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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에도 봄은 오는가?
    (포괄적·점진적 CPTPP에 대한 농·축·수산업 대책 마련 촉구) 얼마 전 입춘이 지났다. 입춘은 말 그대로 봄으로 들어서는 시기이다. 봄은 희망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농부들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여 희망을 꿈꾸는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산업인 농업에는 그 어디에도 봄을 찾아볼 수가 없다. 농업인은 만물의 근원인 대지를 가꾸는 누구보다도 숭고한 직업이다. 정부에서도 농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업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농업인의 삶이 그만큼 힘겹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CPTPP로 인하여 누구보다 성실했던 농업인들의 미래는 더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CPTPP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전국에서 상경한 농협 조합장들이 쌀값 안정화를 위한 쌀 시장격리를 요구하는 총궐기대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정부는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다가 자국주의와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의 탈퇴로 현재는 일본이 의장국을 맡아 주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국으로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페루, 호주, 멕시코, 캐나다 등 11개국이 있다. 문제는 CPTPP는 대부분 농업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데다, 개방 수준도 여타 FTA보다 월등히 높아 우리 농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가입 시 상품 무역 개방 수준이 96%에 달해 지금도 수입 농축수산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가입에 앞서 국내 농업 보호책 마련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굵직한 농업 현안을 추진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업계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어 농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와는 철저히 괴리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CPTPP는 일본이 의장국을 맡으며 주도하고 있고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국을 결정하고 있어 일본의 반대를 넘어 가입하기 위해서는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CPTPP 가입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CPTPP는 우리 농업에 대한 피해가 너무 크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우리 먹거리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등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아 보인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2019년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에 이어 올해 2월 1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까지 줄곧 농업 피해만 강요해온 정부가 또다시 CPTPP 가입을 추진하니 도대체 우리 농업은 어쩌란 말인가? 헌법 제123조 4항은“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명시하면서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더 이상 위헌에 가까운 정책을 멈추고 농. 축. 수산업 피해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한 후에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장갑순 서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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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5
  • 겨울 숲 나무들의 이야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의 웃음소릴 들을 수 있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부춘산을 즐겨 찾다 보니 겨울 숲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도 인간 세상처럼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어요. 태어날 때 금수저도 있고 흙수저도 있어요. 부드러운 흙에서 태어나도, 바위틈에 태어나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답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며 살아가지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고, 죽음의 자리입니다. 햇살 고운 봄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상에서 제일 곱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열매를 맺습니다. 여름이면 열매를 살찌우며 가을에는 세상으로 떠나보내요. 나무도 사람처럼 계층은 있어요. 죽음의 계절 겨울에도 부유하고 넉넉하게 사는 소나무나 편백 같은 사철나무가 있는가 하면, 빛바랜 가랑잎 붙들고 흰소리 내는 떡갈나무가 있고, 있는 것 다 버리고 털털이 알몸으로 살아가는 오리나무도 있지요. 하지만, 나무들은 절대로 다른 나무를 깔보거나 얕보거나 시샘하지 않지요. 키가 크든 작든 따지지 않습니다. 소나무, 편백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개옷 나무, 산벚꽃 나무, 감태나무, 이팝나무, 노간주나무, 작살나무들이 함께 살아가지요. 자리가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함께 살아요. 넓으면 네 활개 치며 사방으로 팔을 뻗지만, 옆에 나무가 있으면 그쪽은 아예 포기하고 양보합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두 나무가 하나같이 보이지요. 부춘산 숲속 나무는 누가 와도 반갑게 맞아줍니다. 사람도 새도 짐승도 좋아하지요. 햇살도 앉았다 가고, 바람도 놀다 가고, 구름도 쉬어 가고요. 요즘 산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다니네요. 전에는 예쁜 얼굴도 보였는데 지금은 눈만 보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대부분은 겨울이 무섭습니다.