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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묘약
    흔히 꽃피는 4월이라 한다. 말 그대로 어디를 가나 꽃 천지요 꽃세상이다. 산에는 산 벚꽃, 진달래가 만발했고, 어느 집 화단이나 공터엔 영산홍과 철쭉이 무리 지어 활활 타고 있다. J 교회 근처 영산홍 꽃밭에서 털퍼덕 주저앉아 꽃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귀 기울여보니 사람보다 꽃들의 수다는 더 요란스러웠다. 그러나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모두 주옥같은 사랑의 명언들이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거야’ 앞에 있는 영산홍이 말하자 중간에 서 있는 철쭉이 말했다. ‘아냐, 사랑은 꽃피는 봄과 같은 거야’ 또 다른 영산홍이 말했다. ‘아냐, 사랑은 행복의 샘이야’ 그때 제일 키가 큰 영산홍이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꽃들도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말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잖아?” 나도 입이 근질거려 한마디 참견했다. 꽃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입을 다물고 얼굴만 더 빨개졌다. 일본 사람들은 벚꽃을 무서워한다고 들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에서도 어떤 어머니가 유괴범한테 아이를 납치당하고 그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활짝 핀 벚꽃 나무 꽃잎 그림자에서 아이의 환영을 보고 미쳐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의 단편 소설을 보면 주인공인 산적(山賊)이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 앉았다가 벚꽃 마녀를 만나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 귀신을 죽이고 풀려나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나는 우리나라 꽃엔 마녀라든가. 귀신같은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앉아 있어도 맑은 웃음소리만 들렸지. 음산한 기운은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천기누설이 될지 모르나 꽃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오히려 우리나라 꽃에는 사랑의 묘약이 있다는 걸 장담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인터넷 ‘다음’ 창을 검색해보니 2020년 12월 기준, 통계청 KOSIS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월 9.181쌍, 연간으로는 11만831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연간 23만 쌍의 커플이 결혼하고 11만 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또한 연간 1.000명당 4.7쌍의 커플이 부부가 되고 2.2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조혼인율은 점점 떨어지는데 조이혼율은 일정하다며 이는 실질적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귀밑머리 파 뿌리가 되도록 해로한다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부부의 절반이 이혼한다는 말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개인 사회가 되다 보니 이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옛날에는 이혼하는 걸 몹시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웬만하면 꾹 참고 살았다. 또한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도 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며칠 후면 가정의 달 5월이 된다. 그래서 내가 영산홍 꽃밭에서 들었던 사랑의 묘약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작가인 내가 주관적으로 들었던 내용이라 전혀 과학적 증명은 할 수 없음을 사전에 밝혀둔다. 사랑의 묘약은 채집 시기가 중요하다. 바로 4월이 적기다. 눈부시게 화창한 4월 중순부터 하순 사이가 좋다. 4‧50대 부부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봄꽃 숲에 와서 꽃들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적어 복주머니에 담아 밀봉해 두었다가, 제갈량의 봉서를 받은 산상 조자룡처럼 사랑의 갈등이 올 때마다 열어보면 백발백중 사랑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는 4‧50대 부부에게만 해당하고 젊은 청춘도, 나 같은 늙은이도 전혀 효과가 없다고 했다. 달갑지 않은 이혼율을 낮출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은 못 하랴? 전혀 과학적 증거가 없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시도는 해볼 일이다. 혹자는 어째서 젊은이와 노인에게는 사랑의 묘약이 없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문제다. 젊은 청춘은 그런 약 같은 게 없어도 활활 타고 있으니 굳이 약을 쓸 일이 없고, 어르신들 부부는 사랑이 아니라 정(情)으로 사시니 사랑의 묘약 같은 건 줘도 소용없는 것 아니겠나? 사랑의 묘약을 많이 채집하여 올해부터라도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하는 불명예이혼율을 낮췄으면 좋겠다.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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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8
  •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
    [요지] 경범죄처벌법상 통고처분이 이루어진 이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검사가 공소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대법원 2021. 4. 1. 선고 2020도15194 판례) [사례] 상습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피고인이 2021. 2. 21. 05:30 무렵 저지른 무전취식 범행(➊범행)에 대하여 경범죄 처벌법상 통고처분을 받은 이후, 같은 날 11:00 무렵 재차 무전취식 범행(➋범행)을 하여 현행범인 체포되었음. 조사 과정에서 위 통고처분 내역 및 피고인의 범죄전력이 확인되자 경찰은 “통고처분을 취소하고 상습사기죄로 형사 입건코자 한다”라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범행 전부를 상습사기죄로 의율하여 검찰에 송치하였고, 검사가 같은 내용으로 공소제기를 한 사안에서 이미 통고처분이 이루어진 ➊범행에 대해서도 상습사기죄로 공소 제기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대법원 판단] 「경범죄 처벌법」상 범칙금제도는 범칙행위에 대하여 형사절차에 앞서 경찰서장의 통고처분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할 경우 이를 납부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기소를 하지 않는 처벌의 특례를 마련해 둔 것으로 법원의 재판절차와는 제도적 취지와 법적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6612 판결 등 참조). 