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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영이라고…” vs “어느 안전에…”
    살다보면 난감한 일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조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 시리도록 파란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평화의 댐 성금 모금 참여인원을 ‘추정 작성’한 일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80년 대 중반, 대통령이 도 방문을 앞두고 유성에서 숙박하는 날이었다. 급히 조치해야할 일이라도 있을까 하여 혼자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밤늦게 퇴근했다. 막 집에 도착하여 단추를 푸는데 “빨리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택시 안에서 빵을 먹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과장께서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을 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를 당장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밤이 깊었을 뿐 아니라 모금은 각 언론사 주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궁리를 거듭해도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 파악하기는 어렵겠는데요.”라고 하니 “어느 영이라고…, 어떻게 좀 해 봐” 하면서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표정이었다. 대통령이, 수행하는 장관에게 “성금 낸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물은 모양이었다. 이에 장관은 도지사에게, 도지사는 옆에 있는 과장에게 물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든 숫자가 나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밤에 여러 언론사의 협조를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시군에 연락한다고 한들 뾰족한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묘안을 짜내는 수밖에 없었다. 통계책자를 찾았다.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우리 도의 총 가구 수 66만, 인구는 300만, 직업 별, 생활수준 별 가구 수, 이런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지…’, 통계에다 ‘감’을 넣어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접이식 표지에 ‘평화의 댐 성금 참여 현황’ 이렇게 쓰고 안쪽 한 면은 총 가구의 91% 60만 7천 가구에서 성금을 냈고, 금액은 ○○억 원, 이런 숫자와 참여 상황 등으로 채웠다. 다른 한 면에는 ‘과수원을 판 돈 중에서 얼마를 냈다, 구두닦이 하는 사람도 참여했다’ 등 모범사례 몇 가지를 들어 작성했다. 매스컴에서 매일 보도했으므로 모금액이나 미담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서하여 드리자 “됐다! 야!” 하며 무릎을 쳤다. 얼굴이 펴졌다. 다음 날, 각 시도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성금 낸 인원을 어떻게 파악했느냐?”는 것이었다.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무부에서 각 시도에,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했는데 어렵다고 하니까 “충남은 했는데 왜 못하느냐?”고 호통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내무부 사무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문난 사람이었다. 경위를 설명하고 어쩔 수 없이 추정하여 작성했다고 하니, 대뜸 “어느 안전에 허위보고 했느냐?”며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허위보고와 장관, 도지사를 기망한 행위, 그의 성품으로 볼 때 사단은 크게 벌어졌다는 생각이 스쳤다.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로 끝장이구나.’하는 낭패감이 짓눌렀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과장께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러면 어찌해야 하느냐?” 난감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 사무관의 됨됨이는 익히 알고 있던 터인지라 지난 밤 “어느 영이라고…”하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참에 한 번 파악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동료들이 나눠 방송국과 신문사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필자는 도청 뒤에 있는 MBC에 갔다. 큼직한 금전출납부 두 권을 내주었다. 예상대로였다. 개인 이름으로 낸 사람이 많았지만 ‘○○회사 20만원’, ‘○○친목회 5만원’도 적지 않았다. ‘유구면민 일동 10만원’도 있었는데, 이러하니 참여 인원이나 비율을 얼마로 볼 것인가? 개인, 단체 몇 번 중복하여 낸 경우와 전국지나 방송국에 낸 사람도 있었을 것이었다. 몇 장을 넘겨보다 덮고 돌아왔다. 그 후 이럭저럭 마무리됐다. 상사의 지시나 물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설령 부당한 지시라 하더라도 당장 거부하기 어려운데, 단지 어렵다는 이유로 ‘못 하겠다’고 할 수 있는가? 안 되는 이유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쉽다. ‘이 사람은 어떻게든 답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으로 오더를 주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하니 무리한 일도 어떻게든 응급조치하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상황은 나름의 수습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풀기 어려운 숙제다. 요즘은 어떠할까?/전 서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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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코로나에 걸리다
