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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돌려다오.
    아직도 새벽에는 차창에 낀 서리를 제거해야 하고, 여전히 방한복을 벗어 놓지 못하지만, 한 낮엔 아침에 입고 나왔던 옷이 거추장스럽다. 아직도 겨울처럼 살고 있지만, 어느새 봄은 와있는 것이다. 봄은 제일 먼저 우리 집 화단으로 찾아왔다. 한겨울 추위에 얼지 말라고 덮어두었던 가랑잎을 걷어내자 온갖 꽃이 고개를 든다. 제일 먼저 샛노란 복수초꽃이 피었다. 이어서 노루귀, 개불알꽃이 피었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 마치 웃고 있는 어린아이 얼굴 같다. 수선화, 튤립도 질세라 꽃대를 밀어 올린다. 이런 꽃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어느 꽃인들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도대체 봄은 어디까지 왔나 싶어 부춘산에 올라가 보았다. 산에도 조금씩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랑잎 사이에서 파란 풀들이 솟아나고 작은 나무의 실가지엔 조그만 이파리가 보였다. 아니, 큰 나무도 그냥 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등산로 옆에 서 있는 나무에 귀를 대어 보았다. 나무의 뿌리에선 정신없이 수액을 만들어서 가지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가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는 수액을 빨아올리는 힘찬 나무의 펌프질 소리 같이 들렸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을 벗어나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 울긋불긋 꽃 대궐 이루는 봄이 어찌 그립지 않으랴? 그러다 문득 봄을 기다리는 꽃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겨우 내내 추위를 견디며 아름다움을 준비해서 피운 꽃들이 작년처럼 푸대접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여웠다. 작년 봄이었다. 그야말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모처럼 L목사님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섰다. 목적지는 몇 해 전에 신문에 소개되었던 금산의 관광지였다. 개심터, 칠백의총, 12폭포, 적벽강 등이 화려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오전 10시경 출발하여 금산에 도착해보니 거의 정오가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듯이 먼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주인에게 물으니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헛걸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하늘 물빛 공원이 있다기에 찾아갔으나 입구에 ‘코로나19로 입장 불가’라는 팻말이 냉정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남이 자연 휴양림도 다르지 않았다. 아쉬워서 ‘12 폭포’ 한가운데라도 더 가보자고 했으나 L목사님이 반대해서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몰라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니 전국 각처의 유채꽃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TV에서도 연일 각종 꽃 축제 취소 소식을 보도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꽃을 보기 위해 몰려들자 마을 입구에 ‘외지인 출입 금지’라는 처방도 모자라 애써 가꾼 유채꽃을 갈아엎었다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도대체 꽃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겨우내 온갖 설한풍을 견디며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려 피운 꽃들을 그렇게 짓밟다니…. 새삼 코로나19가 미웠다. 그걸 보고 작년 이맘때 썼던 ‘슬픔의 봄’이란 시를 들춰 보았다. 「언제 저토록 서러워 보인 적/있었던가?/ 언제 저토록 외로워 보인 적/ 있었던가?// 환영받지 못한 꽃/잔뜩 피워놓고/ 애써 찾아온/봄은,/ 봄은 슬프다//유리알 같은/ 파란 하늘이/ 오히려 낯선 봄날//제발 꽃을 보러/ 오지 마세요// 코로나19가/봄까지 울리는구나!」 문득,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이상화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때는 일제가 우리 땅을 빼앗았다면, 지금은 코로나19가 이 땅을 빼앗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지금쯤 함평에도, 낙동강에도 유채꽃이 피었으련만, 신문엔 꽃에 관련된 기사는 한 줄도 없다. 구례 산수유꽃, 진해 벚꽃, 화개장터 매화, 십리 벚꽃, 원동 마을 매화꽃. 정말 가보고 싶다. 코로나19여! 제발 봄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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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허위 구인광고 게제, 사이트 운영자도 책임
    판결요지 : 구인ㆍ구직 사이트에 허위의 구인광고를 올린 경우, 해당 사이트 운영자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두51587 판결) 사례) A는 2017년 자신이 운영하는 직업정보 제공 사이트에 구인자 업체명과 주소가 허위로 기재된 구인광고 6건을 게재하였고, 이에 고용노동부는 2018년 직업안정법에 따라 A에게 영업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A는 “준수사항에는 구인자의 업체명ㆍ성명ㆍ주소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 않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고용노동부의 1개월 영업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대법원 판단) 직업안정법 제36조 제1항 제3호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그 사업을 정지하게 하거나 등록 또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25조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는 '구인자가 구인신청 당시 근로기준법 제43조의2에 따라 명단이 공개 중인 체불사업주인 경우 그 사실을 구직자가 알 수 있도록 게재할 것'(제1호), '최저임금법 제10조에 따라 결정ㆍ고시된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구인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할 것'(제2호),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제3호)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위임에 