또한 범칙자가 통고처분을 불이행하였더라도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여 경찰서장의 즉결심판청구를 통하여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건을 간이하고 신속․적정하게 처리함으로써 소송경제를 도모하되, 즉결심판 선고 전까지 범칙금을 납부하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범칙자에 대하여 형사소추와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서장이 범칙행위에 대하여 통고처분을 한 이상, 범칙자의 위와 같은 절차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고처분에서 정한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또한 범칙자가 범칙금 납부기간이 지나도록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하였다면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하고, 검사는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7도13409 판결 참조). 나아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경찰서장은 범칙행위에 대한 형사소추를 위하여 이미 한 통고처분을 임의로 취소할 수 없다. 따라서 위 사안에서 이미 ➊범행에 대하여 통고처분이 이루어진 이상 이를 취소하고 공소 제기할 수 없으므로 ➊범행을 포함하여 상습사기로 기소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하므로 공소기각판결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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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8
  • 입 뒀다 뭐해?
    사소한 오해 하나로 십 년 지기를 잃을 수도 있다. 오해가 쌓이면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망가진다. 오해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먼 사람하고는 오해가 생기기 쉽지 않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그 착각이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면서부터 오해가 생긴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조합원 한 분이 이제는 고인이 되신 L조합장과 나를 술자리에 초청하여 간 적이 있었다. 술집도 제법 괜찮은데 안주는 고작 오이 한 접시와 소주가 전부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조합원과 헤어진 후 조합장이 하셨던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 참, 이젠 오이만 보면 신물이 나는구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서글픈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농협 초창기엔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을 만나서 술 한 잔 살 때는 값이 제일 저렴한 오이와 소주를 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조합장은 오이를 제일 좋아한다며 술안주는 오이만 내놓는다고 했다. 조합 규모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조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오이가 싫다고 하세요’라고 했더니, 조합원 호주머니 생각해서 그냥 참는다고 하셨다. 이런 오해야 어쩌면 그냥 지나쳐도 큰 문제가 없지만, 오해는 자칫하면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엊그제 만난 지인도 바로 오해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고부간의 갈등으로 결국 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면서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오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설거지하고 끼었던 고무장갑을 꼭 수도꼭지에 올려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 장갑을 싱크대 옆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쳐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걸 보기만 하면 왼쪽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를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고 심지어 아들의 뺨까지 때리며 그날로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한동안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하고도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려 회복되었다고는 했지만, 참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모든 원인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느리는 수도꼭지에 올려놓은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옮겨 놓은 것이고, 어머니가 밀쳐놓은 커튼 사이로 이웃집이 빤히 보여서 그걸 가리느라 반대로 밀쳐놓았고, 거실에서 치는 피아노 소음 때문에 이웃의 항의를 받아서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먼저, 속에 있는 말을 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어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대로 했고, 시어머닌 시어머니대로 속으로만 분을 삭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섬기는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오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소통 부재로 인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자존심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때 입을 닫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나, 부딪히고 싶지 않아 참는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혼자만의 상상과 불안으로 또 다른 오해와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툭 털어놓으면 된다. 다만, 감정적이거나 직설적 표현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해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는 수학처럼 방정식이 있다고 한다.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5-3=2)하게 되고 이해(2)와 이해(2)가 모이면 사랑(4)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오해는 내 편에서 바라보는 생각이고 이해는 상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생각이다.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오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은 소통 부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일 듯싶다. 오늘부터라도 닫힌 마음 툭 털어놓고 오해를 풀어보자.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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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1
