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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쓴 소리 없는 서산시
    오래된 버전이긴 하지만 지만 네 가지로 분류한 CEO 유형은 촌철살인이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CEO, 똑똑하고 게으른 CEO, 멍청하고 부지런한 CEO, 멍청하고 게으른 CEO로 구분했다. ‘똑부’를 CEO로 둔 조직은 피곤하고 괴롭다. 직장 상사가 똑똑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니 직원들은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 큰 톱니바퀴가 빨리 돌면 주변의 작은 톱니바퀴는 정신없이 돌다가 결국 망가지고 마는 이치나 똑같다. ‘멍부’스타일은 목표가 어디인지,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는 불알 안 깐 돼지 유형이고 ‘멍게’스타일이라면 조직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직장 상사로서 바람직한 유형은 ‘똑게’형이다. 게으르다는 것은 단순히 나태함을 이르는 게 아니라 묵묵히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부하 직원은 어떨까. 상사가 좋아할 유형은 당연히 ‘똑부’형이지만 싫어하는 유형은 쓴 소리 잘 하는 직원이다. 쓴 소리를 자주 해야 건강한 조직이 된다고 겉으론 칭찬하지만 속으론 피곤하게 생각한다. 쓴 소리는 조직이나 CEO한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분이다. 잘못 가는 일이 없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쓴 소리가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부하 직원이 상사한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스스럼없이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다. 문제는 쓴 소리를 받아들이는 직장 상사의 태도에 있다. 진정성을 갖고 쓴 소리 소통의 직장문화를 만들어 가는 CEO가 있는가 하면 아픈 곳을 찌른다는 이유로 쓴 소리를 멀리하는 이도 많다. 후자라면 부하 직원은 금세 눈치를 채고 입을 닫아버린다. 하물며 자치단체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직자라면 마땅히 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쓴 소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집무실 벽엔 시민과 공무원들의 쓴 소리를 모은 파일이 빼곡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산시청은 직언하는 조직, 쓴 소리 하는 분위기가 영 아닌 모양이다. 물론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CEO에게 비판은 일종의 삶의 자극제다. 직원들이 반대를 표현하기 힘들어한다면, 제도화해서라도 직언을 들어야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나서서 거침없이 한마디 할 수 있을 때 조직의 분위기는 살고, 그것은 조기의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 특히 반대 발언이 눈치 보며 꼬리 내리지 않고 활성화되려면, 직언한 사람이 여러 면에서 피해보지 않고 오히려 중용된다는 가시적인 조치와 스토리도 필요하다. 대안 있는 반대와 직언을 하는 그가 바로 조직의 충신이다. 쓴 소리하는 직원을 멀리 하고 단 소리 참모만 데리고 일 한다면 뻔할 뻔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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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1
  • 서산시 사무관의 3가지 유형
    서산시청 A과장은 업무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하직원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진급을 했는지”라는게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부하직원들의 평가다. 부하 직원들은 한 마디로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진급을 했다는 반응이다. B동장은 주민들로부터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선거법에 저촉이 된다, 예산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신의 지위와 무관한 답변만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시장에게 민원을 직접 제기한다고 하면 그제야 민원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정도다. 최소한 서산의 공무원 사회에서 사무관(5급)은 꽃으로 불린다. 공직사회에 들어와 처음으로 주어진 명실상부한 간부급 직책으로 휘하에 많은 직원들을 거느리면서 지휘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들의 선택은 종종 중요한 정책 결정의 주춧돌이 되기도 해 공직사회에 발을 디딘 모든 공직자가 사무관 승진에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 서산시에는 현재 47명의 사무관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9급 공채로 들어와 사무관이 되기까지 평균적으로 대략 28년 이상이 걸렸는데 6급으로 정년을 마치는 공무원도 적지 않으니 이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할지 쉽게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꼭 한번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서산시 사무관들의 근무행태 및 업무자세다.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일단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주어진 업무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행동대장형 사무관이다. 일을 스스로 찾거나 만들어가며 열심히 발로 뛰는 스타일이다. 상당수 사무관들이 그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때로는 욱하며 치밀어 오는 성질도 참아내며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뤄내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가 절로 보내진다. 다음으로는 본전치기용 사무관이다. 일을 벌이기 싫어하는 부류로 윗사람이 시키는 것이나 그냥 대충 한다. 