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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의 발견 -마을기행] 양길2리 사람들
    팔봉산의 멋들어진 자락아래 자리 잡은 양길2리는 현재 77가구 179명(남 89, 여 90명)이 살고 있다. 이 중 60여명이 넘는 사람이 노인회원일 만큼 고령화 되어있다. 시골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이곳은 벼 농사를 많이 짓고 있으며 마을 주민간 화합이 좋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마을 자랑을 늘어놨다. 또 아쉬운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 성용복(69) 노인회장 =“팔봉산이 자랑할 것이지 뭐가 있겠어. 어제부터 담배 안피기 운동하고 있는 것도 자랑거리지. 예전에는 팔봉산 3봉에 오르면 맑은 날은 인천까지 보일 정도였지. 그러나 지금은 수돗물 조차 마실 수 없으니 그 것좀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어” ■ 안찬혁(52) 새마을지도자 =“경치 좋고 화목한 마을입니다. 청년들은 여기 주유소에 자주 모이는데 모여서 농사 정보도 주고받고 있죠. 이 마을이 고향인데 친구들 다 나가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인쇄관련 기술도 갖고 있는데 그냥 여기 뿌리 박아 살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살 수 없으니까” ■ 이애순(59) 부녀회장 =“큰 자식이 35살이니까 여기서 산지도 그 만큼의 시간이 흘렀네요. 처음에 여기 오니까 막 전기가 들어와 있더라구요.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는데 남편이 새마을지도자여서 저도 부녀회 총무를 했는데 그대로 마을일만 계속 35년 넘게 해버렸어요” ■ 이강수(75) 씨 =“이번에 팔봉산 권역발전이 되면서 도농센터가 들어갔는데 마을 주민들이 1/3값으로 땅을 거의 기증하다시피 했어요. 희생정신이 대단하죠. 팔봉산이 잘 되면 우리 뿐 아니라 팔봉, 아니 서산까지 발전하는 거예요. 팔봉산을 잘 가꿔야 합니다” ■ 전완식(59) 씨 =“이 자리에서만 20대부터 30년이 넘게 이발을 해 왔어요 팔봉에 옛 모습 그대로의 이발소는 여기뿐일 겁니다. 옛날에는 이발비가 1천원 정도 했는데 요즘엔 7천원 해요. 명절 때 되면 어르신들 와서 머리 자르면 옆에서 윷놀이도 하고 그랬지요” ■ 지선하(53) 번영회장 =“옛날에 팔봉산에 있던 천태사, 운양사 같은데 올라가서 떡도 얻어먹고 그랬는데 이젠 다 없어졌죠. 학교가 가까워서 옛날에 점심 먹으러 집으로 뛰어가고 그랬습니다”※지 회장은 머리모양 때문인지 ‘팔봉산 도사’로 불린다. ■ 장정자(59) 씨 =“안면도에서 시집와서 3남매를 키웠어요. 안면도에선 바다 일을 했는데 여기서 농사일 하려니까 벼베는 것도, 모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죠. 지금 막내딸이 성균관대 미술대학 나와서 대구에서 중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요 뒷바라지 힘들었지만 뿌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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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02
  • 우리마을 지킴이(52) 상홍3리 박현신 이장||‘이장 30년+면 회장 15년+시 협의회장 3년’
    마을 이장들의 노고는 익히 알려져 있다. 거기에 읍면동별 리ㆍ통장단 협의회장까지 한다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야 한다. 이번 호 의 주인공은 거기에 하나를 더 얹었다. 바로 서산시 리ㆍ통장단 협의회 회장인 음암면 상홍3리 박현신 이장이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마을일, 면일, 시일 까지 모두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오로지 봉사정신 하나로 보내온 시간은 이장 30년, 음암면 이장단 회장 15년, 시 협의회장 3년이다. 박 이장이 처음 이장을 맡았을 때는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찾아다녔다. 지금도 변함없는 그의 열정으로 상홍3리는 살기 좋은 마을로 거듭났다. 그러한 열정을 높게 산 음암면 이장단은 그를 이장단 회장에 추대했고 이장단 회장을 하면서는 음암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늘 솔선수범 하여 일 하는 그에게 음암의 이장들은 15년간 지지를 보내왔다. 그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지난 2006년 서산시 리ㆍ통장단협의회자에까지 추대된 것이다. 협의회장에 오른 이후 박 회장이 가장 노력을 쏟아온 것은 서산시 리ㆍ통장단들의 권익증진이다. 그는 별다른 보상 없이 사재까지 털어가며 늘 고생만 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조례까지 뒤져가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회장에 오르기 전에도 각 읍면동 협의회장 들과 함께 부단히 노력하여 이장의 임기를 3년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노하우가 쌓일 만하면 금새 바뀌어버리는 현실에서 필수적인 조치였다. 또한 밤낮없이 돌아다니며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장단을 위해 산재보험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건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2005년 시에서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다. 늘 바쁜 하루하루를 봉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마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리ㆍ통장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 회장, 앞으로 더 바쁠 일만 가득하지만 언제나 그가 활기찬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은 봉사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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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02