  •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한 세상 살다 보면 별일도 많다. 기막힌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산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오히려 모함까지 받게 된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치를 떨며 어쩔 줄 모른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자기 스스로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이건 무책임하고, 비겁하며 신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하는 일이다. 분노나 복수심, 보상받으려는 감정을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십여 년 전에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목숨처럼 사랑하던 아들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살아갈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 집사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주인공은 문득 범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도소로 범인을 찾아간다. 범인을 만난 주인공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힘들게 결정했다며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인은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평안합니다. 여기 와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평안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인공은 교도소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용서도 완전한 용서라야 한다. 모양만 용서라면, 언제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기 쉽다. 아니, 처음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완전히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위선(僞善)과 선(善)을 생각해 본다. 둘 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는 다를 바 없다. 다만, 마음이 다를 뿐이다. 위선은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 착한척해도 언젠가는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용서했다고 해도 마음 깊숙이 용서하지 않으면 ‘밀양’의 주인공처럼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는 권사님 한 분이 계시다. 갑자기 눈에 실핏줄이 터져 서울 큰 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며 기도를 부탁해 왔다. 약물로 치료가 안 되면 대수술까지 받아야 하며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합심하여 기도한 후 이튿날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출혈은 멎었다고 했다. 하시는 말, 이제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번 돈인데, 그것도 거액을. 거기다가 모함까지 받고 있다니 누구라도 화나고 분할 노릇이었다. 그걸 당하고 나서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못 잤더니 결국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멎지 않았는데 용서하고 나니 출혈이 멎었다고 했다. 세상 올 때 빈손으로 왔는데 그 돈 없어도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그 영혼이 불쌍해서 기도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도나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산다. 광속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면 가족 간 이웃 간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하찮은 일에도 폭발하고 만다. 이럴 때일수록 참고 포기하고 용서하자. 용서는 결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치료제다. 용서는 절망에서 건져주고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다. 포기하고 용서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눈의 실핏줄 출혈이 멎는 기적을 불러왔다. 용서야말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평화요, 행복의 열쇠다.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책 맨 앞장에 있는 존 던의 시 마지막 문장이다. 용서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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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
    인접 토지에 건축된 건물의 외벽에서 반사되는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참을 한도’를 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고려할 사항(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3다59142 판결) [사례]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들이 이로 인한 생활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 [대법원 판단]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 등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가 이로 인한 시야방해 등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음(이하 ‘생활방해’라 한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그 건축행위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이하 ‘참을 한도’라 한다)를 넘는 것이어야 한다. 