따라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 및 그 종사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으로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구인자의 연락처가 사서함 등으로 표시되어 구인자의 신원이 확실하지 아니한 구인광고를 게재하지 아니할 것'(제1호), '직업정보제공매체의 구인ㆍ구직의 광고에는 구인ㆍ구직자의 주소 또는 전화번호를 기재하고,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주소 또는 전화번호는 기재하지 아니할 것'(제2호), '최저임금법 제10조에 따라 결정 고시된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구인정보,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금지행위가 행하여지는 업소에 대한 구인광고를 게재하지 아니할 것'(제6호)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준수사항을 정한 직업안정법 제25조와 그 위임에 따른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의 입법목적,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 제1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아니하여 구인자의 신원이 확실하지 아니한 구인광고를 게재한 행위'에는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을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을 허위로 표시한 경우도 포함되며, 따라서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직업정보제공매체에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객관적으로 허위인 구인광고를 게재한 경우에는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 제1호에서 정한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준수사항위반에 해당하여 직업안정법 제36조 제1항 제3호에 따른 사업정지 등의 제재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며, A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1개월 영업정지처분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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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어느 양조장 주인의 호소문을 읽고
    지난 주말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정세균 총리님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에 눈길이 갔다. 공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의 글인데, 당사자의 일방 주장이니 만큼 사실여부나 내용의 무게까지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적지 않을 광고비를 들여 공개 호소문을 낸 입장과 절박한 심정은 읽혔다. 호소인의 양조장은 1년 매출액이 12억 원 쯤이라고 하니 정부에서 4차 지원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10억 원 미만의 소상공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규모의 사업자라 할 수 있다. 이 양조장은 저가 제품의 술을 빚는데 국산 쌀과 수입쌀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농관원의 조사를 받고 있지만 너무 가혹하니 총리께서 살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양조장에는 지난 해 9월 중순 경부터 7개 월 째인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단속반원의 현장 조사와 약 5,000장 이상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추가 자료 요구와 심지어 거래하는 정미소를 찾아가 반 협박까지 하며 서류를 가져갔는가 하면 정미소 담당 세무사무실까지 가서 서류를 가져갔다고 한다. 지금도 지체장애인까지 불러 조사하고 공장장과 경리 등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되면 나올 때까지 털려고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의문까지 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에 정신병, 우울증으로 병원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 고충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야담이다. 옛날 죄인을 벌주는 방법의 하나로 참수(斬首)라고 있었다. 사극에서 보면 망나니가 칼춤을 추다 술 한 잔을 마신 다음 입에 옹 물었다가 칼날에 품고 죄인의 목을 베는 것이다. 이 때 죄인의 가족이 망나니에게 뇌물을 준다고 했다. 무딘 칼로 고통을 주지 말고 날이 잘 선 칼로 단 번에 베어달라는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공포와 고통을 줄여 달라는 것이니, 얼마나 통절한 사연인가? 옛날 훈육 선생님으로부터 단체로 매를 맞을 때 차례가 점점 다가올수록 공포감이 커졌다. 예방주사를 맞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고통은 크다. 차라리 아프더라도 빨리 끝나는 것이 후련하다. 긴장하며 기다리는 동안의 괴로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준다. 예전 추곡수매가 일선 지방행정에서는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시중가격에 비하여 낮은 정부수매가격과 엄격한 수분함량 기준 때문이었다. 할당된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일선 공무원들은 ‘별의 별 일’을 해야 했다. 농민이 어렵사리 수매 현장까지 벼를 가져왔으나 낮은 등급을 받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로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으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매에 응하도록 설득하고 독려한 공무원의 처지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슬그머니 농산물검사공무원의 ‘자빡’(공판장 같은 데서 가마니나 마대 따위에 담은 알곡을 검사한 뒤 등급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기구)을 빼앗다시피 하여 가마니에 찍으면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여유가 있었다. 당시 국립농산물검사소의 기능을 확대하면서 만든 기관이 농관원이다. 공권력은 독점적이다. 그 공권력을 마주하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처지는 어쩔 수 없는 ‘을’이다. 때문에 공권력 행사는 독점적인 권한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해서는 안 되고, 그런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처분을 기다리는 심정은 타들어 간다. 