  • 서산의 교육현장(12) - 언암 초등학교||“과학 명문 학교로의 도약은 멈추지 않는다”
    해미 20전투비행단 옆에는 아담한 초등학교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황금색 잔디밭을 앞에 두고 산에 감겨있는 아름다운 학교, 이곳 작은 시골학교에서 전국 최고의 과학영재들이 자라나고 있다. 해미면 기지리에 위치한 언암초등학교(교장 한기송). 고작 13개 학급에 불과한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쑥쑥 배출되고 있다. 언암초등학교 전경 ◆ 도약하는 과학명문 언암초등학교는 지난 1949년 9월 30일 개교했다. 한기송 교장을 비롯하여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예전 이 학교가 있던 곳은 그 이전에도 교육기관이 있었던 곳으로 주로 지역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다가 고학년이 되면 해미초등학교 등 인근 초등학교로 보냈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된 것은 1991년도. 1999년 공군 제 20전투 비행단과 자매결연을 맺고 본격적으로 공군부대 자녀들의 양육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한곳에 정착하기가 어려운 군인의 특성에 맞춰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고 학업분위기를 조성하여 바른 사람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1년 3월에는 농어촌 거점학교로 지정받아 2년간 운영하였고 2003년에는 평생교육시범학교를 운영했으며 지난 2007년 까지 모두 5,232명의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지금은 유치원 2학급을 포함하여 15학급 371명이 23명의 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고 있고 9명의 직원들이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특히 최근에 과학명문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상일 교사의 지도하에 지난 2006년 정식 출범한 과학동아리 ‘하늘로 우주로’는 지난해에 벌써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는데 6학년 양희문 군이 지난 제53회 전국과학전람회의 학생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6학년 권현정, 신재영 어린이가 제15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 활동 발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 4대 교육목표 설정 이러한 성과에는 우수한 학생들과 지도교사의 열의는 물론이고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목표 설정에도 원인이 있다. 이 학교는 4대 교육목표를 두고 실력과 인성이 조화된 학생들을 배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첫 번째 목표는 ‘스스로 공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학생’이다. 기초 과학교육에 충실하고 정보화 시대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를 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 향상으로 학력을 다지는 목적이 있다. 생활 속에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학교 앞 작은 화단을 조성해 갖가지 식물을 키우고 학교 옆에 작은 동물원을 만들어 칠면조, 오리, 토끼 등 짐승들을 키우며 아이들의 정서를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한다. 스스로 키운 호기심은 선생님들과 질문 또는 토의를 거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는 한편 문제해결의 성취감을 맛보게 함으로서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을 권장한다. 두 번째 목표는 ‘예절이 바르고 서로 도우며 자연을 아끼는 학생’이다. 학업습득능력이 좋아도 협동심, 배려심이 없으면 그 재능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하여 예절 바른 아이들을 만드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선생님들이 직접 아이들의 예절을 지도하고 인근 해미향교에서 열리는 예절교실에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 학교는 ‘인사잘하는 학교’로 불리고 있다. 또한 안전 의식을 고취해 위험 인지력 강화와 함께 기초질서를 준수 할 수 있도록 한다. 몇 년째 시행해 오고 있는 자전거 면허증 제도는 아이들에게 기초 교통질서와 법규를 준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안전장비를 갖춰오지 않거나 면허증 배부시 주지시켰던 사항을 위반하면 즉각 벌점을 주거나 면허를 정지한다. 