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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서산이 필요로 하는 것?
    데스크칼럼 이병렬 편집국장 사생결단의 당파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조선 후기 송시열과 허목은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학자였다. 당시 송시열은 노론, 허목은 남인의 영수로, 말 그대로 최대 정적 관계였다. 어느 날 송시열이 중병을 앓아눕게 된다. 백방으로 용하다는 약을 구해 복용하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병세가 악화하자 송시열은 마침내 자신의 아들에게 ‘의술’에 조예가 깊은 허목에게 처방을 부탁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허목은 기꺼이 응한다. 문제는 처방전에 독약 수준의 비상이 포함됐다. 허목을 믿지 못한 송시열 아들은 비상을 빼고 약을 달여 올린다. 좀체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아들을 불러 허목의 처방이 맞느냐고 추궁한다. 아들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송시열은 “허목은 용렬하고 비열한 선비가 아니라며 용서를 구하고 처방전을 다시 받아오라”고 호통을 친다. 새 처방전에 따라 송시열은 마침내 병석을 털고 일어나 정사를 돌보게 된다. 작금의 서산은 ‘서산비행장 민항 유치’, ‘서산바이오웰빙특구 건설’, ‘대산항 국제여객선 취항’, ‘당진-대산 간 고속도로 건설’등 각종 현안이 한꺼번에 겹쳐 어수선한 분위기마저 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산시와 서산시의회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기자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비단 기자의 생각만은 아닌 것이 중론이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혹자는 서산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과정의 ‘성장통’이라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서산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극히 일부긴 하지만 마치 이를 즐기고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지역 분열을 조장하거나 획책하는 유언비어를 양산하며 벼랑으로 내모는 데 혈안이다. 앞서 언급한 송시열과 허목의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선 서산 발전에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힘을 모아 성공한 사례는 불과 얼마 전에 경험했지 않은가? 이완섭 시장과 김제식 국회의원의 ‘협업정치’는 정부가 예산안에 조차 끼워 놓지 않았던 ‘서산비행장 유치를 위한 타당성조사용역비’를 국회 본회의에서 과정에서 끼워 넣는 성과를 거두게 했다. 정부 예산안에 빠진 사업이 국회 심의 과정서 살아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서산시와 이 시장은 사업을 예산에 포함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여기에 김제식 의원 또한 지역 현안사업 예산확보를 위해 나름의 역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이 거대한 서산시 현안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개인감정이나 ‘정쟁’이 있을 수 없고 사회 지도층 인사는 물론 서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서산에 뼈를 묻을 시민이라면 진정으로 서산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언일까. 이완섭 시장과 장승제 서산시의회 의장이 사심을 버리고 한자리에 모여 현 난국을 풀어갈 중지를 모으는 등 협력 관계를 구축하길 소망해본다.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서산의 불행을 원하고 안정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두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오만가지 해석이 판을 치고 있다. 예들 든다면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등의 얘기가 사실처럼 시중에 떠돌기 때문이다. 서산의 주인은 서산 시민이다. 건물 주인이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건물을 관리를 포기한 건물로 판단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린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발전 잠재력이 무궁무진해 희망찬 미래 도시로 불리는 서산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데 어느 누가 서산에 투자하고 살려고 할 것인가. 지금 서산이 필요한 것은 비난과 힐난의 돌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온 진정한 애향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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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10
  • 서산나이 열세 살||데스크칼럼
    이병렬 발행인 겸 편집국장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산길에 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휘적휘적 걷는데 분홍 꽃이 활짝 핀 나무가 보인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지난 갈대 사이에 서 있는 개 복숭아다. 발길을 멈추고 꽃들을 살펴보는데 한 꽃잎에 이슬이 맑은 구슬인양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바람 탓인지 세월 탓인지 어느새 떨어진 이름 모를 하얀 꽃잎들은 꽃길을 만들고 있다. 초록은 점점 세상을 뒤덮고 있고 산은 꽃 산으로 변해가고 있다. 필자는 불혹을 훌쩍 넘겨 서산에 정착을 시작했다. 40여년을 넘게 강원도와 서울에서 생활하다 서산으로 왔으니 나로서는 올 해가 서산나이로 열세 살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이 봄은 그 열세 번째 봄이기도 하다. 참 좋다. 