쉽게 말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보자는 식이다. 일부의 이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일이 안 풀리거나 지적을 받으면 부하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며 오히려 그들을 쥐어짜기도 한다. 잘 된 것은 모두 자기가 잘해서 된 것이라고 자화자찬이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자리만 지키는 식물형도 있다. 시민 혈세로 월급주기가 아깝다.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함은 물론 업무파악도 못하고 있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뭐가 뭔지 돌아가는 분위기조차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은 차라리 없는게 낫다. 특히나 이런 부류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불평·불만이 많으며, 어두컴컴한 뒷 담화 늘어놓기를 즐겨한다. 서산시가 매년 두 차례의 정기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그때마다 인사와 관련한 하마평이 일고 있지만 인사철에 즈음해서 인사권자가 반드시 그들의 숨겨진 뒷모습을 봤으면 한다. 앞서 열거한 3가지 유형의 사무관 사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부는 행동대장형이 아닌 본전치기용ㆍ식물형사무관으로 전락할 조짐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명하고 적극적인 사무관은 지역발전을 위한 크나큰 주춧돌이 될 수 있지만 반면 그렇지 못한 이는 지역발전을 더 퇴보시킬 수 있기에 다소 부절적한 함량 미달자들은 평소부터 철저한 검증을 통해 가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망사(亡事)가 될 수도 있음을 재차 지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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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1
  • 공무원들의 ‘눈치’ 대상은 시민이어야
    눈치란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따위를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 또는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라고 정의된다. 즉 눈치란 ‘센스’를 의미하기도 하고 ‘마음의 기미’를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눈치 빠르게 그들 둘이서만 있게 해 주었다’거나 ‘그 사람은 직업상 눈치가 빠르다’고 할 경우 눈치는 ‘센스’를 의미한다. 반면에 ‘그녀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라든가 ‘그런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경우 이때 눈치의 의미는 ‘마음의 기미’를 뜻한다. 얼마 전 한 시민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시청을 찾아 담당공무원을 만난 후 불만을 토로한 일이 있다. 그는 담당공무원이 자신의 민원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기는커녕 대뜸 ‘윗선에서 이 민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기가 찼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공무원은 누굴 위해 일하는가'하고 화를 벌컥 냈다”면서 민원해소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지방자치시대로 접어들면서 공무원 사회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중의 하나가 바로 이 ‘눈치’다. 민원인들이 인허가와 관련된 사안을 가지고 행정기관을 찾으면 소신 없는 일부 공무원들은 소위 ‘윗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려해 민원사무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준에 맞으면 법률상 의무적으로 처리해 줘야 하는 ‘신고’나 ‘등록’과 관련된 민원이 아니고, 자치단체의 재량권이 부여되는 ‘인가’나 ‘허가’민원의 경우 ‘윗선의 눈치’가 민원사무처리의 기준이 됐다는 게 시민들의 지적이다. 특히 민원사무가 아니더라도 해당 공무원이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소신 있게 일해야 하나 윗선에서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가 보이면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공무원들은 시민이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시민들로부터 위탁을 받아 공무를 처리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공무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민들의 안녕과 지역발전’이 돼야 하는데도 일부 소신 없는 공무원들에게 ‘윗사람의 눈치’가 그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윗선의 눈치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미리 미리 알아서 기는 공무집행의 행태다. 윗선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지시된 사항이나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는가. 윗선의 책임이 크다. 모든 인허가 민원을 해당 부서에서 소신 있게 처리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않고 자신들의 손에 틀어 쥐고 좌지우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윗선이란 과장이나 국장ㆍ부시장ㆍ시장이 될 수도 있다. 윗선의 입맛(?)에 맞게 일하면 높은 근무평점을 받아 승진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인사 때 승진은커녕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게 공무원 사회의 현실이고 보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정작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아야 대상은 ‘윗선’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윗선이 아닌 시민들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눈치’를 살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눈치, 즉 센스 있게 처리할 때 지방자치제도는 성숙되고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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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18