또한 학교 주변에 넓게 펼쳐진 농촌지역에 체험학습을 함으로서 환경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환경 보전의식을 높인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4일에 제3회 생활예절 실천문화 백일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세 번째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학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 역사․문화를 바로 알고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한편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 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 마지막 목표는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생’이다. 학생면담 등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소질을 계발하여 진로 의식을 높이고 체육 교육의 정상화로 강건한 심신을 기른다. 또한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생활체육도 강화하여 그 효과를 높이고 있다. ◆ 자립교육 시스템 95%이상이 공군부대 자녀로 구성되어 있는 이 학교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으로 학생들이 모두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예의가 바르다. 또한 상대적으로 부모의 학교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는데다 공군부대에서 자체 운영하는 공부방 시스템으로 아이들의 학업능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쯤 되면 교사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이 학교 교사들의 열의 또한 상당하다. 교육청, 학교의 지시가 따로 있지 않아도 스스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행하고 있다. 선생님 각각의 취미와 기호에 따라 스스로 과학동아리, 학교 문고 등을 조직하고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언제나 더 배워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려는 이 학교 선생님들의 순수한 교육열정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큰 힘이 되고 있다. 학생들 또한 스스로 공부방에서 궁금한 것을 토의하고 모르면 선생님께 물어보는 스스로 학습에 익숙하다. 이런 재능 있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이 학교를 명문학교로 만들어 가고 있다. 정상근 기자 ▲언암초등학교는 올 해도 과학명문으로 도약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기송 교장 인터뷰 교육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한기송 교장 “교육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돼” 37년 교직생활 거의 대부분을 해미에서 보냈다는 한기송 교장. 그는 지난해 9월 5일 이 학교로 부임했다. 해미출신으로 서산지역 이외에선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는 누구보다 지역인재 육성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다음은 한 교장과의 일문일답 -과학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비결은? =대부분은 공군가족 자녀들이라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더욱이 이상호 선생님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운 도면도 척척 그려내고 여러 가지 재료로 비행기 같은 걸 잘 만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공군부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 군 자녀와 일반 학생들간의 융화문제는? =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모두 예의가 바르고 인사성이 밝다. 이 인사성이 밝다는게 우리학교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자녀, 일반 학생들 모두 잘 어울리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다. 3~4% 정도 되는 학생들이기에 선생님들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 교육관은? = 교육은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잠재능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금방 바뀌는 교육은 좋지 않다. 백년지대계 까진 안되더라도 아이들이 20대에 자기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 올 해 계획은? = 도서를 더 확보해서 도서관 학습이 잘 이루어지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회화중심으로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작년에 해보았던 영어말하기 대회를 올해 2차례 늘려서 할 예정이다. 또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 등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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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02
  • 덤ㆍ에누리에 장바구니가 ‘가득’|| 서산의 힘을 키우자!