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사철나무야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겨울이란 계절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늦가을부터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가을이 되면 눈물바다가 된답니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듯 매달고 있던 이파리들을 울긋불긋 가장 예쁘게 수놓아 떠나보내지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한겨울을 지내려면 죽은 듯 엎드려 지내야 합니다. 아무 가지나 뚝뚝 잘라서 불을 붙이면 활활 타 버릴 만큼 반은 죽어서 지냅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고난을 통해 더 단단한 나무가 되어가지요. 인내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내공을 길러 더욱더 튼튼한 나무가 되어 갑니다. 그래서 고난은 또 다른 축복의 얼굴이라고 하지요.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하나가 되어 살아갑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땐 소리 내어 함께 울어 주고, 눈이 내릴 땐 하얀 꽃을 서로 피워 함께 웃지요.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면서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무도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코로나로 힘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대트렌시스(주)에서는 성연면에 공업용 재봉틀을 기증해서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활용 수거 마대를 만들게 하고요. 서산타임즈는 경로당 등에 신문을 무료로 지원해 준다네요. 그런가 하면 농협 서산시지부는 사랑의 떡국 떡 나눔 행사를 했고, 현대오일뱅크는 학대 피해 아동쉼터에 성금 3천만 원을 지원하고 충서원예농협도 이에 질세라 이웃돕기 성금 500만 원도 서산시에 기탁 했다는 소식도 들었지요. 이런 따뜻한 소식을 다 전할 수 없네요. 어려울 때 십시일반으로 조금씩만 보태도 큰 힘이 되지요. 이런 서산에서 살게 되어 행복합니다. 나무가 인내하며 겨울 강을 건너듯 사람들도 슬기롭게 코로나라는 강을 잘 건넜으면 좋겠습니다. 새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장애물을 만났다고 반드시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또는 돌아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라.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 벽을 이겨내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고난을 이겨내고 찬란한 봄을 맞으러 함께 가요.<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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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5
  • “가야산 꼭대기에 혼자 책상 놓고 일해”
    40여 년 전, 당시 군청 민원실에 근무할 때다. 막 출근시간인데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식품영업허가 즉 음식점 영업허가에 대해 묻기에 구비서류, 절차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종이에 적어드렸다. 열한시 쯤 되었을까. 민원 홀 바닥을 닦고 있는데 재무과 지적계장이 찾았다. 창구민원 대부분은 지적관련이라 민원실 안에 지적계가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 지적계장 앞에 가니 중년남자가 앉아있었다. 그 분은 식품영업허가에 관하여 물었다. 구비서류 등을 설명했으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뭐라고?”를 되풀이 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고?’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때 물은 횟수가 대, 여섯 번쯤이었고 그때마다 나름 성의껏 설명했다. 잠시 후 그 분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는데 아침에 왔던 아주머니에게 써드린 것이었다. 그 분은 종이를 필자 얼굴 앞으로 들이 밀더니 “이대로 하면 된다는 말이지?”라며 꼬투리를 잡듯이 재차 묻는 것이었다. 이에 “아! 손님, 아침에 한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그 때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고 적어 드린 것이네요. 그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하며 가셨는데요.”하자 그 분은 턱을 쳐들며 필자를 흘겨보았다. 무언가 마뜩찮아 하는 표정을 읽고 “지금 여러 번 설명 드렸고, 적어드린 것도 있는데…, 모르시겠어요?” 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뭐? 적어준 것도 모르느냐고?”하면서 “모른다. 왜? 당신 같은 사람은 가야산 꼭대기에 혼자 책상 갖다 놓고 일해”하며 버럭 화를 내더니 나가버렸다. 그 분이 가고난 뒤, 지적계장에게 “그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지적계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에 찾아왔던 아주머니가 식당을 하려고 면사무소에 서류를 접수했는데 처리가 늦어지니까 군청 민원실에 와서 필자와 상담을 하고 나서 안면이 있던 그 분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필자는 아주머니가 단순히 문의하러 온 것으로만 알았다. 면에 서류를 제출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서 경위를 알 수 없는 사정이었다. 당시 필자는 ‘군청의 얼굴인 민원실 공무원으로서 성심을 다하자’는 자세를 마음에 새기며 일했다. 심지어 ‘순교자의 심정으로’라고까지 생각했다. 그 때 서산 대부분의 도로는 물론이고 군청 구내도 비포장이라 민원인들이 다녀가면 신발에 붙어 있던 흙이 떨어져 민원 홀은 흙바닥이 되고 먼지가 풀풀 날렸다. 하여 오전, 오후 비로 쓸고 봉걸레로 닦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여름에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느 날 친척 어른이 “자네 시험 봐서 군청에 다닌다더니 청부(廳夫)로 들어왔나?”라는 말을 들었지만 결코 그런 일을 마다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는 내무부 암행감찰관이 민원인으로 가장하여 민원실의 일하는 모습과 비품, 안내문, 응대태도 등을 눈여겨보고 다음 날 다시 와서 또 살펴 본 후에 신분을 밝히더니 군수 앞에서 칭찬해주었다. 그러고는 전국에서 두 명에게 준 표창을 받았을 만큼 정말로 성심껏 일했는데 그런 말을 듣다니 답답하기까지 했다. 