  • 인사가 만사||데스크칼럼
    인사(人事)는 글자 그대로 ‘사람에 관한 일’ 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특정 행위들에 대해서만 ‘인사’라는 말을 쓴다. 조직내의 자리이동이나 안부ㆍ공경의 표시, 사람의 도리, 신세 갚음 등이다. 세상만사 중에서 굳이 이런 일들에만 인사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이런 행위의 안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소홀히 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뜻일 게다. 공직사회의 인사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인사를 발표하는 측에서도 투명성, 공정성, 형평성, 능력 등의 단어를 동원해 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설명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기 위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찌보면 선출직 단체장의 인사권한은 재량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뜻을 맞춰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하고 기용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직사회의 잘된 인사는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지만 나쁜 인사는 조직내에 갈등과 불화의 씨앗이 되고 결국 조직을 와해시킨다. 따라서 공직 인사에 대해 사회의 평가가 뒤따르기 마련이고, 단체장들이 인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산시는 이완섭 시장 취임 이후 인사행정에서 청렴성을 인정받아 왔다. ‘쩐(錢)따라 삼천리’라는 식의 금권인사에 대한 뒷말이 사라졌다. 그 자체로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5일자 단행인사를 보면 측근 인사 또는 배려인사라는 느낌이 떠나질 낳는다. 이 시장은 취임 이후 공사석을 막론하고 인사기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강조해왔다. 이른바 능력이 기준이 아닌 배려차원에 더 중점을 두어왔다. 그 배려가 연장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 됐다. 이는 그 내용을 떠나 과정에 하자가 있다. 우선 공무원법은 신규채용이나 승급, 승진, 전직, 전보 등 모든 임용의 원칙으로 ‘능력에 따라 균등한 임용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으로서 하자가 없다고 해서 길거리 지나는 사람을 아무나 데려다가 공무원을 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용요건을 갖췄다고 해서 무조건 임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네에서 윗 어른에게 인사를 잘못하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또 남에게 신세진 일에 대해 너무 물질적으로만 인사를 닦으려고 하다가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게 된다. 인사가 인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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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04
  • 장묘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데스크칼럼]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분묘 수는 2,065만기며 묘지 면적은 1022㎢(3억 970만 평)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매년 서울 여의도 면적에 해당하는 땅이 묘지로 잠식되고 있다고 한다. 국토의 1%가 넘는다. 묘지 1기당 면적은 15평으로 국민 1인당 주거 공간의 3.5배에 이른다. 이러한 묘지 수는 해마다 17만기씩 늘어나고 있다. 넓이로 따지면 8㎢ 정도로 서울 여의도와 맞먹는다.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묘지는 계속해서 늘어나 더 이상 묘지를 쓸 땅도 없을 지경이다. 전국적으로 이미 2000만기를 넘어선 묘지는 주로 개인묘지로서 70% 이상이 불법이다. 이러한 묘지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방해하고 생태계 파괴, 자연경관의 훼손 뿐 아니라 조성과 관리에 있어 개인과 사회에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 또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보기 어렵고 사후관리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묘지의 40% 이상은 무연고 묘지로 관리조차 되지 않고 있어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의 묘지는 전체 묘지중 개인묘지가 69%, 집단묘지(공동묘지)가 31%로, 개인묘지의 70%이상이 불법묘지이며 활용 가능한 땅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와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 1인당 주거공간은 4.3평인데 묘지면적은 평균 15평에 달해 주거공간의 3~4배나 더 큰 실정이다. 서산시가 최근 인지면 산동리 일원의 희망공원을 자연 친화적인 자연장지를 조성하는 등 이른바 선진 장사문화를 정착을 위해 확장한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밀려 추진이 늦어지고 있다. 서산시는 나름대로 확장계획에 타당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주민들은 희망공원이 확장될 경우 통행되는 차량이 늘어나는 등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민들의 불편은 예상되지만 주민들도 무턱대고 반대만 할 것 만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홍콩 등지에서의 추모공원은 주민들에게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의 묘지는 그 자체가 마치 예술품과도 같아 조각 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아름다운 장식과 조각품들 때문에 관광명소로 각광받을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기거하던 풍습이 조선시대 말까지 전해 내려왔다. 