    [2022. 3. 30.(수)] 시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재난 안전 문자가 날아왔다. 몇 십 명이던 숫자가 백 단위를 넘어서더니 삽시간에 천 단위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나는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매스컴에서 코로나19가 몇 십만 명이 나왔다고 떠들어대도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방심했던 건 아니었다. 내 한 몸이 내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여지없이 내게도 덮쳤다. 어제 오후 3시경 감기 초기처럼 기침이 나오고 조금 지나니 목이 쏴 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바로 코로나가 의심되었다.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와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녔다. 화장실에 가면서 거실에서는 숨을 쉬지 않았다. 집에 있던 감기약을 먹었다. [2022. 3. 31(목)] 자가 진단키트를 구입해 검사해보았다. 두 줄 분홍색 기둥이 보였다. 보건소로 향했다. 10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검사를 받으려고 하는 대기자가 30여 명이나 있었다. PCR 검사 결과는 내일 문자로 통보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격리할 방을 구했다.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짐을 꾸렸다. 원룸인 줄 알았더니 투룸이다. 방이 썩 마음에 들었다. 격리 기간 중 스스로 지킬 규범을 만들었다. 첫 번째 수칙은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전화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굳이 보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에 매어 살았나? 두 번째 수칙은 먹는 것에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아무 때든지 배가 고프면 먹기로 했다. 그래도 커피는 마시고 싶어 인근 슈퍼에서 커피 믹스를 구입했다. 시간과 먹는 것에서 해방되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몸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읽고 싶으면 읽고, 자고 싶으면 자고, 눕고 싶으면 눕는 것이다. 저녁 먹은 후 잠자리에 들 때 감기약과 해열제를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간간이 기침이 나왔을 뿐 몸에 별다른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2022, 4, 1(금)] 9시가 좀 넘으니 전화기에 문자가 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로 확진이 되었다는 문자와 함께 감염 예방법 제 41조 대상이므로 동거인과 함께 공유해야 하며 격리 명령을 위반할 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었다. 격리 기간은 4월 6일까지였다. [2022, 4, 2(토)] 보건소에서 건강관리 세트를 가져다주었다. 진통제 한 갑, 동거자용 자가 진단키트, 체온기가 들어있다. 시험 삼아 자가 진단키트로 코로나가 얼마나 검출되는지 시험해 보았다. 분홍빛 색이 두 줄 선명하게 나타났다.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내 몸속에 잔뜩 들어있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2022. 4. 4.(월)] 이곳은 원룸 밀집 지역이다. 낮에는 사람들 왕래도 뜸한 곳이다. 창문을 닫고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진공관에 들어 온 듯하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격리 4일째다. 단절된 공간에서 살아보니 절대 고독을 느낀다. 사람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 살 수 없는가? 아픔도 슬픔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의지해야만 할까? 고독은 생명의 독(毒)이다. 우주 공간이나 무인도에서 버려진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듯하다. 절대 적막에서 나와 내가 마주 보고 있으니 회한의 모습만 보인다. 사람이 그립다. 갑갑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같이 가”라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3층까지 올라왔다. 그 말이 그렇게 정겹게 들릴 수가 없다. 그래! 인생은 같이 가는 거야. [2022. 4. 5.(화)] 격리 6일째다. 코로나19로 하나님이 내게 깨닫게 해 주신 교훈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았다. 첫째로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란 걸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구별하지 않았다. 잘난 척할 이유가 뭐가 있나? 기죽거나 굽실거릴 이유가 뭐가 있나? 내나 남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 이번 내게 찾아온 코로나19는 거의 무증상에 가까울 만큼 경미하다. 보통 때도 이런 정도의 불편은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격리 생활을 하는 이유는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기회도 주심을 깨달았다. 세 번째는 겸손함을 알게 해 주었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큰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균 하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얼마나 살겠다고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욕심부리나? 나 잘 났다고 머릴 흔드나? 남은 생 동안 겸손을 잃지 말자. 네 번째는 무사한 일상이 감사하다는 걸 깨닫게 하였다. 모든 비극은 갑자기 찾아온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줄, 그리고 무릎 안쪽 인대를 다칠 줄 짐작도 못 했다. 불평, 불만, 낙심, 실망, 이런 모든 것들이 호강인 줄 알아야겠다. 하루하루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감각을 갖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지도 알게 했다. 지금 내게는 두 가지 감각을 상실했다. 하나는 후각이요, 또 하나는 청각이다. 후각은 생리적으로 코로나 후유증인 것 같다.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청각의 상실은 물리적이다. 창문을 닫아놓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 죽음과 같은 고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심지어 뇌의 활동도 정지된 듯하다. 사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비로소 알겠다. [2022. 4. 6.(수)] 멈춘 것 같은 시간도 여전히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이 법정 격리 기간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까지 가지고 온 책 세 권을 다 읽었다. 비대면으로 처방받은 치료제 약도 다 먹었다. 어제 국민 비서란 곳에서 문자가 왔다. PCR 검사일로부터 7일 자, 자정에 별도 통보 없이 자동으로 격리 해제된다는 내용과 격리 해제 후 3일간은 조심해 달라는 내용, 쓰레기는 소독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라는 내용이었다. 저녁때 진단키트로 시험해 보아야겠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메멘토 모리’ 책 속에 나와 있는 낱말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기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라고 한다. 세상과 차단된 공간 속에 내가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오후 5시 반 자가 진단키트로 검사해보았다. 분홍막대기가 하나만 나타났다. 드디어 코로나19의 균이 내 몸에서 사라졌다. 홀가분하다. 다시는 이놈에게 정복당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코로나19는 많은 걸 내게 선물해주었다. 