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6(일)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올해에도 국화꽃은 피었다
    세월에 날개를 달았는지 노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부춘산 자락에 국화꽃 몇 송이가 수줍게 웃고 있다. 다른 꽃들은 다 졌는데 아직도 저렇게 피어 있다니…. 해마다 열리는 국화 축제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는데 코로나19로 이태나 못 가봤다. 갑자기 국화꽃이 보고 싶어 차를 몰고 고북면으로 향했다. 농원 뒤에 있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넓은 국화밭에는 파장한 뒤끝처럼 적막감마저 들었다. 몇 군데 듬성듬성 국화를 베어낸 자리엔 꽃을 딴 줄기만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아직 많은 면적에 갖가지 색깔과 다양한 종류의 국화꽃이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 많은 꽃을 혼자 보는 맛도 특별했다. 국화꽃들의 속삭임까지 들리는 듯했다. 곳곳에 많은 사람이 지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근심은 여기에 놓고 국화꽃 향기만 갖고 가세요’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놓고 간 시름과 아픔이 꽃마다 서려 있는 듯했다. 우두커니 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외로움과 고독과 쓸쓸함이 밀려왔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애달피 울었고 긴긴 여름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목 놓아 울었다. 무서리가 내리던 날 노랗게 핀 국화꽃 한 송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는가?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렸고 다른 꽃들이 다 시들어갈 때 무서리 속에서 비로소 꽃대를 밀어 올려 노란 꽃을 피운 국화꽃이 아니던가? 국어책에 나왔던 ‘낙목한천에 너만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시조의 한 대목도 읊조려졌다.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피어난 국화꽃이 바로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선비의 모습과 닮았다는 뜻일 것이다. 국화는 꽃도 아름답지만, 그 향기 또한 그윽하다. 농원에 있는 꽃의 빛깔도 모양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꽃에서 나는 향기는 어느 꽃이든 한가지다. 몇 해 전 내가 섬기던 교회의 모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가면 으레 노란 국화꽃 차를 내왔다. 찻잔에 동동 떠 있는 국화꽃이 서서히 제 몸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했다. 한 모금 마시면 국화꽃 특유의 향기가 입안에 감돌면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 농원 한쪽 밭에 노란 감국을 따로 재배하여 그 꽃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쪽으로 모아 핀 꽃도 좋았지만, 그래도 여러 색깔과 모양의 꽃이 어우러져 피어 있는 모습이 더 좋았다. 국화꽃을 보면서 사람도 이렇게 어우러져 살 때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보았던 안타까운 기사 한 토막이 생각났다. 무관심 속에 탈북자 한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그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이상 머물다 2018년 말 혼자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임대 주택에 살림을 꾸렸지만, 외로움과 정착의 어려움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며 술로 인한 간경화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망한 지 일주일쯤 지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2년여를 지나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조차 없다. 백신 접종으로 이제는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려나 했는데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면엔 온통 어두운 기사뿐이다. 물가는 치솟고 금리는 오르고 서민경제는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어둠 속에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아이로 태어난 생존율 1%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를 살려낸 기사였다. 체중 288g, 키 23.5cm로 예정일보다 15주나 앞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1%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만든 것이다. 무서리가 내리던 날 꽃을 피운 국화꽃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올해에도 국화꽃은 피었다. 김풍배(시인·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12-01
  • 일명 ‘윤창호법’위헌 결정