세상 근심을 내려놓으니 봄꽃을 자유로이 볼 수 있고 잣나무, 청설모에게도 말을 건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걸 두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는 것이리라. 사람이 산다는 것을 반추(反芻)해 본다. 나는 지금껏 시간표가 인생인 줄 알고 살았다. “이거 마치면 다음에 저걸 해야지.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 승진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조직이 요구하는 시간, 거기에 맞춰야 하는 나는 시간을 중심으로 이정표를 세우고 살았다. 공간보다 시간중심으로 살다보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늘 종속적이고 부차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다. 그저 미래가 중요해져서 현재의 삶은 철저히 무시되기도 하고 희생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아님 바쁜 세상을 비켜나서인가 서산나이 열세 살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공간중심으로 살면 어떨까? 습관적으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한다. 시간중심의 사고이다. 그러나 시간 개념의 과거와 미래는 시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공간으로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남겨진 공간(형태와 기억)으로 존재하고 미래는 우리의 상상(뇌 공간)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현재가 지나간 궤적이고 미래는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은 시간 그 자체이기보다 현재 내게 주어지는 기회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계획과 로드맵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이고, 우리가 늘 직면하는 기회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되돌아보면 내 삶의 상당 부분이 순간, 순간, 시간에 매달려 살다보니 공간은 늘 타향 어딘가의 거기가 거기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반복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찾아 친구들과 어울린 적도 크게 없다. 바삐 세상을 산 많은 이들의 삶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되뇌어 본다. ‘무엇’이 되겠노라, ‘무엇’을 해야 된다고 시간표만을 세워 놓고 살기보다는 매 순간 위치하는 ‘지금 여기’의 삶에 의미를 두고 ‘어떻게’ 이 순간들을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채울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 아니겠느냐고. 서산나이 열세 살. 앞으로 언제까지 ‘지금 여기’를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가. 또, 지금 여기가 얼마나 감사한가.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에 함께하는 사람들, 일들, 짜증과 고민까지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 우리 모두 시간을 넘어 ‘지금 여기’라는 곳으로의 공간여행을 시작하자. 나는 내 제2의 고향 인 서산 여행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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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9
  • “왜 차가 없어요”||데스크칼럼
    이병렬 편집국장 기자생활 27년이지만 나는 자가용이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다. 앞으로도 면허를 따거나 차를 살 생각은 없다. 그동안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가 왜 차가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번 기회에 그 이유를 밝히자면 이렇다. 환경문제를 생각해서라든지 그런 거창한 건 아니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였다. 1988년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발령받고 나니 차를 사라는 선배들의 권유가 있었다. 실제 그때 취재기자들은 대부분 차를 몰고 다녔다. 당시 내 월급은 50만 원 정도였다. 그 월급으로 어떻게 차를 사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월세로 10만 원, 겨울에 난방 겸 취사용 LP가스 네 통 가격이 10만 원인데…. 게다가 밥도 사먹고 술도 마시고 옷도 사 입고 친구도 만나고, 가끔 부모님 용돈도 줘야 하는데…. 결국 ‘촌지’라는 뒷돈을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는 한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그 무렵 우연히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대부로 통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구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시장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일을 배웠다는 그는 몇 해가 지나고, 약간의 모은 돈으로 조그만 야채가게를 시작했는데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이 모이면, 고향에 집안이 어려운 후배를 서울로 불러다가, 자신의 가게 옆에다 가게를 하나 내주고, 일도 가르치며,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다 돈이 모이면 또...그렇게... 이 분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한 달 매출이 약 20억 정도 되는데도 자가용이 없었다고 한다.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좀 멀리 가야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고, 심지어 지방 출장 갈 때도 택시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런 분도 차가 없는데…. 