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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의 손자 ‘손흥민’ 월드컵의 ‘별’이어라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경기의 막이 열렸다. 세계 축구인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중동의 카타르에 쏠려있다. 22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에서 ‘손흥민 보유국’ 우리나라는 원정 두 번째 16강 진출을 노리고 있다. 월드 스타이고, 태극전사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서산의 손자’이다. 20년 전인 2002년, 월드컵 경기를 개최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붉은 물결 속에 박수와 함성의 도가니였다. 집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하나가 되어 마음껏 소리 지르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열망은 4강 신화를 이루어 냈다. 붉은 악마, ‘악마’라는 단어조차 친근했던 시기를 함께 하며 뭉클했던 기억은 역사에 몇 안 되는 감동을 주었다. 그 뿌듯했던 순간이 지금 손흥민 팀에 의하여 카타르에서 되살아나기를 간구한다. 손흥민 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 서산 출신으로 손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고 ‘그 아들에 그 아버지’인 셈이다. 손흥민 선수가 빼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요인 중 핵심은 그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열린 교육’에 있다. 현재, 춘천에서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 감독은 U-23 국가대표 등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나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그 계기로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유소년 축구를 접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손 감독은 춘천 FC를 창설했고,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아들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히, 차남 손흥민은 아버지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탄탄한 개인기와 기본기를 차근차근 익혔다. 손 감독은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패스나 다른 기술은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손 감독은 축구 강국들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충분히 벤치마킹하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점은 아버지 손 감독의 엄청난 희생과 열정이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버지 손 감독은 온갖 힘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축구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스포츠맨으로서 보여주는 올바른 자세와 인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참된 교육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료: 나무 위키) 손 선수의 아버지이자 스승이기도한 손 감독이 어릴 적 체계적으로 축구를 할 수 있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어쩌면 ‘우연’이 손 감독 축구인생의 변곡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서산에 유소년 축구 팀 지도자가 있었다. 부춘초등학교에서 훈련하던 어느 날 선수들의 체력단련과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인지초등학교까지 달리도록 했다. 그 때 운동장에서 홀로 축구공을 만지던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 지도자는 소년을 불러 “축구 좋아하니? 축구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이에 소년은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에 유소년 축구팀에 합류시켰다. 지도자는 이 소년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소년은 체력 조건 등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가르침을 잘 따랐다. 때로는 지도자 집에서 숙식하며 머물도록 해주었다. 지도자의 어머니는 지금도 그 소년을 ‘참 순하고 착실했다’고 기억한다. 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다가와서 거드는 등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그 소년을 경제적으로 부담 없이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축구부 감독과 친분이 있는 춘천 소양중학교에 추천했다. 손 감독이 춘천에 정착하게 된 계기다. 소년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성장하여 청소년 국가 대표, 88올림픽 대표를 지냈다. 손 감독은 은퇴 후 많은 팀의 감독제의를 뿌리치고 제2, 제3의 손흥민을 발굴하기 위하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외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수백 억 원을 들여 ‘축구아카데미’, ‘손흥민 축구공원’을 만들어 춘천을 축구의 메카로 조성했다. 손 감독은 어릴 적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기억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 선수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손흥민 선수를 춘천 출신이라고 한다. ‘서산의 아들일 수도 있었을 텐 데’를 생각해 보면 참 아쉽다. 만일 예전에 손 감독이 고향 서산에서 축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면 어땠을까? 성공 후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각 분야에서 유망주를 발굴하여 지역인재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 감독에게 어릴 적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준 지도자는 필자의 동생이고, 숙식을 마련해준 분은 필자의 어머니다. 24일 한국 대표 팀이 강호 우루과이와 첫 경기를 치른다. 손흥민 선수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검정색 안면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이 안쓰럽다. 월드컵의 큰 별로 반짝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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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바르지 못하면?
