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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덤ㆍ에누리에 장바구니가 ‘가득’|| 서산의 힘을 키우자!
    ‘설 명절은 재래시장에서…’대형마트보다 싸다 “예년 같으면 설 한 달 전부터 물건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상가마다 물건들이 쌓여있을 텐데 올해는 경기가 워낙 나쁘다보니 미리 준비해 놓은 물건이 평년의 1/3 수준 정도입니다. 설이 코앞인데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요” 서산 최대의 재래시장인 동부시장에서만 30여년째 의류업을 하고 있는 최교석 씨는 설대목을 맞았지만 아직까지도 썰렁한 시장분위기에 한숨부터 내쉰다. 최씨는 그러나 “통상 명절 1주일을 앞두고야 명절 채비를 나서는 관행상 이번주부터 명절특수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다”며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또 다른 상인 홍일향 씨는 “아직까지 설 분위기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안 앞바다 유류유출 사고 이후 끊겼던 소비자들이 발길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며 “이번 명절을 통해 다시금 옛날의 명성을 되찾아 지속적인 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산물상 김남규 씨는 “20년이 넘도록 시장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평생 이런 불경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 “설 20일 전 부터 모든 수산물은 없어서 못 팔았는데 이제 하루에 열 마리 팔기도 힘들다”고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전문 쇼핑몰이나 TV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설날 용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A인터넷 쇼핑몰의 경우 50 % 할인 가격으로 내놓은 상주 곶감과 청송 사과 등은 일찌감치 동났고, 30만 원 짜리 제기세트는 10만 원대로 대폭 낮춰 하루 평균 50세트씩 판매되고 있다. B TV 홈쇼핑이 설날 효도 선물로 내놓은 홍삼원액세트는 방송 10분 만에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끈끈한 사람냄새와 들뜬 분위기로 제일 먼저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재래시장. 이제 대형마트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가세해 성수품 시장을 빼앗아 가면서 재래시장은 고사직전까지 몰리게 되면서 동부시장은 지금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환경개선 작업이 완료되는 오는 9월 경에는 넓은 주차장은 물론 상설 이벤트 행사를 개최 할 수 있는 쌈지공원이 조성된다. 또 시장 이용 편의를 위한 비가림 시설과 공중화장실도 설치된다. 동부시장 상인들은 이런 대 변화를 앞두고 마지막 맞는 명절특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산시와 서산상공회의소도 이같은 재래시장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한다. 유상곤 시장이 최근 직접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접하고 재래시장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특히 서산상공회의소는 최근 관공서 및 각 기관, 단체 등에 회장 명의의 협조 서한을 보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한편, 1월 현재 한 소비자단체에서 각 소매업태를 대상으로 설 제수용품 구입비용을 조사한 결과 재래시장이 15만4548원으로 다른 유통업체에 비해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마트나 슈퍼보다도 싸고, 특히 백화점(27만8587원) 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한 비용이다. 최연용 동부시장 상인회장은 “동부시장이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대형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환경개선사업에 돌입했다”며 “이같은 시장상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행정당국과 서산상공회의소에서 적극 협력하고 있으므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부시장 상인들이 오는 9월 환경개선사업 완료를 앞두고 마지막 맞는 설 특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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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8
  • [서산의 발견-마을기행 12] 고북면 가구2리||‘고북 알타리 무 원산지이자 주산지’