민원실은 민원을 상담하고 안내하며 민원서류를 접수하여 관계부서에 보낸 다음 처리기한내 적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여부를 살펴볼 뿐 직접 인·허가 사항을 처리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어쨌든 사정을 알고는 즉시 해당 면사무소에 연락하여 서류를 진달 받아 보건소로 보내면서 그런 상황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얼마 후 민원실장을 겸하는 내무과장이 찾기에 갔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입장이 난처했는지 씁쓸하게 “노이무공(勞而無功)이구먼”이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분은 내무과장에게 항의하며 단단히 질책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웬만한 민원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한다. SNS로 의견을 내기도 한다. 콜센터 ARS상담도 많아졌는데, 코로나19로 대면상담보다 비대면 상담이 늘어나면서 상담원 연결조차 어렵다. 같은 멘트를 반복하여 들으며 십분 넘게 기다리다 연결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기다리는 중 ‘다시 걸으라.’는 멘트에 이어 일방적으로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직접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겪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간혹 공무원의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응대, 무성의한 태도는 거부감을 갖게 한다. 때로는 용무 자체보다 담당자의 응대 태도나 처리과정에 더 민감할 수 있다. 평가는 상대적이라 같은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결과는 다르다. 따라서 공무원은 민원인의 감정을 헤아려 처신해야함은 깊이 새겨야 할 과제다. 옛날 “모르시겠어요?”라는 말은 끝내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처럼. 민원인의 입장, 공무원의 처지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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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 봄이 들어서는 날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 눈이 내리고 있다. 땅바닥에는 이미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문득 오늘이 입춘이라는 생각이 났다. 입춘은 글자 그대로 봄이 들어서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7일이 입동이었으니 바로 석 달이 지났다. 겨울이 지났으니 봄이 되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기야 입춘이 대한과 우수 사이에 끼어있으니 겨울인데 겨울 같지 않고 봄이 아닌데 봄 같은 날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한 가지 분명 한 건 아무리 눈이 와도, 영하의 맹추위가 몰려와도 멀지 않아 봄이 온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 입춘이면 생각나는 몇 가지 풍속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훈장이셨으므로 늘 붓글씨를 쓰셨다. 입춘 날 아침에는 커다란 붓으로 네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이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바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자였다. 입춘에는 크게 길함이 있고 새해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뜻이다. 할머니는 콩을 문이나 마루에 뿌렸다. 집에서 일하시던 아저씨는 광이나 마루 밑에 두었던 농기구를 꺼내어 손질하고 그 일이 끝나면 꼭 두엄을 지고 논으로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봄이 멀지 않았으니 한해의 새로운 농사 지을 준비를 한 것 같다. 입춘이라 하여 봄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는 초라하게 바싹 마른 몸을 바람에 맡기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부춘 산 소나무에는 희뜩희뜩 흰 눈이 쌓여 있다. 추위가 며칠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추위는 당분간 더 지속되리라는 예보가 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마치 겨울 추위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 2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더니 이젠 3만 명이 훨씬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고 한다. 어디까지 확진자가 늘어날지 예측할 수조차 어렵다. 방역 당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염의 확산을 막기는 어려운가 보다. 길게 늘어선 진료 대기 시민들은 안 기다려도 되는 PCR을 받게 해 달라며 자가 진단 키트를 받아 갈 수는 없느냐고 항의하는 소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은 자연과 인간 세상이 별개가 아니란 걸 가리킨 말이다.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겨울도 곧 봄 앞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많아 쌓여도 봄눈은 해가 뜨면 바로 녹는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나면 아른한 봄 냄새가 바람 타고 올라올 것이고 쌓였던 눈도 스르르 녹기 마련이다. 가장 어둠이 짙은 시간은 날이 새기 두어 시간 전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우리를 위협한다고 해도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고 또 다른 치료제가 개발되면 봄눈처럼 그 위세를 잃고 결국 다른 전염병처럼 크게 위축되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몇 해 전에 써놨던 ‘2월’이란 시를 꺼내 보았다. 「다시 엎어진다/한파주의보, 대설주의보 /눈도 많고 춥고도 길다//추위야! 눈보라야!/그댄 걸림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격조 높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춘란은 긴긴날 한데서 견디고/명품 악기를 만들기 위해/나무는 생사를 넘나 든다//봄날 햇빛에 반사되는/ 보리카락의 반짝거림을 상상해보라/초록 치마 샛노란 저고리/곱상한 민들레의 화사한 웃음을 그려보라//2월은 겨울의 레임덕/난 이미 그대를 떠나보내고 있다/언뜻 스치는 봄의 고운 분 내음에/ 벌써 코끝이 자리자리 하다」 속설에 입춘날 눈 비바람이 불면 한해 농사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무슨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니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 듯하다. 지금은 관개시설이 잘되어 있고 품종개량이나 농기계의 발달로 이전처럼 자연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코로나가 속히 물러가고 올해에도 풍년 농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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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 한 시의원의 정당 공천제 폐지 주장
