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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향기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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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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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산을 오르다가 산기슭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찔레꽃을 발견했다. 하얗게 피어 한들거리는 찔레꽃을 보는 순간, 가수 장사익의 구슬픈 찔레꽃 가락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별처럼 슬픈 꽃, 달처럼 서러운 꽃이라며 한 맺힌 소리꾼의 애절한 노래가 찔레꽃 꽃잎마다 서려 있는 듯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찔레나무는 전형적인 흙수저다. 산기슭이나 계곡 같은 수풀에서 보잘것없이 나고 자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가시덤불일 뿐이다. 그러나 꽃이 피면 생각이 달라진다. 모양도 애처롭지만, 꽃이 풍기는 향기야말로 그윽하기 그지없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나무에서 어떻게 이토록 품격있는 향기 나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를 온몸에 달고 저토록 제 몸을 단속할까?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찔레꽃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역시! 라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찔레나무는 인간에게 귀한 약재였다. 찔레는 순, 꽃, 줄기, 열매 등 모두가 약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찔레에는 사포닌, 비타민A, 비타민 C, 타닌, 아미노산, 지방산들이 다수 함유하고 있어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각종 효능이 열거되어 있다. 약성은 물론이고 미인효과와 생리통, 변비, 방광염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어린이 성장 발육과 산후풍, 관절염에도 좋다고 하니 인터넷에 나와 있는 찔레나무의 효능은 가히 만병통치 수준이다. 

드디어 나는 찔레나무가 왜 그렇게 가시를 만들어 제 몸을 지키는가를 비로소 알았다. 어째서 찔레꽃에서는 그런 천상의 향기를 내는가도 알았다. 찔레나무는 스스로 자신이 귀한 줄을 알고 있었다. 선한 뜻에 바탕을 둔 자존감은 자기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시류에 초연하여 자신을 갈고 다듬어 각종 효능을 생산하는 것이다. 찔레꽃은 다 계획이 있던 것이다.

나는 찔레나무를 바라보다 시(詩) 한 수를 지었다.


낮은 곳에서/비탈길에서 /수풀 사이에서/ 보잘것없이 태어나고 자라서/ 슬그머니 핀 찔레꽃//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자긍심 하나로 버티고 살다가/천상의 향기 품어내며 꽃을 피웁니다// 휘어질 줄 아는 것은 아량이요/단단함은 지조입니다/가시는 자존감이요/푸른 잎은 소망입니다/꽃향기는 그윽한 기품/ 흰 꽃잎은 순백의 순결입니다// 오월이면 그리움처럼 피어나 /스스로 세상 향해 /향기로운 웃음을 웃어봅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한다. 처지를 비관한다. 물론 좋은 환경이나 처지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악조건이 분발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의지의 유무인 것이다.

둘러보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여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형제가 국회의원이 된 자랑스러운 분들이 있다.

서산 출신의 문교부 차관하던 분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의 겸손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찔레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교만함으로 자신을 그르치는 사람도 있다. 윗자리에 올라간 처음에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던 사람이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 독단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결코 그런 사람에겐 성공이 오래가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오다 찔레꽃 두 가지를 꺾어 생수병에 꽃아 책상머리에 올려놨다. 순백색 나비 같은 꽃잎, 스치기만 해도 파르르 떨어지는 가녀린 꽃잎, 꽃말을 찾아보았다. 온화, 신중한 사랑, 고독,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나왔다. 꽃말도 꽃처럼 예쁘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我)라는 존재를 귀히 알고, 스스로 닦고 정진하여 찔레꽃 같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방긋이 웃는 찔레꽃,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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