누구든 한 번쯤은 세상과 나를 떼어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유익할 듯싶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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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요지] 공소시효 정지사유인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인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3. 31. 선고 2022도857 판결) [사례] 회사 돈 5억 2,000만 원을 횡령한 피고인이 분할하여 변제하기로 약속해놓고 5천만 원만 변제하고 본국인 중국으로 출국하여 연락이 두절된 경우 비록 자녀를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본국으로 출국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공소시효정지사유인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형법 제253조 제3항은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로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여기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란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으로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으면 족하며,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것이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범인의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외 체류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계속 유지된다(대법원 2012.7. 26. 선고 2011도846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대법원의 기준에 의할 때 위 사안에서 ①피고인이 피해회사에게 횡령금 등 5억 2,000여만 원을 변제하겠다는 공정증서를 작성하였으나 5,000만 원만 변제한 상태에서 2009. 4. 11. 중국으로 출국하여 연락이 두절되었는 바, 위와 같은 출국 경위에 비추어 피고인이 중국에 체류하는 것이 국내에서의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는 중국이 피고인의 본국이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되고, ②피고인은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채무를 전혀 변제하지 않았고, 피고인의 어머니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2018. 2월까지 9년 여간 단 한 차례도 국내에 입국하지 않았는 바,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일 필요는 없으므로, 설령 피고인의 중국 체류 목적 중에 딸을 돌보기 위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을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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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100-1=0, 100+1=200
    얼마 전 차량 엔진오일교환을 하려고 모 자동차정비소에 가던 중 좌회전을 해야 했다. 신호를 보니 ‘직진 후 좌회전’이란 안내판이 붙어있다. 파란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몇 초 후에 앞에 있던 승용차가 좌회전을 시도했다. 다른 차량도 뒤를 이었다. 여전히 직진신호 상태였다. 무심코 따라가다 보니 그때 비로소 좌회전 신호로 바뀌었다. 자칫했으면 신호를 위반할 뻔했다. 되도록 교통신호를 지키려고 했던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를 맡기고 정비소 대기실에 들어가서 기다리던 중 거기에 비치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책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책이라 몹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09년 76쇄 발행분이었다. 초판 발행일이 2004년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독자의 이목을 끌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 관계로 다 읽지 못해 정비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여 빌려 왔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내가 교통신호를 위반하려 했는지 의문이 풀렸다. 바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 때문이었다. 저자는 마이클 레빈이고 이영숙 옮김으로 ‘흐름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이었다. 이 책은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이란 부제도 있었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라고 하며 작은 차이가 당신의 인생과 비즈니스의 운명을 바꾼다는 표사(表辭)도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자 켈링이라는 두 사람이 1982년에 만든 개념이라고 했다.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행인들은 관리를 포기한 건물로 인식하여 나머지 유리창도 돌을 던져 깨버린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치안이 허술한 곳에 보존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놓고 그중 한 대는 보닛만 열어두었고 다른 차 한 대는 앞 유리 창문을 깨져 있는 상태로 방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닛만 열어둔 차는 1주일 후 그대로 변함이 없지만, 앞 창문의 유리를 깨뜨린 차는 거의 폐차 직전의 상태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이용하여 사회 정책에 반영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1980년대 뉴욕시의 지하철은 치안 상태가 형편없어 당시 여행객들은 이용하기를 꺼렸다고 했다. 그때 뉴욕시장에 취임한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는 지하철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범죄를 집중단속 하자 사건 사고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지난 가을에 주인 없는 감나무가 떠올랐다. 탑동 삼거리 부춘산 등산로 입구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다. 매년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감나무 주위에 허술하나마 그물망으로 둘러서 감나무에 주인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간 가을에는 감나무의 감이 빨갛게 익어가도 그물망이 바닥에 내려져 있는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감이 익어가자 한사람 두 사람 오가는 사람들이 감나무의 감을 따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물망이 아예 땅에 밟혀 흙 속에 묻히고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바닥은 반질반질하게 되었고, 감은 고사하고 감나무 가지마저 뚝뚝 부러져 있었다. 누군가는 톱까지 가져와 나뭇가지를 베어서 감을 따고는 그대로 버려두기까지 했다. 그동안 감나무를 보호한 건 어설프게 쳐 놓은 그물망이었다. 