    ‘설 명절은 재래시장에서…’대형마트보다 싸다 “예년 같으면 설 한 달 전부터 물건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상가마다 물건들이 쌓여있을 텐데 올해는 경기가 워낙 나쁘다보니 미리 준비해 놓은 물건이 평년의 1/3 수준 정도입니다. 설이 코앞인데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요” 서산 최대의 재래시장인 동부시장에서만 30여년째 의류업을 하고 있는 최교석 씨는 설대목을 맞았지만 아직까지도 썰렁한 시장분위기에 한숨부터 내쉰다. 최씨는 그러나 “통상 명절 1주일을 앞두고야 명절 채비를 나서는 관행상 이번주부터 명절특수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다”며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또 다른 상인 홍일향 씨는 “아직까지 설 분위기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안 앞바다 유류유출 사고 이후 끊겼던 소비자들이 발길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며 “이번 명절을 통해 다시금 옛날의 명성을 되찾아 지속적인 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산물상 김남규 씨는 “20년이 넘도록 시장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평생 이런 불경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 “설 20일 전 부터 모든 수산물은 없어서 못 팔았는데 이제 하루에 열 마리 팔기도 힘들다”고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전문 쇼핑몰이나 TV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설날 용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A인터넷 쇼핑몰의 경우 50 % 할인 가격으로 내놓은 상주 곶감과 청송 사과 등은 일찌감치 동났고, 30만 원 짜리 제기세트는 10만 원대로 대폭 낮춰 하루 평균 50세트씩 판매되고 있다. B TV 홈쇼핑이 설날 효도 선물로 내놓은 홍삼원액세트는 방송 10분 만에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끈끈한 사람냄새와 들뜬 분위기로 제일 먼저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재래시장. 이제 대형마트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가세해 성수품 시장을 빼앗아 가면서 재래시장은 고사직전까지 몰리게 되면서 동부시장은 지금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환경개선 작업이 완료되는 오는 9월 경에는 넓은 주차장은 물론 상설 이벤트 행사를 개최 할 수 있는 쌈지공원이 조성된다. 또 시장 이용 편의를 위한 비가림 시설과 공중화장실도 설치된다. 동부시장 상인들은 이런 대 변화를 앞두고 마지막 맞는 명절특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산시와 서산상공회의소도 이같은 재래시장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한다. 유상곤 시장이 최근 직접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접하고 재래시장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특히 서산상공회의소는 최근 관공서 및 각 기관, 단체 등에 회장 명의의 협조 서한을 보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한편, 1월 현재 한 소비자단체에서 각 소매업태를 대상으로 설 제수용품 구입비용을 조사한 결과 재래시장이 15만4548원으로 다른 유통업체에 비해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마트나 슈퍼보다도 싸고, 특히 백화점(27만8587원) 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한 비용이다. 최연용 동부시장 상인회장은 “동부시장이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대형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환경개선사업에 돌입했다”며 “이같은 시장상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행정당국과 서산상공회의소에서 적극 협력하고 있으므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부시장 상인들이 오는 9월 환경개선사업 완료를 앞두고 마지막 맞는 설 특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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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8
  • [서산의 발견-마을기행 12] 고북면 가구2리||‘고북 알타리 무 원산지이자 주산지’
    고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구리는 ‘이 마을에 점점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구2리는 간재말로 불렸는데 서남향인 간방으로 향해있어 생겨난 지명이다. 옛 적엔 금광이 있었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금광 대신 유명한 황토 알타리 무 밭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마을 한쪽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다른 한 쪽은 병풍 같은 산에 둘러쳐져 있는 절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65가구 23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알타리 무, 연암오이, 화훼, 배추, 인삼, 양잠, 동충하초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쌀농사도 짓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고북면에서도 밭의 넓이가 가장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이 넓고 사람 수도 많지만 주민간 단합심이 유달리 좋아 면민 체육대회 각 종목에서 수차례 상을 받아 왔다. 또 예전에 주민들은 농한기에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지도로 북과 장구채를 잡고 신명을 즐겼으나 최근 시설작물이 늘어나면서 예전에 비해 연습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북과 장구를 잡으면 옛 실력을 뿜어져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마을 잔치를 더욱 흥겹게 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면 행사에서도 초청되어 풍물을 연주할 만큼 그 실력과 재주가 높이 평가되었다.