    고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구리는 ‘이 마을에 점점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구2리는 간재말로 불렸는데 서남향인 간방으로 향해있어 생겨난 지명이다. 옛 적엔 금광이 있었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금광 대신 유명한 황토 알타리 무 밭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마을 한쪽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다른 한 쪽은 병풍 같은 산에 둘러쳐져 있는 절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65가구 23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알타리 무, 연암오이, 화훼, 배추, 인삼, 양잠, 동충하초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쌀농사도 짓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고북면에서도 밭의 넓이가 가장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이 넓고 사람 수도 많지만 주민간 단합심이 유달리 좋아 면민 체육대회 각 종목에서 수차례 상을 받아 왔다. 또 예전에 주민들은 농한기에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지도로 북과 장구채를 잡고 신명을 즐겼으나 최근 시설작물이 늘어나면서 예전에 비해 연습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북과 장구를 잡으면 옛 실력을 뿜어져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마을 잔치를 더욱 흥겹게 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면 행사에서도 초청되어 풍물을 연주할 만큼 그 실력과 재주가 높이 평가되었다.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일하는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농한기 때도 쉴 틈 없이 소득 작물을 재배하나 가끔 날씨가 많이 추운 날엔 마을회관에 모여 둘러앉아 환담을 나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 간에 친하고 막힘이 없어 서로 음식을 해와 나눠먹고 가끔 노인 회관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민들 모두 순박하고 정감 있어 마을을 찾은 손님을 반기고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식혜 한 잔, 커피 한 잔도 정성을 쏟아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따뜻함이 있다. 마을 뒤편의 산세가 좋고 황토가 좋아 질 좋은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 데다 주민들도 친절해 그야말로 살 맛 나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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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고북면 가구2리 사람들
    낮은 언덕과 높은 산으로 둘러져 있어 언덕을 넘어 마을로 들어오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전경 자체가 아름답고 공기는 상쾌하며 평화로움이 넘쳐흐른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고북면 황토 알타리 무의 원산지이자 주산지이다. 소득 작물 재배에 여념이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임승조(65) 이장 =“이곳은 황토 알타리 무의 원조마을입니다. 고북면 31개 부락 중 이 곳이 밭이 제일 많죠. 마을이 아름답고 주민들끼리 화합과 단합이 정말 잘 되고 있어요, 마을이 넓은 만큼 주민들 마음도 넓습니다” ■ 박동호(55) 새마을지도자 =“화훼, 알타리작목반, 연암오이 작목반, 배추, 인삼, 양잠 등 다양한 시설작물을 하고 있어요. 가공도 마을에서 하며 농가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마을 주민들끼리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충하초를 재배하는 농가도 있어요” ■ 박옥란(65) 부녀회장 =“오래 전 초등학교 한 선생님의 지도로 마을에 풍물단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잠이 안 올 때면 가끔 예전에 면에서 풍물공연을 했을 때의 사진을 보는데 얼마나 이쁘고 좋은지 몰라요” ■ 김기매(76)씨 =“마을 주민들끼리 아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마을 회관이 좀 오래 되었지만 동네 사랑방인 이곳에 모여 정담 있는 얘기가 오가고 있어요, 농한기 때도 바쁘지만 이렇게 모여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 장정순(80)씨 =“마을에서 의사가 두 명이나 나왔습니다. 터도 좋고 살기도 좋은 마을이예요. 공기도 맑고 물도 좋고, 작물도 잘 자랍니다. 한 번 살다보면 정말 계속 살고 싶어 질 거예요” ■ 이춘자(66)씨 =“좋은 흙에서 자란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어른들 모두 건강하고 얼굴이 밝습니다. 특히 고북 알타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작물인데 몸에도 좋아서 아주 인기가 좋아요 그 외에도 자랑 할 것이 많은 부락입니다” ■ 최지환(81)씨 =“주민들끼리 사이도 좋고 살기도 좋고, 다 좋은 마을이예요 딱히 부촌이라고 할 순 없지만 빈촌도 아닌 그냥 중촌이란 말이 좋겠네요, 좋은 작물들도 나고 경치도 좋고 그래서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 김영희(78)씨 =“이장님을 비롯해서 마을지도자님, 노인회장님, 부녀회장님 모두가 너무 열심히 일해주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마을을 잘 이끌어주시니 마을 전체에 활기가 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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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우리지역 문화재탐방(12) 송곡서원||“서산 정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 기리기 위해 설립”