월급 50만원 주제에... 그 후 한 호텔 신축공사장이 붕괴돼 7명이 숨지는 사고가 터졌고, 그 현장에 내가 택시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함으로써 ‘기자의 신속성’은 차량 유무와 무관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었다. 월급 100만 원이 넘은 후에도 차 없는 생활에 이미 익숙해진 터라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사실 좋은 점이 더 많다. 장거리 여행 땐 버스나 기차 안에서 미뤄뒀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여유롭게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술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고, 주차할 곳을 못 찾아 뺑뺑이를 도는 수고도 없다. 서산에서 시청 부근을 지나다 택시를 기다리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조규선 서산시장의 관용차를 얻어 타는 호사를 누린 적도 있다. 그리고 또 있다. 당시 변웅전 국회의원, 이창배 도의원, 이수영 과장(현재 복지산업국장), 오세호 시의원 등 수많은 사람과 동승한 적이 있다. 이게 다 내 차가 없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요즘도 그렇다. 밤늦게 야근을 하는 날엔 지인들이 기다리다 집에까지 태워다 주는 일도 있다. 차가 없어 누리는 호사에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물론 차가 없으니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일도 있다. 우선 거리 곳곳의 불법주차가 우선 못마땅하다. 아파트 1가구당 1대의 주차공간을 ‘기본’으로 주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차가 없는 사람에게 관리비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자기 차가 있는 사람은 주행 중이든 주차 중이든 항상 주차 1면 공간(2.3× 5m 이상, 약 4평)만큼의 공용면적을 점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욕심이 많은 나라에서 불법주차에 대해선 왜 이리 관대한지 모르겠다. 더 기분 나쁜 건 매일 차량 배기가스를 내뿜고 다니는 사람들이 길거리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장할 때다. 얼마 전 이런 만화를 봤다. 굴뚝에서 엄청난 매연을 뿜어내고 있는 화학공단의 길목에 ‘금연’ 표시가 붙어 있었다. 과연 담배연기가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나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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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11
  • 서산의 ‘똠방각하’
    이병렬(본지 발행인) 1990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방송 드라마가 있었다. 미니시리즈 ‘똠방각하’다. 최고의 시청률을 연일 경신하며 뜨거운 화제를 모은바 있다. 당시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거리는 한산했다. 순전히 이 드라마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TV앞에 모여 앉았기 때문인데 그 인기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똠방각하는 최기인의 소설을 각색한 코믹스런 드라마다. 시골 좁은 바닥에서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는 주인공을 통해 세태를 꼬집고 있었는데 주어진 직책을 완장에 새겨 팔뚝에 차고 무능력하지만 능력이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주인공의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기가 정말 기가 찼었다. 그 포악의 정도가 워낙 심하다 보니 드라마 방영이 막을 내린 이후 우리들은 되먹지 못한 행세를 하는 사람을 보고 ‘똠방 각하’라고 부르기도 했다. ‘똠방’이란 말은 실속 없이 덜렁거리고 다니거나 아무데고 아는 체하고 나대며, 머리보다 몸이 앞세우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일컫는 말이다. 즉, 무능력하면서도 마치 자기가 무슨 큰 능력이나 있는 것처럼 행세하다 시쳇말로 ‘왕따’ 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더구나 이러한 똠방에게 완장이라도 채워주면 자기가 가진 권력을 마음대로 교묘하게 휘두르는 각하가 된다. 바로 똠방각하가 된다는 얘기다. 당시의 드라마에서 주인공 똠방은 보란 듯이 완장을 차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동물적 본능을 그대로 자기의 행동으로 표현하며 오지랖도 넓게 이일 저일에 참견하고 다니면서 위세를 뽐냈다. 혹시 누가 자기를 몰라주는 것 같다고 생각되거나 어떤 일에 반대라도 할라치면 왼쪽 팔뚝에 찬 완장을 톡톡 치면서 자기가 누구라는 걸 과시하며 천방지축 입에 거품을 물며 날 뛰었다. 똠방은 완장을 믿고 설치다가 결국 주민들에게 몰매를 맞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당시의 시청자들을 매혹시킨 오래된 연속극 ‘똠방각하’가 문득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무려 25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곳곳에서 똠방각하들이 완장을 차고 날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완장을 차기위해 비열하고 치사한 언행을 일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내 주위와 우리 주변에는 똠방각하들이 많다. 완장병에 걸린 자신을 알리가 없는 이들 똠방들은 자기만의 정의를 앞세워 자기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늘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무능력하지만 능력이 있는 것처럼 허풍 떨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 이들 똠방각하들의 공동적인 행태다. 