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일하는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농한기 때도 쉴 틈 없이 소득 작물을 재배하나 가끔 날씨가 많이 추운 날엔 마을회관에 모여 둘러앉아 환담을 나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 간에 친하고 막힘이 없어 서로 음식을 해와 나눠먹고 가끔 노인 회관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민들 모두 순박하고 정감 있어 마을을 찾은 손님을 반기고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식혜 한 잔, 커피 한 잔도 정성을 쏟아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따뜻함이 있다. 마을 뒤편의 산세가 좋고 황토가 좋아 질 좋은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 데다 주민들도 친절해 그야말로 살 맛 나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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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고북면 가구2리 사람들
    낮은 언덕과 높은 산으로 둘러져 있어 언덕을 넘어 마을로 들어오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전경 자체가 아름답고 공기는 상쾌하며 평화로움이 넘쳐흐른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고북면 황토 알타리 무의 원산지이자 주산지이다. 소득 작물 재배에 여념이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임승조(65) 이장 =“이곳은 황토 알타리 무의 원조마을입니다. 고북면 31개 부락 중 이 곳이 밭이 제일 많죠. 마을이 아름답고 주민들끼리 화합과 단합이 정말 잘 되고 있어요, 마을이 넓은 만큼 주민들 마음도 넓습니다” ■ 박동호(55) 새마을지도자 =“화훼, 알타리작목반, 연암오이 작목반, 배추, 인삼, 양잠 등 다양한 시설작물을 하고 있어요. 가공도 마을에서 하며 농가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마을 주민들끼리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충하초를 재배하는 농가도 있어요” ■ 박옥란(65) 부녀회장 =“오래 전 초등학교 한 선생님의 지도로 마을에 풍물단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잠이 안 올 때면 가끔 예전에 면에서 풍물공연을 했을 때의 사진을 보는데 얼마나 이쁘고 좋은지 몰라요” ■ 김기매(76)씨 =“마을 주민들끼리 아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마을 회관이 좀 오래 되었지만 동네 사랑방인 이곳에 모여 정담 있는 얘기가 오가고 있어요, 농한기 때도 바쁘지만 이렇게 모여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 장정순(80)씨 =“마을에서 의사가 두 명이나 나왔습니다. 터도 좋고 살기도 좋은 마을이예요. 공기도 맑고 물도 좋고, 작물도 잘 자랍니다. 한 번 살다보면 정말 계속 살고 싶어 질 거예요” ■ 이춘자(66)씨 =“좋은 흙에서 자란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어른들 모두 건강하고 얼굴이 밝습니다. 특히 고북 알타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작물인데 몸에도 좋아서 아주 인기가 좋아요 그 외에도 자랑 할 것이 많은 부락입니다” ■ 최지환(81)씨 =“주민들끼리 사이도 좋고 살기도 좋고, 다 좋은 마을이예요 딱히 부촌이라고 할 순 없지만 빈촌도 아닌 그냥 중촌이란 말이 좋겠네요, 좋은 작물들도 나고 경치도 좋고 그래서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 김영희(78)씨 =“이장님을 비롯해서 마을지도자님, 노인회장님, 부녀회장님 모두가 너무 열심히 일해주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마을을 잘 이끌어주시니 마을 전체에 활기가 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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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우리지역 문화재탐방(12) 송곡서원||“서산 정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 기리기 위해 설립”
    조선시대에는 중등 교육과정을 책임진 교육기관이 두 개가 있었다. 바로 향교와 서원이다. 향교가 성균관에 의해 설립된 국립 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이다. 두 기관 모두 배움이 필요한 양반, 평민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선현과 대성현에 대한 제를 올리고 지방 백성들의 미풍양속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서산지역 대표적인 서원은 서산 정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인지면 애정리 ‘송곡서원’으로 숙종 20년(1694)에 세운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해체되었다가 1910년 유양목 등 유림이 복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향교와 서원의 차이 향교와 서원은 앞서 설명했듯이 설립주체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원은 16세기 사림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데 초기에는 선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국립 기관인 향교가 과거급제를 통해 출세만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교육자들의 질도 점차 낮아져 뜻있는 선비들이 직접 후학을 양성하고자 서원에서 교육을 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서원으로 꼽히는 도산서원은 이황의 학문체계를 이어받는 전문 연구기관으로 발전한 서원이다. 이처럼 서원에서는 성현이나 학자들의 사상체계를 연구하고 진정한 학자가 되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곳이 되었다. 그러한 서원의 특성상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주요 모태가 되기도 하였는데 국정철학의 방향을 바탕으로 한 지금의 정당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나름 선진화된 정치형태가 붕당정치이다. 이후 붕당의 세력가들의 과도한 권력욕으로 패거리 문화로 변모되긴 했지만 초기 붕당정치의 모습은 왕과 함께 하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국정을 발전시키는 요인이었다. 