아니 서산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볼 수 있었던 풍경이기도 했다. 죽은 자가 무섭고 혐오스럽다면 어떻게 산소 옆에서 3년이란 기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산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은 자로 된다. 지난 2001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묘지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분묘의 설치기간을 최장 60년으로 하고 묘지의 크기는 대폭 축소하는 한편, 화장과 납골에 관한 현행법 규정의 미비점을 개선, 보완하였다. 특히 설치기간이 종료된 분묘는 유골을 화장 또는 납골하도록 하고 있으며 적합하지 않게 설치된 장묘시설에 대해서는 종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에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하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지금 인지면은 희망공원을 확장하는 일로 평온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이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여기에다 이웃마을 주민들도 덩달아 반대에 합세하고 있으니 ‘누구나 죽으면 묻힐 일’을 놓고 아까운 힘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서산시가 추진하는 장묘시책을 관과 민이 지혜를 모아 후손으로부터 조상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야겠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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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27
  • 스승의 날에 드리는 바람
    지난 15일은 제31회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존경하며 추모하는 뜻으로 제정된 날입니다. 조선시대 유교를 중시했던 우리나라.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즉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가 하나 같이 우러러 받들 대상이라 해 스승을 임금이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예우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21세기에 봉건시대 냄새가 풀풀 나는 소리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제자거칠척사영불가답(弟子去七尺師影不可踏)이라 해 제자가 스승을 따를 때는 7척 거리를 두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의 스승 존중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스승 존경 및 존중사상은 엄연한 우리나라의 윤리였습니다. 그러면 당시 하늘같이 여겨지던 君師父(군사부)는 지금 어떻게 돼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되고 대통령의 임기만 끝나면 대통령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과 가신들이 감옥에 가는 것이 전례처럼 돼 버렸습니다. 스승의 권위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폭행당하고, 선생님의 말은 그냥 흘러가는 소리에 불과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처자식의 눈치를 보며 무시당하며 가정 밖으로 내몰리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필자가 문득 학창시절 스승의 날을 회상해 봅니다. 시골에서는 스승의 날 선물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집에서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씨암탉이 낳은 달걀을 모아 선생님께 쑥스럽게 전해드리기도 하는 등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아주 작은 정성이라도 표시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가정이 너무 어려워 선물을 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편지로 대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는 학교에 치맛바람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돈 봉투와 상품권을 갖가지 방법으로 건네는 것이 스승의 날의 풍속도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에게 선물이나 촌지를 건네는 것이 사회문제화 되는 분위기로 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필자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스승의 날에 물질적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이지요. 학생들이 스승을 우습게 생각하는데는 부모들의 책임, 즉 사회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핵가족 시대를 맞다 보니, 자식들을 애지중지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기 자식만을 위한 일차원적인 생각에, 학부모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에 대한 편협된 사랑이 도를 넘다 보니, 스승까지 안중이 없는 무례가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학생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대다수의 교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을 꾸짖고 훈계하며 체벌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교사는 어떻게 보면 검사ㆍ판사ㆍ의사ㆍ약사ㆍ회계사들처럼 교육만을 위해 교육받고 공부한 전문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선생님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구 보다 많은 시간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육자이기 때문입니다. 