    일명 ‘윤창호법’ 위헌 결정.(헌법재판소 2021. 11. 25. 선고 2019헌바446, 2020헌가17, 2021헌바77(병합) 결정) 헌법재판소는 2021년 11월 25일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2회 이상 음주운전 금지규정을 위반한 사람을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상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구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제1항 중 ‘제44조 제1항(음주운전금지조항)을 2회 이상 위반한 사람’에 관한 부분이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 심판대상조항은 음주운전 금지규정을 반복하여 위반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규정인데, 그 구성요건을 ‘제44조 제1항을 2회 이상 위반’한 경우로 정하여 가중요건이 되는 과거 음주운전 금지규정 위반행위와 처벌대상이 되는 재범 음주운전 금지규정 위반행위 사이에 아무런 시간적 제한이 없고, 과거 위반행위가 형의 선고나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전과일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 그런데 과거 위반행위가 예컨대 10년 이상 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처벌대상이 되는 재범 음주운전이 준법정신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반규범적 행위라거나 사회구성원에 대한 생명·신체 등을 ‘반복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라고 평가하기 어려워 이를 일반적 음주운전 금지규정 위반행위와 구별하여 가중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범죄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범행한 경우 재범인 후범에 대하여 가중된 행위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범을 이유로 아무런 시간적 제한 없이 무제한 후범을 가중처벌하는 예는 찾기 어렵고, 공소시효나 형의 실효를 인정하는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예컨대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과거 위반행위를 근거로 재범으로 분류되는 음주운전 행위자에 대해서는 책임에 비해 과도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도로교통법 제44조 제1항을 2회 이상 위반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죄질을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과거 위반 전력, 혈중알코올농도 수준, 운전한 차량의 종류에 비추어, 교통안전 등 보호법익에 미치는 위험 정도가 비교적 낮은 유형의 재범 음주운전행위가 있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은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2년, 벌금 1천만 원으로 정하여 그와 같이 비난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행위까지 지나치게 엄히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 반복적 음주운전에 대한 강한 처벌이 국민일반의 법감정에 부합할 수는 있으나, 결국에는 중벌에 대한 면역성과 무감각이 생기게 되어 법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법질서의 안정을 해할 수 있으므로, 재범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서 형벌 강화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심판대상조항은 음주치료나 음주운전 방지장치 도입과 같은 비형벌적 수단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과거 위반 전력 등과 관련하여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고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유형의 재범 음주운전 행위에 대해서까지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형벌 본래의 기능에 필요한 정도를 현저히 일탈하는 과도한 법정형을 정한 것이다. ○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과거 위반 전력 등과 관련하여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재범 음주운전행위까지 일률적으로 법정형의 하한인 징역 2년, 벌금 1천만 원을 기준으로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것은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21-12-01
  • 그럼에도 감사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있다. 이는 좋지 않은 일이 더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다는 뜻이다. 사람이 한세상 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불행을 만날 수 있다. 그때 절망하지 않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이런 긍정의 힘일 것이다. 11월 15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송승환 배우의 기사를 읽고 매우 감동했다. 그는 시각장애인 4급으로 시력을 잃은 배우였다. 그는 30 Cm의 세상에 포위되어있다고 했다. 그 너머는 아득한 절벽과 같다고 한다.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밝게 웃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만큼이라도 보인다는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한단다. 시각을 잃자 청각이 더 예민해졌다며 무대에서 반응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게 됐다며 그것을 뜻밖의 수확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병에 걸리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후유증이 우울증과 자살이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되진 말아야지. 시계는 좁아졌지만, 저 세계는 넓어졌어요. 일상을 유지할 방법을 찾느라 새로운 의욕도 생겼지요. 이제 책은 전자 파일로 바꿔서 듣고 문자 메시지는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확대해보고 넷플릭스 영화는 자막 읽어주는 기능을 사용해 감상합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란 걸 의식하고 살지 않는다. 