그들은 늘 그게 정의고 봉사이며, 속한 조직과 사회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참으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들 똠방들은 자신 주변인의 불편함과 어려움, 그리고 고통과 불쾌함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똠방들이 바라보는 것은 오직 하나, 완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결국 그런 똠방들의 무소불위 권력은 미래에 대한 자기 자신을 옥죄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서서히 끓어오는 냄비 속에 개구리처럼 유영하다 몸이 마비되어 옴을 느끼고서야 깨닫고 후회하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는다. 2014년 연말. 이 시점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불쌍한 똠방, 왼쪽 팔뚝에 완장을 찬 똠방들의 황폐한 영혼을 위해 그저 기도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 깊은 안타까움만 밀려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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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28
  • 시민은 ‘서산시의원’을 원한다||데스크칼럼
    이병렬(편집국장) 우리는 지방의회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 각 나라의 지방의회는 수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952년 6.25전쟁 중에 처음 선거를 실시하면서 60년을 넘고 있다. 하지만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동안 지방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던 ‘암흑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지방의회 역사는 고작 30여년에 불과하다.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 기초의원 선거는 시ㆍ군 의원을 선출했다는 데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혈연 학연 지연 등이 당락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읍ㆍ면ㆍ동을 어디로 묶느냐에 따라 입지자들이 많은 영향을 받게 되면서 선거 때마다 일부 시ㆍ군 의원들이 선거구 조정에 강한 불만을 보여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당선된 일부 시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방자치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지방의 기초의원을 우리 서산시에서는 ‘시의원’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이는 시민의 안위를 위해 통합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책무를 유권자가 부과한 것이다. 요즘 일부 언론에서는 민의를 대변해야 할 시의회가 시의 최대 현안을 남의 일 인양 불구경하듯 대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산-당진 고속도로 건설, 왜 필요한가?’전문가 초청 토론회에 의장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석하지 못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 의회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한 동료 시의원은 “지역의 최대 현안을 토론하는 자리에 의장이 의원들을 독려해서라도 함께 서울에 올라갔어야 하는데, 의장 본인도 참여를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다”며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당적이 달라 참여하지 않은 것 밖에는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서산시의 미래가 달려 있는 대전~당진 고속도로의 대산 연장 사업은 서산시는 물론 시민들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는 현안사업이다. 물론 이 사업이 수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답답한 형국이지만 시의회 차원의 관심은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같은 현안을 챙기는 것이 바로 시의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 부터는 일부 의원들이 지역구 주민들만 챙기게 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시의원이 아닌 면의원’이라는 비난을 사는 사례까지 일고 있다. 다음 선거에 대비 주민들 표심을 잡기 위한 속 좁은 일부 시의원들의 행보는 결코 서산시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자기 지역구인 나무만 보지 말고 서산시 전체를 생각하는 숲을 봐야 한다. 시민들은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일부 의원들은 오로지 표심을 잡기 위해 자기 지역구의 선심성 민원 해결에만 매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면의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의원이 있으면 생각을 바꾸어 면의원이 아닌 진정한 시의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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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17
  • 호텔 없는 서산, 자존심 상한다
