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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가 된 ‘농협맨’

[조규선이 만난 사람] 106. 김창환 공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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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0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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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jpg
▲39년 동안 농협에서 근무하며 농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김창환 교수. 그는 지역사회 발전은 지도자의 역량과 직결된다며 오늘도 지역발전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창환(63)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는 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농협맨이다. 지난 2016년 1월 대산농협 상무로 명예퇴직하기까지 39년 동안 농협에서 농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공주대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농협맨에 이어 대학교수로 제2인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인생스토리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 교수는 대산읍 대로1리 광암마을에서 농부인 김동추(1926~2008)씨와 이정여(87) 여사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산초와 대산중을 졸업하고 부친이 마을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대산농협에 기능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으로부터 천자문, 사자소학, 채근담, 명심보감, 통감 등을 통해 배운 천지의 이치를 순차적으로 터득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1980년 그의 나이  22세에 서울경복고 부설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그리 쉽지 많은 않았다.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집에서 서산터미널까지 28km를 오토바이로 달려 다시 서산터미널에서 용산까지 버스로, 용산에서 학교가 있는 종로 효자동(경복고)까지 시내버스로 이렇게 3년간을 통학했다. 집에 도착하면 밤11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이렇게까지 학업에 열중한 이유는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부친께서는 남한테 공짜 술이나 밥을 먹지 말라,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신뢰를 잃지 말라.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했다. 그 꿈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의 배움의 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여년이 지난 만학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방송통신대(2000년)를 졸업하고 공주대에서 행정학 석사(2012년)와 박사(2018년)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9년 9월 공주대 겸임교수로 임용되면서 그가 어릴 적 꾸었던 꿈과 희망을 이루었다.

김 교수는 지역사회 발전은 지도자의 역량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그는 청년시절 JC활동을 시작으로 학교 운영위원장, 대산읍 명예읍장, 서산경찰서 범죄예방위원장, 대산읍체육회부회장, 대산읍청장년연합회장, 대산장학회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다양한 조직에서 역량을 키워왔다.

요즘도 그는 겸임교수와 함께 서산시 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강사로, 한국풍수명리총연합회 자문위원으로 충남도의회 정책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농협중앙회장 표창, 공주대학교 총장 공로패 등 39회에 걸쳐 수상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2005년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산JC 특우회장이었다며 삼길포 우럭축제의 필요성을 공감한데 대해 매우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축제 예산을 보조해 주어 대산JC 주관으로 처음으로 우럭축제를 개최한 것이 지금은 서산의 대표적인 축제로 성장했다고 했다.

1983년 대산우체국에 근무하던 가경순(63. 서산시의용소방대 여성회장 역임)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뒀으며 모친을 모시며 살고 있다. 좌우명은 관즉득중(寬則得衆ㆍ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이다.

김 교수는 사람이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성취 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좋은 여건을 가진 선망의 대상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전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뛰어 넘는 것이 더 값진 것임을 알았다는 그는 오늘도 지역 봉사자로서 지역을 걱정하고 지역발전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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