누군가 주인이 없는 걸 알아차리고 한두 개 감을 따기 시작한 것이, 까치밥조차 남기지 않고 감은 고사하고 나무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심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 예배에 참석하지 않다가 보면 종래는 영원히 신앙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성경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라는 말씀이 있다. 사소한 죄를 저지르다가 나중에는 큰 범죄를 저질러 평생 불행한 삶을 살 게 된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에서는 100-1=0이라고 한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전체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100+1=200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자. 참 행복을 원한다면.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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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5
  • 소란 피운 민원인 제지행위는 정당 공무집행
    [요지] 공무집행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적법한 공무집행인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도13883 판결) [사례] 시청청사 내 주민생활복지과 사무실에서 소란을 피우던 피고인을 민원담당공무원이 제지하며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하자 피고인이 담당공무원을 폭행하여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 [대법원 판단] 형법 제136조 제1항에 규정된 공무집행방해죄에서 ‘직무를 집행하는 이’라 함은 공무원이 직무수행에 직접 필요한 행위를 현실적으로 행하고 있는 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직무수행을 위하여 근무 중인 상태에 있는 때를 포괄하고, 직무의 성질에 따라서는 그 직무수행의 과정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부분적으로 각각의 개시와 종료를 논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여러 종류의 행위를 포괄하여 일련의 직무수행으로 파악함이 상당한 경우가 있다(대법원 2002. 4. 12. 선고 2000도3485 판결 등 참조).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집행이 전제가 되고, 그 공무집행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당해 공무원의 추상적인 직무권한에 속할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도 그 권한 내에 있어야 하며, 또한 직무행위로서의 중요한 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추상적인 권한은 반드시 법령에 명시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추상적인 권한에 속하는 공무원의 어떠한 공무집행이 적법한지는 행위 당시 구체적 상황에 기초를 두고 객관적․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사후적으로 순수한 객관적 기준에서 판단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3. 11. 28. 선고 2003도5234 판결 등 참조). 이러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이 사안에서 시청 주민생활복지과 소속 공무원이 주민생활복지과 사무실에 방문한 피고인에게 민원내용을 물어보며 민원상담을 시도한 행위, 피고인의 욕설과 소란으로 인해 정상적인 민원상담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민원업무 처리에 장애가 발생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피고인을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간 행위는 민원안내업무와 관련된 일련의 직무수행으로 포괄하여 파악함이 상당하다. 또한 당시 상황을 보면 피고인의 욕설과 소란행위로 민원업무의 방해상태가 지속되고 다른 민원인들의 안전이나 평온을 해할 우려가 발생한 상태였다. 따라서 행위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기초를 두고 객관적․합리적으로 판단해보면, 담당공무원이 피고인을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팔을 잡는 등 다소의 물리력을 행사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의 불법행위를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방법으로 제지한 것에 불과하므로 공무원의 행위는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보아, 피고인의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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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5
  • 빛과 어둠
    서산시립도서관에서 도서 목록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무삭제 완전판이란 ‘안네의 일기’를 발견하였다. 무삭제라는 호기심에서 500여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책을 빌렸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지지난해 읽었던 괴벨스의 전기가 생각났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하나는 피해자로, 하나는 가해자로 각각 어떠한 생각과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마치 동전의 앞뒷면을 나란히 놓고 보는 것 같았다. 괴벨스와 안네는 비록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가해자 피해자 모두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한 세상인데 왜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다 가야 했는가?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삶을 담은 일기를 남겼다. 후세들은 그들이 남긴 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해서 그들이 가해자로 또는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악과 선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같은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빛과 어둠,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빛을 보면 사랑과 감사와 희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둠을 보면 세상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가해자인 괴벨스는 1923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폐렴과 골수염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으로 신체적 열등감을 가지고 자랐다.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자 자신의 신체적 결함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증오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 온갖 선전 선동으로 나치를 도와 유대인 학살의 원흉이 된다. “대중은 거짓말을 듣고 처음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승리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선동은 한 문장만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가 남긴 선전 선동의 문구들은 오늘날 보아도 섬뜩한 악마의 외침이다. 