잘, 잘못을 가려 처벌할 것은 엄중하게 조치하되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매듭지어 되도록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와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과 중소 사업자를 돕고 북돋아 주는 것이 정부이고 공무원의 역할이다. 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가? 위반사항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려야 마땅하다. 다만 공정하고 신속하게 조치하여 불필요한 고충을 받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호소문에 뺌과 보탬이 없다면 사안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고 시간을 끌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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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 코로나 시대에도 농촌은 바쁘다
    코로나19와의 길고 지루한 싸움으로 온 나라의 역량이 집중된 가운데 겨우내 얼어붙었던 동토가 녹아내리는 새봄이 시작됐다. 지금 우리 농촌은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인 코로나와의 전쟁 속에서도 봄을 맞이하며 올 농사를 준비하는 전선이 형성됐다. 모든 이치가 그렇듯 시작이 반이고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년 농사의 결실이 좌우된다. 오늘날 농촌의 고령화는 매우 심각하다.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농사를 짓는 도구들이 기계화되고 최첨단의 스마트팜 시대가 열렸으나 고령화된 어르신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농번기의 농촌은 매우 바쁘다. 공장에서처럼 고도화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단순 노동이지만 일의 양은 대단히 많다. 농작물은 공산품과 달리 시기를 제때 맞추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쉬워 제철에 일할 수 있는 인력이 절대 필요하다. 요즘 농촌은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젊은이들은 농사일을 꺼리고, 농사일을 돕는 국내 인력들도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농촌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절 근로자로 많이 참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필리핀, 중국, 베트남, 태국, 러시아 등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근 필리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국에서 귀국보증서 발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필리핀을 코로나19 방역 강화 대상 국가로 지정해 외국인 계절 근로자로 비자 발급을 받는 것이 힘들게 됐다. 농업은 천하지대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인류의 먹거리 문제 해결의 기본은 농사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인류는 먹거리 문제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농업을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농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체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농작물을 노동력이 최소화한 상태에서 가능한 작목으로 전환하거나 농사의 규모를 축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도 농민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농작물 선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농촌의 노동 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체제를 강구해야 한다. 국가재난지원금에서도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농촌에서의 일은 주로 야외인 논과 밭에서의 일이 많아 코로나 감염의 염려가 없다. 농촌의 일은 숙련된 기술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도심에서는 코로나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대기하는 인력이 많다는 소식이다. 그런 인력들을 농촌으로 향하게 할 수는 없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농촌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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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 아름다운 손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했던 마음도 풀리고 끝없는 상상 속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때가 있다. 하늘엔 크고 밝은 별빛도 있고 희미해서 보이다 말다 하는 별빛도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크고 밝게 빛난다면 아름다울까? 아니면 모두 희미해서 보일락 말락 하면 그게 더 좋을까? 아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모양과 크기와 밝기가 어우러진 밤하늘이 제일 좋다. 사람의 생각이 어찌 신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반짝이듯이 우리 인간들도 각자 주어진 환경과 처지대로 살면 되는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그런 이치대로 살지 못한다. 그래서 불행이 오고 다툼이 오고 평화가 깨진다. 밤하늘의 별들이 존재감 없는 희미한 별빛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더하듯이, 우리 인간사회도 따지고 보면 가장 거친 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아름다워진다. 얼마 전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손이 신문에 난 적이 있다. 허물이 벗겨져 보기 흉한 쭈글쭈글한 손이었다. 그러나 그 보기 흉한 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아낌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그 손이 웅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두 뒤축이 닳아 수선하려고 평소 알고 지내던 L 장로님을 찾았다. L 장로님은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는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에 홀로 살며 시내 한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고 수선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패널로 지은 한 평도 못 되는 공간에서 좁은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그는 동남아에 교회를 7개소나 지었다. 1개소에 3천만 원씩만 잡아도 2억 원이 넘는 돈이다. 