    조선시대에는 중등 교육과정을 책임진 교육기관이 두 개가 있었다. 바로 향교와 서원이다. 향교가 성균관에 의해 설립된 국립 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이다. 두 기관 모두 배움이 필요한 양반, 평민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선현과 대성현에 대한 제를 올리고 지방 백성들의 미풍양속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서산지역 대표적인 서원은 서산 정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인지면 애정리 ‘송곡서원’으로 숙종 20년(1694)에 세운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해체되었다가 1910년 유양목 등 유림이 복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향교와 서원의 차이 향교와 서원은 앞서 설명했듯이 설립주체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원은 16세기 사림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데 초기에는 선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국립 기관인 향교가 과거급제를 통해 출세만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교육자들의 질도 점차 낮아져 뜻있는 선비들이 직접 후학을 양성하고자 서원에서 교육을 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서원으로 꼽히는 도산서원은 이황의 학문체계를 이어받는 전문 연구기관으로 발전한 서원이다. 이처럼 서원에서는 성현이나 학자들의 사상체계를 연구하고 진정한 학자가 되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곳이 되었다. 그러한 서원의 특성상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주요 모태가 되기도 하였는데 국정철학의 방향을 바탕으로 한 지금의 정당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나름 선진화된 정치형태가 붕당정치이다. 이후 붕당의 세력가들의 과도한 권력욕으로 패거리 문화로 변모되긴 했지만 초기 붕당정치의 모습은 왕과 함께 하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국정을 발전시키는 요인이었다. 서원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향교는 관학이기 때문에 백성들과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설립해왔다. 그러나 서원은 학자가 개인적으로 세우기 때문에 산수가 빼어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아왔는데 송곡서원 역시 그 주변경치가 빼어나다. 학문연구기관으로 지역에 자리 잡아 왔던 서원들은 그러나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이후 상당수가 철폐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일반 백성들에게 돈과 현물을 걷었던 서원들은 그렇게 하나 둘 없어져 갔다. 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하나 둘씩 복원이 되어가면서 그 곳의 역할도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유교의 산지라는 이유로 경제발전기에 그 위상이 크게 저하되었지만 지금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전통문화 유지라는 순기능을 중심으로 차츰 지역주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 9명의 선비 위패 모셔져 송곡서원에는 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방택(柳方澤), 윤황(尹璜), 유백유(柳伯濡), 유백순(柳泊淳), 유윤(柳潤), 김적(金積), 김위재(金偉材) 등 9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최초로 봉안된 정신보는 송나라 절강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 태조 때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원나라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소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서산 간월도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송나라에서 벼슬을 지냈으나 간월도에서 고기잡이를 마다하지 않는 절개있는 선비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 후 대사동으로 이사온 뒤에도 송나라 생각을 하며 스스로 축조한 망운대에 올라 조석으로 곡하며 울었다고 전해지며 나라에서 충신문까지 세워주었다고 한다. 정인경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학업에 열중하여 열 두 살에 두 가지 시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재이다. 몽고병이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적병을 내쫓아 공신으로 벼슬길에 나갔다고 한다. 이후 정승에 까지 오르고 양열이란 시호를 받았다. 유방택은 서산의 구치산 아래 양리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천성이 인자하고 너그럽고 용모가 온순하고 그 행동이 예의바른데다 천문에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공민왕 때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로 수도를 옮겼는데 달력이 없자 그가 달력을 만들어 전했는데 그 정확도가 착오하나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멸망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태조가 연호를 바꾸기 위해 사람을 내려 보내 서운관 제조에 임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호를 정한 후 다시 물러나 낙향해 옛 고읍을 바라보며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고 하며 임종 직전 아들들을 불러 나는 고려 사람이니 봉분을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윤황은 고려 때 관직에 있던 사람으로 조선이 수립된 후 송악산 두문동에서 두문불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태종은 그의 아들을 불러 관직을 내릴 만큼 그를 존경했는데 그럼에도 결코 조선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는 충신중의 충신이다. 