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건배와 멋진 건배사||[데스크칼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Y사장은 요즘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다. 연말 송년 회식 때 멋진 건배사 한 토막을 읊어보고 싶은 심사에서 그는 오늘도 맛깔스럽고 멋스러운 건배사 찾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건배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들이 포도주를 즐겨 마셨는데 대치하던 카르타고군이 이 같은 기호를 역이용했다. 마취제를 넣은 포도주를 로마 병사들에게 마시도록 해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이후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똑같이 따라 동시에 마시는 습속이 생겨났는데, 오늘날 건배문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유래에서 시작된 서양 문화의 산물 건배가 요즘에는 서로를 기원하는 의미의 뜻으로 변질돼 각종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식순에 들어가 있다. 국가 정상들 간의 만찬에서부터 초등학교 동기들의 모임과 마을 계모임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사회는 자리를 불문하고 꼭 건배를 행하고 있다. 이런 건배 문화속에서 건배사는 백미 중에 백미다. 자리의 성격에 부합하면서도 재치 있고 멋들어진 건배사는 연회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배사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건배사를 보면 온갖 구호가 난무하는 시류에 편승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성희롱 성 저질도 상당수에 이르면서 우리를 종종 혼란스럽고 난처하게 만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반면 입을 잘못 놀려 화를 당한다고 해서 나온 ‘설화(舌禍)’란 말도 있다. 말이란 게 그런 거다. 득이 될 때도 있고, 독이 될 때도 있는데 요즘 ‘건배사’가 꼭 그런 모양이다. 청중을 확 휘어잡는 멋진 건배사가 있는가 하면 자칫 상황 판단을 잘못해 그만 ‘선’을 넘으면서 독을 바른 화살이 돼 돌아오는 건배사들도 참 많다. 지난해 한 유명인사가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의미의 ‘오바마’ 건배사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실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건이다. 만일 그 건배사를 한 주인공이 오바마의 건배사 의미로 ‘오는 새해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라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면 설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멋진 건배사를 했다고 칭찬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송년회가 붐을 이루고 있다. 회사, 동창, 동호회 등 각양각색의 모임이 연말 스케줄에 빼곡하다. 모임의 하이라이트이자 피할 수 없는 건배사 차례가 돌아왔다면 비록 짧은 한 두 마디라도 정말 멋들어지고 맛깔스런 건배사 한번 던져보는 게 어떨까. 고사리(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껄껄껄(좀 더 사랑할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배울 껄), 변사또(변함없는, 사랑으로, 또 만납시다),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사이다(사랑해요, 이생명 다바쳐, 다시 태어나도), 오징어(오래오래 징그럽게 어울리자), 119(1차만, 1가지 술로, 9시까지 끝내자),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 통통통(만사형통, 의사소통, 운수대통),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도 잊고, 릴렉스하게), 진달래(진실로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9988 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고 3일째 죽는다), 마당발(마주보는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참이슬(참사랑은 넓게 이상은 높게 술잔은 평등하게)…. 멋진 건배사는 술을 잘 마시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잘 알아달라는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11-12-07
  • 시청 주변에 의심 단어 떠돌아서야 ||[데스크칼럼]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로 가던 중 양식이 떨어졌다. 그들은 나무껍질과 풀을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랠 정도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어느 마을에 이르게 되자 제자들은 방을 구해 공자를 쉬게 했다. 제자인 안회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밥이 뜸을 들 무렵 잠에서 깨어난 공자는 오랜만에 맡아 보는 밥 냄새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안회가 밥솥뚜껑을 열고 손으로 밥을 한 움큼 걷어내 먹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공자는 속으로 “평소 저토록 예의가 없던 안회가 아니었는데 여러 날 굶주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간 모양이구나”하고 미루어 짐작했다. 안회가 차려온 밥상을 받은 공자는 “방금 잠들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조상님들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밥이 다 되거든 조상께 먼저 제를 올리고 먹으라고 하더구나”하고 말했다. 안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대답했다. “제가 지은 밥으로는 제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솥뚜껑을 열자 바람이 불어 흙덩이가 쌀밥위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묻은 밥으로 제를 올리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다된 밥 속으로 흙이 스며들까봐 얼른 손으로 한 움큼 건져낸 다음 버리기가 아까워 자신이 먹은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잠시나마 제자를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 “남을 믿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속아 넘어갈지언정 의심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며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다. 