약사ㆍ의사ㆍ변호사에게 모든 사항을 털어놓고 전적으로 일임하는 것처럼, 학부모들이 학생교육에 대해 가타부타 하지 말고 교사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사심을 위해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교육과 관련된 사항을 학부모가 나서서 학교에 가서, 그것도 학생들이 보는데서 따지게 되면, 교사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조성돼 학생들에게 각인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회단체의 교육계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는 존중하지만 극단적인 ‘교단 몰아가기 식’비판을 삼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생님을 무시하는 듯한 학부모와 일부 사회단체들의 태도는 민감한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학습 분위기는 물론, 스승 경시풍조로 이어질 것입니다. 순자(荀子)의 사상을 집록한 권학편(勸學篇)에 스승은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 하여 본인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워 내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던 것을 생각하면, 교사들도 스승의 날을 맞아 사제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번 스승의 날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승을 존중, 교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스승은 제자를 아끼는 마음가짐을 다시한번 다지는 날이 됐을 때 건전한 기본사회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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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6
  • 이제는 화합이라는 정치문화의 꽃 피울 때
    4.11총선이 끝났다. 어느 해보다 꽃샘추위가 길었던 2012년이다. 금년에는 윤3월이 있어 봄이 늦게 찾아오나 보다. 아니 매서운 4.11 총선 바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제 봄이 그 모습을 드러내나 보다. 이번 총선은 총성 없는 전쟁 같았다. 초박빙 승부와 ‘안갯속’판세라는 예측의 선거운동 기간을 지나 마침내 그 모습을 나타낸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해석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그 표심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당선자들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낙선자에게는 위로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거름삼아 다시 일어서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선거운동 중 후보자들은 승리하기 위해 서로가 치열하게 싸웠다. 후보자들만 싸운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각자의 견해와 이해관계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간의 분열과 갈등을 털어 버리고 하나가 되는 포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같이 살아가야 할 한 이웃이요, 지역공동체가 아닌가. 분열과 갈등을 넘어 우리 모두 하나가 될 때 화합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고 그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로운 내음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구수로 대변되는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우리 서산시는 아주 작은 위치에 있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의석수 300석 가운데 달랑 1석이니 정치의 산술적 비중 또한 0.3%인 셈이다. 0.3%의 국회의원이 중앙에서 서산시와 태안군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소지역주의를 넘어 ‘서산과 태안’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인성사(因人成事)라는 말처럼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있어서 서산시와 태안군의 행정력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중앙 정치무대에서 서로가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보다 큰 융합에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산시와 태안군이 전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0.3%는 결코 미약하기만 한 수치는 아니다. 세계 0.3%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사상을 지배하지 않았는가? 이제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이 앞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선거로 인해 나뉘었던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다시 하나 되어 그동안 잠시 옆으로 밀어놓았던 지역의 현안들과 미래의 비전을 실현해 줄 사업들을 다시금 추스르고 추진한다면 화합이라는 아름다운 정치문화의 꽃이 우리 지역 여기저기에서 봄과 함께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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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8
  • 공무원들을 해외로 보내라