    신문을 읽고 일어나는데 허리가 시큰했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좌우로 허리를 돌려보고 두드려도 보았지만 점점 허리에 힘이 빠지고 시큰거리고 아팠습니다. 파스를 붙여도 여전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의원에 가서 찜질도 하고 침도 맞고 부항도 떴습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으나, 일어나보니 통증은 더했습니다. 거동조차 힘겨웠습니다. 약국에 가서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를 사 먹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문득 박완서 작가의 ‘일상의 기적’이란 글이 떠올랐습니다. 찾아서 다시 읽어보니 바로 내 이야기를 쓴 듯해서 공감이 갔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중국 속담도 실감 났습니다. 아파보니 참으로 우린 기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박사는 일상은 차라리 기적이라며 매일 아침 눈 뜨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제가끔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다름 아닌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만 바라며 살 수 없습니다. 탈 없는 일상의 기적을 만들어 내려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허리가 삐끗한 원인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바르지 못한 내 자세에 있었습니다. 나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간신문을 읽습니다. 1면에서 마지막 면까지 제목만이라도 거의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략 두어 시간이 걸립니다. 그날은 침대와 책상 사이 좁은 공간에서 신문을 방바닥에 놓고 바르지 못한 자세로 장시간 신문을 본 결과였습니다. 바르지 못한 자세. 그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어찌 몸만 그럴까요? 마음도 바르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갑니다. 불로소득, 일확천금, 이런 건 애초부터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걸 쫓아다닙니다. 필자가 열일곱 살 때, 그러니까 꼭 육십일 년 전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서울을 가 보았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서울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모처럼 서울 구경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침만 먹으면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하루는 동대문 근처에 갔을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무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였습니다. 엎어 놓은 컵 세 개, 그 밑에 작은 주사위를 숨기고 돈을 건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요리조리 섞은 후 주사위가 있는 곳을 맞히면 돈을 두 배로 돌려주고, 틀리면 돈을 가져가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맞힐 수 있는데 사람들은 엉뚱한 데를 가리켜 돈을 잃었습니다. 한참을 구경하다 나도 모르게 돈 5천 원을 걸었습니다. 물론 내가 이겼습니다. 주위 어른들이 참 눈이 밝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만 원을 걸었더니 또 내가 이겼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을 나를 응원했고 주인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때 돌아섰으면 1만 원을 따서 기분이 좋았을 터인데, 어른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다시 1만 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졌습니다. 틀림없이 두 번째 컵에 넣었는데 1번 컵 밑에 주사위가 놓여있었습니다. 오기가 생겨서 호주머니에 있는 내 돈을 다 걸었습니다. 가지고 간 돈 2만 원을 다 잃고 돌아섰습니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 후로 나는 정당한 대가가 아닌 돈은 손에 대지 않았습니다. 사행성 오락은 물론 삶 자체에서도 노력 없이 얻는 물질은 절대로 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걸 깨달은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기를 당하는 것도 노력의 대가보다 더 큰 걸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가끔 고위 공직자나 정치가들이 불의한 일로 조사를 받고 있거나 구속되기도 합니다. 모두 다 바르지 못한 처사로 인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당한 경우입니다. 모름지기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과 처신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지난해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해 충돌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아픈 허리도 상당히 부드러워졌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지 않으면 허리가 고장 납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허리를 만지면서 몸도 마음도 바르게 살기를 작정합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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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집행유예기간은 취업제한기간에 포함
    [요지] 집행유예기간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에서 정한 취업제한기간에 포함되는지 여부.(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22두44354 판결) [개요] 원고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된 후 그 집행유예기간 중에 취업제한대상 기업체의 대표이사 취업승인을 신청하였으나 피고가 취업불승인 통지를 한 사안에서, 집행유예기간은 취업제한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정경제범죄법’이라 한다) 제14조 제1항은 본문에서 같은 법 제3조 등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각호의 기간 동안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고, 단서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으며, 각호에서 취업제한기간을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제1호),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제2호), “징역형의 선고유예기간”(제3호)으로 정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 제2호의 규정 내용과 체계,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종합하면, 위 제2호의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은 취업제한기간의 종기를 규정한 것으로 볼 것이고, 집행유예기간은 취업제한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 본문은 취업제한대상자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으므로, 취업제한기간의 시기는 ‘유죄판결을 받은 때’, 즉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로 보고, 각호는 취업제한기간의 종기에 관하여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석하더라도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 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2.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제1항은 선고형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취업제한기간을 달리 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만약 위 조항 각호에서 취업제한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모두 정한 것으로 보면, 이를 구분하여 달리 정한 취지에 맞지 않다. 3. 