사후 태종의 특명으로 당진현 관정리에 장사를 지내며 호상을 치루었다. 유백유는 문과 장원 후 학자로 그 이름을 높였다. 그는 명성 지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누구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곧은 선비였으며 학식이 깊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유백순은 유방택의 아들로 효성이 깊어 안에서는 효경지행이요 밖에서는 충성지절이란 말로 알려졌다. 당시 그보다 뛰어난 학사는 없다고 알려질 만큼 유명했으며 바른말을 잘하여 개국공신으로 서슬 퍼렇던 정도전에게 미움을 샀다. 이후 금헌 유방택이 은거에 들어가자 함께 은거하기 시작했으며 3년상을 마친 후 평복을 입고 호산을 거닐며 인간사와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이에 학자들이 그를 존경해 위촌선생이라고 칭하며 따랐다. 유윤역시 서산출신으로 단종이 쫓겨난 후 세상과 연을 끊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뛰어난 외교 전략가였지만 정적에 의해 임금의 자리에 쫓겨나 폭군으로만 알려져 왔던 광해군이 특히 그를 좋아하여 그의 집에 직접 무동처사란 글씨를 써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는 유훈을 통해 벼슬을 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며 옛 주군에게 절개를 지켰고 이에 그의 자식들은 벼슬을 하지 않았다. 김적은 사마 생원시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벼슬을 시작해 3년 만에 그만두고 낙향했다. 서산에서 초가집을 세워 먹고 자며 자손들을 공부시키고 농사일도 가르치며 성실하게 살았다. 손님은 귀천 없이 모두 반겼으며 스스로 단구자라 칭하고 단구대에서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이후 인조반정이 성공해 그를 벼슬에 불렀지만 역시 거절하고 지방수령들이 찾아와도 감사의 편지만 전했을 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후덕함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위재는 1721년 나라의 어지러움이 있자 서산 화변촌으로 내려와 나무와 돌을 친구 삼아 수양하며 책을 안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과 많은 접촉은 없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한눈에 현인임을 알아보았고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나 군자로 칭송받았다. ◆ 매년 음력2월, 8월 말에 제 올려 절개의 상징인 서산의 아홉 선비가 모셔져 있는 송곡서원은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 옆에 자리 잡아 수호신과 같이 꼿꼿이 서있는 향나무는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내려와서 심었다고 전해지는 고목이다. 입구에 잘 정돈된 조경수와 주변 넓은 소나무 밭은 그 자체가 선비의 단아함과 절개를 닮았다. 건물은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동재(東齋), 서재(西齋)로 구성되어 있고 위패는 사우에 모셔져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팔작지붕이 얹어졌다.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말 정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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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 모집
    서산타임즈가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을 모집합니다. ‘끝없는 서산 사랑, 건강한 지역신문’이란 기치아래 탄생한 서산타임즈는 그동안 지면에서 소외됐던 어린이들의 푸른 세계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어린이기자단’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는 각 초등학교 또는 가정 등 어린이들의 생활반경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어린이들만의 꾸밈없는 시선으로 15만 서산시민에게 생생히 전달할 것입니다. 어린이기자가 쓴 모든 기사는 매월 1차례씩 어린이기자단 섹션면(2~4면)을 통해 보도됩니다. 서산타임즈는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으로 선정된 학생들에게 본사 기자 및 외부강사를 초빙해 글짓기, NIE, 특별강연 등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답사와 캠프 등 단체활동을 통한 인성교육도 이뤄지게됩니다. 어린이들에게는‘기억할만한 추억’이 되고, 독자들에게는 ‘동심으로의 초대’가 될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에 지역 초등학생들의 많은 응모바랍니다. 제1기 서산타임즈 어린이기자단 모집 모집인원: 00명 모집대상: 서산지역 초등학생 4~6학년 모집기간: 2008년 1월 24일~2008년 2월 25일 제출서류: 학교장 추천서, 자기소개서, 본인사진 4장 제출처 및 문의: 서산시 동문동 366-5 서산타임즈 편집국 전화 666-0350 팩스 666-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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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 총선 입지자 자료 접수합니다.
