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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4.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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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이 날 막는다 알콜 향기 진한 복도

부질없는 발길은 허공에서 서성일 뿐

벽 너머 이승의 행간에서

당신 얼굴 매만진다

 

칼날이 선을 긋는 곱고 여린 몸뚱이

그 아픔의 이유가 나인 것만 같아서

두고 간 빛바랜 반지

눈물로 닦아댄다

 

두어 생 인연으로 이승까지 맺은 몸은

내 품에 안겨서야 깊은 잠 들었는데

아득한 나락의 밧줄

내 손 잡듯 꽉 잡으소

 

- 이선중, 「아내의 병상」 전문

 

감상

도신 스님.jpg
도신 스님

 

매일 매일 아내의 병상을 찾았을 화자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알콜 향에 발길을 잃는다. 수술실이었을까? ‘벽 너머 이승의 행간’에서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를 더듬는다. 살면서 잊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옆의 아내가 매우 여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잔소리와 다툼들이 자신을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남자는 철부지 아이처럼 아내를 힘들게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을 하고 나온 아내의 칼자국을 보면서 여리고 나약한 아내를 보게 된다. 화자는 비로소 자신이 아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왔었는지를 본다. 아내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내의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마음의 고통을 겪는다. ‘그 아픔의 이유가 나인 것만 같아서’ 견딜 수 없는 번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두고 간 빛바랜 반지 눈물로 닦아댄다’ 화자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일까? 화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아내의 빛바랜 반지를 바라보며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닦아내고 닦아낸다. 귀하게 맺은 인연의 힘으로 화자의 품에 안겨 잠든 아내, 다시 깨어날 수 없는 깊고 깊은 잠, 마지막 길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안고 있는 것일 뿐. 아내가 이승과 갈라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화자는 몸으로 말한다.

병고와 싸우면서 많이 약해진 아내는 화자의 손을 꽉 잡으며 의지하고팠을 것이다.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바람대로 해줄 수 없던 화자는 말한다. “아득한 나락의 밧줄 내 손 잡듯 꽉 잡으소”라며 절규한다. 우린 이별을 하고 난 후에 후회를 한다. ‘좀 더 잘해 줄 것을’ 의미 없는 후회이다. 서로 살아서 얼굴 바라볼 때 한 마디 말이라도 따뜻하게 하고 한 번이라도 웃으며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도신(서광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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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의 그대를 위한 詩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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