건축된 건물 등에서 발생한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지는 태양반사광이 피해 건물에 유입되는 강도와 각도, 유입되는 시기와 시간, 피해 건물의 창과 거실 등의 위치 등에 따른 피해의 성질과 정도, 피해이익의 내용, 가해 건물 건축의 경위 및 공공성, 피해 건물과 가해 건물 사이의 이격거리, 건축법령상의 제한 규정 등 공법상 규제의 위반 여부,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용도와 이용현황,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지조치와 손해회피의 가능성, 토지 이용의 선후관계, 교섭 경과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할 때,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가해 건물의 외벽에 사용한 유리의 반사율이 매우 높고, 가해 건물의 외관이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인 타원형으로 저녁 무렵 상당한 시간 동안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로 유입되고 있어, 이로 인한 빛반사 시각장애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어선다는 등의 이유로, 거주자들이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아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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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로봇 같은 공공기관 전화 응대
    글을 쓰다가 궁금한 사항을 알아보고자 어느 공단에 전화했다. 신호가 가고 ‘고객센터입니다’라는 멘트에 이어 ARS음성 안내가 나왔다. 안내에 따라 상담원 연결을 원하는 번호를 누르니 개인정보를 확인 한 후 연결해주겠다며 전화기 버튼으로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입력하라고 했다. 입력하자 ‘상담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기다리라’는 음성이 들렸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기다리니 ‘계속 상담원 연결을 원한다면 1번을 누르라’고 했다. 꼭 문의해야할 일이기에 1번을 누르고 기다렸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얼마 뒤 또 ‘1번을 누르라’는 멘트가 나왔다. 이렇게 하기를 6번. 그러더니 ‘지사로 연결해 줄 테니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다시 주민번호를 누르고 나니 얼마 후 지사와 연결되었다. 고객센터 상담원과는 통화 한마디 하지 못하고 15분 쯤 지나서 겨우 연결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〇〇〇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스크를 쓴 때문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지요?”라고 인사하며 “전화하기 참 힘드네요.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1번을 누른 후 기다리라고 몇 번을 거듭하다가 결국 지사로 연결해주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아무 말 없이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듣는 순간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라든가 ‘그렇겠네요.’라는 말 한마디 쯤 하고 나서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전화 연결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말씀하세요.’라는 말만 하는 자세는 바른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말씀하세요.’라고만 했다. 로봇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공직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상대후보의 질문에 답변은 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세요.”라고만 하던 어느 후보의 느물거리던 모습,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의 질문은 외면하듯 “말씀하세요.”라고 하던 공직후보자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개인적인 상담이 아니라 제도에 관하여 묻고자 하는 것이라’며 알아보려는 내용을 말하니까 ‘그런 내용은 본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본부 고객센터에서 지사로 연결해주었는데 다시 본부로 알아보라고 하느냐? 이미 고객센터상담원과 연결하지 못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본부 담당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여 알아냈다. 본부에 전화하여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였다. 답을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왕 본부 직원과 통화가 이루어 진 기회에 평소 가졌던 생각을 이야기 하였다. 먼저 그 공단에 문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상담하려는데 주민등록번호13자리를 세 번이나 밝혀야 하는 경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상담을 하다보면 ARS의 불편함과 더불어 일부 공공기관 종사자의 메마른 태도에 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상담원은 많은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달라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는 멘트를 해야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뜻한 상담을 바라는 고객의 바람이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겠네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 혹시 ‘수긍’했다는 것으로 듣고 나중에 추궁당하거나 책임이 뒤따를 것을 염려해서인가? ‘고객은 왕’이라는 기울어진 상태에서 대접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기울어 졌다고 느끼는 시민도 있다. 상황은 상대적이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을 곰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의 존재이유를 잊지 말고 바람직한 응대 자세를 생각한다. 민원인도 답답하고 힘들다. 웬만한 민원은 성의를 담은 친절한 응대만으로도 녹아버린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유효기간이 없다./수필가ㆍ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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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7
