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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정신을 그리고 싶다”

[조규선이 만난사람] 20. 오천 이환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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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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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거장 이환영 화백은 서산의 맑고 빛나는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산과 바다를 품은 풍광은 격조가 높고 향기롭고 아름다워서 서산을 자주 찾는다는 오천 이환영 화백(74). 필자가 그를 처음만난 것은 새마을운동과 향토문화 살리기에 한창 참여하고 있을 무렵이다.

당시 필자는 많은 화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선하곤 했다. 이 화백 역시 당시에는 서산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던 때였다. 그를 지난 28일 인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실로 40여년 만이다.

이 화백의 고향은 홍성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65년 서울로 상경해 한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이중장부를 만들며 밤에는 접대에 신경 써야 했고 현장 인부들과 노임 문제로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업무는 당시의 세태처럼 어지럽고 씁쓸하기만 했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일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학창시절 포기했던 미술대 진학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급기야 사표를 던지고 돈암동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어린 입시생들 틈에 앉아 밤늦도록 석고 데생을 했다. 그러한 가운데 틈틈이 눈 내리는 시골의 초가집을 즐겨 그리는 유천 김화경 교수(1922~1979) 미아리 화실에 들러 동양화 실기지도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 해 입시에 낙방했다. 그가 열정만으로 화가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다. 노력한 만큼 결실도 나타났다. 1976년 백양회 공모전 특선, 1977년 제26회 국전 입선에 독학으로 중등 미술 준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서울에서 중ㆍ고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부인 김희조 여사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유천 선생의 추천으로 1977년 후소회, 혜촌 김학수 선생(1919~2009)의 추천으로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1980)회원으로 등록했다. 두 단체 회장은 당대 유명한 운보 김기창(1913~2001), 원곡 김기승(1909~2000)선생으로 각기 동양화단과 서예계의 거목이며 스타였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최초로 창립된 가장 오래된 단체 회원이 된 것은 당시로서는 큰 영예였다”는 그는 “훌륭한 작가들의 예술과 삶을 가까이에서 배우며 함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으니 내게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바쁘고 피곤하며 시간과 전쟁하듯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고향 생각이 간절하기도 하다. 그가 고향의 향기로운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 곳이 서산과 홍성이다. 특히 서산에서는 태안군 가의도 모항항을 비롯해 팔봉산, 도비산, 간월도, 성연면 오사리 회나무, 마애삼존불, 운산 용현계곡, 부춘산, 양유정 등 서산의 구석구석을 찾아 그렸다. 그리고 농촌에서 태어난 자신의 성장 환경과 어릴 적 기억으로 초가집과 소와 닭, 항아리, 연 등을 그렸다.

그의 작품이 서산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1985년 서산문화원 향토 실경 산수화 초대전이다. 이후 아름다운 서산 실경전(1988년, 1994년), 서산실경-기억의 저편(2004년) 서산시 문화회관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이제 한국화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 문화면에 실린 ‘강직한 대나무 畫 한점, 35년 우리 인연의 시작’이란 제목으로 이 화백의 진솔한 삶과 이력을 분석한 기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고대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서산의 맑고 빛나는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필자가 이 화백을 만난 것은 그의 이러한 서산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 때문이었다.

“새로운 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외젠들라 크루아(1798~1863, 프랑스낭만주의 화가)의 말이다. 예술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창신(창新)은 법고(法告)에 있음을 말하지 않는가. 오래전 인연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새로움을 각성시킨다. 서산의 아름다운 역사를 그린 작품을 남기고 싶은 그의 꿈을 응원한다. 그가 그림으로 표현할 서산의 정신이 그래서 궁금해진다./조규선(전 서산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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