    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 6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 나라 전역은 선거철이다. 각 정당마다 대통령 선거 후보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열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철은 예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선거철이면 항상 단골메뉴처럼 등장하고 곳곳에서 촉구됐던 ‘정당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는 점이다. 기억하건데 매번 지방선거 때면 각 정당의 기초 및 광역의원 공천을 앞두고 풀뿌리 민주주의, 온전한 지방자치를 강조하며 ‘정당공천제 폐지’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왔다. 중앙정치와 분리된 독립적 지방정치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지난 1990년 지방자치제도 부활 후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은 1995년, 기초의원 정당공천은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전문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특히 올해는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으로 지방의회의 역할이 대폭 확대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야가 ‘대선 기여도를 지선의 공천 기준으로 삼겠다’는 퇴행적인 방침을 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방선거 공천심사에서의 대선 기여도 반영’을 공식화했고, 국민의힘도 6.1지방선거 공천 기준에 ‘대선 활동내역’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야가 이렇게 공천권을 무기로 지선 후보자들의 ‘줄세우기’라는 구태를 일삼게 되면 지방의회가 중앙정치권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뜻과 반대되는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고 ‘지방의회 무용론’으로 확대되면서 자치분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또 공천과정에서 지역위원장의 독단적인 평가로 인한 불공정 시비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당공천제 속에서 요즘 각 정당마다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당 내 자신들 끼리만의 원팀이다. 시민과 정당의 원팀이라 보긴 어렵다. 정당공천제가 지속되면 시민보다 중앙당 눈치를 더 살피게 돼 풀뿌리 민주주의, 온전한 지방자치 실현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초의원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전락하거나 정당의 수족 역할만 한다는 비판과 지적이 셀 수 없이 제기돼 왔다. 기초의회 스스로도 이 같은 폐해를 들며 정당공천제 폐지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철에는 이 같은 요구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마다 대선 후보별로 기초, 광역의원들이 나뉘어 줄을 서는 모습만이 즐비하다. 자신이 마음에 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6월 지방선거 공천을 염두에 둔 계산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철만 되면 들불처럼 일었다가 선거 후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반복해 왔던 ‘정당공천제 폐지 요구’가 이번 선거철에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에서 지난 1월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이 5분 발언을 통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서산시의회의 온전한 지방자치를 위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최 의원은 “정당공천제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기초의회를 형해화(形骸化)할 수 있다”며 “기초의회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정치권에 촉구했다. 올해는 지방자치 31년을 맞는 해다.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 아직도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의 온전한 지방정치를 위한 도전이 아름답다./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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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 가산세 부과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
    [요지] 가산세를 면할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개별 세법에 따른 신고ㆍ납부기한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 (대법원 2022. 1. 14. 선고 2017두41108 판결) [사례] 클럽을 운영하는 원고들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원고들의 종업원들이 클럽의 입장권을 위조ㆍ판매하여 그 대금을 빼돌린 사실이 밝혀져 세무서 등 피고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누락된 입장권 판매대금 상당의 매출에 관한 부가가치세 등(신고불성실 및 납부불성실가산세 포함)을 부과한 것이 적법한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판단] 세법상 가산세는 과세권의 행사 및 조세채권의 실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납세의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법에 규정된 신고, 납세 등 각종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부과하는 행정상의 제재이다. 따라서 단순한 법률의 부지나 오해의 범위를 넘어 세법해석상 의의(疑意)로 인한 견해의 대립이 있는 등으로 인해 납세의무자가 그 의무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어서 그를 정당시할 수 있는 사정이 있을 때 또는 그 의무의 이행을 그 당사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하는 사정이 있을 때 등 그 의무를 게을리 한 점을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제재를 과할 수 없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두44711 판결 등 참조). 