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4-03(금)

“러브레터가 시(詩) 였지요”

[조규선이 만난 사람] 36.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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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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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나태주 시인. 그는 러브레터가 시였고 러브레터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모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시는 나태주(74)시인이 쓴 ‘풀꽃’이다. 나 시인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시인으로 각광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된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나 시인이 되어야 한다.

지난 8일 저녁에 나 시인과 자리를 같이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박한 지식에 시를 쓴다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통달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시는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작품 중 백미(白眉) 같은 것입니다. 언어에는 영혼이 들어 있습니다. 언어에는 인간을 살리고 죽이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 살리는 것을 축원이라 하고 죽이는 것을 저주라고 합니다. 마땅히 시는 사람을 살리는 축원의 의도를 담아야 하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시가 사람을 살립니다. 시가 세상을 밝게 합니다. 이것은 제 믿음이고 또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상은 어떻게 떠오르는 걸까? 이에 대해 그는 아무 때나 떠올린다고 했다. 심지어는 목욕을 할 때도 떠오르고 잠을 잘 때 꿈속에서도 시를 쓰는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이성적 작업이 아니라 철저히 감성적 작업이고 더 나아가 영혼이 작동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시의 원천은 자연과 인간과 세상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시상을 선물합니다. 특히 요즘엔 자동차를 타고 가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시를 씁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시가 떠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시를 쓴다는 그는 이것을 유목(노마드, nomad)의 시라고 했다.

나 시인은 언제부터 시를 썼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그는 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사모하는 마음을 표한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러브레터가 시였고 러브레터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다만 러브레터의 대상이 한 여학생에서 세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그는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주 5회 정도 전국 강연을 한다. 3년 전부터 그렇게 불려 다니는데 횟수를 줄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건강하다는 얘기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 그리고 잠을 오래 자기가 그의 건강비결이다.

나 시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출간한 시집의 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수시로 책이 출간되어 세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100권은 넘고 150권은 안될 것이라고 했다.

나 시인에게 서산은 어떤 도시일까?  한 마디로 그에게 서산은 “넓고 깨끗한 땅”이었다. 또 사람은 자연의 아들이기에 서산 사람 또한 서산의 자연을 닮아 순후하다고 했다. 그래서 서산을 좋아하고 서산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필자와는 충남문인협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살가운 인품이 좋아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70대 중반의 나 시인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그는 ‘잘 늙는 것’과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관을 이야기하자 “일생을 두고 한가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바뀌는 것”이라며 젊어서는 ‘최선을 다하자’였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자’가 삶의 모토(motto)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또 바뀌었다고 했다. ‘밥 안 얻어먹기와 욕 안 얻어먹기’다. 밥은 앞으로 얻어먹고 욕은 뒤로 얻어먹는 것이라며 이 두 가지만 지켜도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장담했다. 여기에 보탠다면 ‘요구하지 않기와 거절하지 않기’다. 그러나 요구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 이라고 했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서천의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되면서다. 그는 교직을 직업이라 여기고 시인을 본업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는 공주문화원장으로 활약했습니다. 8년을 근무하면서 공주시의 지원으로 공주풀꽃문학관을 건립하고 풀꽃문학상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행운이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표작 ‘풀꽃’에 대해 작고 사소해서 사람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고 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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