서원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향교는 관학이기 때문에 백성들과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설립해왔다. 그러나 서원은 학자가 개인적으로 세우기 때문에 산수가 빼어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아왔는데 송곡서원 역시 그 주변경치가 빼어나다. 학문연구기관으로 지역에 자리 잡아 왔던 서원들은 그러나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이후 상당수가 철폐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일반 백성들에게 돈과 현물을 걷었던 서원들은 그렇게 하나 둘 없어져 갔다. 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하나 둘씩 복원이 되어가면서 그 곳의 역할도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유교의 산지라는 이유로 경제발전기에 그 위상이 크게 저하되었지만 지금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전통문화 유지라는 순기능을 중심으로 차츰 지역주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 9명의 선비 위패 모셔져 송곡서원에는 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방택(柳方澤), 윤황(尹璜), 유백유(柳伯濡), 유백순(柳泊淳), 유윤(柳潤), 김적(金積), 김위재(金偉材) 등 9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최초로 봉안된 정신보는 송나라 절강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 태조 때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원나라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소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서산 간월도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송나라에서 벼슬을 지냈으나 간월도에서 고기잡이를 마다하지 않는 절개있는 선비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 후 대사동으로 이사온 뒤에도 송나라 생각을 하며 스스로 축조한 망운대에 올라 조석으로 곡하며 울었다고 전해지며 나라에서 충신문까지 세워주었다고 한다. 정인경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학업에 열중하여 열 두 살에 두 가지 시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재이다. 몽고병이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적병을 내쫓아 공신으로 벼슬길에 나갔다고 한다. 이후 정승에 까지 오르고 양열이란 시호를 받았다. 유방택은 서산의 구치산 아래 양리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천성이 인자하고 너그럽고 용모가 온순하고 그 행동이 예의바른데다 천문에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공민왕 때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로 수도를 옮겼는데 달력이 없자 그가 달력을 만들어 전했는데 그 정확도가 착오하나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멸망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태조가 연호를 바꾸기 위해 사람을 내려 보내 서운관 제조에 임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호를 정한 후 다시 물러나 낙향해 옛 고읍을 바라보며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고 하며 임종 직전 아들들을 불러 나는 고려 사람이니 봉분을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윤황은 고려 때 관직에 있던 사람으로 조선이 수립된 후 송악산 두문동에서 두문불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태종은 그의 아들을 불러 관직을 내릴 만큼 그를 존경했는데 그럼에도 결코 조선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는 충신중의 충신이다. 사후 태종의 특명으로 당진현 관정리에 장사를 지내며 호상을 치루었다. 유백유는 문과 장원 후 학자로 그 이름을 높였다. 그는 명성 지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누구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곧은 선비였으며 학식이 깊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유백순은 유방택의 아들로 효성이 깊어 안에서는 효경지행이요 밖에서는 충성지절이란 말로 알려졌다. 당시 그보다 뛰어난 학사는 없다고 알려질 만큼 유명했으며 바른말을 잘하여 개국공신으로 서슬 퍼렇던 정도전에게 미움을 샀다. 이후 금헌 유방택이 은거에 들어가자 함께 은거하기 시작했으며 3년상을 마친 후 평복을 입고 호산을 거닐며 인간사와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이에 학자들이 그를 존경해 위촌선생이라고 칭하며 따랐다. 유윤역시 서산출신으로 단종이 쫓겨난 후 세상과 연을 끊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뛰어난 외교 전략가였지만 정적에 의해 임금의 자리에 쫓겨나 폭군으로만 알려져 왔던 광해군이 특히 그를 좋아하여 그의 집에 직접 무동처사란 글씨를 써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는 유훈을 통해 벼슬을 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며 옛 주군에게 절개를 지켰고 이에 그의 자식들은 벼슬을 하지 않았다. 김적은 사마 생원시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벼슬을 시작해 3년 만에 그만두고 낙향했다. 서산에서 초가집을 세워 먹고 자며 자손들을 공부시키고 농사일도 가르치며 성실하게 살았다. 손님은 귀천 없이 모두 반겼으며 스스로 단구자라 칭하고 단구대에서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이후 인조반정이 성공해 그를 벼슬에 불렀지만 역시 거절하고 지방수령들이 찾아와도 감사의 편지만 전했을 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후덕함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위재는 1721년 나라의 어지러움이 있자 서산 화변촌으로 내려와 나무와 돌을 친구 삼아 수양하며 책을 안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과 많은 접촉은 없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한눈에 현인임을 알아보았고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나 군자로 칭송받았다. ◆ 매년 음력2월, 8월 말에 제 올려 절개의 상징인 서산의 아홉 선비가 모셔져 있는 송곡서원은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 옆에 자리 잡아 수호신과 같이 꼿꼿이 서있는 향나무는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내려와서 심었다고 전해지는 고목이다. 