얼마든지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후세에게 교훈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로 살다 간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가족으로 태어났다.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네덜란드로 거처를 옮겼다. 1942년 독일의 점령하에 그들은 안네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의 별관으로 피신하여 1944년 8월에 비밀 경찰에게 잡힐 때까지 2년여를 숨어지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잡힐 때까지 기록한 일기가 바로 유네스코에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서 ‘선한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이 세상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할 때 나의 마음은 환희로 넘칩니다.” “ 나는 어떤 불행 속에서도 항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바로 그 생각만큼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여태까지 나는 가끔 우울해했지만, 결코 절망한 적은 없습니다. 은신처에서의 생활은 위험한 모험이기는 해도 동시에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가해자는 힘이 있었고 자유가 있었지만, 증오와 불안과 변명 속에 세상을 탓하며 살았다. 피해자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면서도 행복과 감사로 살았다. 누가 세상을 이겼는가? 돌아보면 한 뼘 인생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잠깐 머물다 간다. 한때의 권력이나 영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들인가? 그런데도 오늘 이 세상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성별이라는 이름으로, 종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안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에 의해 짓밟힌 연약하고 힘없는 안네가 지구촌 곳곳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소련과 우크라니아 전쟁 소식을 듣는다. 역사는 반드시 오늘의 괴벨스를 기억하고 부끄러운 그 이름을 심판하리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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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9
  • 청중 질문에 특정 정당지지 발언 답변은 정당
    [요지]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에서 정당 지지 발언을 한 것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도16335 판결) [사례] 甲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당 전당대회에 발언자로 참여하여 “돌아오는 4월 15일은 ○○당이 폭풍타를 칠 것입니다.”라고 발언을 하고, 청중이 어느 정당을 찍어야 하느냐고 묻자 “○○당을 찍어야지”라고 발언하여 ○○당의 지지를 호소하였는바, 이것이 공직선거법에 위반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판단]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1항 제2호, 제60조 제1항, 제254조 제2항에 규정된 ‘선거운동’은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에서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거운동은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를 말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행위가 그 정당 소속 후보자들의 당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라면 그러한 행위는 선거운동에 해당된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도4199 판결 등 참조). 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행위자가 행위의 명목으로 내세우는 사유뿐만 아니라 그 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장소·동기·방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위 조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혹은 반대하기 위한 목적의지를 수반하는 행위인지를 판단하여야 하고(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도2209 판결 등 참조), 단순히 장래의 선거운동을 위한 내부적·절차적 준비행위에 해당하는 통상적인 정당활동인지, 이와 구별되는 선거운동인지 판단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9도44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특정 후보자’는 반드시 한 명의 후보자만을 가리키는 것에 한정되거나 그 명칭이 표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문제된 발언이 이루어진 경위, 발언의 전체 맥락, 표현방법 등에 비추어 그 대상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도8118 판결). 또한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행위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는, 특정 정당 소속 후보자들의 당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반드시 그 정당 소속 후보자들이 개별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ㆍ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통상적인 정당활동은 위 금지되는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 제3호, 제4호). 이러한 법리에 따라서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선거에 관한 개인적 의견을 개진한 것이거나 청중의 질문에 소극적으로 답변한 것에 불과하므로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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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9