중국 명나라 말엽의 유학자인 홍자성이 지은 책인 ‘채근담(菜根譚)’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쓸데없는 의심을 삼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들어 시청 주변에 ‘의심(疑心)’이라는 단어가 부쩍 나돌고 있다.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뜻하는 ‘의심’이라는 말이 시 공무원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무슨 민원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하면 혹시 관련 업체나 업자하고 유착돼 일을 하지 않느냐는 상사의 의심을 받아 일 자체를 하기가 두렵다”고 말하는 공무원도 있다. 어떤 직원은 “배를 갈라 속을 드러내 보일 수도 없고 …”하면서 혀를 찰 정도다. 특히 간부의 부하 직원들에 대한 의심은 조직 전체를 경직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직장 상사가 부하를 의심하면 부하직원은 상사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일을 하지 않고 땅에 바짝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으며 부하직원 역시 상사를 신뢰치 않는다. 이 같은 조직에서는 갈등과 반목만이 싹틀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서산시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이란 말이 있다. 여러 방면의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 방면의 말만 들으면 아둔해 진다는 뜻이다.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한 방면의 말만 듣고 선입견을 가지고 의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완섭 시장이 취임 이후 서산시에 생동력이 감돌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생동력을 현실화하려면 화합만이 동력이다. 화합을 위해선 시공무원 상 하직원간 ‘의심과 불신’이 아닌 ‘신뢰’하는 분위기조성이 전제돼야 한다. 시의 밝은 미래를 위해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다시 한 번 나무뿌리를 씹듯 음미하고 실천해 봄이 어떨까.
    • 오피니언
    • 칼럼
    2011-11-30
  • 신문보도를 요청하는 사람들 ||[데스크칼럼]
    며칠 전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들이 연말을 앞두고 지역 내 몇 곳의 불우시설을 방문하여 성금과 성품을 제공하려 하는데, 직접 현장에 나와 취재하여 신문에 보도를 좀 해 줄 수 없느냐는 요지의 전화였다. 사실, 해마다 연말과 명절 때만 되면 개인이나 단체들로부터 각종 미담 활동에 대한 보도를 요청하는 자료가 많아진다. 기자 입장에서는, 점점 각박해 지는 사회 속에서, 그나마 사회를 밝게 해 주는 선행(善行)이라는 생각에 이들의 봉사활동을 가급적이면 다뤄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정례적으로 등장하는 비슷한 행사인데다, 자신들의 선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미담 내용도 각 단체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다. 대부분 불우ㆍ소외시설을 찾아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전달하고, 사진 찍고, 돌아온다는 줄거리다. 무엇보다 일부 개인이나 단체는 자신들의 봉사에 대한, 자신들의 평가에 매우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경우 “신문에 크게 내 달라”, “우리 단체 이름을 반드시 넣어 달라”,“회장님의 얼굴을 꼭 넣어 달라”는 등 요청사항도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사진크기와 함께 기사 부분에 들어 갈 내용까지 고맙게도 지정(?)해 준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자는 자신들의 선행에 대해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혼자만 잘 살면 깨소금’일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세상이야 어찌 되든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보다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며 살 맛 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소외된 이웃들을 도와주며 ‘소리 없는 선행’으로 찬사를 받는 숨은 천사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종종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듯이, 기자가 구태여 일부 개인이나 단체가 ‘생색내기를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숨은 천사들의 선행을 빛바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선행에 꼭 평가(評價)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필요에 따라 세상에 알려져야 할 사연도 있다. 그러나 순수했던 마음이 한순간의 욕심으로 명예가 허물어 져 내리는 모습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기에 경계(警戒)하자는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거리에는 구세군의 사랑의 종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들어오는 100원이나 1000원이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한 없이 커 보이는 것도 ‘대가 없는 선행’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회의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믿음과 사랑으로 봉사를 실천하는 천사들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자신들의 봉사를 대가로 한 부끄러운 행동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전화를 받은 그날 오후 내내 씁쓸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편집국장 이병렬