    서산타임즈는 오는 4월9일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 유권자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총선 출마 예정인 입지자들의 주요 경력 및 학력, 출마의 변 등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현직, 선거구, 소속정당, 생년월일, 학력 및 경력(주요 경력 3∼4개), 명함판 사진 등을 보내주시면 본보에 게재해 드립니다.(보내실 곳:byung10e@hanmail.net, fax:666-0360 문의전화:66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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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 제3대 회장에 정영권씨 재 선출||본지 자문위원협의회 정기총회, 운영규정 개정ㆍ임원선출
    서산타임즈 자문위원협의회 제3대 회장에 정영권씨가 재 추대됐다. 또 부회장에 심걸섭, 운영위원장에 최송산, 편집위원장에 서종은, 총무에 김원배씨를 각각 선임했다. 본지 자문위원협의회는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본사 회의실에서 본지 이기우 발행인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인사회를 겸한 2007년도 결산 정기총회를 열고 이 같이 임원 선출을 마쳤다. 이날 총회에서는 분과위원회 신설을 주 내용으로하는 자문위원회 운영규칙 중 일부 조항을 개정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2개의 분과 위원장을 새로 선출했으며, 각 분과위원회 간사는 분과위원장의 추천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또 이날 자문위원들은 1천400만원의 새해예산과 함께 ▲국내외 연수회 참가 ▲신문사 발전 방안 제시 등의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서산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으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데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정영권 회장은 “서산타임즈는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지역의 대표언론으로서 무궁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며 “항상 초심을 안고 지역사회 목탁 역할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기우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지역사회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시민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 모두 혼연일체가 돼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눈과 발이 되어 서산의 밝은 미래를 밝혀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지난 17일 자문위원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심걸섭 부위원장이 회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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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1
  • [서산의 발견 - 마을기행 11] 성연면 예덕1리||“왕골자리와 귀거래향 수상식물관 각광”
    예(禮)와 덕(德)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예덕리, 특히 예덕1리는 예전 상솔예동(上率禮洞)이라 불리며 양반 고을로 인정받았다. 상솔예동은 집안의 어른이 거느리고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이란 의미로 지금도 예덕1리 사람들은 상하를 존중하고 공경하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마을 특화품으로 왕골자리와 귀거래향 수상식물관이 있다. 귀거래향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천연기념물 가시연을 보유하는 등 250종 이상의 단일농장으로는 국내 최다 품종 연꽃을 보유하고 있고 왕골자리는 농한기 때 마을 노인회에서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 낸다. 특히 왕골자리는 예전에 만들었던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어 품질이 우수하고 단순하지만 간결한 멋이 있는데다 1주일 이상의 작업 기간을 거쳐 한번 만들면 오래 쓸 수 있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모든 재료를 예덕 1리에서 자급자족해 기본적인 인건비정도만 받고 싼값에 공급하고 있다. 처음 왕골자리를 만들 때의 목적이 농한기 때 주민간의 화합을 돈독하게 하자는 의지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10만원 선으로 수공예품 치고는 아주 싸게 공급하고 있고 주문자의 의지에 따라 4자, 8자 등 크기 조절이 가능하다. 마을 수생식물원인 귀거래향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연꽃전시회가 펼쳐지는데 마을 주민들 모두 합심해 일을 치룰 만큼 단합이 두드러진다. 단결 잘되는 마을로 주변 부락의 부러움을 사고 있고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서로 챙기고 배려하며 아껴주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또한 마을 기금을 조성해 한 해 3명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등 주민 자체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연꽃 농장이 있어서인지 마을 전체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 매우 아름답다. 