  • 양심이 소리칠 때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때는 양심대로 사는 모습이다. 인간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것도 양심의 힘이다. 양심은 마치 항해하는 배에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판과 같아서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한다. 만일 인간에게 양심이란 나침판이 없다면, 본능만 있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국어사전에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양심을 잃어가고 있다. 금방 탄로 날 일도 태연히 거짓말을 하고도 표정마저 뻔뻔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오직 자기의 잣대로 해석하는가 하면 부정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소리친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도 떵떵거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지도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고장 난 양심의 나침판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결코 이런 사람들의 세상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산다. 그래서 세상이 유지되고 평화를 지킬 수가 있다. 양심은 질경이보다 질기고 면도날보다도 더 날카롭다. 어느 사람도 양심을 영원히 죽일 수는 없다. 아무리 악해도 어느 순간 죽었던 양심은 되살아나서 스스로 괴롭힌다. 그것이 바로 양심의 힘이다. 그러기에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뉘우치고 속죄하여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며칠 전에 부춘산에서 내려오는 후배를 만났다. 그는 몇 해 전 독서동아리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는 잃어버린 지갑 이야기를 꺼냈다. 세 번째 잃은 지갑이라고 했다. 모두 부춘산 등산하다가 잃었고, 잃어버렸다가 두 번을 찾은 지갑인데 이번만은 찾을 수 없을 듯하다고 했다. 지갑 안에는 얼마의 돈과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가 한 장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잘되었다고도 했다. 지갑을 잃고서도 잘되었다고 했다. 의아하여 쳐다보는 나에게 그는 자기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오래전에 지갑을 주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순간적인 욕심으로 몇만 원의 돈을 꺼내고 지갑은 우체통에 넣었다고 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속죄하는 마음으로 길가에 버려진 휴지를 주워 쓰레기 수거함에 넣는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손에 종량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나니 카드와 주민등록증 같은 걸 재 발급받으려면 좀 번거롭기는 하지만, 지은 죄를 갚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문득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생각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나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제자 한 사람이 어느 날 신발을 한 켤레 사고 난 후에 주인에게 돈은 내일 주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제자가 돈을 들고 찾아가니 주인이 죽어 있었다. 공짜로 신발이 생겼다고 속으로 좋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고 양심이 매일 괴롭혔다. 공짜 같은 신발이 흉측(凶測)한 가시 같았다. 결국 그는 돈을 들고 새로 주인이 된 사람을 찾아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었지만, 내게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후배의 말을 들으며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치부를 그렇게 드러낸다는 것도, 대단한 용기려니와 한때의 잘못을 평생 가슴에 담아 무언가 보상하려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살았는가? 지갑을 주워본 적은 없지만, 몇만 원은 길에서 주워보았다. 돌려줄 길이 없다면 응당 경찰에 맡겨야 했었다. 그런데 그냥 수지맞았다고 마냥 기뻐하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그보다 더한 허물로 양심의 소리를 외면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시 양심의 나침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양심이 소리칠 때마다 돌이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후배처럼 양심의 나침판을 바라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혼탁한 물이라도 끊임없이 공급되는 생수 앞에서는 맑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양심의 나침판이 제대로 작동하여 깨끗한 동네, 행복한 사회, 양심이 살아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거철이다. 능력보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선한 청지기가 선출되기를 염원해본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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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3
  • 조합장이 조합원에게 과일 선물한 것은 위법
    [요지] 지역농협 조합장이 농협의 예산으로 일부 조합원들에게 추석선물을 제공한 것이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기부행위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직무상 행위로서 처벌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지 (대법원 2022. 2. 24. 선고 2020도17430 판결) [사례] 지역농협 조합장이 추석선물 명목으로 일부 조합원들에게 과일을 제공하고 자신이 주최하는 비공식 간담회에 참석한 전임조합장에게 과일을 제공하면서, 그 구매 비용을 지역농협의 예산으로 집행한 것이 직무상 행위로 보아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이라고 한다) 제33조 제1항 제1호 나.목이 규정한 ‘직무상의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조합장의 재임 중 기부행위금지 위반을 처벌하는 같은 법 제59조(기부행위금지 등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반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이 없게 되는바, 위 ‘직무상의 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위탁선거법 제33조 제1항 제1호 나.