    • 오피니언
    • 칼럼
    2011-11-23
  • 무엇이 옳고 그른가?||데스크칼럼
    최근 가로림만의 조력댐 건설과 관련 서산지역에 하나의 물음이 던져졌다. 2007년 환경가치순위 전국 1위로 평가된 ‘천혜의 갯벌’인 가로림만에 조력댐을 건설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환경파괴 등을 우려해 조력댐 건설을 하지 말아야 옳은 것인지 하는 물음이다. 한편에서는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을 촉구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파괴 등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찬반양론이 맞서다보니 서산지역자체가 소란스럽고 분열과 갈등양상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질문이 시민들에게 던져져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왜 가로림만 조력댐을 추진하려하나. 한국서부발전은 2006년 12월 정부가 마련한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비용량 520MW, 연간발전량 950GHW, 방조제 길이 2053M 규모로 서산과 태안지역 일대 전기소비량 3분의 1을 충당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동되는 풍력발전의 4배, 태양광발전의 30배 수준이라는게 한국서부발전의 설명이다. 또한 가로림만 조력발전소는 사업비 1조 22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완공되면 세계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며, 이 발전소가 본격 가동할 경우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보급률도 2.47% 상승한다는 것이다. 현재 환경성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며, 완료되면 인허가신청을 거쳐 본격 착공될 예정이다. 이를 놓고 반대투쟁위원회와 충남시국회의 등에서는 세계 5대 갯벌로 알려진 서해안 갯벌 중에서 가로림만은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해 정부 조사결과에서도 환경가치 순위 1위로 나타났다며 사업자는 생태계 훼손과 주민생존권 파괴 등 문제점이 많은 조력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조력발전으로 인한 발전량이 태안화력 연간 발전량의 2.7%에 불과한데도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로 인한 과징금을 면할 목적으로 발전소 건설을 고집하고 있다며 해양생태계와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로림만에 조력댐을 건설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강력히 펼치고 있다. 이러한 찬반 주장 속에 충남도와 서산시 그리고 서산시의회는 물론 지역정치권까지 조력댐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반대와 찬성하는 측 모두 서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단지 찬성과 반대라는 입장만 다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인간세상에서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서산 시민들은 찬성과 반대 중에서 어느 길을 택해야 서산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판단의 기로에 서 있을 정도로 이번 사안은 냉철함을 요구하고 있다. 서산의 발전은 시민 스스로에 달려 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을 놓고 서산 시민들은 보다 냉철한 판단아래 ‘옳다’와 ‘그르다’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국장 이병렬
    • 오피니언
    • 칼럼
    2011-11-16
  • 시장에 직언하는 진정한 참모는 있는가?||데스크칼럼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08년 중앙의 모 일간지에 ‘2기 참모, 대통령에게 쓴 소리 할 수 있어야’란 제목의 사설이 실렸었다. 당시 새로운 진용을 갖춘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쓴 소리를 고하고 있는 그날의 사설에는 출범 참모들이 꼭 곱씹어야 할 문제점으로 1기 참모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머리에 생생히 남을 정도로 많은 공감을 나눴다. 먼저 지금까지 대통령에게는 쓴 소리를 하는 참모가 없었다는 지적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간 대통령이 펼친 국정운영이 일방적이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제동을 거는 직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사설은 2기 참모들은 부디 대통령의 수족으로만 머물지 말기를 당부했다. 이어 사설은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참모, 행정부처의 입장과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대통령의 뜻’이란 이름으로 인사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참모, 부처 현안을 너무 잘 알아 부처를 휘두르는 참모, 종합조정 능력이 부실한 참모 등은 결국 대통령에게 누가 되었다며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반드시 삼아주길 재차 지적했다. 그런데 오늘 생뚱맞게 지난날의 사설 한토막이 문득 떠오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근 서산시 청사 안팎에서 떠도는 이런저런 얘기가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기자란 직업상 갖가지 속사정을 담은 주변 얘기를 늘 상 듣게 되는데 요즘 들어 유독 자주 들려오는 얘기가 있다. 이완섭 시장에게 제때에 제대로 직언을 해주는 진정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얘기다. 학연간 자리경쟁, 직원간 계파싸움, 직원과 계약직간의 알력다툼 등 청사내에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 발단에서부터 어떤 시책 결정과 발표 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상황을 지켜보면 시장에게 사심 없이 문제 발생 원인을 알려주고 정확한 사태의 진위여부를 따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참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것. 