는가. 이제 서산, 태안 시민단체 서산시 의회, 서산시에서도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적으로 신 재생에너지 정책에 따라 조력발전소 건립계획을 수립한다지만 갯벌 등 바다환경 파괴는 세계적인 기후협약에 반하는 정책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우리 부석반도에서 한번 겪어본 시행착오를 다른 곳도 아닌 오직 하나 남은 대산반도에 환경파괴와 어민의 생계원을 제약하여서는 아니 된다. 꼭 해야 한다면 대란으로 A,B지구 등 일조량과 바람이 풍부한 해안에 친환경적인 태양광, 풍력을 이용한 발전을 권장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자연환경을 보존하고자 하는 지역주민과 국민의 바램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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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6
  • [독자기고] 일본에서 논란중인 고향납세제도||장명식/국회의원 문석호 사무실 비서
    재경위 소속 국회의원을 모시고 있어서일까? 최근 일본에서는 주민세 등 세금과 관련해 “현재 거주하는 지방자치단체에만 꼭 납부해야 하나”,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고향에서 세금을 사용하게 할 수 없나” 하는 등의 납세자의 작은 의문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관심이 쏠린다. 지금 일본에서 논란의 대상은 바로 고향납세(故鄕納稅)제도이다. 지방세 중 일부를 납세자가 지정하는 고향 등에 납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도시와 지방간의 극심한 재정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또 아베 총리가 “고향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고향납세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거운 상황이며,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도시지역의 의견을 대표해 “행정의 수요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 다르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세인 개인주민세는 1월1일을 기준으로 거주지 지방자치단체에 납부되고 있으나, 그 일부인 주민세의 10%를 거주지가 아닌 자신의 출신지에 납부하게 하자는 것이 고향납세제의 핵심 내용이다. 그 장점으론 첫째 인구감소가 계속되어 지역 간의 경제격차·세원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 가운데, 인구감소로 인해 고민하는 지방의 세원을 늘려 재정격차를 줄이는 재원배분의 효과가 있다. 둘째 납세자가 태어나 성장한 지역의 자치단체가 부담한 교육비와 복지비용 등에 대한 환원시스템으로서의 기능도 가능하다. 셋째 납세자가 성장하면서 그 지역을 벗어나도 그 지역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고향납세제도의 단점 및 비판으론 첫째 ‘고향’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둘째 지방세상의 원칙인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즉 행정서비스를 받는 주민이 조세를 부담한다는 수익자부담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근본적인 지역 활성화, 지역 경제격차의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지방교부세와의 관계상의 문제. 즉 현행 지방교부금제도로도 대도시와 세수가 적은 지방자치단체와의 재정격차를 줄이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고향납세제도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효(孝)사상과 어울리는 제도로서 원칙적인 그 취지는 바람직하며, 첫째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 둘째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 셋째 재정이 빈약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지지 등을 고려하면 그 도입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행정서비스를 받는 주민이 조세를 부담한다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조세체계에 있어서는 부작용의 소지가 없지 않다고 보여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조세와 관련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혹은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 갈등이 최근 빈번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예컨대 공동재산세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강화와 거래세(취득세·등록세) 인하와 관련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및 특별교부세제도와 관련된 갈등 등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아직 미해결인 상태에서 고향납세제도까지 도입할 경우 또다시 갈등의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튼 지방세인 주민세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체계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등의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발상자체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를 신중히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인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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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6
  • 누가 시대의 혼을 불러낼 적임잔가||정영권의 세상 엿보기
    때가 때니만큼 대선 이야기 한번 해볼까한다. 말해두자면,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선 때 내가 찍은 후보는 아직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마저도 애써 꼽아보아야 겨우 기억이 나는 건 한 번도 흔쾌히 표를 던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또 예상과 기대에서 크게 벗어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에 무관심했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사실 난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편으로서, 선거 때마다 그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누가 '대권'을 쥐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토대가 달라지고 내 삶의 행로가 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기실 많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곗바늘을 이삼십 년만 되돌려놓고 한번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요 가히 자유의 왕국이다. 요즘 세상에 할 수 없는 게 무엇인가? 단, 쩐만 있다면. 문제는 역시 돈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펼쳐진 자유의 왕국에서 옛날의 속박을 잊고 차라리 옛 시절이 그립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다. 하나는 그 시절에도 속박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며 그들만의 자유를 구가하던 특권층 또는 그에 빌붙어 떡고물을 받아먹던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얼어뒈질 자유로 밥을 해먹을 것인가, 국을 끓여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밑바닥 민초들이다. 전자의 특권층과 그 아류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빤하니 접어두고, 후자의 민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국민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민초들의 의식을 제대로 짚을 때 이번 대선의 답이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살려면 따라오라는 협박이든, 혹세무민의 선동이든, 아니면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든, 민초들의 의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만이 대권을 잡을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그만큼 세상은 달라진다. 850만 비정규직, 수십만 청년을 포함한 100만 실업자, 수백만 잠재실업자로 대표되는 이 시대 밑바닥 민초들의 눈에 지난 20년간의 자유의 확대는 사실상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특히 IMF 신탁통치 이후의 10년은 배반의 시대였다. 기를 써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대였다. 정치인과 관료와 학자들은 곧 좋아질 거라고, 허리띠 동여매고서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설레발을 치더니, 언제부턴가는 스스로 미래를 내다보며 능력을 갈고 닦으라고 말을 바꾸었다. 아무런 뒷받침도 없이 도전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도 세상은 더불어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괜찮은 자리는 이미 약빠른 이들이 다 차지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 다음 자리라도 차지해보려고 눈에 불을 켜보지만 경쟁이 어마어마하다. 남을 밟아 죽이고 올라서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마땅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들에게 우리가 더불어 사는 인간임을 확인하며 위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방책은 무엇일까? 협박이든 궤변이든 선동이든 진심이든 이 답을 민초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해줄 수 있는 이에게 아마도 대권은 갈 것이고, 만일 민초들이 협박이나 궤변이나 선동에 넘어간다면 앞으로 5년간 그만큼 더 고생을 할 것이며, 진심에 감동하여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기로 작정한다면 그때는 인류의 새 역사를 써가게 될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왔다. 끝없는 축적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욕망은 비록 약간의 굽이는 있었지만 노동을 줄기차게 배제해왔고, 역시 약간의 굽이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그 경향은 가속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은 이미 자본 운동의 중심부에 깊숙이 편입돼 있고, 일시적 방책으로 그 경향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개발지상주의, 세계화와 무한경쟁에 입각한 방책은-한반도 대운하든, 백만 해외일꾼이든, 개성공단이든, 대륙철도든, 문화 메카든, 대단위 골프장이든-그 어느 것도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되리라는 것이다. 나만 잘 살고 남들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은 옳지도 못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의 축적욕과 이윤욕을 순치시키고 어떻게 그 과실과 일자리를 나누고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가면서 다가오는 대파국에 대비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민초들에게 어떻게 전하며 그 혼을 불러일으키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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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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