    서산에 번듯한 호텔이 없다는 게 가장 자존심 상한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이후 해미읍성에는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주말에는 해미읍성 인근이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는 해미읍성에 200여만 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연말까지 500여만 명이 찾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본격적인 가을 나들이 철이 시작되면서 서산지역의 명산이 팔봉산과 황금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렇게 서산에 관광객이 물밀듯이 몰려들지만 최고급 호텔 등 숙박시설과 전통의 정취를 자아내는 상가가 보잘 것 없어 경유관광지로 전락하고 있다. 요즘 호텔은 숙박기능만 하지 않는다. 각종 회의를 열 수 있는 컨벤션 기능은 물론 비즈니스 그리고 쇼핑 레저 휴식 등을 종합적으로 취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각 도시가 그래서 경쟁적으로 최고급 호텔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서산은 어떤가. 갈산동 일원에 문 닫힌 관광호텔 건설 현장만이 있을 뿐이다. 서산시가 내년 대산항과 중국 룡앤항 간 국제여객선 취항에 맞춰 심혈을 기울여 유치한 첫 관광호텔 건립이라 기대감이 컸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착공식을 한 지 채 4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업주의 건강 이상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석연찮은 변명지만 그래도 서산시는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당초 이곳에는 1만 5736㎡에 지상 13층, 지하 3층, 객실 197개 규모의 특급 관광호텔을 건립키로 하고 지난 3월 착공식을 가졌었다. 대산공단에 입주해 있는 대기업들도 수시로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을 맞이해야하지만 서산에 마땅한 대규모 컨벤션센터나 호텔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서산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18일부터 대산항 활성화를 위한 국제포럼을 정작 서산에서 개최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대기업들의 경우 서산에는 호텔이 없어 이들을 인접 태안이나 예산 등지로 옮겨야 할 상황이라는 것. 문제는 눈에 보이는 성장에만 급급했지 그에 앞서 수용태세를 전혀 갖춰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서산시와 충남도의 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지금도 이 같은 상황인데 언제 이 문제가 해소될지 기약이 없다. 일찍이 서산은 충남의 북서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속해 중국과의 연락이 잦아 대륙문화 수입의 선진적인 역할을 해온 곳이다. 또한 운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산지방은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지역으로서, 이것이 웅진 또는 사비에 전해졌고, 다시 신라에 전해졌으며, 일본에 건너가서는 아스까 시대의 조상미술에 제1차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산은 또 우리나라 서해안에 위치하므로 고려말과 조선초에는 왜구의 침입을 자주 받았던 지역이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는 조운선의 중요한 위치였다. 이러한 역사적 도시인 서산이 21세기를 맞아 충남 서해안의 중추적인 경제, 산업도시로 성장하며 환황해권시대를 선도하고 있지만 특급 호텔이 없다는 것만으로 서산의 영광과 위상이 도전을 받는 셈이다. 원래 서산시는 이 같은 상황이 도래될 것을 예견, 20년 전 이미 서산의료원 앞 현 주차장에 호텔건립을 추진해왔다. 또 부영아파트 인근에도 서산관광호텔 건립이 추진 되는 등 그동안 호텔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만 서너 차례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례가 호텔 건립 허가만 받아 이른바 땅장사만 하고 중도하차 함으로써 서산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내년부터 대산항에 국제여객선이 출항을 시작하면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서산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들에게 경유하는 서산이 아닌 체류하고 즐기는 서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호텔 건립이 우선이어야 한다. “서산에 제대로 호텔하나 없다”는 어느 한 시민의 푸념처럼 마땅히 귀한 손님을 모실만한 괜찮은 호텔하나 찾기 어려운 것이 서산의 관광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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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24
  • 간신들의 ‘이비어천가’를 조심하라
    정치의 기본은 민심의 흐름에 따르고 백성을 위해 복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이 당위를 거스름으로써 존재를 드러내려는 듯하다. 정치의 매우 역설적 속성이라 할 것인데 이런 폐단은 물론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은 아닐 터이다. 정치의 이상과 현실이 항상 이처럼 갈등하고 충돌해 온 게 사실이 아니던가. 민선6기 제9대 이완섭 서산호가 1일 본격 출항을 알렸다. 부디 시정과 서산발전, 그리고 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시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의지와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이제 막 출항을 시작한 이 시장에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해 본다. 요즘 이 시장의 주변에서는 논공행상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어쩌면 당연한 절차다. 민주주의는 갑론을박이 필수다.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옥동자를 순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장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와 17만 서산시민의 심경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일이다. 서산시민의 대변자 이완섭으로 반드시 서 주길 당부한다. 덧붙여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자칫 주변 살피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선거과정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자임했던 많은 지인(?)