즉, 앞서 지적한 청와대 1기 참모들의 어설픈 처신들이 지금 서산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 같다는게 얘기의 주된 내용이다. 제널드 포드 정권때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은 참모란 한마디로 직언하는 자리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대통령에게 욕을 퍼 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를 수락하거나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현재 시장 주변을 맴도는 자칭 참모란 인사들의 처신을 보면 딱 잘라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씁쓸함과 아쉬움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달콤한 말로 아부하기는 쉽지만 아무리 참모라고 해도 최고 책임자에게 직언하기란 무척 어렵다. 직언은 (옳고 그름에 대해)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말함을 뜻하고 또 윗사람에게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조언하는 의미를 두고 있기에 최고 책임자를 향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직언을 한다는 그 자체는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참모라면 직언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직언은 보약처럼 써 일시적으로나마 치명적 불이익으로 되돌아 올수 있지만 나중에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진정한 참모라면 직언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직언과 쓴 소리를 기탄없이 털어 놓는 소통의 참모, 실세 참모가 아닌 실용 참모가 시장 주변에 보다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던진 한마디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아울러 직언의 진가는 넓은 아량으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기에 이 시장 역시 싫든 좋든 지역과 조직 발전을 위해 올바른 직언 듣기에 적극 나서고 그들의 직언 용기 또한 높이 사줬으면 한다. 이병렬
    • 오피니언
    • 칼럼
    2011-11-09
  • 이완섭 시장의 역지사지||[데스크칼럼]
    어느 날 함께 길을 가게 된 낙타와 양이 논쟁을 벌였다. 낙타는 키가 커야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았고, 양은 오히려 키가 작으면 유리한 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한 화원 부근을 지나게 됐는데 화원 안쪽에서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담장 너머로 뻗어나 있었다. 낙타는 앞발을 세우고 쉽게 나뭇잎을 뜯어 먹었다. 키가 작은 양은 앞발을 담장 위로 올리고 목을 늘려 보았으나 허사였다. 이를 지켜본 낙타는 큰 키가 좋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더욱 의기양양했다. 담장을 끼고 돌자 이번에는 좁고 낮은 문이 나타났다. 양은 거들먹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가 화원의 풀을 뜯어 먹었다. 덩치가 큰 낙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보았으나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러자 양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했다. 이만하면 키가 작은 것이 좋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냐는 좀 전의 비아냥거림을 복수라도 하듯 심하게 거들먹거렸다. 결국 둘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우공(牛公)을 찾아가 판결을 요청했다. 우공이 대답하기를 “자기의 장점만 보고 남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남의 단점만 보고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모두 옳지 않다”고 꾸짖었다. 남의 입장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주장, 자기 이익만 취하려는 옹고집이 판치는 요즘 세태에 딱 맞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한번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더라면 굳이 우공을 찾아가 판결을 요구할 일도 따끔한 훈계를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이완섭 시장이 지난달 26일을 기점으로 그간의 심신을 괴롭혀온 선거과정을 모두 끝내고 경쟁의 다툼에서 벗어났다. 선거과정에서 이 후보, 저 후보의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오로지 ‘인물론’을 부각시키며 13일 간의 선거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면서 제8대 서산시장에 오르며 서산호를 이끌게 됐다. 지난 2009년 7월 3일 공직생활 2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부시장에 취임하여 1년 6개월 여 동안 현장중심의 성과주의를 통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홀연히 떠났다가 10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 이룬 성과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도 뒤로한 체 이 시장은 요즘 만나는 이에게 자주 언급하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모든 개인적 감정과 원망을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는 지역민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불신의 벽 허물기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갖는 지역 풍토 조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다짐이다. 시장 취임 이후에 갖는 의미 있는 심경의 변화이자 각오다. 