연출가 장윤정씨는 ‘가끔은 선생님 눈이 안 보인다는 걸 깜빡 잊을 정도’라고 했다. 그의 아내조차 함께 길을 걷다가 “저 꽃 예쁘지?” 한다고 한다. 그럴 때 퉁명스럽게 “난 안 보여!”라고 할 때가 있다며 농담처럼 “앞으론 눈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녀야겠어”라고 했단다. 그 긍정의 힘, 감사한 마음이 그를 4급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연극 ‘더 드레서’ 리어왕 역으로 맡아 연극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송승환씨는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럼에도 감사를 찾은 것이다. 지난 주말 아침 교회 차를 운행하다가 잠시 잊은 것이 있어 평소 주차하는 곳에 주차하려고 후진하다가 뒤에 있는 승용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멀쩡히 서 있는 차를 받은 것이다. 물론 다소 좁은 길이었지만 조심하면 비킬 수 있는 간격이었다.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었다. 차종은 모닝이었고 새 차였다. 아무리 훑어봐도 연락처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사고 접수를 한 후, 간단한 내용을 적어 유리창에 끼워놓았다. 오후에 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좋은 분들이었다. 사고 당시가 생각났다. 사람이 타고 있었더라면 어쩔뻔했나? 나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고는 순식간에 난다. 아무리 조심 한다고 해도 일어나는 게 사고다. 운전하다 보면 아찔할 때가 수도 없이 많다. 생각해보면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알면서도 매일 생각 없이 타고 다닌다. 무사고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박완서 소설가의 ‘일상의 기적’을 다시 음미해본다. 그는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지었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지금, 감사를 느끼고 계시는지? 우리들의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그것이 아주 당연한 걸로 안다. 정말 그럴까?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언제 어떤 일들이 터질지 모른다. 우리가 평범하게 보낸 하루, 그 평범함 자체가 감사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지쳐가고 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극에 달해있다. 그럼에도 감사함을 찾아보자. 말하고 듣고 보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감사할 일이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오색 단풍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른다. 매일매일 잠들기 전 오늘 하루가 무사했음을 감사하자. 김풍배(시인·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11-25
  •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
    [사건요지] 배우자 있는 사람과의 혼외 성관계 목적으로 다른 배우자가 부재중인 주거에 출입하여 주거침입죄로 기소된 사건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0도12630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 피해자(남편)의 처와 교제하고 있던 피고인이 피해자와 피해자의 처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아파트에 이르러 피해자의 처가 열어 준 현관 출입문을 통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였는바, 공동주거에 있어 그 주거에서 거주하는 사람 이외의 자(이하 ‘외부인’이라 한다)가 주거 내에 현재하는 공동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공동주거에 들어갔으나 그것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그동안 대법원은 대법원 1984. 6. 26. 선고 83도685 판결 이후 공동주거자 중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주거에 출입하였다 하더라도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 내용의 종전 대법원 판결은 모두 변경되었습니다.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적 생활관계에 있어서 사실상 누리고 있는 주거의 평온, 즉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말하고,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적 행위인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출입당시 객관적, 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원칙이고,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거주자의 주관적 사정만으로 바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외부인이 공동거주자의 일부가 부재중에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공동주거에 들어간 경우라면 그것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부재중에 피해자의 처로부터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주거에 들어갔으므로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어서 주거에 침입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설령 피고인의 출입이 부재중인 피해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더라도 주거침입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한 주거침입죄의 성립을 부정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21-11-25