만약 위 조항 제1호, 제2호에서 취업제한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모두 정한 것으로 보게 되면,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실형 집행기간 또는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될 때까지는 아무런 제한 없이 취업제한대상 기관이나 기업체에 취업이 가능하였다가 위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취업이 제한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취업제한 제도의 입법 취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타당한 해석론으로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실형 집행기간 또는 집행유예기간 중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집행유예기간도 취업제한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박범진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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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2
  • 한서대학교 살리는 것이 지역소멸 예방하는 길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교육받을 권리는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이기 때문에 국가는 공정한 교육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입법과 사회정책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서산시에는 유일하게 종합대학인 한서대학교가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1학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최종결과에 따르면 일반대학 136개교, 전문대학 97개교가 정부 재정지원 대학으로 선정됐으며, 일반대학 9개교, 전문대학 9개교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다. 한서대학교는 다행히 정부재정지원 대학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재정지원이 제한되는 대학은 연간 37억~48억, 3년 동안 약 150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할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고 대학평가를 핑계로 지역대학 죽이기 나아가 지역소멸을 부추기는 것이다. 2019년 중앙정부의 고등교육 지원금은 총 9조 8,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서울 소재 대학에만 2조 7,000억 원(28.4%), 경기도 소재 대학에 1조 2,000억 원(12.8%)을 지원하였다. 반면, 지방 지원 비율은 59%에 불과하다. 2020학년 대학교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환산해보면 수도권 대학 학생은 1인당 연간 1,8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출하였지만, 비수도권 대학 학생은 1인당 1,400만 원에 그치고 있다. 이렇듯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 ‘기울어진 운동장’현상이 이미 일반화된 상황에서 대학의 기본역량 차이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의 80%를 사립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전체 대학생 중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은 18%에 불과하고 사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82%다. 따라서 지방사립대를 한계대학으로 분류하여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대학 체제 개편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방사립대에서 시작된 대학위기가 지방국립대 → 수도권 사립대 → 서울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다. 동시에 대학은 지역 경제의 지렛대이자 마중물이다. 서산시의 유일한 한서대학교의 생산 유발효과와 부가가치가 얼마인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서산시와 도시 규모가 비슷한 강원도 강릉시의 강릉원주대와 상지대가 약 3,0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창출하고, 800억 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는 통계를 보면 어림짐작을 할 수 있다. 또한 대학은 지역의 연구·개발 효과, 산학협력 효과 역시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 미충원으로 인해 재정적 한계에 직면한 대학, 대학 교육의 질이 저하되어 폐교 위기에 직면한 대학을 무조건 지원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대학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폐교할 경우 지역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한 지방 소도시의 대학 폐교로 지역경제 상황이 악화된 사례가 이미 언론을 통해 확인되기도 한다. 30년 후 전국에서 59개 지자체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행히 충남도는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없지만 서산시 인근 지자체인 태안군이 지방소멸 우려지역에 분류되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방소멸 문제는 지방의 청년 인구의 유출이 중요 요인이다. 서산시에 소재하고 있는 한서대학교를 졸업한 청년 대부분이 서울이나 경기도 소재 기업으로 취업하여 서산시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한서대학교 안성만 교수는 “서산시에 일자리가 없어서 서산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한서대학교를 살리기 위한 지원이 곧 지역소멸을 예방하는 것이다. 서산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소멸 예방을 위한 한서대학교 지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한서대학교 관계자와 서산시, 서산시의회, 그리고 유관기관과 단체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논의의 장을 우선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혁신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자체와 지역대학이 핵심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서산시도 하루속히 대학 협업체계를 구축하여, 지역인재를 양성하고, 청년들이 서산시에서 정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총괄적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서산시의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떠난다고 하고, 기업은 사람이 없어서 서산시로 이전이 불가하다고 말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역인재는 남고, 기업은 우수한 인력확보를 믿고 서산시로 이전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할 때이다. 대입 수능을 앞두고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대학진학을 놓고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할 것이다. 한서대학교는 나름의 지역사회와의 공존, 고등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산시의 미래를 위해 함께 같이 마련해 간다는 자세로 다양한 분야의 전공과 융·복합 전공을 개설하여 지역의 가치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서대학교 입구에 세워져 있는 ‘창의 신념 공헌’건학이념처럼 한서대학교는 시대상과 지역성을 반영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학부모나 자녀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역대학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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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6
  • 바른말이 옳은 말일까?