입구에 잘 정돈된 조경수와 주변 넓은 소나무 밭은 그 자체가 선비의 단아함과 절개를 닮았다. 건물은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동재(東齋), 서재(西齋)로 구성되어 있고 위패는 사우에 모셔져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팔작지붕이 얹어졌다.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말 정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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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 모집
    서산타임즈가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을 모집합니다. ‘끝없는 서산 사랑, 건강한 지역신문’이란 기치아래 탄생한 서산타임즈는 그동안 지면에서 소외됐던 어린이들의 푸른 세계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어린이기자단’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는 각 초등학교 또는 가정 등 어린이들의 생활반경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어린이들만의 꾸밈없는 시선으로 15만 서산시민에게 생생히 전달할 것입니다. 어린이기자가 쓴 모든 기사는 매월 1차례씩 어린이기자단 섹션면(2~4면)을 통해 보도됩니다. 서산타임즈는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으로 선정된 학생들에게 본사 기자 및 외부강사를 초빙해 글짓기, NIE, 특별강연 등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답사와 캠프 등 단체활동을 통한 인성교육도 이뤄지게됩니다. 어린이들에게는‘기억할만한 추억’이 되고, 독자들에게는 ‘동심으로의 초대’가 될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에 지역 초등학생들의 많은 응모바랍니다.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 모집 모집인원: 00명 모집대상: 서산지역 초등학생 4~6학년 모집기간: 2008년 1월 24일~2008년 2월 25일 제출서류: 학교장 추천서, 자기소개서, 본인사진 4장 제출처 및 문의: 서산시 동문동 366-5 서산타임즈 편집국 전화 666-0350 팩스 666-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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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 총선 입지자 자료 접수합니다.
    서산타임즈는 오는 4월9일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 유권자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총선 출마 예정인 입지자들의 주요 경력 및 학력, 출마의 변 등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현직, 선거구, 소속정당, 생년월일, 학력 및 경력(주요 경력 3∼4개), 명함판 사진 등을 보내주시면 본보에 게재해 드립니다.(보내실 곳:byung10e@hanmail.net, fax:666-0360 문의전화:66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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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 제3대 회장에 정영권씨 재 선출||본지 자문위원협의회 정기총회, 운영규정 개정ㆍ임원선출
    서산타임즈 자문위원협의회 제3대 회장에 정영권씨가 재 추대됐다. 또 부회장에 심걸섭, 운영위원장에 최송산, 편집위원장에 서종은, 총무에 김원배씨를 각각 선임했다. 본지 자문위원협의회는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본사 회의실에서 본지 이기우 발행인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인사회를 겸한 2007년도 결산 정기총회를 열고 이 같이 임원 선출을 마쳤다. 이날 총회에서는 분과위원회 신설을 주 내용으로하는 자문위원회 운영규칙 중 일부 조항을 개정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2개의 분과 위원장을 새로 선출했으며, 각 분과위원회 간사는 분과위원장의 추천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또 이날 자문위원들은 1천400만원의 새해예산과 함께 ▲국내외 연수회 참가 ▲신문사 발전 방안 제시 등의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서산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으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데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정영권 회장은 “서산타임즈는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지역의 대표언론으로서 무궁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며 “항상 초심을 안고 지역사회 목탁 역할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기우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지역사회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시민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 모두 혼연일체가 돼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눈과 발이 되어 서산의 밝은 미래를 밝혀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지난 17일 자문위원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심걸섭 부위원장이 회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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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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