  • 애향심을 북돋아주기 위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따지는 것이 출신 성분이다. 그중에서 졸업한 학교나 고향을 가징 많이 따진다.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일수록 고향사람에 대한 향수가 남다르다.… 권력 뒤에는 언제나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잘 활용하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병렬 서산타임즈 대표가 8년 전, <출향인사는 영원한 우군>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다. 예전 도에서 「출향인사 명부」를 만들었다. 충남 출신으로 경향 각지,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를 DB화하여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고향발전에 도움 되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정·관계, 경제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을 망라하여 만들다보니 두툼한 자료집이 되었다. 일부는 수록된 분들께도 보내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시대라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로는 유용한 행정자료였다.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충남·대전출신 공무원을 파악하여 향우수첩을 만들고 가끔 초대하여 고향 곳곳을 둘러보고 고향과 출향공무원간, 출향공무원 상호 간 유대를 돈독히 하고자 했다. 모두 한 고향이라는 공통분모를 고향에 대한 관심과 사랑, 도움을 주고받자는 뜻이었다. 2003년, 계룡시를 만드는데 우여곡절을 거쳐 국회에 법률안이 제출되고 심사에 들어갔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을 검토하는데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요지부동이었다. 궁리 끝에 인천, 마산 등 소위원회 위원 지역구의 충청향우회를 통하여 협조를 얻었다. 대전에 있는 위원 출신지역 향우회장을 비롯한 인사들의 도움도 받았다. 예상보다 효과가 컸다. 보령 출신 김용환 의원이 나서 문턱을 넘었다. 국비 예산을 확보하거나 사업을 책정받기 위하여 중앙부처를 방문하여 협조를 얻는 일이 잦다. 이때 지역 출신 향우들이 다리를 놓기도 한다. 중앙부처로 갈수록 향우의 도움이 긴요할 때가 많다. 필자가 도에서 일할 때 마침 내무부 업무 담당이 충남 출신이라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사전 협조 요청하면 무리한 일도 양해하고 도와주어 뜻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소식도 많이 얻었다. 만약 동향인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도에서도 비중 있는 자리를 향우끼리 물려주고 이어받기도 했다. 이왕이면 고향사람이라는 의식이 빚는 상황이었다. ‘잘 아는 사람’을 찾는 경우가 있지만 같은 경우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천삼거리에서 부석 창리에 이르는 제649호 지방도 확장과 직선화 사업, 해미에서 인지, 부석으로 연결하는 간월도 관광도로 개설 사업에 힘쓴 S국장, 프란시스코 교황 방문에 대비한 여러 사업에 많은 사업비를 지원 받게 한 Y국장 등의 애향심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하고 개인주의 경향에 따라 지연, 학연, 혈연 등 ‘연(緣)’의 개념이 흐려지고 있다. 향우회, 동문회, 종친회가 아무래도 예전과 같지 않다. 여념이 없을뿐더러 굳이 함께 하지 않아도 불편할 일이 적기 때문이다. 점점 젊은이의 참여가 줄어 아쉽기도 하다. 전통이 강하거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이 있는 경우라면 사정은 좀 다르다.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에서는 「시민대상」에 ‘애향 및 지역 선양부문’을 확대한 것도 이러한 방안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이왕이면 넓게 포용해주는 아량도 있어야 할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다. 고향발전을 위하여, 고향 선양을 위하여, 고향 사랑을 위하여 고향을 지키며 일하는 분들과 출향인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발적인 고향 사랑에 더하여 애향심을 북돋을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울타리가 되고 바람막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고향에서 필요한 일에 힘이 되어 주도록 하는 일, ‘멍석을 깔아주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은 그저 생긴 말이 아니다. 이병렬 대표는 「한 가지 방법은 정기적으로 각 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를 만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매년 한 번씩 날을 정해 홈 커밍데이를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제라도 서산시가 출향인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라고 끝을 맺었다. 한 번 쯤 새겨볼 만한 제언이라 생각한다. 가기천/전 서산시부시장<ka1230@hanmail.net>
    • 오피니언
    • 칼럼
    2021-11-16