    옛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에게 어른들은 바른말이 앙살이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바른말을 하여 시어머니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일 듯싶습니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 진실이 불편한 진실일 수가 있습니다. B.C. 1000년경 이스라엘 왕 다윗은 빼앗겼던 법궤를 다윗성에 옮기면서 숙원을 이루게 된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감격에 겨워 왕의 체면도 잊은 채 에봇만 입고 빙글빙글 춤을 추었습니다. 왕의 그런 모습을 창가에서 내려다보면서 왕비 ‘미갈’은 왕이 체통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속으로 멸시했습니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다윗왕에게 왕비 미갈이 한마디 했습니다. “신하의 아내들이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몸을 드러내는 바보 같았어요” 그 말은 들은 다윗은 몹시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미갈 왕비의 곁에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황의 인식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미갈은 사람을 보았고 다윗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미갈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왕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백성 앞에서는 신중하고 위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바른말은 옳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성학자이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정혜선 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에서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곁에서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위로한다는 바른말이 때로는 독이 되어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가시가 됩니다. 상대에게 충고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그 말이 바른 말이라 해도 단언컨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말보다 상대가 당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들어주는 것, 상대가 진심으로 털어놓고 하고 싶은 말을 들어 주는 것이, 바로 공감의 첫걸음이요 소통의 길입니다. 이는 비단 슬플 때 아플 때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기쁠 때 즐거울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언젠가 지방 신문에 나에 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 얼굴 잘 나왔네” 하며 신문을 들이 밀었습니다. 그때 무언가 하고 있던 아내는 “맨날 보는 얼굴 뭐하러 보라 그래?” 신문을 밀쳐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난 아내에게 어떤 자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고 돌아오는 다윗왕에게 “대왕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이 왕비도 한없이 기뻐요” 했더라면, 아내가 “어디 봐요, 참 잘 나왔네요”라고 빈말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아내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바른말임에도 나에겐 바른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른말이 꼭 옳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 관심과 애정이 있다 해도 충고는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쉬우므로 어느 때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퇴계 선생에게 제자가 묻기를 “형제 사이에 잘못이 있으면 서로 말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퇴계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선 나의 성의를 다해 상대방이 감동하게 하여라.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서로 간의 의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성의 없이 대뜸 나무라기만 한다면 사이가 소원해진다.” 바른말이 꼭 옳은 말은 아닙니다. 충고가 아무리 상대를 위한 것이라지만, 충고가 잘못하면 고충이 됩니다. 양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아무리 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귀에 거슬립니다. 꿀도 약이라면 쓰다는 속담처럼 자기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충고와 지적은 듣기 싫어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습니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와 생각을 나타냅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은 때로 자기주장과 자기 세계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약합니다. 옳은 말보다는 오히려 배려의 말이 더 나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까운 사림에게 바른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입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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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6