물론 그 돈을 혼자 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장로님이 주도해서 지은 것이다. 평소 새터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돌보고 또한 어려운 가정을 남모르게 돕고 있다. 1천만 원이면 구두를 333켤레를 닦아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점심도 가지고 오거나 간편식으로 대신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없이 인색하다. 작업이 끝나고 알코올 솜으로 구두약이 묻은 시커먼 손을 닦아내었다. 그러나 구두약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는 검은 손, 나는 그 손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보이는 반짝거리는 별빛처럼 세상엔 이런 손들이 많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의 손, 어르신들을 친부모처럼 섬기는 요양보호사들의 손, 눈 비바람 폭우 속에서도 새벽을 깨우며 청소차에 뒤에 매달린 손, 화장실 청소하는 손, 길거리 쓰레기 줍는 손,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손들이 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어느 목사님이 인용했던 톨스토이의 '황제와 청소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나라 황제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날 참석자 중에 제일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에게는 왕과 왕비 사이에 앉게 하고 금은보화를 상으로 내리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이 손에 향수를 뿌리고 손톱을 다듬고 해서 예쁜 손을 만들어 연회장으로 갔다. 거기서 뽑힌 사람은 궁전을 청소하시는 할머니가 뽑혔다. 모두 의아하게 생각한 참가자들에게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손은 땀과 수고 그리고 성실로 장식된 가장 아름다운 손이다” 구두수선 방에 설치된 TV에서 LH 직원 투기 의혹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구두를 수선하는 장로님 손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른다. 땀과 수고와 성실로 장식된 아름다운 손들은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 그러나 그 손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별과 같은 존재들이다. /김풍배(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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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여부
    친구와 단둘이 사무실에서 모르는 사람에 대해 험담한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2933 판결) 사례) A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친구 B와 있던 중 C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C는 A에게 전화로 “D에게 임금을 가불해달라”고 요청했고, A는 이를 거부했다. 옆에 있던 B는 통화를 마친 A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A는 D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C는 신랑하고 이혼했는데, 아들 하나가 장애인이래. 그런데 D가 C와 살아보겠다고 돈 갖다 바치는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C의 아들은 장애인이 아니었고, D가 C에게 돈을 가져다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C는 통화가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A의 이 같은 발언을 녹음했고, 검찰은 A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이 경우 A는 C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지? 대법원 판단) 형법 제307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공연성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의 경우 공연성이 부정되는 유력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전파가능성에 관해서는 검사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만일 발언 상대방이 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또는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으로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로서 공연성이 부정되며, 위와 같이 발언자와 상대방, 그리고 피해자와 상대방이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경우 또는 상대방이 직무상 특수한 지위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공연성을 인정하려면 그러한 관계나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러한 기본원칙에 근거하여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①B는 A와 초등학교 동창으로서 친한 사이였고, A가 운영하는 관광버스회사의 운전기사였던 D를 만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C 또한 전혀 알지 못하였다. A도 이 사건 발언 이전에 D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C와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뿐 C를 직접 알지 못하였다. ② C는 D로부터 돈을 받기 위하여 A에게 직접 전화를 하여 D에게 임금을 가불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A는 이를 거절하였다. A는 이 사건 발언 당시에도 C로부터 같은 취지의 전화를 받았고, C와 대화를 마친 다음 옆에 있던 B가 통화상대방이 누구인지 질문하자 이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D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기초로 이 사건 발언을 하였다. ③ 이 사건 발언 장소는 A의 사무실로서 B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 발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이후 A와 B는 C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다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바로 이어 나갔다. ④ B는 법정에서 이 사건 발언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이 사안에서는 A로부터 C에 대한 험담을 들은 B가 불특정 다수인에게 그 험담내용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A의 C에 대한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무죄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 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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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다. 