    개화기 때 조선의 지식인 유길준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인 유학생이다. 유길준은 유럽과 미국을 둘러보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견문록을 썼다. 책은 무기력한 조선 지식인의 치열한 고뇌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정치 구조와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면서 당시 조선의 정치적 외교적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조선 근대화의 자양분이 됐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왕오천축국전’도 일종의 견문록이다. 신라 승려 혜초가 쓴 이 책은 개인적 감상을 배제한 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 그 지역 지배자 이름, 언어와 기후, 지형, 풍습, 종교, 특산물과 음식 등을 사실에 기반해 기록했다.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혜초의 기록 덕분에 우리는 당시 서역의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러시아 표트르 황제는 개혁 군주다. 그의 이름 뒤에 ‘대제(大帝)’라는 칭호가 붙는다. 러시아를 제국의 반열에 올린 장본인으로서 족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과 서양 문물에 관심이 깊었다. 직접 대포를 주조하고 석공술을 연마 했다. 표트르 대제는 젊은 시절, 서구 기술을 익히기 위해 평민 복장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신기술을 익혔다. 서유럽에 젊은 러시아 청년들을 사절단으로 보낼 때 신분을 숨기고 동행한 것이다. 프로이센(독일)에서는 포병 하사관으로 가장해 대포 조작술을 익혔고, 네델란드에서는 목수로 가장해 선박제조기술을 배우고, 영국에서는 수학과 기하학을 배웠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강국으로 우뚝 세운 것은 이런 풍부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바로 표트르 대제를 기념한 도시다. 동방견문록과 서유견문록, 왕오천축국전, 표트르 대제를 늘어놓은 이유는 다름 아니다. 공직자들에게 견문을 넓히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많이 보고, 듣고, 느껴야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서산시 공무원들을 해외로 보내야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아직 서산시 공무원들의 인식수준이 지역에 한정된 것 같아 답답하다. 그래서 ‘우물안 개구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물을 뛰어넘어야 강을 만나고, 바다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역에만 갇혀 알량한 인허가권을 휘두르며 민원인에게 군림하는 편협한 사고로는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공직자들의 해외연수를 적극 권장한다. 이를 외유성 예산으로 보는 시각은 편협하다. 공직자들의 사고가 유연해지고, 지식의 창고에 문물이 쌓일 때 지역발전으로 연결된다. 정부가 투자를 늘리면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이는 중소기업과 내수를 진작시킨다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는 경제학에서만 유용한 게 아니다. 인적 투자로 인한 트리클다운 효과는 승수 효과로 나타난다. 도내 일부 지자체에서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해외여행경비를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서산시는 이완섭 시장이 취임한 이후 공무원들의 해외여행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장은 부시장 시절부터 해외경비 몇 천만 삭감하는 게 예산절감은 아니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공직자들의 해외연수가 지역발전에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신사유람단과 같은 형태를 빌어서라도 공무원들의 해외여행을 적극 권장한다. 글로벌 경쟁력은 안방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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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3
  • 청탁과 시의원
    청탁과 부탁에 관련된 옛날이야기다. 위(衛)나라 대신 우재가 노(魯)나라 사신 후성자에게 어느 날 술을 대접하게 됐다. 흥겨운 술판이지만 우재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기쁜 얼굴 표정이 아니었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술이 얼큰히 취해 온 우재는 보석을 꺼내 후성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어느 날 후성자가 우재의 집 곁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자 하인이 그 까닭을 물었다. 후성자는 “우재가 술좌석에서 음악을 들으며 슬픈 얼굴을 한 것은 걱정이 있음을 내게 보인 것이고, 또 나에게 보물을 준 것은 그것을 내게 맡겨 두려는 심산이었지.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머지않아 위나라에 난이 일어날 것이야”라고 말했다. 얼마 뒤 정말 위나라 대부 영희(寧喜)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우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세월이 좀 지난 다음 후성자는 우재의 가족을 데려와 자신의 저택 한 쪽에 살게 하고 우재의 아들이 다 자라자 받았던 보물을 아들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하니 말은 한 마디 하지 않았으나 우재는 뒷일을 후성자에게 부탁했고, 후성자 역시 말 한마디 듣지 않았지만 우재의 부탁을 다 들어 준 것이다. 모름지기 청탁 혹은 부탁이란 이렇게 가슴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사람 사이에서야 비로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해준 뜻 깊은 의미의 얘기 한토막이다. 요즘 서산시의회 모 의원에 대한 시중 여론이 좋지 않게 떠돌고 있다. 서산시가 재정조기집행에 따라 사업발주량이 폭주하고 있는 가운데 각 읍면동에서도 일정량의 사업이 발주되고 있다. 여기에서 모 시의원이 자신이 추천하는 업체에게 공사를 맡기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아예 자신이 직접 업자들에게 배당하듯 사업발주를 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러한 소문은 지난해에도 들려왔었다. 