들이 낯 뜨거운 ‘이비어천가’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충성 아부에 나서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나름 큰일 났구나 생각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완섭 리그’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자위책이자 몸부림으로 일단 여겨지고 있지만, 자칫 부메랑이 되어 이 시장에게 치명타를 안기지나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되고 우려스럽다. 사탕발림의 세 치 혀로 갖은 아부를 떠는 주변의 간신들을 부디 조심하길 바란다. 간신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입과 몸이 간사해서 입술은 얇고 차갑게 생겼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부와 배반을 밥 먹듯이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만 뒤쫓는다. 권력의 나팔수가 되고 시녀 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잣대를 멋대로 휘두르는 무뢰한들이기도 하다. 아울러 조화를 부리는 ‘색신’들도 조심해야 한다. 이익과 불이익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줄서기와 도망갈 구멍 만들어 놓고 권력자의 빛과 그늘에 따라 행동한다. 대범한 척, 성인군자인 척한다. 잘못되면 법과 규정을 들먹이며 변명만 일삼는다. 권력자와의 친분을 내세워 막강 힘을 과시하고 악용한다. 잔재주나 부리는 잉여인간을 제발 멀리하고 경계해 주길 다시 한 번 지적하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이 시장에게 청나라 말기 40년간 중국을 지배한 서태후(1835∼1908)와 관련된 중국 비사 한 토막을 들려준다. 서태후의 청나라가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잘못된 현실인식 때문이었다. 서태후가 잘못된 현실인식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주위의 간신들 때문이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사람들, 화살이 날아오면 모두 손으로 잡아내는 사람들 등 온갖 신통력 있는 사람들이 청나라를 지켜줄 것이라는 간신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영국군의 총알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달은 서태후는 자신이 간신들의 인의 장벽에 묻혀있었던 것을 뒤늦게 알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버스가 터난 뒤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이는 정치에서의 신뢰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쪼록, 시민의 선택으로 재선의 영예를 이룬 이 시장의 의지와 열정, 마음가짐이 제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주민의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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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2
  • 월드컵과 이완섭 시장의 리더십
    축구는 인생의 교과서라고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과 2차전 상대인 알제리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 알베르 카뮈. 17살에 축구 선수를 꿈꿨던 카뮈는 축구를 ‘인생 학교’로 여겼다. 그는 1957년 잡지 ‘프랑스풋볼’에 “공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한국은 러시와의 1차전에서 1대1로 비겼지만 2차전에서 알제리에 승리를 거둔다면 16강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원정 8강을 꿈을 이룰 수 있을지에 주목이 된다.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에 접어들면서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세간의 관심이 되고 있다. 홍 감독에게 영향을 준 스승은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 두 네덜란드 출신 대표팀 감독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연공서열과 학연, 지연을 배제한 능력 위주의 선수 선발과 합리주의라는 교훈을 던졌다. 내부 경쟁에서 외부 경쟁으로의 전환, 자기 영역만 고집하지 않는 멀티플레이어의 중시라는 새로운 성공법칙으로 충격을 줬다. 지도자로서의 홍명보를 만든 아드보카트 감독은 코치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선수에게도 자율을 허용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은 아드보카트는 “리더는 자신감과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감독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여서인지 ‘홍명보의 아이들’ 대표팀 선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홍명보의 복심, 대표팀 캡틴 구자철(마인츠)은 홍 감독을 “선수들에게 열정을 불어넣는 리더”라고 평가한다. 미드필더 김보경(카디프)은 “홍 감독의 첫 주문이 자기 말에 토를 달라는 것이었다”고 술회한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 훈련하는 데 익숙했던 선수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곧 선수들 사이의 격의 없는 토론, 다른 팀보다 몇 배나 많은 감독 코치와 선수들 간의 회의가 진행됐다. 소통이 답이었다. 물론 홍명보의 리더십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축구가 인생의 교과서라면, 그런 성공법칙은 세상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난 6.4지방 선거에서 유권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이완섭 시장에게도 마찬가지다. 서산을 세계 지자체 8강에 올리기 위한 이 시장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시대 흐름에 따라 축구 전술도 변화했듯이 시정도 변화해야 한다. 