젊어서는 비평적이고 날카롭고 이지적이었다면, 이제는 이해하고 무디며 감성적이다. 그래서 신문을 보더라도 따뜻한 제목의 기사부터 먼저 찾아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모두 골치 아픈 정쟁이나 어두운 경제 관련 기사들이 지면을 덮고 있다. 어쩌다 따뜻한 사연을 보게 되면 백사장에 묻혔던 지갑을 찾은 것만큼 반갑다. 엊그제 ‘장기 나눠주고 떠난 아들아, 엄마는 10년 기부 너와의 약속 지켰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70대 모친은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른 사람들에게 장기를 주고 떠난 아들에게 10년의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아들의 기일마다 성모병원 장기 이식센터를 찾아와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이식 후에도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약값을 보탠 것이, 꼭 10년이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종훈아, 잘 살고 있니? 꿈에라도 나타나 주지, 10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한번을 안 나타나니? 그래도 아들아, 보고 싶다. 엄마 약속 지켰어. 꼭 한 번만이라도 찾아와 줘.” 이 기사를 읽으며 몇 해 전에 만난 한 요양보호사가 눈물로 전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은 대학 등록금을 장만하겠다며 신문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뇌사상태에 있는 아들의 심장을 아산병원의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50대 여자에게, 간은 간경화로 생명이 위독했던 40대 남자에게, 신장은 14세 남자아이에게, 안구는 두 명의 실명자에게 주었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를 두 번 죽인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생전에 TV에서 ‘병원 24시’라는 방송을 함께 보며, “엄마, 사람마다 장기가 두 개씩 있었으면 좋겠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불쌍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더라고 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아이의 눈이 세상을 보고 있고, 지금도 아이의 심장이 팔딱거리고 있으니 아이는 살아 있어요.” 오늘은 자기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젊은 기업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 저만 살겠다고 하는 세상에 ‘더 나은 세상’을 소망하는 그의 꿈이 꼭 실현되기를 바란다. 매 연말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얼굴 없는 천사라든가. 연예인, 운동선수들이 거액을 쾌척하는 기부의 소식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자연재해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재민에게 물질은 물론, 며칠씩 몸으로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난 1월 말경, 서울역 노숙인에게 외투와 장갑을 벗어 준 신사의 이야기도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눈이 쏟아지던 날 그 시간, 모 신문 기자가 밖의 풍경을 스케치하려고 카메라를 돌리는 순간 한 노숙인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와 끼었던 장갑과 돈 오만 원을 건네주는 신사를 보았다고 했다. 기자가 급히 쫓아가 보았으나 이미 신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5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김 의장이 좋아한다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랠프 월드 에머슨이 지은 시의 일부다. 독일의 심리학자 게슈탈트가 인용한 얼굴과 꽃병의 그림이 있다. 그림 안쪽을 보면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얼굴이 보이지만, 그림 바깥쪽을 기준으로 보면 멋진 꽃병으로 보인다. 반 남은 포도주의 이야기도 있다.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이 나오게 된다. 각 사람이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의 논쟁은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밝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세상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질 거다. 걱정은 불안을 만들고 긍정은 기적을 부른다. 모두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나누고 베푸는 가슴 따뜻한 이런 기사들이 신문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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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0