또한 인구수가 많지 않은 만큼 주민들이 정 많기가 유달라 마을을 방문한 손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등 외지인이 머물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며 마을회관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화목하고 풍류가 있다. 정상근 기자, 성연=정기택 기자 예덕1리 사람들 산으로 둘러쳐져 길게 뻗어있는 느낌을 주는 예덕1리는 공기도 맑고 포장도 잘 되어 있어 오가기도 편리한 마을이다. 현재 42가구에 남자 49명 여자 4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주민간의 친목이 남다르다. 회관에서 함께 밥 지어 먹으며 왕골자리도 짜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마을 예찬론을 들어봤다. ■ 강재원(46) 이장 =“주민화합도 우수하고 부락단결도 잘되는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모두 한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좋은 마을에서 이장을 한다는 것이 행복하고 영광입니다” ■ 김경희(54) 부녀회장 =“지난해부터 부녀회를 맡아 일해오고 있습니다. 모두 잘 도와주셔서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마을 주민간 화목하고 친밀한 것이 우리 마을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도 자랑할 것이 아주 많아요” ■ 장순흥(71) 노인회 총무 =“마을 주민들끼리 아주 사이도 돈독하고 노인회는 농한기때마다 왕골자리를 함께 짜는 등 단합이 잘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을이고, 공기도 좋고 자랑하려면 한도 끝도 없지요” ■ 이상봉(68)씨 =“제가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왕골자리입니다. 모양도 이쁘고 색감도 빛이 나지요, 마을 주민들이 농한기 틈을 타 하나 만드는데 일주일 넘게 걸려가며 정성스럽게 만들어 낸 것입니다. 많은 이용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 유병길(53)씨 =“마을 주민 간 허물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장난을 쳐도 잘 받아주시고 아주 너그러우세요. 집에선 젖소를 키우고 있는데 최근 사료 값이 30%넘게 올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한운우(69)씨 =“노인회관에서 함께 밥도 지어먹으며 재미있는 겨울을 나고 있어요, 주민들 간에 사이가 좋아서 누가 드나들어도 즐겁습니다. 정말 여러면에서 살기 좋은 마을이예요” ■ 장상진(85)씨 =노환으로 말을 잘 못하시는 장 할아버지이지만 왕골자리 만드는 솜씨는 마을에서 최고라고 주민들이 엄지손을 들어올렸다. 밥 한끼 먹어도 손님먼저 챙겨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르신이다. ■ 장승재(47)씨 =“수생식물원인 귀거래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단일농장으로는 전국최다종을 보유하고 있지요, 연꽃이 필 때가 되면 아주 이쁘고 좋습니다. 마을을 많이 방문해 주셔서 구경도 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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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0
  • 기업탐방(24) 수석산업단지 극동정밀(주)||“기술력 인정, 불량률 제로, 안전한 직장…회사 발전 원동력”
    수석산업단지에는 경쟁력 있는 우수한 중소기업들이 많이 있다. 조용히 서산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수석산업단지에서 노사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중소기업의 모범을 만들어가고 있는 소방설비 부품전문업체인 극동정밀(대표이사 김찬우). 말 보다는 행동을, 나 보다는 우리를, 오늘 보다는 내일을 꿈꾸는 진취적인 기업이 바로 이 회사가 지향하는 경영목표다. ◆ 소방관련 제품 생산 극동정밀은 지난 1998년 3월 21일 서산수석산업단지에서 처음 문을 열어 올해가 10년째다. 국내 최고의 소방설비전문업체인 파라다이스산업의 투자로 만들어져 지난 2003년 CLEAN사업장 인증 획득, 2007년엔 TS16949를 획득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13,000여 평의 대지에 48명의 직원들이 밤낮없이 일하며 최고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NIPPLE, ANGEL PIPE, 6각 NIPPLE, 스프링클러 부품, 옥외소화전 등 소방물품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안전과 능률을 고려한 동선으로 직원들은 불편함 없이 일하고 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서산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어 지역사회 부적응에 대한 걱정이 없고 덕분에 화기애애한 작업장 분위기가 유지되어 ‘일하고 싶은 직장’을 임직원 스스로 만들고 있다. 대부분이 생산직 직원인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안전이다. 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기계로 손꼽히고 있는 프레스는 불만 번쩍여도 작동을 멈추는 최신 설비(progressive 금형기)를 구비했다. 단순하고 위험한 것은 자동화 하고자 중소업체에서 보기 힘든 산업용 로봇도 갖췄다. 직원들은 기계의 관리감독과 제품 검사 등 비교적 안전하고 어렵지 않은 일들을 맡고 있다. ◆ 매월 경영설명회 개최 안전을 위해 공장 자동화 및 안전장치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바로 임직원간 인화단결이다. 이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사 간 신뢰문화형성으로 임원진은 회사의 모든 사정을 있는 그대로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매달 수석산업단지 관리사무소를 빌려 경영설명회를 열고 실적과 재정 등을 공개하고 토의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노사간 함께 개진해 나간다. 