직위를 악용하여 집행부에 대한 이들의 줄기찬 압력 행사를 둘러싼 시중 소문이 만일 사실이라면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사자는 이 소문이 사실무근임을 주장하지만 진실 여부는 분명 가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반적인 시민들의 생각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고개만을 연신 갸우뚱거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해당 시의원은 반드시 자신들의 처신과 행동을 되짚어 보길 바란다. 그만큼 불신의 벽이 높아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올바른 처신과 행동을 충고한다. 소문이든 사실이든 진실은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실이 깊숙한 구멍 속에 갇혀 있거나 두터운 껍질 속에 감춰져 있을 때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그럴듯하게 윤색된 거짓일수록 표면이 매끄러워 사람들의 눈을 쉽게 속인다. 갇혀있던 진실이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낼 때, 껍질에 싸여있던 진실이 알맹이를 보일 때 사람들은 그동안의 거짓에 감쪽같이 속았다는 사실에 큰 분노와 허탈을 느낄 것이다. 특히 권력을 앞세워 진실을 감추고 도에 지나친 거짓을 행할 때 우롱당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칠고 뜨겁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 우재와 후성자간에 있었던 상식의 부탁과 청탁으로 시민들에게 쌓여있는 불신의 벽을 허물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행인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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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8
  • 좋은 유권자 되기||[데스크칼럼]
    4월 11일. 제19대 총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동안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정당공천에 이어 여야와 무소속의 모든 후보자들은 저마다 내걸고 ‘표심(票心)얻기’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도 정치적 무관심과는 달리, 후보자들의 행동거지를 면밀히 살피며 지역을 위한 성실함과 노력으로 희생과 봉사를 아는 지역일꾼을 선택하기 위한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매니페스토(manifestoㆍ참공약 선택하기)’운동도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실천불가능 또는 추상적 공약을 지양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공약을 우선순위와 예산까지 적시, 철저히 검증받도록 하자’ 는 운동. ‘표심’을 흔드는 ‘장밋빛 공약’을 걸러내자는 취지에서 출발, 새로운 선거문화의 정착과 정치 선진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유권자들은 과거처럼 돈 선거 등 퇴폐정치가 사라지고, ‘정치개혁 또한 이뤄질 것인가’ 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 이상의 기대심에 부풀고 있다. 예전처럼 흑색비방과 지역감정에 호소하면서, 유권자들을 혼탁 논쟁으로 밀어 넣는 선거풍토를 조장해 온 출마자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지길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유권자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후진국형 정치 행태를 반복하는 후보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이념이나 철학이 없는, 그럴싸한 명분만 갖다 붙이면 그만이라는,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후보는 유권자들로부터 엄정한 심판을 받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손쉽게 당선될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발전은 유권자들의 손에서 출발한다. 어줍지 않은 경력에 우선하고, 혈연ㆍ학연ㆍ지연에 우선해 지역 가르기 투표에 따르겠다는 유권자나 그 표를 원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 착각과 망상 속에서 벗어나도록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 유권자가 현명해야 정치 선진화를 달성할 수 있다. 정치적ㆍ행정적으로 경험ㆍ경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지역 민의의 대변자’ 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식과 위선보다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지역발전을 꾀하고,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양식 있는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한다. 우리는 선거철만 되면 ‘공약(空約)’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해 왔다. 후보자들의 당선을 위한 애절(?)한 마음은 이해되지만, ‘공약(空約)’은 절대로 안된다. 선거에 있어 ‘공약(空約)’을 쏟아 놓는 후보자들을 탓하기에 앞서, 그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유권자들의 안목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정책대결을 외쳐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분열을 부추기는 정쟁과 ‘아니면 말고’ 식의 ‘공약(空約)’ 이 남발돼 왔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4.11총선, 이제 유권자 스스로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올바른 ‘공약(公約)’을 제시한 후보자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 그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 편 가르기나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유권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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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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