  • 수탁 부동산 임의처분의 경우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처분하면 횡령죄로 처벌받는지 여부(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 문) A는 B로부터 B소유의 아파트를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2017년 1월 B의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 하였습니다. 그러다 A는 2020년 이 아파트를 C에게 매도한 후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주었는바, 이 경우 A는 횡령죄로 처벌받게 되나요? 답)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관계가 존재하여야 하고, 이러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에 의하면 누구든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의 명의로 등기하여서는 아니 되고(제3조 제1항),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가 되며(제4조 제1항, 제2항 본문),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부동산실명법 제3조 제1항을 위반한 경우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쌍방은 형사처벌된다(제7조). 이러한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관계에 대한 규율 내용 및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하여 명의신탁자가 그 소유인 부동산의 등기명의를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는 이른바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계약인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부수한 위임약정, 명의신탁약정을 전제로 한 명의신탁 부동산 및 그 처분대금 반환약정은 모두 무효이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6다35117 판결,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3다55300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무효인 명의신탁약정 등에 기초하여 존재한다고 주장될 수 있는 사실상의 위탁관계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아니할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위 대법원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따라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바, A가 B로부터 신탁받은 부동산을 C에게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A는 횡령죄로 처벌되지는 아니합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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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0
  • 100년만의 3월 폭설 대란에서 얻은 교훈
    2004년 3월 5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양지쪽 목련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었다. 계절과는 달리 지난밤부터 중부지방에 목화송이 같은 눈이 쏟아져 내렸다. 라디오에서는 낭만적이라며 노래 ‘눈이 내리 네’를 들려주었다. 게릴라성 폭설은 연기지역에 불과 10여 시간 만에 최고 44cm나 쏟아 부었다. 겨울철 눈과는 달리 습기를 머금어 무겁고 미끄러웠다. 모든 길이 마비되는 사태를 불렀다. 고속도로는 추돌사고 여파로 수많은 차량이 오도가도 하지 못하여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운전자가 차를 놔둔 채 떠나버리기도 하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밤중에 기름이 떨어져 히터를 켜지 못한 채 떨고 있는가 하면 마실 물조차 없었다. 먹을 것을 구하러 휴게소까지 걸어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헬기로 마실 것, 먹을 것을 낙하했다, 꽉 막힌 국도에서는 봉사단체회원들이 커피, 보리차, 빵, 우유를 제공했다.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났고 주택, 축사, 비닐하우스, 공장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고립된 마을에서는 ‘길을 뚫어 달라, 연료를 보내 달라’ 아우성이었다.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버스가 멈춰 발목을 덮는 눈길 몇 십리를 걸어야 했고 아예 귀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모든 학교가 휴교했다. 군 장병, 전‧의경, 학생,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피해복구에 나섰다. 정부는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필자는 전 날 저녁, 대전에 갔다가 좀 늦은 시간에 조치원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이니 아침에 가도 되었지만 그 밤에 가기로 했다. 시‧군계 고개를 넘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금강을 건너 지금 세종시 중심부가 된 남면에 이르니 함박눈으로 변하여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라이트를 켜면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등만 켜야 했다. 덤비듯 몰아치는 눈발을 와이퍼가 힘겹게 밀어냈다. 직진하면 자꾸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중앙분리대에 부딪힌다는 각오로 운전해야 했다. 도중에 숙박업소가 있으면 묵고 가려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걸려 조치원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이른 새벽 출근, 관계자에게 연락하여 농민들에게 일괄 문자메시지 발송과 마을 앰프방송을 하도록 조치했다. 많은 공무원들이 지각하거나 결근했다. 만약 그 밤에 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출근하지 못했을 테니 부군수로서 입장이 뭐가되었을까? 아찔했다. 각계 시찰단이 줄을 이었다. 기획예산처장관도 방문한다고 했다. ‘나라의 곳간’을 책임진 장관의 재해현장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건의사항과 답변을 조율하고자 기획예산처 담당관과 밤새 줄다리기했다. 오랜 협의 끝에 지원기준을 최소 1.2배에서 4배까지 상향조정하였다. 이때 담당관은 “부군수의 열의에 느낀 바가 많다며 지역사업비 확보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하여 숙원이었던 전의 산업단지 진입도로 사업비 240억 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복구 작업과 보상지원이 마무리 되면서, 예기치 못한 재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100년만의 3월 폭설, 그 시련과 극복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백서를 만들었다. 필자가 책에 쓴 글의 일부이다. <“비닐하우스 안에 가득 촛불을 켜면 2℃를 올릴 수 있다고 해서 양초를 사다가 불을 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여느 때라면 금남에서 유성을 오가는데 채 30분도 안 걸리는 길을 7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다녀왔는데…”, 전기가 끊겨 싸늘히 식어버린 비닐하우스 안에서 삶은 채소처럼 축 늘어진 오이 잎 새를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머니. 