또한 가산세는 세법에서 규정한 신고ㆍ납세 등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인 점, 구 국세기본법이 세법에 따른 신고기한이나 납부기한까지 과세표준 등의 신고의무나 국세의 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가산세를 면할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별 세법에 따른 신고ㆍ납부기한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이 사건은 원고들이 종업원들의 횡령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부가가치세 등 신고ㆍ납부기한 이후이므로 신고ㆍ납부기한 당시에는 원고들에게 가산세를 면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피고들이 원고들에 대하여 신고·납부기한 이후 종업원들의 횡령으로 누락된 입장권 판매대금 상당의 매출에 관한 부가가치세 등을 부과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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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 설 단상(斷想)
    민족의 명절 설이다. 삼국시대부터 설의 기록이 있다고 하니 설날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일상이 설 명절 못지않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래도 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어머니 품속 같은 포근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보는 것처럼 즐거운 느낌으로 설 명절을 맞는다. 불과 6, 70년 전만 하더라도 새 옷을 설빔이라 하여 의례 설날에 얻어 입었다.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날도 설날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풍습을 생각해보면 설날은 오로지 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아침상을 물린 후 어른들께 세배하고 조상의 묘를 찾아가 성묘하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동네에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렸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살아계신 어른들에게는 세배를 드려 예를 다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명심보감에 “세유천만경전 효의위선(世有千萬經典 孝義爲先)이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에는 천만 가지 경전이 있어도 효도와 정의가 먼저다”라는 의미다. 또한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란 말도 있다. 인륜의 으뜸가는 덕목이 바로 효란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핵가족 시대가 되었어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변할 수가 없다. 벌써 2년을 몹쓸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고유의 명절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모처럼 찾아가는 부모님 상봉까지도, 성묘까지도 막아서고 있다. 설 명절의 수난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뿐만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집요하게 설 명절을 없애려 들었다. 신정은 일본 설이라 하여 왜정(倭正)이라 불렀고 우리의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몰래 차례를 지냈다. 유신 시대에도 이중과세라 하여 아예 설날을 억지로 없애버렸다. 평일처럼 근무하게 하여 공무원과 농협이나 공기업 직원들만 출근하였다. 일반인들은 옛 풍습대로 설날을 명절로 지냈다. 그러다가 정부도 국민의 여망을 어쩌지 못했는지 1984년에 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민속의 날로 했다가 드디어 1989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설날을 인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문득 1980년 설날에 있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이 생각난다. 필자가 태안 모 농협에서 근무할 때였다. 설날이라 해도 전 직원들은 정상 근무를 하였다. 말이 정상 근무지,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점검이라도 올지 몰라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고 시간만 가기를 기다렸다. 설 명절이지만,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에 오히려 점심 걱정을 하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무는가 했더니 오후 3시 반 경에 한 사람의 고객이 왔다. 관내 예비군 중대장이 보낸 기간병이었다. 차기 조합장 출마자라는 소문이 나도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기억으로는 만 원인가, 이만 원인가를 출금하는 것이었다. 단 한 건이라도 거래가 발생하면 온갖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했다. 모든 사무를 수기로 하던 시절이니 그 작업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전표도 달랑 한 장이니 따로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거절당했다. 중대장은 굳이 통장에 출금 내용이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소문에 의하면 농협 직원들이 제대로 근무 하나 안 하나 알아보려고 그랬다고 했다. 한 세상 살다 보면 참 별난 사람도 만나게 된다. 설이란 말은 새해를 맞이하게 되니 ‘설다’ ‘낯설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익숙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담은 의미라 하겠다. 또 다른 해석은 나이를 먹어 늙어감을 슬퍼하여 생긴 ‘섧다’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한해가 지나감으로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슬퍼하는 뜻이라 했다.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는 건 희망이요, 도전이다. 늙은이들이 먹는 나이는 세상과의 이별의 날이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랴?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니랴? 주어진 세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뿐이다. 최대한 기쁘고 즐겁게, 보람있게 한 해를 보내자. 낯선 것도 없고, 서러워할 것도 없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그저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살아가자. 코로나여 물렀거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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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31