  • 왜 하필 나인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 지난날 29일 밤에 일어났습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의 거리가 참혹한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156명의 꽃다운 청춘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가족에게 무슨 말로 그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별 기막힌 일도 만납니다. 교통사고, 화재, 불치병이나 혈육의 죽음, 이런 일들을 우리의 주위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그래도 잠시 안됐다.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남이 아닌 나에게 현실로 닥쳐올 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절망과 비통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몸과 마음을 가눌 수조차 어렵게 합니다. 그때 누구나 하늘을 향하여 “왜 하필, 나인가요?”라며 절규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으로 확정되었을 때, 그의 이력이 많은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 온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어릴 때는 말더듬이로 고생했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두 아들도 크게 다쳐 상원의원마저 포기할 뻔했으나 다시 일어서 결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아버지(조셉 바이든 시니어)가 건네준 하나의 액자였다고 했습니다. 그 액자는 ‘딕 브라운’이 그린 만화의 한 컷이었습니다. 바이킹‘헤이’의 배가 폭풍우 속에 벼락을 맞아 좌초하자 신을 향해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왜 하필 나인가요?”(Why Me?) 그러자 신은 그에게 되물었습니다. “왜, 넌 안되지?”(Why not?)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개신교에서 성공한 목사님입니다. 그 목사님이 암 선고를 받고 처음 들었던 마음은 “왜 하필 나에게?”라고 했습니다. 일생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 은퇴하여 겨우 평안한 삶을 살아보려 했는데 “왜 하필 나인가요?”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문득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왜 너는 안되지?” 오래전에 태안 장로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다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그 목사님의 간증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목사님은 며칠 전에 갑자기 스물한 살 된 딸을 천국으로 보내 놓고 너무 힘들어 부흥회를 포기할까 하다가,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약속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집을 나섰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변할까 싶어 조금 일찍 태안에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심란하여 태안 시내를 둘러보았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늘을 보며 외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내 딸을 데려가셨나요?” 교회 부근을 배회하다가 처음 보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발견했는데 순간 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문득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온 음성“네 딸이 너무 예뻐 내가 먼저 데려왔단다.” 이제는 원망이 감사로 바뀌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만일 이 세상이 천국이라면, 하나님은 따로 천국을 만들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세상을 흔히 고해(苦海)라 합니다. 온갖 슬픔과 고통과 고난이 넘실거리는 바다. 그 바다를 우리는 인생이란 배를 타고 항해합니다. 화창한 봄날처럼 포근하다가도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를 만납니다. 어찌 날마다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그때 우리는 대부분 두 가지 반응을 합니다. 하나는 하늘을 원망하며 인생을 원망하며 쓰러지고 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닥쳤으니 나도 닥치는 게지.’라며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쉬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낙심하고 좌절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고 이미 벌어진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고 온통 책임은 남에게 있는 듯 비난하고 있습니다. 매번 참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모습입니다. 조용히 스스로 돌아보며 고귀한 생명이 남겨준 교훈을 새겨볼 때입니다. 나는 김수용 시인의 詩 ‘풀’을 즐겨 애송합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바람이 자빠뜨리고 넘어뜨려도 오뚝이처럼 빨리 일어나는 풀. 다시 한 번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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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9
  • 교사의 학생에 대한 신체적 학대 범위