서산시민의 심장을 어떻게 뛰게 할 것인가? 서산시 1천여 공무원에게 어떻게 열정을 불어넣을 것인가? 장기적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첫 번째가 수평적인 소통과 공감 능력이다. 시장의 말을 언제라도 비토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산이 자유로울 수 있다. 두 번째는 과감한 권한 이양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다 챙기겠다는 사고, 공무원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스태프와 민간에게 권한과 주도권을 위임해야 한다. 세 번째는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능력 중심의 배치, 세계로 향한 경쟁의식, 그리고 수월성이다. 축구는 11명이 함께하는 스포츠다. 서산시정은 17만 시민과 함께 뛰는 프로젝트다.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아드보카트는 홍명보가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완섭 시장은 서산을 ‘해뜨는 서산’에서 ‘해가 지지 않는 서산’으로 바꾼다고 천명했다. 서산시가 ‘해가 지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민ㆍ관이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시장을 포함한 당선인과 시민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월드컵의 계절 6월. 브라질과 서산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제대로 발현하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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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8
  • 잘못 뽑으면 거덜 날 수도 있다
    꽃 같은 푸른 생명들이 바다 밑창으로 가라앉았다. 국상(國喪)이다. 왕조시대의 상감마마가 승하해서가 아니다. 온 국민의 가슴 속에 맹골수도 파고보다 더 높은 슬픔이 넘실거렸다. 그러니 이 보다 더 큰 국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 어이없는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마비된 듯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끝내 분노로 변했다. “이게 나라인가”하는 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국민소득 3만 달러니, 세계 10위 권 경제대국이니 하는 수식어가 얼마나 사상누각인지가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민낯은 부끄럽고 참담했다. 6.4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에 누가 나왔는지,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아예 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그 × 이 그 × 이고, 다 도둑× 들’이라는 힐난도 있다. 후보에 관한 정보가 극히 제한돼 있는 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거일정 중단과 ‘조용한 선거’도 무관심을 거들고 있다. 또 특정 정당의 독점적 지배현상도 ‘깜깜이 선거’와 ‘묻지마 투표’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겉으론 민주적 절차를 밟더라도 속내론 국회의원이나 당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경선, 정의롭지 못한 공천 과정 등은 정치 혐오감과 선거 무관심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역대 지방선거마다 국민 관심이 적었다. 1995년 첫 지방선거 때 서산시장 선거 투표율은 74.31%였지만 그 뒤 선거는 50%대에 불과했다. 1998년 60.82%, 2002년 55.11%, 2006년 54.66%, 2010년 54.97%였다. 겨우 유권자의 절반이 약간 넘는 정도만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선거에 대한 주민 관심과 투표율이 낮다면 민의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지방정치의 민주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지방선거는 지방정부의 기관을 구성하는 선거다. 지방정부의 기관은 단체장과 의회다. 민의를 잘 반영할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지방선거다. 서산에서는 시장 1명, 도의원 2명, 시의원 13명 등 모두 16명을 선출하게 된다. 후보들의 성향과 정책을 비교ㆍ검증할 유력한 수단이 선거공보다. 선거공보에는 직업, 학력, 경력, 재산 및 병역사항, 세금납부 내용과 체납내역, 전과기록 등이 표기돼 있다. 정견과 공약도 들어있다. ‘해뜨는 서산, 더 높게, 더 크게 확 키우겠습니다’(새누리당 이완섭 시장 후보) ‘젊은 서산, 역전이 시작된다’(새정치민주연합 한기남 시장 후보), ‘농어민과 서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새누리당 이완복 도의원 후보), ‘서산의 튼튼한 재목이 되겠습니다’(새정치민주연합 맹정호 도의원 후보)‘도의원다운 도의원’(새누리당 김종필 도의원 후보), ‘검증된 도의원, 믿음직한 사람’(새정치민주연합 이도규 도의원 후보). 슬로건만 보아도 후보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선거공보물이 25일부터 유권자 가정에 배송됐다. 후보가 어떤 인물인지, 누가 민의를 대변할 적임자인지 꼼꼼히 살펴보자. 이런 노력도 없이 ‘그 × 이 그× 이라거나 ‘다 도둑× 들’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건 후보 모독이다. 그리고 투표의 또 다른 중요성은 지역주민의 정책 현안과 관련한 지역 일꾼들의 역할이다. 지방선거는 지역주민의 대표를 선출한다. 지역주민의 대표인 이들은 임기 4년 동안 지역주민의 정책의견을 수렴하여 예산에 반영하는 책임을 수행한다. 