  • 우생마사(牛生馬死)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특징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은 바로 '빨리빨리' 문화를 꼽는다.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배송도 빠르고 일 처리도 빠르고 경제 성장도 빠르고…. 오죽하면 임기 4년을 마치고 떠나는 주한 영국 대사 사이먼 스미스 씨는 그의 돌아가는 인터뷰에서 “한국은 절대 멈추지 않는 나라( a cauntry that never stop)”라고 하며 “한국에 오기 전에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들어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와보니 정말 모든 게 빨리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른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격이 급해졌다며 고국에 돌아가면 모든 게 답답한 생각이 들어 빨리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빠른 기간 동안 경제 성장을 이룬 것도 다 빨리빨리 문화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빨리빨리 문화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로 인해 우린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한국의 배송 기사들의 사고 사망률은 다른 나라의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한국의 의료업 종사자들의 과로 사망률도 3배 가까이 높고 한국의 사무직 종사자들의 스트레스성 사망률 역시 2배 이상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슬로우 뉴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많이 바꿔 놓았다. 방역 지침에 따라 마스크 착용은 물론, 거리두기,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과 사적 모임 제한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환경도 점점 변하여 처음에는 몹시 불편하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거리두기가 가져온 배달의 생활화다. 음식물은 말할 나위도 없고, 생필품, 의류, 도서, 가전제품, 등등. 거의 모든 것을 배달에 의존한다. 따라서 제일 바쁜 직업은 택배 기사와 배달 오토바이 기사 들이다. 배달이 예정보다 늦으면 짜증을 내고 독촉 전화를 하고 그런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배달원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달하고자 무리를 하게 된다. 음식의 경우는 거의 오토바이로 배달하게 된다. 신호위반, 속도위반뿐만 아니라 끼어들기도 다반사다. 이런 위험한 장면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 배달 증가에 오토바이 사망사고가 급증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며칠 전 광주에서는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가 있었다.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는 아래층 콘크리트가 굳지도 않았는데 위층을 올리다가 발생한 사고다. 동절(冬節)에는 적어도 최소 10일부터 2주 이상의 기간이 충분한 양생기간이 필요한데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붕괴 책임을 지고 회장까지 물러났다. 문제는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불과 7개월 만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돌부리에 두 번 넘어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열을 얻으려고 서두르다가 하나도 얻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늦어서 하나를 잃더라도 아홉을 얻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다. 강한 물살에 소와 말이 같이 떠내려갈 때 말은 물살을 거슬러 뭍으로 헤엄치고 수영을 못하는 소는 힘을 버리고 물살과 함께 떠내려간다. 말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힘이 빠져 익사하게 되지만, 소는 힘을 아끼고 묵묵히 버티다가 결국 산다는 뜻이다. 이제는 빨리빨리의 문화도 변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다. 온갖 비리도 수많은 사건 사고도 따지고 보면 남들보다 빨리 출세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성취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20여 년 전 태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느긋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늘 더운 나라이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방콕이란 이름의 뜻이 천사의 도시로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이드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여유를 배워 가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살만큼 되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조간신문을 받아들고는 우생마사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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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6
  • 구체적 내용 없는 해고통지서의 효력