  • 가을비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부춘산 중턱의 단풍 색깔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지금이 절정인 듯싶다. 가까이 와보라는 손짓처럼 나뭇잎들이 어릿거린다. 현관문을 나서니 비가 오고 있었다. 아마도 빗줄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듯하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닐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톡톡톡 소리를 낸다. 마치 박자를 맞춰 두드리는 타악기 소리 같다. 난 이 소리가 듣기 좋아 비가 오면 일부러 빗속을 거닐던 때도 있었다. 그 소리를 감미롭게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길 위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색 단풍잎이 쌓여있다. 밟아도 소리조차 없다. 걷다 보니 지난날 온갖 추억들이 떠오른다. 즐거웠던 순간들, 괴로웠던 기억들, 보람 있었던 일, 달콤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잎 떨군 나무의 잔가지마다 눈물처럼 물방울이 매달려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에 붙어 있던 나뭇잎, 봄부터 여름 내내 온몸을 감싸줬던 잎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나무들의 슬픔을 보는 듯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들도 추억이란 게 있을까? 그리움이란 게 있을까? 문득 오래전에 썼던 가을비란 제목의 시가 떠올랐다. 「밤새 바스락거리는/문 앞에서 보채는// 살아온 뒤안길/머물렀던 그리운 이들/문 열고 두 손 벌려 /맞이하고픈 이들//잠 못 들어/ 뒤척이는 가슴 위로/그리움이 촉촉하게 내린다/가을비 되어」 참으로 그리운 이들이 생각났다. 정년 한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웃고 울고 했던 동료들이 그립다. 이제는 만나기조차 어려운 그때 그 사람들. 돌아보니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신 분들이 그립다. 어째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 아버지가 이토록 그리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내 윗대는 아무도 계시지 않는다. 고모님도, 작은아버님도, 당숙들도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렇게 사랑해주셨던 그분들이 이제는 아무도 이 세상엔 계시지 않는다.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졌다. 생각해보니 벌써 사흘째 내리는 비다. 장마구나! 퍼뜩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엔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 가사리에 갔을 때 아직도 생강 수확을 하지 못한 밭도 더러 있었다. 한지형 마늘도 한참 심어야 할 때다. 이러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나 내려간다면 생강 같은 작물은 아예 버리고 만다. 올해는 김장 배추도 흉작이란 소리도 들려온다. 양상추 농사도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배 농사는 착과 시에 잦은 비로 인해 수확해도 상품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농사는 자연환경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아무리 잘 지어진 농사라 해도 한순간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더 큰 어려움은, 농촌 인구의 노령화뿐만 아니라 절대적 일손 부족 현상이다. 가사 초등학교 입구에 “끊임없는 노임 인상 우리 농민 다 죽는다”란 부석면 이장단 협의회의 이름으로 현수막이 걸려있다. 들어보니 생강 한 짝에 20만 원인데 노임은 1인당 14만 원이라고 했다. 종자와 자재 대금을 합하면 오히려 적자라고 했다. 농작물 대부분이 이런 형편이다. 농사의 성패가 자연환경이 아닌 사람의 손이 부족해서 생긴다고 하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러나 어쩌랴. 있는 농토 적자 난다고 놀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하였다. 쉬는 손이 있다면 농번기만큼이라도 지원한다면 그래도 농민들의 근심을 덜어주리란 생각을 해보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잠시나마 배부른 감상에 젖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원래 생활과 감성은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늘 대립 관계에 있다. 아무리 낙엽이 고와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낙엽은 경비원 아저씨들에게는 한낱 귀찮은 쓰레기일 뿐이고, 펄펄 내리는 흰 눈도 운행하는 운전자에게는 근심거리가 된다. 생각을 돌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며 지친 신심을 달래보는 것도 현명함이 아닐까? 가을비는 구럭 쓰고 맞는다는 말도 있다. 서둘러 수확하고 동절(冬節) 농한기 동안 겨울나무처럼 희망을 충전하기를 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1-11-16
  • 심한 추간판탈출증 해당 여부
    [사건개요] 심한 추간판탈출증에 따른 후유장해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는 사건.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18다279217 판결) [사례] 추간판 2마디 이상을 수술한 원고가 보험회사인 피고를 상대로 후유장해 보험금 지급사유인 ‘심한 추간판탈출증’에 해당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구한 사건에서 원고가 추간판 2마디 이상을 수술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심한 추간판탈출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해당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개별 계약 당사자가 의도한 목적이나 의사를 참작하지 않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특정 약관 조항을 그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약관 조항의 문언이 갖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약관 조항이 전체적인 논리적 맥락 속에서 갖는 의미도 고려해야 한다. 