    [개요] 중학교 교사의 학생들에 대한 신체적 학대행위가 문제된 사건.(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22도1718 판결) [사안] 중학교 교사인 피고인이 학교에서 중학생들에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학교의 생활지도 규정에서 금지하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체벌한 사안에서, 훈육 또는 지도 목적으로 행하여졌다면 신체적 학대 등으로 볼 수 없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초ㆍ중등교육법 제18조 제1항 본문은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위임에 따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위 중학교의 생활지도 규정 제12조 제5항도 ‘징계지도시 도구, 신체 등을 사용하는 체벌은 금지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피고인이 위 중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학교의 생활지도 규정에서 금지하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체벌을 하였다면 훈육 또는 지도 목적으로 행하여졌다고 할지라도 허용될 수 없다. 13세 내지 14세의 중학생인 피해자들에 대하여, 중학교 교사인 피고인이 한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 행위가 아동학대처벌법이 가중처벌하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그 학교의 생활지도 규정이 적용되고, 따라서 위 법령과 규정에서 금지하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체벌을 하였다면 훈육 또는 지도 목적으로 행하여졌다고 할지라도 신체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서 대법원은 중학교 교사인 피고인이 학교에서 중학생들에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학교의 생활지도 규정에서 금지하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체벌한 사안에서, 훈육 또는 지도 목적으로 행하여졌다고 할지라도 신체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여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박범진 변호사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변호사 박범진 법률사무소, 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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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9
  • 지역축제 안전관리 메뉴얼
    믿기지 않는 참사가 발생했다. 새벽에 깨어 뉴스를 보고 나서는 우리나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일이 맞는지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이런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제66조의11에서는 지역축제 개최 시 안전관리조치에 대해 법으로 규정하였고 행정안전부에서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작성 배포했다. 매뉴얼의 ‘안전관리 헌장’에는 안전은 재난, 안전사고, 범죄 등의 각종 위험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재산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 하였고 모든 국민은 안전할 권리가 있으며, 안전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모든 국민은 가정, 마을, 학교,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안전 생활을 적극 실천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안전기본권을 보장하는 안전종합 대책을 수립하고, 안전을 위한 투자에 최우선의 노력을 하며,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는 특별히 배려한다. 자원봉사기관,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 및 구조 활동, 안전 관련 연구 등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한다”라고 정해져 있다. 법적 근거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민간 등이 개최하는 지역축제까지 안전관리계획의 수립·제출 의무를 다하도록 했다. 축제 개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매뉴얼을 참고하여 축제 관할 지자체, 소방서, 경찰서 등 유관기관의 의견을 들어 현지 실정에 맞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고 축제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표준화된 진행단계별 및 유형별 안전관리 요령을 참고하여 안전관리계획을 심의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조치를 적극 수행하도록 했다. 적용대상은 축제기간 중 순간 최대 관람객이 1천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축제, 개최 장소가 산이나 수변 등에서 개최하는 지역축제, 사용하는 재료가 불, 폭죽, 석유류, 가연성 가스 등의 폭발성 물질을 사용하는 지역축제로 규정되어 있다. 지역축제의 안전관리 체계를 살펴보면 첫째먼저 축제개최자는 관할지자체, 경찰서, 소방서, 전기가스 등 지역축제 안전관리 관련 유관기관의 의견수렴을 거쳐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또 3주전 지역축제를 민간기관·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경우에는 지역축제 담당부서에 안전관리계획을 제출하여야 한다. 14일 전까지는 심의 전에 경찰서, 해양경찰서, 소방서 등 관계기관, 전기, 가스, 통신 등 민간전문가인 지역안전관리위원회위원 등에게 사전검토 요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10일전 재난관리부서는 지역안전관리위원회에 안전관리계획을 심의 상정해야 한다. 5일전까지는 지역안전관리위원, 지역축제담당부서, 행사 개최자 등 관계기관에 심의결과를 통보해야 하며, 1~2일전 지역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지역안전관리협의체)와 사전 협의하여 축제행사장에 대한 합동 지도·점검계획 수립과 재난관리부서 주관 합동 지도·점검을 실시하고 합동 지도·점검 시 축제행사장의 안전관리 상태가 미흡한 사항에 대하여는 보완조치 후 축제를 추진한다. 