  • 화장실에서 촬영 착수 판단 기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의 착수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판례(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1도749 판례) [사례] 피고인이 카메라 기능이 켜진 휴대전화를 화장실 칸 너머로 향하게 하여 용변을 보던 피해자를 촬영하려 한 사안에서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여 미수로 처벌할 수 있는지요? [대법원 판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한다)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서 ‘촬영’이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이나 저장장치에 피사체에 대한 영상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0도10677 판결 참조). 따라서 범인이 피해자를 촬영하기 위하여 육안 또는 캠코더의 줌 기능을 이용하여 피해자가 있는지 여부를 탐색하다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촬영을 포기한 경우에는 촬영을 위한 준비행위에 불과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2415 판결 참조). 이에 반하여 범인이 카메라 기능이 설치된 휴대전화를 피해자의 치마 밑으로 들이밀거나,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는 화장실 칸 밑 공간 사이로 집어넣는 등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행에 밀접한 행위를 개시한 경우에는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2도4449 판결, 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4도8385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휴대전화를 든 피고인의 손이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던 화장실 칸 너머로 넘어온 점, 카메라 기능이 켜진 위 휴대전화의 화면에 피해자의 모습이 보인 점 등에 비추어 그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미수에 대하여 유죄판단을 한 2심을 수긍한 사안입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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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7
  • 나눔의 행복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석 달 열흘 가뭄에 아침 이슬 같은 소식들이 전해진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의장의 통 큰 기부 소식을 들었다. 두 기업가는 어려운 형편을 딛고 벤처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많은 재벌이 후손에게 가진 편법과 수단을 다하여 부를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자기 재산의 절반인 5조 원과 5천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편의점에서 선행을 베푼 여학생의 이야기도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빚더미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주부의 어린 둘째 아들이 편의점에서 몇 가지 먹을 것을 샀는데 잔액이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느 여학생이 그 물건 외에 다른 것도 사줬다는 이야기다. 여학생이 대신 계산해 준 돈이 5만 원 상당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감사하다는 말과 월급이 나오면 갚겠으니 연락해달라는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따뜻하고 훈훈한 소식이다. 꽁꽁 언 땅을 뚫고 노랗게 솟아오른 복수초꽃처럼 아름답고 예쁜 소식이다. 또 다른 나눔도 있었다. 치킨집 사장님의 ‘한 접시의 치킨’ 이야기다.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소년 가장은 5천 원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치킨 5천 원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한 점주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 했고 이들에게 2만 원어치의 치킨을 주고 돈도 받지 않고, 이후 가끔 찾아오는 일곱 살 동생에게 배불리 치킨을 먹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잘라 주었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학생은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사장님 덕분에 그날 치킨집을 나오고 많이 울었다며 그 치킨집의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 끝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저도 성인이 되어 돈 꼭 많이 벌면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철인 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이 오고 있지만 언제 풀릴지 모르는 경제 한파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러한 때의 나눔은 더 밝고 빛이 난다. 귀 기울여 보면 이런 따뜻한 나눔의 소식들은 뜻밖에 많다. 다만, 조그만 불빛이 멀리 가지 못할 뿐이다. 30억 원을 기부한 전종복‧ 김순분 부부라든가 대하장학재단 명위진 이사장, 구두 수선공 김병량 씨 등등 올해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가운데서 나눔을 실천하신 분들이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고, 기를 쓰고 출세하려 하며, 더 많은 걸 소유하려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을 터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행복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어 돈 벌고, 출세하고, 권력 잡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는 일시적 행복은 가져다줄지언정 다함이 없다. 끝없는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자꾸만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다.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란 말이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추구하고 찾아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김범수 의장이나 김봉진 의장처럼, 전종복 부부처럼, 명위진 이사장처럼 그렇게 거액을 나눌 수는 없다. 그렇게 통 큰 기부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위대함을 찬탄할지언정 그렇게 마음에 닿지 않는다. 오히려 5만 원 상당의 물건을 사줬다든지 2만 원의 치킨을 사줬다는, 어쩌면 사소하고 작은 나눔에 대하여 더 진하게 감동하게 된다. 스스로 돌아본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냥 지나쳤다. 기다란 고무장화를 신은 장애인의 구슬픈 경음악을 못 들은 척, 못 본 척 외면했다, 살아오며 인색했던 갖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채우는 행복보다 비움의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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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생애 첫 직장, 첫 출근 하던 날 내게 주신 아버지 말씀이었다. 나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으니 흐린 물이 되란 말이 아닌가? 내 상식과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사시면서 터득한 지혜려니 하고 지나쳤다. 