위와 같은 해석을 거친 후에도 약관 조항이 객관적으로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각각의 해석이 합리성이 있는 등 해당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반면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해석한 결과 약관 조항이 일의적으로 해석된다면 약관 조항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4다232784 판결 등 참조).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장해분류표 ‘총칙’의 정의 조항과 ‘장해분류별 판정기준’ 중 추간판탈출증과 관련한 여러 조항을 포함하여 약관의 전체적인 논리적 맥락 속에서 ‘심한 추간판탈출증’을 정한 약관 조항의 의미를 살펴보면, ‘추간판을 2마디 이상 수술’한 것만으로도 그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고, ‘추간판을 2마디 이상 수술하고 하지의 현저한 마비 또는 대소변의 장해가 있는 경우’에 ‘심한 추간판탈출증’에 해당한다고 일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약관 조항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라고 보아 피보험자인 원고에게 유리하게 원고가 ‘추간판을 2마디 이상 수술’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심한 추간판탈출증’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21-11-16
  • 어디, 고향의 정과 같을까마는
    “가 선생님. 내시경 검사한 거는 다 이상 없이 잘 나왔고요. 특별히 신경 쓸 데는 없는데…, 간수치가 좀 높게 나왔네요. 언제 아침 거르고 한 번 나오세요. 다시 검사해보게요.” 정기건강검진을 받은 병원 원장의 전화였다. 진료 받을 때는 “의사가 하는 말에 너무 예민할 거 없어요.”라며 웬만하면 처방전조차 써주지 않는 분인데, 전화를 받고 보니 조금 긴장되었다. ‘뭐지? 왜 높을까?’ 궁금했다. 간염 예방주사는 이미 맞았고, 코로나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손을 자주 씻는 것은 체질화되다시피 된데다, 음식을 거칠게 먹거나 짜고 매운 것은 멀리했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지난 1년 여 동안 마신 양을 모두 더해도 소주 두 병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니 음주가 원인일 것이라는 짐작도 멀었다. 도통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맞아, 옻 순!’ 그랬다. 옻 순에는 독성이 있어 간에 무리를 준다고 하지 않는가? 봄이 되면 조치원에 간다. 연기군에 있을 때 알게 된 분들이 옻 순이 나올 때면 부른다. 민간인도 있다. 연례행사가 되었다. 돌아 올 때는 상자 가득 들려주어 장아찌를 담아 두고두고 먹는다. ‘틀림없어. 바로 옻 순 때문이야’, 그 날부터 옻 순 장아찌는 끊었다. 식탁에 바지락 탕, 올갱이국이 자주 올랐다. 금방 가면 수치가 비슷하게 나올 까봐 시일이 좀 지난 뒤 아침을 거르고 병원을 찾았다. 원장과 상담할 때 “옻 순을 많이 먹었는데 혹시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하니. “옻 순 영향은 아닌 거 같은데…, 일시적으로 수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으니 다시 검사해보자.”고 했다. 다음 날, 검사결과 수치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고 전화했다. “정상 수치 구간 안에 있으니 아무 걱정할 것 없다”며, 평상대로 지내도 좋다는 말에 시름을 덜었다. ‘그럼 그렇지, 해마다 옻 순을 먹었지만 이상 없었잖아. 공연히 누명을 씌웠네.’ 라며 옛정을 떠 올렸다. 연기군에서 근무할 때 여러 큰일들과 씨름해야 했다. 1월 초 부임하던 날 길을 막은 폭설, 2월에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여 한 달 이상을 방역과 지원 대책에 매달렸다. 그 와중에 3월 5일, 중부지방에 3월 기준으로는 100년 만이라는 기습적인 폭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는 등 소동이 일었다. 긴급복구, 피해조사, 보상 지원 등 몇 달 동안 행정력을 쏟아야 했다. 겨우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6월에 신행정수도후보지로 선정되고 8월, 예정지로 확정되었다. 고위직부터 관광객까지 각 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도 막아야 했다. 몸이 열이라도 모자랐다. 그런 중 10월에 헌재로부터 위헌결정이 났다. 규탄시위 소용돌이의 서막이었다. 다른 일은 챙길 겨를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아시스와 같은 인정이 마른 가슴을 적셔줬다. 6월 초,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 복숭아 여섯 개를 들고 왔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워 처음 딴 것이라고 했다. 7월 초, 어떤 분은 수박 한 통을 놓고 갔다. 역시 첫 수확 한 것이라고 했다. 8월에는 햅쌀밥을 맛볼 수 있었다. 가을이 되자 특산품 머루포도가 풍미를 안겨주었다. 가을이 깊어 갈 무렵, 어느 양계농가에서 달걀 두 꾸러미를 들려주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닭을 모두 처분하고 새로 입식한 병아리가 자라서 낳은 초란(初卵)이라고 했다. 모두 모르는 분들이었다. 기업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단무지 공장에서는 홍보용 단무지 세트가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화장품공장에서는 용기(容器) 값만 받고 줄 테니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연기는 대전, 청주, 천안 등 대도시와 인접하여 생활권이 사방으로 나뉘어 있는 고장이다. 1번국도, 경부선, 충북선철도가 지나고 경부고속도로가 인접하여 교통이 발달한 곳이다. 공장도 많고 근교농업이 성행했다. 대학도 세 곳이나 있는 교육도시이고 군부대도 여럿인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도시성향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심은 그렇지 않았다. 따뜻했다. 객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인연은 퇴임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민간인이 주축인 모임의 정회원이 아닌데도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 여행을 함께 가곤 했다. 간수치가 정상이라니 내년에도 옻 순 먹자고 라고하면 뭐라고 구실을 대어야 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설령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사양하면 안 되겠지 싶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 했던가. 객지에 온 사람들에게 온기를 남겨주는 정이라서 좋았다. 하지만 어디, 고향의 정과 같을까마는.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 오피니언