    [요지] 서면해고통지에 구체적인 비위행위가 기재되지 않고 축약기재되어 그 적법성이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1. 14. 선고 2021두50642 판결) [사례] 학교법인은 원고(기간제교원)에게 ‘담당 학생들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접촉 및 발언으로 다수의 학생들이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는 내용이 담긴 이 사건 통지서를 통하여 근로계약해지를 통지하였는데, 원고는 해고통지서에 해고사유가 축약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비위행위가 기재되지 않아 해고통지로서의 효력이 없어 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한 사건. [대법원 판단]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쉽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하여야 하지만, 해고 대상자가 이미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면 해고통지서에 징계사유를 축약해 기재하는 등 징계사유를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위 조항에 위반한 해고통지라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2다81609 판결 등 참조). 징계해고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라 서면으로 통지된 해고사유가 축약되거나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징계절차의 소명 과정이나 해고의 정당성을 다투는 국면을 통해 구체화하여 확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것이므로 해고사유의 서면 통지 과정에서까지 그와 같은 수준의 특정을 요구할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판단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 통지서상 원고의 해고사유를 이루는 개개 행위의 범주에 다소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때문에 원고가 이 사건 해고에 대하여 충분히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해고절차에 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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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6
  •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잠자리까지 따라오는 불편한 마음이 있다. 그건, 누군가 내게 했던 불편한 말 때문이다. 잊자고 해도 잊히지 않고 자꾸만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똬리를 튼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배신감과 괘씸함과 서운함은 날이 새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다. 나도 틀림없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을 터인데 그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말조심을 하지 않겠는가? 새해 들어 제일 먼저 스스로 약속한 것은, 말조심과 글 조심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그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말과 글이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다짐하고 다짐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두드리는 한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생각과 삶을 바꿔놓는다. 슈바이처 박사가 어렸을 때 동네 아이와 싸움이 붙었는데 밑에 깔린 아이가 소리친 한마디 말. “내가 너처럼 고깃국을 먹었더라면 너에게 지지 않을 거야” 가난 속에 사는 친구의 그 말 한마디가 어린 슈바이처 박사를 굶주림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일생을 바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문장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의 걸인 이야기는 문장 하나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다리 위에서 구걸하는 장님 앞에 놓인 동전통엔 몇 프랑 정도만 있다고 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라는 팻말이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팻말의 글씨를 이렇게 고쳐 놓았다고 한다. “봄이 왔지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그 후로 동전통엔 수북하게 돈이 쌓여있었다는 이야기다. 팻말의 글씨를 고쳐 준 사람은 로제 카이유라는 시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한마디의 말과 글이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불은 집을 태우지만, 말은 사람을 태운다고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이 있다. 한 여류 화가가 그의 그림을 전시했을 때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는 와닿지만,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라고 평가했다. 주인공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 와닿는다는 말보다는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에만 마음이 걸렸다. 그녀는 깊이 있는 작품을 그리려 애썼다. 그러나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한다. 절망하여 술과 마약으로 몸을 망치고, 결국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부 찢어버리고 자살하고 만다는 줄거리다. 우리는 히틀러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을 기억한다. 그는 말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대선이 코앞에 와있다. 정치 지도자의 막말 논란이 지면을 뜨겁게 달군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에라스뮈스의 『어리석음의 찬미』란 책에서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혀와 상황에 따라 말하는 두 개의 혀를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 정치인은 진실과 사실을 무시하고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한 말로 인해 스스로 묶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다. 이제 정치도 선진국답게 각종 흑색선전, 막말, 거짓 선동 등은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더는 거친 말들을 쏟아내어 국민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수는 있고 후련하고 상대를 이겼다고 할지 모르지만, 상대는 내가 한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데이 C. 셰퍼트는 『세 가지 황금 문』이란 책에서 “말하기 전에 언제나 세 가지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첫째는 참말인가? 둘째는 정말 필요한 말인가? 셋째는 친절한 말인가? 이 세 가지 황금 문을 확실히 지났다고 생각하면 그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담대히 외쳐라” 말하기 전에도 글쓰기 전에도 기도한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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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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