또한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함께 챙겨줌으로서 직원들 간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회사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도록 전 사원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진취적인 움직임은 지난 해 연말 극기 훈련에서 3시간 행군 코스를 직원 전부가 2시간 30분 만에 통과하는 일례로도 설명할 수 있다. ◆ 불량률 제로, 제품 신뢰 금형업체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불량률이다. 한 번 불량이 난 제품의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재발가능성이 높고 신뢰성도 크게 떨어진다. 때문에 이 회사는 불량률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침마다 전날 생산된 생산품을 꼼꼼히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직원 간 의견을 교환한다. 이렇게 근무하는 사람의 마음을 합치니 불량률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불량률이 떨어지니 제품이 신뢰받고 회사의 이미지도 높아졌다. 안정적으로 제품을 납품하고 어느덧 회사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생동감은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극동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외국 인력이 낮은 임금으로 국내 각 산업에 쏟아져 들어올 때도 국내 인력을 이용했다. 국내고용을 창출하고 소통으로 활발한 노사관계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이런 목적의 일환으로 금형업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여성인력도 고용하며 회사의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 자동차부품 생산 준비 극동정밀의 미래는 밝다. 이 회사는 소방 설비 전문 업체에서 점차 영역을 확대해 자동차 부품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으며 금형 기계를 구비해 언제라도 생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췄다. 또한 김 대표가 이전 현대에 근무할 때 쌓아온 인맥을 통해 판매망도 제법 안정적으로 갖출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자동차 부품 생산을 하진 않고 있다. 아직 구체화가 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활력과 능력이 있다면 어느 분야에 도전하더라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서산의 중심기업으로 우뚝 서게 될 극동정밀을 기대해 본다. 정상근 기자 지역부=박종석 기자 “서산발전 위해서는 인재육성 시급” ■ 김찬우 대표 인터뷰 10년전 우주항공에 근무하면서 처음 서산을 찾은 김 대표는 이후 회사가 다른 회사와 통폐합되면서 회사 동료들이 모두 떠나는 데도 차마 서산을 떠나지 못했다. 어느덧 애정을 넘어 정이 너무 깊게 들어버린 탓이었다. 마침 극동정밀에서 그에게 대표이사직을 제의하면서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이 사랑하는 서산과, 극동정밀의 비전을 모두 생각한 윈-윈 이었다고 회상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처음 서산에 왔을 때를 기억하나. =현대정공에서 일하다 현대 우주항공으로 옮기며 서산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처음 와서 느낀 건 첫 번째 파란하늘을 보고 느낀 놀라움이었다. ‘아!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두 번째는 야근 후 퇴근할 때 느꼈던 상쾌한 공기였다. 공기가 너무 맑아 야근을 하고도 피곤한 줄 몰랐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좋아 퇴직 후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이제 서산 시민으로 살고 있다. -기업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인력풀이 뒷받침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인재가 배출되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현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동의하고 실제로 우리 회사도 대부분의 직원이 현지 인력이다. 하지만 초기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지역에서 기업 사정에 맞는 인재를 배출했으면 좋겠다. -경영관을 말해달라. =직원이 즐겁지 않으면 회사도 쇠락한다. 돈 벌로 나온 직장이지만 사실상 주 생활공간이지 않는가? 회사를 생활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직원 간에 서로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침에 출근해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와야 회사도 기분 좋다. -서산 경제에 관해 전망하자면? =처음 들어올 때 굉장히 활기찬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인근 당진, 태안까지 합해 예전에 울산이 성장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발전 속도가 조금 더뎌지고 태안에 안타까운 사고로 지역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그 어느 것 보다 서산의 자동차산업 발전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앞서 설명했듯이 인재육성이 시급하다. 정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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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0
