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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침해와 수용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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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1.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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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 곳곳의 하천에 날아오는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항원이 검출되어 관계 당국과 양계농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에 여러 지역에서 드론으로 긴급방역조치를 하고 있다. 드론은 일시에 넓은 지역을 방제할 수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접근이 어려워 인력으로는 방역이 어려운 하천변이나 공한지, 재래식 방제기구로는 약제 살포 범위를 벗어나는 곳까지 폭넓게 살포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 AI는 1996년 처음 확인된 후 몇 년 동안 잠잠하다가 2003년 겨울, 충북에서 다시 발생하여 전국으로 확산될 때까지만 해도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조차 조류독감, 조류인플루엔자, 가금인플루엔자 등 여러 가지로 혼용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매스컴에서는 연일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의 발생상황과 위험성을 알리고 있었다. 만일 사람에게 전염될 경우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는 소문에 공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살 처분이 처음 이루어질 무렵에는 인부들에게 통상보다 많은 품삯을 준다고 해도 꺼려하는 실정이었다. 양계관련 종사자와 공무원은 물론, 군 장병들까지 나서서 축사소독과 발생지 인근을 오가는 차량에 소독약을 살포하는 등 총력방역에 나섰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Y군에 AI가 발생했다. 그때만 해도 소독은 주로 농가단위로 이루어졌다. 철새가 모여드는 하천주변 방역은 현실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농로변이나 공동시설도 농민 참여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궁즉통(窮卽通)’이랄까, 무인항공방제를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여 무인항공기로 하천변과 취약지역에 약제를 살포하니 짧은 시간에 넓은 곳의 방역작업이 가능했다. 농민들에 대한 계도와 홍보효과도 올릴 수 있었다. 특히 어쩔 수 없이 살 처분을 해야 할 때 농민들은 “군청에서는 항공방제까지 하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주지 않았느냐”며 쉽게 동의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방역활동상황을 점검 나온 중앙의 ‘전문가’는 이 방식을 문제 삼았다. 바람에 바이러스가 날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만일 확산될 경우 문책하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인력으로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근거 없이 그런 판단을 내리고 추궁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전문가의 영역을 건드린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일선 행정공무원이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사례를 연구하고 실험하여 확대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전문가가 할 일이라 주장했다. 논란 차원으로 마무리 되었다. 요즘에는 드론을 활용하여 방역소독과 농작물 병해충 방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로펠러에서 내는 바람은 소형무인항공기나 드론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10여 년 전이었다. 퇴직예정자 사회적응 연수과정에 교통관련 전문가의 강의를 들었다. 휴식시간에 강사에게, 신호등을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의 장비로 설치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비쳤다. 듣던 강사는 강의 시간에 그 이야기를 끌고 와 ‘큰일 날 일’이라며 공박차원이다 싶을 만큼 열변을 토했다. 요지는, 남은 시간이 촉박하면 신호등 앞에서 과속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느낌으로는 ‘전문가가 말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녹색등이 적색등으로 바뀌기 전 잠시 황색등을 켜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국의 신시가지에 가면 녹색등뿐만 아니라 적색등까지 남은 시간을 숫자로 표시해주는 신호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효과가 있으니까 새로 신호등을 설치할 때 그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요즘 건널목 상당수는 카운트다운 방식의 신호등을 설치하고 있다. 남은 시간에 따라 건너거나 멈추는 것은 판단이고 양식이다. 그날 전문가의 견지에서 필자의 의견이 설령 타당하지 않더라도 그처럼 과민 반응을 보일 것 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신호위반 단속카메라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 그 일이 떠오른다.

기술은 날로 변하고 있다. 오로지 그 전문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디어는 전문가에게 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비전문가의 의견이라도 타당하면 수용해야 하는데 권위를 침해받고 도전받는다는 인식은 적절치 않다. 마치 자기만의 성을 쌓고 조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전문성과 권위를 앞세워 다른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는 비전도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엉뚱한 이야기라도 일단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전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뭘 좀 안다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권위를 훼손당한다는 듯 다른 의견은 억누르려 함은 적절치 못하다./가기천(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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