그동안의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토로로 일단은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동안 지역사회에 쌓인 적대와 불신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단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불신의 벽을 허무는 첩경으로 역지사지야말로 지금 서산에서 가장 필요한 키워드(keyword)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번 되짚어 볼 아쉬운 한 구석이 있다. 역지사지 하는 마음가짐이 꼭 이 시장에게만 필요한가. 분명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역지사지 정신의 출발은 서산시민 전체의 공감대 확보를 통해 시작돼야 한다. 특히나 입만 열면 시민과 지역을 위한다고 떠벌이고 있는 몇몇의 사회 지도층과 지역 정치인들은 더욱더 가슴속 깊게 이 말을 헤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앞서 사례든 낙타나 양처럼 그들은 자신의 주장만이 늘 상 정당하고, 남을 헤아리지 않는 일관된 옹고집과 꼼수 펴기를 지금도 서슴없이 자행하면서 지역민 전체의 마음을 닫게 하는 또 다른 원인 제공의 장본인이자 갈등유발자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제는 변해보자.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대한다면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믿음을 믿고 우리 모두 멋지게 한번 실천해보자. 李炳烈 編輯局長
    • 오피니언
    • 칼럼
    2011-11-02
  • 취업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쾌청한 가을하늘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랑을 남김없이 발산하고 서산너머로 저무는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애처롭다. 나는 가을타는 남자인가보다. 낙엽이 구르는 소리도 스산하게 들린다. 가을은 정녕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가을이 좋다. 낙엽 한 잎에도 애잔함이 묻어난다. 억새꽃이 넘실대는 가을의 향연에 살가운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 청명한 가을하늘은 욕심도 걱정도 내려놓고 그렇게 살라고 속삭인다. 단풍은 설악을 넘어 한라로, 촌에서 도시로 말없이 흐르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소리 없이 흐른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게 조용히 흐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이때가 되면 농부는 가을걷이에 바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실적을 내야하는 기업도 모두가 분주해 진다. 필자가 평소 존경하는 한 선배의 아들 A군. 어려운 가정형편이라 휴학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정치권의 인턴 과정을 거치면서 몇 번의 도전 끝에 중앙 일간지 기자가 됐다. 부모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얻어낸 성취이기에 기특한 일이다. 또 다른 선배의 아들 B군. 그는 ‘공시족(公試族)’이다. 공무원시험을 여러 해 준비하고 있지만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겨우 필기시험이 통과되면 면접시험에 미끄러지기를 몇 년째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하니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희비의 배우가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어떤 취업준비생의 아버지는 자식이 몇 번의 면접시험에 떨어지자 채용을 주관한 해당 회사를 찾아가 하소연하더라는 가슴 찡한 얘기도 들린다. 또 다른 부모는 입사시험에 서류전형이 까다롭다는 말을 듣고 자식의 입사지원서에 들어갈 자기소개서를 직접 보내주며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이 취업이 안 되면 부모가 죄인이 되는 세상이다. 그들의 아픔을 보면서 삶과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이미 기성세대가 돼버린 내 자신을 질책해 보지만 그들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미안할 뿐이다. 선호하는 일자리는 늘지 않고 취업지원자는 많으니 취업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다. 게다가 올 들어 세계적인 금융 재정위기로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청년실업률은 평균 8%로 전체실업률 3% 대비 두 배가 넘는다. 정부가 기업을 다그치지만 일자리 부족 문제는 이미 구조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취업은 분노하거나 원망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원하는 직장의 비전과 인재상을 보고 한 발 더 뛸 수밖에 없다. 취업이 되면 환호하되, 몇 번 실패했다 해서 나약해질 이유도 없다. 취업이 목표라면 실패는 한계가 아니라 돌파해야할 또 다른 목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업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업을 선택한다는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따라서 용기를 갖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하나의 스펙을 더하는 사람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미래를 읽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저너리’를 선호한다. 현실은 냉엄한 것이나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창의와 도전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늘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하지 않았던가.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 집중과 긍정적인 마음을 놓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 오피니언
    • 칼럼
    2011-10-27
  • 조작하고 포장된 후보자의 이미지||[데스크칼럼]