목이 규정한 바와 같이 위탁단체가 금전·물품(이하 ‘금품’이라고 한다)을 그 위탁단체의 명의로 제공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금품의 제공은 위탁단체의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에 따라 집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은 법령이나 정관 등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위탁단체가 금품을 그 위탁단체의 명의로 제공하는 것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대상자 선정과 그 집행과정에서 사전계획·내부결재나 사후보고 등 위탁단체 내부의 공식적 절차를 거쳤는지, 금품 제공이 위탁단체의 사업수행과 관련성이 있는지, 금품 제공 당시 제공의 주체가 위탁단체임을 밝혔는지, 수령자가 금품 제공의 주체를 위탁단체로 인식했는지, 금품의 제공 여부는 물론 제공된 금품의 종류와 가액·제공 방식 등에 관해 기존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관행이 있었는지, 그밖에 금품 제공에 이른 동기와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단순히 제공된 금품이 위탁단체의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에 따라 집행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위와 같은 ‘직무상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특히 직무행위의 외관을 빌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금품제공의 효과를 위탁단체의 대표자 개인에게 돌리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에는 ‘직무상의 행위’로 볼 수 없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서 대법원은 이 사안에서 조합장인 피고인이 조합원 등에게 과일을 제공한 행위가 직무상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금지되는 조합장의 기부행위에 해당하므로 위탁선거법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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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3
  • 버스회사의 저상버스 도입 의무는?
    [요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버스회사에서 저상버스를 도입할 의무가 있는지 (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다217421 판결) [사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원고들이 시외버스와 광역형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고,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위반의 차별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위자료의 지급과 차별행위의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청구한 사안. [대법원 판단]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도록 제46조 제1항에서 차별행위를 한 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제48조 제2항에서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제48조 제3항은 법원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그 이행 기간을 밝히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늦어지는 기간에 따라 일정한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민사집행법 제261조의 간접강제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각 규정의 내용과 적극적 조치 판결 제도를 도입한 입법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적극적 조치 청구 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는 피고가 차별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는 경우 원고의 청구에 따라 차별행위의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그 적극적 조치의 내용과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할 때 폭넓은 재량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다만, 법원이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때에도 원고와 피고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공익과 사익을 종합적으로 비교ㆍ형량하여야 한다. 사인(私人)인 피고에게 재정 부담을 지우는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때는 피고의 재정상태, 재정 부담의 정도, 피고가 적극적 조치 의무를 이행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비롯한 인적ㆍ물적 지원 규모, 상대적으로 재정 부담이 적은 대체 수단이 있는지, 피고가 차별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정도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제4항, 제8항,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3조 제2항은 교통사업자가 장애인에게 제공하여야 하는 정당한 편의의 내용은 교통약자법 시행령 [별표 2](이하 ‘이 사건 별표’라 한다)에서 정한 바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별표는 교통사업자가 시외버스와 시내버스(좌석형)에 설치하여야 하는 이동편의시설로 안내방송, 문자안내판, 목적지 표지, 휠체어 탑승설비, 교통약자용 좌석 및 장애인접근가능표시 등을 열거하고 있다. 위와 같은 관련 법령의 규정 체계 및 법령상 명시적인 근거 없이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교통사업자가 제공하여야 하는 정당한 편의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이 사건 별표에서 열거한 바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 사건 별표는 승하차 편의를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였을 뿐 저상버스의 도입에 관한 규정은 없다. 따라서 그 도입 여부에 관한 입법상 논의의 필요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행 법령의 해석상으로는 이 사건 피고 버스회사들과 같이 시외버스나 광역형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교통사업자에게 저상버스를 제공할 의무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위 판단기준에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해석상 피고 버스회사들은 원고들에게 정당한 편의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피고 버스회사들이 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피고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ㆍ현실적인 개연성이 있는 노선, 피고 버스회사들의 자산ㆍ자본ㆍ부채, 현금 보유액이나 향후 예상영업이익 등 재정상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과 그 실현 가능성, 피고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비롯한 인적ㆍ물적 지원 규모 등을 심리하여 이를 토대로 이익형량을 하지 아니한 채 피고 버스회사들에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도록 명하는 것은 적극적 조치 판결에 관한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령은 승하차 편의를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였을 뿐 저상버스의 도입에 관한 규정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교통사업자에게 저상버스 제공 의무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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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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