아버지 시대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나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은 투명하고 공정한 맑은 물이어야 한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말도 있지 아니한가? 입사한 지 거의 1년이 되어갈 무렵, 책임자(참사)가 바뀌었다. 처음 분은 매우 인자하였다. 그러나 바뀐 책임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빈틈이 없고 깐깐하고 엄격했다. 어느 날, 결재 서류를 보다가 버럭 화를 내었다. 결재판을 내던지며 “이걸 서류라고 들고 와?” 순간 당황해서 사죄하고 결재판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서류를 살펴봐도 틀림이 없었다. 동료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직장을 고만두기로 했다. 급여도 시원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내와의 약속(1년만 하기로)도 있었기에 잘 되었다 싶었다. 이튿날, 결재 서류에 사직서 봉투를 얹어 참사에게 갔다. “이게 뭔가“ “오늘부터 고만두겠습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그분이 앉아 있다. 그분은 위장이 좋지 않아(수술하심) 도시락을 드셨는데 육개장이 놓여있다. 좋은 군인이 되려면 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 것처럼 좋은 직원이 되려면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장래가 있어 보여서 의식적으로 그랬으니 이해해달라고 사죄했다. 머뭇거리며 수저를 들지 않는 나를 보고 그 매운 육개장을 드셨다. 자식 또래 직원에게 사과하는 모습도, 고춧가루 범벅인 육개장을 드시는 모습도 내겐 충격이었다. 식사 후 사직서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물었다. 기안 용지에 쓴, 내 글씨 탓이었다. 받침 ㄷ자를 ㄴ자로 쓴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본뜻을 깨달았다. 글씨를 잘못 쓴 것, 결재판을 내던진 것, 욱하고 사표를 낸 것, 자식뻘 직원에게 사과하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매운 음식을 먹은 것, 그런 일들은 정상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숨 쉴 공간이다. 아버지가 하신 ‘맑은 물’은 숨 쉴 공간이 없는 걸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엊그제 식당에서 4명의 친지와 칼국수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 중 하나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다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나가 봤더니 한 젊은 친구가 우리 일행의 신발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더란다. 신발을 찍지 말고 차라리 문을 열고 보라고 했단다. 댓돌을 보니 신발이 5개가 있었다. 하나는 주인 것이라 했다. 신고하면 돈을 준다나?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코로나 자가 격리 지침을 위반하고 병문안을 한 딸에게 150만 원의 벌금을 물린 기사를 보았다. 딸은 미국에서 입국하여 2주간 자가 격리 중이었는데 2시간가량 거주지를 벗어난 혐의였다. 아버지는 닷새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짠 카펫에 일부러 흠 하나를 남겨 놓는다고 한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깨진 구슬 하나를 꿰어 넣는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 부른다. 제주도에 갔을 때 돌담을 보았다. 돌과 돌 사이가 비어 있었다. 그래야 태풍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바울 사도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신처럼 완벽한 인간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더러는 빈틈도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난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싸 줄 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다. 보통학교조차 나오지 않은 아버지가 어떻게 채근담의 말을 인용할 줄 아셨을까? 천국에 가신지도 벌써 20여 년이나 되었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아침이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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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0
  • 무죄 뒤집은 전동차 안 강제추행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에 따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기준에 관한 판례(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도15259 판결) 사례) 甲이 경의중앙선 전동차 안에서, 피해자 乙의 앞에 붙어 서서 손을 乙의 치마 속에 집어넣어 스타킹 겉 부분까지 손가락이 닿은 채로 乙의 성기 부분을 문지르고 더듬는 등 약 5분 동안 乙을 강제로 추행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례 [대법원 판단] 항소심은 사람이 많은 전동차 내에서 피고인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고 피고인을 잡고 전동차 밖으로 끌어 내린 뒤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의 태도에 비추어 적극적이고 용감한 성격인 피해자가 일정 시간 공소사실과 같은 정도의 피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참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함으로써,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기준을 제시하며, 이 사건 피해자의 진술이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추행행위를 인지하게 된 경위에 있어서 ‘처음에는 생리대 때문에 바로 느끼지 못하였다가 한 30초 정도 뒤에 느낌이 이상하여 한 걸음 이동하였는데, 피고인이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따라 붙어서 이 사건 추행을 하였다.’, ‘3~5초 정도 눈으로 정확히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고 따졌다.’는 등으로 진술하고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항의 태도만으로 피해자의 성격을 속단하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판결은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심의 판단에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고,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죄에 대하여 유죄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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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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