    요즘 아침 출근길은 선거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색깔 있는 옷을 차려입고 네거리에 나와서 두 손을 흔들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많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아서 흐뭇하기도 하다. 그런데 선거사무소에 내걸린 현수막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일하겠다는 다짐과 각오보다는 특정 인사들과의 인연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아니, 그렇다면 나의 표를 달라는 것도 주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흐뭇했던 마음이 불쾌해진다. 괜히 속아서 우쭐한 것은 아닐까…. 현대인들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현대 정치를 이미지 정치라고도 한다. 후보자들이 모든 유권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없으니 자신의 이미지를 내세우게 된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포장한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는 교육의원 선거에서도 특정 정당색깔의 옷은 이미 보편화됐었다. 특정 정당과의 인연을 암시하는 듯한 구호와 정책을 흩뿌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60~70년대 교복을 입고 나선 후보도 있었다. 장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지화된 가상인데도 실재보다 더 생생하고 힘이 있다. 가령, 5공화국 시절에 ‘평화의 댐’이라는 것이 있었다.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해서 만들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터뜨려 물로 공격하면 서울에 있는 63빌딩이 40층까지 잠긴다는 등의 모형을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국민을 겁박하고 성금을 갈취했다. 코흘리개들의 고사리손에 쥔 푼돈까지 빼앗아갔다. 지금이야 금강산댐의 수공(水攻) 따윈 애초부터 없었고, 평화의 댐이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당시로서는 평화의댐 건설이 진실이었고 일종의 종교였다. 물론 후보자가 특정인과 인연이 깊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특정인과의 인연이 후보의 정치적 인연이 선거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이미지가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설사 그러한 인연이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그 것은 곁가지 장식품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주민의 욕구가 표출되고 수렴되고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선거때마다 투표율이 매번 높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한다. 그 바탕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비아냥이 깔려있다. 이러한 풍토를 낳은 것도 과잉된 이미지 정치 때문이다. 말로는 정책선거를 외치면서도 이미지만을 쫓고, 근거도 희박한 가십성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고, 건전하고 온당한 비판마저도 비방 흑색선전으로 몰아붙이고, 토론과 논쟁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이미 우리 주변에 만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뮬라크르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위력을 발휘한다.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정책보다는 알맹이 없는 이미지만 넘쳐흐를까 우려된다. 이와 함께 ‘나 하나쯤’하는 생각으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까지 민의가 왜곡된 주민의 대표를 보고 살아야 한다. 정신건강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덧붙여 이번 선거의 유권자 1인당 평균비용은 2만1450원이다. 서산 유권자 12만 4000여 명 중 50%가 투표한다고 해도 13억 3000여만 원이나 되는 세금이 날아가는 셈이다. 이병렬(편집국장)
    • 오피니언
    • 칼럼
    2011-10-19
  • “잘하시네요”, “멋있습니다”, “최고입니다”||[데스크칼럼]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점쟁이 집을 찾아갔다. 그 점쟁이는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똑똑하고 앞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겠으나 안타깝게도 단명하겠다고 예언했다. 또 점쟁이는 아이가 성장해 43세가 되면 죽을 것이라고 했고 그 아이는 그 소리를 옆에서 들었다. 그 후 그는 자라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됐지만 40세가 가까워지자 어릴 때 점쟁이로부터 들었던 말이 계속 생각나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43세가 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은 그를 계속 지배했고 그는 너무나 불안한 나머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해 결국 43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국의 배우이자 가수로서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한때를 풍미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Aaron Presley, 1935년 1월 8일~1977년 8월 16일)와 관련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는 1977년 8월 16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자택의 욕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3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당시 점쟁이로부터 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래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곧 말이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결정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는 10월 26일 서산시장 재선거와 충남도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입후보자들의 ‘말의 잔치’가 시작됐다. 