    • 칼럼
    2021-11-03
  • 까치밥
    가을이 문득 눈앞에 와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의 오고 감도 둔해지는 것 같다. 엊그제까지 여름의 열기가 몸에 배어 가을을 느끼지 못했는데, 하나둘씩 떨어지는 나뭇잎과 끝없이 올라간 파란 하늘이,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들녘에 하늘거리는 하얀 억새꽃의 나부낌이, 길섶 들국화의 잔잔한 미소가 가을이란 걸 알게 해준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홍등을 켜 놓은 감나무. 어느 감나무는 벌써 수확하고 서너 개만 남아 외롭게 매달려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 가을이 다 가도록 감나무에 매달린 서너 개의 감이 호기심을 끌었다. 어느 집 감나무에도 의례 몇 개가 매달려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다 따지 않았을까? 높아서도 아닌 듯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나무에도 몇 개의 감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물으니 그건 까치밥이라고 했다. 까치가 먹으라고 남겨둔 거라고 하셨다. 까치밥을 남겨놓는 풍습은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다. 감나무에 몇 개 매달려있는 까치밥을 볼 때마다 선조들의 여유와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우리 핏속에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인간들만 먹지 않고 날짐승인 까치까지 생각해주는 마음이 훈훈하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 까마득한 아주 옛날 레위기를 보면 BC1450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하셨다.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고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외국인)을 위해 남겨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에게까지도 인정을 베풀었으니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아닌가? 그 힘들던 보릿고개 시절에도 우리 부모들은 언제나 서로 배려하며 살았다. 생일날이나 좋은 날에 차린 음식은 혼자 먹지 않고 서로 초대하여 함께 나눴다. 어린 나는 집집이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심부름하기 바빴다. 아주머니가 새참을 이고 들녘에 나오면, 혼자 일하고 있는 이웃을 소리쳐 불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정과 인심이 있었다. 우리 서산 부석면에는 천수만 철새도래지가 있다. 지난 1984년 간척사업으로 천수만 일대에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두 개의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와 부남호가 생겨났다. 주변에 벼를 재배하는 대단위 농경지가 있어 추수 후에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 철새들의 주 먹이원이 되어 철새서식지로 적합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사업 초기에는 현대 건설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여 수확했기 때문에 수확한 후에도 곳곳에 잔여 벼포기가 남아있었다. 더러는 인근 주민들이 베어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은 양의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 철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몇 해 전에 부남호 근처에 사는 지인을 만나 철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길 이제 농경지는 농가에 불하(拂下)하여 개인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현대에서 직영할 때는 남겨진 낱알로 따로 먹이를 줄 필요가 없었으나 개별 농가가 수확하다 보니 남겨진 먹이가 없어 관계 기관에서 먹이를 뿌려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농민들이 수확할 때 논 모퉁이에 벼 몇 포기씩만 남겨놓아 새 먹이로 인심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도움을 준다. 마음껏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산다면 당연히 우리도 자연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예기치 못한 자연의 보복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원은 유한하다. 대대손손, 이 땅에 살아야 할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자연을 보호하자. 생활은 넉넉해지는데 인심은 날로 각박해져 가고 있다. 서로 나누는 여유로운 마음, 짐승까지도 배려하는 조상들의 마음이 바로 까치밥 정신이 아니겠는가? 밭모퉁이에 남겨놓는 이삭, 포도나무의 포도를 남겨놓는 옛 이스라엘의 율법이 바로 까치밥 정신일 것이다. 까치밥. 참으로 정겹고 의미심장한 말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바로 천심(天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풍배(시인·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11-03