큰 눈망울을 굴리던 젖소가 폭삭 주저앉은 축사에 깔려 처절하게 죽어가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안절부절 못하고 뚝뚝 눈물을 흘리던 목장 주인. 무너진 지붕 사이로 들어온 눈 녹은 물에 망가져 버린 제품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던 사장님.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누워버린 이웃집 비닐하우스를 모른 채 할 수 없어 거들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노인. 건네는 빵 하나, 우유 한 개가 이처럼 값지게 느껴 본 적이 없다면 고마워하던 운전자. 해맑은 얼굴로 힘든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듯 뒤뚱거리며 폐자재를 나르던 학생, 서울, 경기, 대전, 경상도에서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이것이 폭설 대란의 현장, 피해복구의 열기와 인정어린 모습이었다.> 큰일은 교훈을 남긴다. 공직자로서 근무지를 먼저 생각 하는 것, 맡은 일에 혼과 열정을 담는 것도 그 하나이다. 사람들의 ‘민낯’도 보았다. 수습 경험은 2007년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대책에 소중한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19에서 얻을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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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2
  • 9천 원
    “포기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해서 돌려다 봤다, 농협 동부지소 앞에 있는 이불 가게 앞에서 오십 중반 된 사람이 큰 소리로 이불을 팔고 있었다.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로 포기한 사람이 울부짖는 절규였다. 거리엔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세금을 내고 나왔다.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영하의 날씨가 숨 가쁘게 보일러를 돌렸다. 가스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별 소득도 없이 지내는 나에겐 겨울이 부담스럽다. 그는 또 외쳤다. “포기했습니다.” 여전히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나를 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지나치려다 다시 외치는 그 소리가 발꿈치를 잡았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뒤돌아 몇 발짝 걸어 이불 가게로 갔다. 이불을 사려고 간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의 얼굴을 보고는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세금을 내고 남은 돈, 딱 9천 원이 손에 잡혔다. 카드도 놓고 왔다. 이걸 어쩌나? “9천 원밖에 없는데유.” 난감했다. “만 원짜리루 가져가세유. 이걸루유.” 주인은 이불을 비닐 백에 넣었다. 보지도 않고 주는 대로 둘러메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지청구를 들을 생각하니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롱 가득 찼는데 생뚱맞게 웬 이불이냐고 물었다. 샀다고 했다. 늙으니까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한다고 했다. 왜 샀느냐 묻기에 그냥 샀다고만 했다.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오기 전부터 경기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거기다 코로나19가 덮쳐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을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다. 물가도 장난이 아니다. 아내는 겁이 나서 시장엘 못 가겠다고 했다. 모두가 죽겠다며 아우성친다. 상가 거리로 나가보면 텅텅 빈 가게가 즐비하다. 타인의 차를 타고 의료원에서 시청까지 오면서, 보이는 쪽만 세어 보았다. 열네 군데나 비어 있었다. 시내 전체를 세어 보면 몇 군데나 될까? 상품이 들어 있는 가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가게마다 ‘세일’ 이란 문구가 유리창마다 붙어있다. 어찌 여기만 그렇겠는가? 전국 어디서나 사정은 같으리라. 정부에서는 벌써 여러 차례 재난지원금을 지원한 듯하다. 우리 같은 사람이야 작년에 한 번 받은 것 말고는 모르지만, 신문을 보니 4차 지원금, 5차 지원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나라 곳간도 걱정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겠지. 그러나 어렵다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그리운 법이다. 역설적으로 울음 대신 웃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선조들도 절망 중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믿고 견뎌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 대국을 이룬 민족이다. 우리는 보릿고개도 넘었고 IMF의 한파도 견뎠다. 국채 보상 운동,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한 저력도 있다. 무얼 두려워하랴? 잠시 코로나19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울지 말고 힘을 내자. 그러려면 웃고 살자!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라 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이 억지로라도 웃자. 크게 웃자. 혼자만 아니고 함께 웃자. 잘 될 거야! 할 수 있어! 용기를 내자. 힘들다, 죽겠다, 못 살겠다, 등등의 말을 내뱉고 괴로워하고 좌절한다고 해서 현재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만 상할 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도 있다. 어차피 코로나19는 가까운 장래에 물러갈 것이다. 이때를 대비하여 미리 웃어주자. 가시밭길도 걸어야 하고, 오르막길도 올라가야 하는 게 인생길이 아닌가? 보릿고개 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은가? IMF도 이겨냈지 않은가? 물질의 행복을 정신의 행복으로 바꿔보자. 시련은 축복의 또 다른 얼굴이다. 고추 모종도 옮겨 심을 때마다 더 튼튼해진다. “포기하지 마세요, 파이팅!” 9천 원을 건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불 가게 주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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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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