이렇게 지역축제를 할 때는 안전을 위해 세세한 매뉴얼이 정해져 있음에도 ‘설마 사고가 나랴’라는 마음으로 축제 주관자나 지자체에서 미온적인 자세로 임했을 때 이처럼 큰 사고가 나는 것이다. 매번 인재(人災)가 날 때마다 사후약방문이 자행된다. 미리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을 관련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자체에서는 각종 축제 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전 공직자에게 재강조 숙지시킴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알려 다시는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이태원 사고와 관련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마음으로 깊이 애도하고 더 큰 희생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이런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우리의 심리적 안전거리도 지키는 방법이다./이수영(서산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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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1
  • 아궁이
    「저녁 연기는 살신의 사랑이다. 어머니의 일생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시종했다. 생솔가지도 태우고, 콩깍지도 태우고, 비에 흠뻑 젖은 짚단도 태우고, 희나리도 태우고, 잘 타지 않은 땔감으로 인하여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다 남모르는 눈물을 많이도 쏟으셨지만 언제나 나의 초가 굴뚝에서는 잘 마른 솔가지가 타는 듯 순백의 평화로운 연기가 솟아올랐고, 아버지가 아니 계셨던 우리 가정을 용케도 지키셨다. 어머니는 그 긴긴 세월을 푸른 소나무의 밑동을 살포시 덮은 낙엽으로 사시다가 끝내는 고향 땅 황혼녘에 우리 집 굴뚝의 연기로 몽땅 타셨다.」 이 글은 박귀훈 수필가의 ‘저녁연기’라는 수필의 한 부분입니다. 그는 저녁 하늘로 곱게 뻗어 오르는 연기만 보면 어머니의 밥 짓던 모습이 언제나 그립다고 했습니다. 수필을 읽으며 문득 몇 해 전에 써놨던 아궁이란 시가 생각나서 찾아보았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한 점/눈길 잡아매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저물어 막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지역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회관에 들렀습니다. 한점 한 점 정성스럽게 그려낸 작품을 감상하면서 제2 전시실로 돌아가려는데 모퉁이에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궁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S 화백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감전이나 된 듯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아궁이 앞에서/불 때고 있는 수건 쓴 여인/삭정이처럼 마른 어깨/ 내 어머니” 그림 속에 있는 여인은 영락없는 어머니였습니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여 아궁이를 들여다보며 후후 불고 있는 여인은 아득히 먼 먼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땔감이 귀하던 50년대는 무엇이든 태워서 밥을 지었습니다. 콩깍지나 채 마르지도 않은 짚단, 왕겨, 헌 옷가지 등등 무엇이나 태울 수 있는 건 다 태워서 밥을 지었습니다. 산마다 벌건 민둥산이고 연탄도 기름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무엇이나 부족하고 귀한 때였으니 땔감이라고 넉넉하겠습니까? 제일 만만한건 생솔가지 나무였습니다. 생솔이니 불이 붙지 않는 건 당연하지요. 마른 잔디 몇 줌 쏘시개로 삼아 훌훌 입으로 불어 간신히 생솔가지에 불을 붙이면 매운 연기가 온 부엌을 다 덮었습니다. 아궁이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가 검은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부뚜막이든 어머니 얼굴이든 무엇이나 시커멓게 그을렸습니다. “눈물 흘리며/불씨 살린 아궁이 위/가마솥에는/어머니 밥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예로부터 서러움 중에 최고의 서러움은 배고픈 서러움이라고 했습니다. 보릿고개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던 시대였습니다. 쌀은 고사하고 보리조차 귀하던 시대였습니다. 너나없이 도망칠 수 없는 삶의 질곡이었습니다. 그때 흘린 어머니 눈물 속엔 얼마나 많은 곡절이 녹아 있었을까요? 간신히 불씨를 살려 지어낸 밥. 보리밥 가운데 쌀밥 살짝 거둬 할아버지 밥 퍼 놓고, 나머지 식구들 차례로 밥을 퍼 놓으면 정작 어머니 밥은 없었습니다. 빈 솥에 물 한 바가지 휘둘러 입맛 다시고 마는 어머니였습니다. “밥 더 달라 떼쓰던 철부지/어느새 칠십 노인 되어/그림 속 아궁이 앞에서/ 그때처럼 울고 말았습니다//서럽게 서럽게/숨죽여 울었습니다. (2016.10.26.)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밥 더 달라 졸랐습니다. 무엇이나 들어 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만은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연기 때문에 흘린 눈물보다 더 진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떼쓰며 울던 그때 그 철부지. 어느새 칠십 노인이 되어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이제 철이 좀 들었나 봅니다. 어머니 사랑보다 더 큰 게 어디 있겠습니까?/김풍배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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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1
