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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서해 바다 위에서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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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2.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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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것이라고는 ‘웅웅’하는 소리뿐이었다.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엔진소리가 주위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는 듯 했다. 지난 해 마지막 날이었다. 인천항에서 중국 옌타이(烟台)로 가는 배는 강풍예보에 출항시간이 자꾸 늦춰지면서 밤 11시나 되어서 고동을 울렸다. 오후 5시에 배에 올랐으니 여섯 시간을 꼼짝없이 배안에서 기다린 셈이었다. 늦게라도 떠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해를 보내는 날이니 배에서 지는 해를 보겠다는 낭만은 파도거품처럼 사라졌다. 4인실에 함께 한 일행은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칭다오(靑島), 웨이하이(威海)와 롄윈(連雲)을 어울려 다녀온 사람들이라 잘 아는 사이다. 옌타이는 두 번째였다. 중국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반(半) 자유여행의 묘미에 익숙했다. 선실에서 나누는 화제 거리는 ‘다시 듣기’처럼 거기에서 맴돌았다. 배 안에서는 딱히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의 항해, 무인도에서는 흙이라도 밟아보고 풀잎이라도 만져볼 수 있는데 망망대해 배안에서는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었다. 로밍을 하지 않아 휴대폰도 먹통이었다. 먹을 것과 잠 잘 곳이 있다는 것, 얼마의 시간만 지나면 육지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은 위안이었다. 비행기에서 다리도 마음껏 펴보지 못하는 것이 비하여는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칭다오나 롄원을 오가는 배에는 휴게실과 부대시설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데, 크기가 조금 작은 이 배는 변변한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답답한 선실에서 나와 밖을 내다보았으나 온통 까만색으로 도배를 한 듯 어둠뿐이었다. 달도 별도 구름 뒤에 숨고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배 한 척도 없었다.

통로 한쪽 여유 공간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책을 펼쳤다. 백범일지다. 45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처럼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 쉼표조차 없는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연속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힘이 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 빼앗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것인지, 나라와 개인의 운명이 엉클어진 삶이 보통사람으로는 몇 십분의 일도 겪어보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극적인 삶을 상상해 보노라니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가 다시 크게 들리곤 하는 것은 아마 글에 영향을 받았나 보다.

강풍주의보와는 달리 배는 다소곳하게 물길을 헤치고 있었다. 자정을 넘겼으니 새해를 바다 위에서 맞이했다. 새벽, 일찍 깨어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배위에서 보려고 했으나 뿌연 하늘이 훼방을 놓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 마저 읽었다. 그래도 도착시간이 남았다. 다른 책을 들었다. 배에서는 책읽기가 안성맞춤이다.

잠시 갑판에 나가보려 했으나 강한 바람이 문을 누르고 있어 열리지를 않았다. 한 젊은이가 힘을 보태주어 가까스로 나갔지만 몸을 날려버릴 듯 무서운 기세다. 몸을 둥글게 말다시피 하고 조심조심 몇 발짝 나갔으나 걸음을 떼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이상 걷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아 뜻을 접고 말았다.

바다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다이궁(代工·보따리상)’이라고 한다.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주일에 6일을 바다위에서 보내며 물건을 나른다. 육지에 내리는 너 댓 시간동안 통관수속과 물건 인계·인수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다시 배에 오르는 일을 시계추처럼 되풀이 한단다. 숙식은 물론이고 샤워와 빨래까지 배 안에서 해결한다. 어느 때는 빨래를 선실 밖에도 내건다. 그렇게 하여 손에 쥐는 돈은 한 항차에 고작 이·삼 만원, 한 달에 60만 원 정도라고 한다. 400여 명의 승객가운데 절반가량은 이들로 보였다.

태안 앞바다에 나가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라고는 하지만 2만 톤이 넘는 화객선으로 스무 시간 가까이 걸린다.

옛날 백제, 신라 사람들은 범선(帆船)으로 이 뱃길을 오가며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까? 검푸른 바다, 삼킬 듯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배가 깨지고 표류하며 때로는 침몰하여 수장된 사람은 그 얼마였을까? 차마 짐작조차 어려운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그 뱃길을 이제 빌딩처럼 큰 동력선으로 오간다. 관광객, 상인, 학생들로 붐비고 화물이 가득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는 동안 생각은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갔다. 황해라고도 불리는 바다, 우리는 ‘서해’라고만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동해, 남해와 조화를 이룬다. 늦어지고는 있지만 언젠가 서산 대산항에서 중국을 오가는 배가 뜰 때를 어떻게 맞이하고 대비해야할까? 관계자들이 직접 배를 타고 경험해보고 느끼며 미리 준비하면 어떨까? ‘다이궁’을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산에서 배가 뜨면 그 뱃길로 가 보고 싶다. 새해, 서해바다 위에서 가져 본 생각이었다./가기천(전 서산시 부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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