  • 단골
    단어 속에는 참으로 묘한 맛이 들어있다. 어머니와 같은 단어는 듣기만 해도 핑하고 눈물부터 나오지만, 어느 말은 듣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때문일 듯싶다. 어쩐지 다정하고 호감이 가는 단어 중에 단골이란 말이 있다. 단골이란 말을 찾아보니 사전에는 특별한 가게나 거래처 따위를 정해놓고 늘 찾아오거나 거래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단골이란 말의 유래도 재미있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무당이었다고 한다. 단골이란 말은 우리나라 무속신앙에서 굿을 할 때 늘 정해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당골이라 했는데, 특히 호남 지역의 세습 무당을 단골, 당골, 단골레, 당골레라고 불렀다 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늘 찾아오는 사람의 뜻으로 쓰이다가 늘 찾아오는 사람의 뜻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단골’이라고 하면 무언가 도움을 주는 사람 또는 거래처로 생각된다. 단골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골은 애초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거래하다 보니 편하다든지, 싸다든지, 친절하다든지, 믿을 수 있다든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거래하게 되고 거래하는 동안 신뢰가 쌓여 단골이 되는 것이다. 장기간 거래를 통하여 서로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골이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단 한 순간만으로도 단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다니는 J 치과 병원이 바로 그렇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제주도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공항을 이용하려고 청주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앞니와 어금니 사이의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청주에 도착하여 시내에 있는 눈에 띄는 치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은 치료 전에 먼저 사진을 찍어 보자고 하였다. 이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은 사진을 가리키며 뿌리가 없는 이빨이라 하였다. 설명을 들은 나도 놀랐다. 정말로 뿌리가 없이 그냥 잇몸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발치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게 발치를 당한 경험 때문이다. 응당 치료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다 눈을 떠보니 의사의 손에 발치 기구를 들고 있었다. 놀라서 이를 뽑을 거냐 물으니 그럼 뭐하러 왔느냐고 되물었다. 기왕 마취 주사까지 맞은 상태라 발치하고 말았다. 물론 직원들이 천거하여 찾아간 병원이니, 의사가 오죽 알아서 발치했을 터이지만, 나 혼자 생각하기에 흔들거리지도 않았으니 뽑지 말고 그냥 염증만 치료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나는 그날, 그 병원에서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약만 처방받고 나왔다. 3박 4일 내내 진통제로 달래며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밤 죽을 고생을 하고 꼭두새벽에 시내를 방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문을 연 치과 병원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J치과를 발견했다. 마침 의사 선생님이 나와 있었다. 하도 고생한 터라 뽑으면 뽑히리라 단단히 각오 했었는데 그냥 염증 치료만 치료해주고 돌려보냈다. 뿌리 없는 이를 이렇게 치료만 해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이는 최대한 살릴 때까지 살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뿌리 없는 이는 그 후 10여 년까지 버티다가 결국 뽑혔지만, 그때 들었던 ‘살릴 수 있는 한 살려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내 삶을 이끄는 한마디가 되었다.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한다. 죽이는 건 최후의 방법이다. ‘살릴 수 있는 한 살려야 한다’는 그 말이 해직 위기에 처한 직원을 구할 수 있었다. 포기하려 들 때마다 ‘살릴 수 있는 한’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날부터 난 J치과의 단골이 되었다. 50여 세 이후부터 자주 치과를 다녔다. 난 오직 J치과만 다닌다. 지금도 여전히 J 치과 의사 선생님은 함부로 발치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살릴 수 있는 한 살려 내어 아직도 자연 치아 몇 개는 제구실을 하고 있다. 내가 단골로 가고 있는 서점, 카페, 출판사 등 여러 곳을 떠올린다. 누군가 말하기를 ‘나이 40이 되도록 단골이 없으면 잘 못 산 인생’이라고 했다. 일정한 나이를 먹도록 변변한 단골 거래처가 없다면 스스로 자기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골 거래처가 있으면 서로에게 득이 된다. 단골은 많을수록 좋다. 단골이 많다면 그만큼 잘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만큼 신뢰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단골’이란 말, 참 호감이 가는 단어다. 김풍배(시인·소설가)
    • 오피니언
    • 칼럼
    2021-10-2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