  • 생명존중의 사회로 나아가자
    얼마 전, 서산에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경찰에 4번이나 신고하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지만 대낮에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급기야 피해자의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 아버지가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며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을 대통령실 등에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녀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가 겪는 상당수의 고통은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가까운 만큼 아픔의 상처가 크다. 또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용서가 쉽지 않다. 밖에서는 대인관계가 좋고 관대하더라도 집안에 들어오면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이 의외로 많다. 옛날 경론에 통달한 젊은 스님이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지 못해 한숨 속에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길 가던 노스님이 “그대는 불법을 배웠다면서, 성불하기 전에 사람의 인연을 잘 맺어야 하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대가 아무리 불법에 통달하였어도, 인연이 없으면 또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저는 어찌해야합니까?” “내가 그 인연을 만들어주겠네” “그대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입고 있는 옷과 서너 벌의 승복뿐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네” “그 옷을 다 이리 주게”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모두 음식을 사왔다. “이 음식을 들고 따라 오게” 하고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모든 음식을 바닥에 펼쳐놓고 이렇게 발원하라하셨다. “내가 20년 뒤에 바야흐로 크게 부처님 법을 펼치리라” 젊은 스님은 노스님 시키신 대로 간절하게 기도 발원하였다. 기도가 끝나자 산짐승, 새, 곤충, 벌레, 개미들이 잔뜩 몰려와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로부터 20년 후 스님께서 불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매일 엄청난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20여 년 전, 산속에서 기도 회향 때 와서 음식을 먹었던 산짐승, 새, 곤충, 벌레, 개미들이 인도환생 한 것들이었다. 노스님께서는 그저 앉아서 경이나 염불을 달달 외우는 것 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여인들 중에는 집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이 죽으면 울고 불며 애통해한다. 그러나 자기 뱃속에든 태아를 손톱이나, 머리카락 잘라 내듯, 아무 죄의식 없이 잘라내 버린 경우도 있다. 도덕적 죄의식이나 뒷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미물도 살려내야 하는데, 자기 뱃속에 살아있는 자식을 죽이고도, 죄를 받지 않겠다거나, 소원성취 하고자 기도하는 것은 염치도 없고 뻔뻔스러운 행위다. 산에 올라 야호! 하면, 야호! 하고 메아리가 돌아온다. 웃으면 웃음소리가 돌아온다. 인간관계도 메아리와 똑같다. 상대를 따뜻하고 자비롭게 대하면 상대도 나에게 똑같이 되돌려준다. 세상에서 나의 가장 큰 원수는 아는 사람, 친인척, 가족, 결국은 나 자신이다. 낙태아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워야할 엄마가 원수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나에게 불행을 가장 많이 제공한 사람도 나 자신이다. 중생들은 행복을 위해 하는 짓들이 불행만 초래한다. 습관적 음주로 알코올 중독이 되는가하면, 과다영양 섭취로 병마를 부르고, 재물을 탐하여 부정행위를 하여 망하고, 장난삼아 시작한 도박으로 패인이 된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다. 누굴 원망하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비로운 언행으로 살아가자. 부처님께서는 사람, 동물, 벌레까지도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하셨다. 교통사고, 강도 살인, 가족 간 살인, 자살, 낙태, 등 생명경시 풍토를 깊이 반성하자. 나의 목숨이 소중하면 남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 목숨이 소중하면 동물, 미물 목숨도 소중하다. 중생들은 어린 돼지를 잡아먹을 때 육질이 부드럽다며 좋아하고, 늙은 돼지를 잡아먹을 때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얇게 썰어서 ‘대패 살’ ‘삼겹살’이라며 즐긴다. 내가 남의 살을 뜯어 먹으면 언젠가 내 살도 내줘야한다. 우리 몸은 불성을 담는 신성한 그릇이다. 이 신성한 그릇에 동물의 사체를 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채식을 하면 살생을 피할 수 있어서 식사 시간마다 방생을 행할 수 있다. 모든 동식물과 자연환경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명존중의 사회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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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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