  • [서산의 발견 - 마을기행 10] 해미면 웅소성리||‘큰 장군 출현할 것이라는 전설 전해지는 마을’
    웅소성리는 해미면 소재지에서 서북방면 5㎞정도에 자리잡고 있다. 북으로는 음암면 신장리, 유계리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 덕지천동, 동으로는 억대리, 남으로는 귀밀리와 접해있다. 마을 외곽으로는 도당천이 흐르고 마을은 낮은 구릉위에 골골이 산재해 있다. 간척 사업이전에 이곳까지 바다가 들어왔으며 그 바다를 막는 성이 있었는데 그 성의 이름이 웅소성(雄梳城)이다. 웅소성리라는 지명은 이곳에서 비롯됐다. 웅소성은 주위가 300m로 타원형의 소규모 산성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80년대 많은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마을 주민들은 이 터에서 큰 장군이 출현할 것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마을 곳곳마다 맥을 끊어 놓기도 했다. 낮은 구릉에 집집이 자리 잡아 마을 모양새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비교적 마을의 경계가 반듯하고 인심이 후덕해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지금은 18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주민들은 쌀과 비닐하우스 채소를 작목해 살고 있다. 그러나 해미에 공군부대가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삶이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수차례 뜨고 지는 비행기 때문에 현재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마을 이강협 이장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 주민들과 소음피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포와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다. 대부분 소음공해로 피해를 입는 지역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고 신경이 예민해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웅소성리 사람들은 오히려 단합이 잘되고 마을 주민들 간에 아끼는 마음이 특별하다. 이 마을 사람들의 단결력은 특히 유명한데 마을 이장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매년 여름마다 야유회를 떠나기도 하고 이장이 기꺼이 제공한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그 밖에도 농한기 때 마을 노인들은 언제나 마을 회관에 모여 윷놀이와 장기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을이 집성촌이 아님에도 언제나 서로 형제ㆍ자매같이 생활하고 있다. 웅소성리 사람들 사방으로 산이 둘러싼 분지형태의 웅소성리는 그 이름만큼 아름다운 마을 전경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에 자랑거리가 없고 오히려 소음피해 때문에 괴롭기만 하다던 마을 주민들은 얘기가 더해가자 서로 나서 마을자랑을 할 정도로 모두 마을에 대한 애정이 깊다. 어려운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힘을 내고 있는 웅소성리 마을 주민들을 만나봤다. ■ 이강협(54) 이장 - “예전에 이곳에는 토성이 있어 동북서는 흙으로, 남쪽은 절벽으로 이루어 졌었다고 합니다. 비행기 소음 때문에 어려움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 간에 화합이 남달라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 김흥식(70) 노인회장 - “50년 전에 이 마을로 이사왔습니다. 마을 노인들부터 아이들까지 아주 화목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인회원들 간의 친목도 좋고 주변에서 화합 잘되어 부러워 하는 마을입니다” ■ 황길성(75)씨 -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옛날엔 학교도 해미읍까지 걸어다니곤 했었습니다. 비행기 소음문제가 빨리 처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행기가 뜨면 겁도 나고 너무도 시끄러워요” ■ 황운익(75)씨 - “옛날엔 이곳에서 큰 장수가 나오는 혈맥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맥을 잘라버렸다고 하지요, 많은 얘기가 전해지는 아주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 김성태(76)씨 - “소음만 아니면 정말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주민들간에 정담도 있고, 특히 우리 이장이 정말 자기 안 아끼고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고 있어 너무 고마움을 느낍니다” ■ 김성원(67)씨 - “이 곳에선 쌀이 많이 재배가 되지만 막상 웅소성리의 경작지는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하우스에서 대파, 상추 등을 재배하며 판매하고 있지요” ■ 신영석(68)씨 - “오늘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왔는데 또 찍게 되네요 우리 마을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음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곳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예요” ■ 박봉임(67)씨 - “25살에 시집와서 웅소성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살기 좋고 공기도 맑은 마을이예요. 겨울에는 할머니들끼리 모여 마을회관에서 윷놀이도 하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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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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