특히 이번에 치러지는 서산시장 재선거는 역대 시장 선거 중 가장 많은 수의 후보가 나서면서 더욱 많은 입후보자들의 말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자신이 반사이익을 챙기기 위해 상대 후보를 헐뜯거나 비방하고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인신공격적인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정사가 좋지 않다, 인격이 좋지 않다, 어렸을 때 나쁜 짓을 했다, 소문이 지저분하다, 성격이 포악하다, 여성들에게 함부로 한다, 외국에서 자녀들이 분에 넘치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등등. 이런 말들은 상대후보의 귀에 흘러 들어가 상대후보의 감정에 상처를 준다. 또한 감정이 상하게 된 상대 후보로 하여금 이 같은 말을 한 후보를 역시 헐뜯고 비방하게 하는 말을 하는 행동을 결정케 한다. 결국 두 후보 모두 감정에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평생 ‘원수 아닌 원수’로 지내게 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지역풍토를 혼탁하게 만들어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입후보자 모두 이웃사촌이고 형님, 동생하면서 지내던 사이가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는 입후보자들 사이에 “잘하시네요” “멋있습니다”“좋네요”“훌륭합니다”“잘될 것입니다” “최고입니다” “힘내세요” “뛰어나네요”라는 말이 풍성하고 인신공격적인 말이 오가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 후보를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말만이 이번 선거를 축제의 장으로 이끌고 선거가 끝난 후 큰 후유증 없이 화합 속에 지역발전을 기할 수 있는 힘을 지역에 안겨줄 것이다. 편집국장 이병렬
    • 오피니언
    • 칼럼
    2011-10-12
  • 신명나는 선거판을 만들자||[데스크칼럼]
    10.26 재보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에 나서는 각 후보자들마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발이 부르트는 강행군에 여념이 없다. 정치 신인들은 신인대로 시장과 행사장 등 지역 곳곳을 하루 종일 누비며 얼굴알리기에 주력하고 있고, 기성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인대로 조직과 인지도 등을 총 동원해 한 표 읍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오다 보니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 열기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보선의 여느 때의 선거와는 달리 선거 열기가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과 분석이 여기저기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어 내심 걱정스럽다. 급기야 서산시선거관리위원회도 이 같은 선거열기 저조를 우려해 지난달 열린 서산시민체육대회에서 투표참여를 권장하는 각종 이벤트를 열어 선거 분위기를 띄우고 유권자들의 관심유도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나섰으나 유권자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도 냉담한 것으로 감지되면서 재차 걱정이 앞서게 한다. 후보들마다 얼굴을 알리고, 조직력과 인맥을 가동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으나 유권자들의 관심은 한마디로 말해 시큰둥이다. 이번 선거에 누가 출마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각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도 모르고 있는 게 태반이다. 참으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 선거에 누가 나왔지”. “후보는 있는데 왜 공약은 없어” . “이번 선거 재미없겠어…”심지어는 “이번 선거는 왜하지”라는 등의 부적정인 반응이 지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본다. 예전과 달리 이번 재보선이 이처럼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무엇일까. 먼저 재미와 흥미를 제공하지 못한 각 정당의 후보 공천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나름대로 치열한 공천경쟁 속에서 불꽃 튀는 공천접전을 기대했던 공천자 선정 과정이 기대 이하로 싱겁고 엉성하게 진행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도 멀리 달아난 것으로 본다. 각 정당마다 이번 선거 후보 공천 과정을 보면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게 사실이다. 결국 각 정당의 후보 선정 과정이 이번 재보선에 유권자들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면서 흥행 실패로 이어진 것 같다. 출마 후보들마다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 위해 저마다 ‘주민을 섬기는, 지역의 참 일꾼’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들만의 말잔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이 있다. 이번 재보선이 앞으로 보름 이상 앞두고 있는 만큼 지역의 참 일꾼을 부르짖는 각 후보들은 물론 소속 정당들도 지역발전의 비전을 보여줄 현실성 있는 정책과 공약 등을 제시하면 흥미를 잃어가던 유권자들이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소중히 생각하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 유권자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와 정성으로 막바지 전력투구에 나선다면 꺼져가던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오를 것으로 믿는다. 유권자들 역시 이번에야 말로 지역발전을 위한 참 일꾼을 가려내겠다는 자세로 선거전에 보다 깊은 관심을 보인다면 서산의 이번 10.26재보선은 전국으로부터 선거열기 고조지역으로 새삼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후보와 유권자 모두가 힘을 합쳐 신명나고 재미있는 '10.26 서산 재보선 축제 한마당 잔치'를 펼쳐보았으면 한다. 편집국장 이병렬
    • 오피니언
    • 칼럼
    2011-10-0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