지역주민들의 정책의견이 예산과 정책집행에 많이 반영될수록 지역커뮤니티의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반대로 예산 배분과 집행 과정에서 다수 주민의 정책의견이 무시되고 대신에 특정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과다하게 반영될수록 지역주민들의 불만지수는 높아진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지방정부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면서, 주민 다수의 정책의견을 수렴하고 정책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후보자를 골라내야만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리더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무능하고 천박한 선장, 자신의 안위만 챙긴 항해사와 조타수 등이 배를 지휘할 때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 똑똑히 보았다. 지방선거는 지역을 책임질 리더들을 뽑는 정치이벤트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잘못 뽑으면 지역이 피해를 입는다. 거덜 날 수도 있다. 세월호의 경우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유권자들이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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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8
  • 후보들 면면 살펴보니
    오는 6월 4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맞아 시장, 도ㆍ시의원 등 서산에서의 출마를 위해 최종 후보 등록을 마친 출마자들의 신상을 들여다보니 전체 출마자 36명 가운데 10명이 전과 이력을 갖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부터는 일반 형사범의 경우 전과 기록 공개 범위가 기존 ‘금고 이상’에서 ‘벌금형 100만원 이상’으로 확대돼 과거보다 전과자 수가 다소 많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이것은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전과가 있는 후보자가 지난 2010년 선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전제 8994명의 입후보자 중 전과자가 3579명으로 39.8%를 차지한 것이다. 전과 공개 대상이 확대됐다고 하지만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전과자 비율 12.6%에 비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서산시의원 출마에 나선 A후보는 도로교통법으로 면허정지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나서도 무면허 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보게 했다. 또 다른 시의원 후보 B씨는 무고와 공갈 등 파렴치한 범죄 경력을 2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서산 후보들의 전과는 대부분이 음주운전 등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일을 예사로 여겼다가 적발된 것이다. 당사자들로서는 술 좀 마시고 차를 모는 일이 별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공직자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이들 10명의 전과 경력자 가운데 일부 후보는 각 정당의 공천 심사를 거쳐 공천장을 거머쥔 후보자들이어서 도대체 시민의 대표를 뽑는 게 맞는 것인지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아울러 남성 후보 3명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지방선거는 지방정치와 행정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선량을 뽑는 선거다. 지역발전과 시민을 위한 매우 중요한 정치과정으로서 주민을 대표하겠다는 선량들이 도덕적 하자가 있다면 이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보다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병역과 납세와 같은 국민의 기본적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이들이 주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전과자와 병역미필자들을 무조건 매도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중엔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전과자 신세가 된 사례가 대표적이고, 질병ㆍ가사 등의 이유로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단순히 전과자라는, 병역미필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피해를 당한다면 이 또한 역차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옥석(玉石)을 꼭 가려내야 한다. 파렴치범은 없는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후보는 없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부디, 후보들의 이력을 면밀히 살펴 자격이 없는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군대 기피자, 범법자들이 활개 치는 현상이 정치권에서 사라질 것이 아니겠나. 이번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사회적 충격의 여파 때문에 그 어느 선거보다 후보 검증이 느슨한 채로 치러질 우려가 매우 높다. 시민사회가 나서서 후보들의 전과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파렴치 전과자나 상습체납자, 편법을 동원한 병역 미필자 등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그런 전과 기록에 대해선 후보들이 소명하게 하고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는 정당과 후보들을 표로 준엄하게 심판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이병렬/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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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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