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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김현서(학돌초 5-2)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올해 27세이신데 아직 군대를 갔다 오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줄 알았다. 보통 남자들은 대학생 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가 아프셔서 군대를 면제 받으신 줄 알았더니 전혀 아픈 곳도 없어 보이셨기 때문에 더욱 더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대학생이었던 사촌오빠가 있었다. ‘이었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오빠가 지금은 군인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갈 때 우리 이모는 굉장히 많이 슬퍼하셨다. 하긴, 나 같아도 부모님과 2년을 떨어져 지내라고 하면 눈물먼저 나올 것이기에 이모가 이해가 되긴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양성평등’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여자인 나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항상 체육시간에는 “남학생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피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피구를 하기 전에 항상 불만이 가득했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사촌오빠나 담임선생님의 입장이 되면 역시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군대를 갔고 가야 하시니 말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길을 걷다 보면 ‘양성평등’ 이라는 말이 단지 말 뿐으로 끝나는 경우를 더욱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들을 보거나 피구를 재미없어 하는 여학생들을 보면 ‘왜 꼭 남녀로 나누어서 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같이 모두가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이 체육시간인데, 누구는 하고 싶어도 남자라는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성별에 따라 나누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3월에 우리 반이 6반과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조금 이상한 축구를 했었다. 운동장에 반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고 축구공은 두 개를 놓고 하는 축구였다. 조금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남자나 여자 모두 즐겁게 공을 찼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양성평등은 금방 이루어지는데 아직까지는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교통 표지판 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시내에 나갔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신호등에는 남자 그림만 있었다. “엄마! 왜 신호등에 남자만 있어요?” “어! 그건 남자가 더 튼튼하고 힘도 세니깐 그러는 거야.” 또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서 길을 가고 있는데 엄마 손을 잡고 가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엄마! 왜 표지판에 엄마 손잡고 가라는 표지판은 있는데 아빠 손잡고 가라는 표지판은 없어?” “그건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그렇고 또,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를 더 잘 챙겨주잖아.” 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표지판과 신호등에 어느 한 쪽만 나오는 것이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엄마들도 회사 때문에 아빠 손을 잡고 다니는 일도 많은데 말이다. 아예 신호등에서 사람을 없애거나, 교통표지판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걷는 그림으로 바꾸면 될 텐데, 왜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왜 여자가 항상 위를 쳐다봐야 하는데?’ , ‘뭐야, 그럼 이 말을 만든 사람들도 엄마가 있었을 텐데...’ 그래서 양성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래야만 해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하늘의 신은 제우스로 남자고, 대지의 신은 가이아라는 이름의 여신이니까.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땅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우주에 간 것처럼 붕 떠있으면 어떻게 집을 짓고 어떻게 농사를 짓고 그러겠니? 반대로 땅만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태양은 어디에 있어야 하지? 즉, 그 말은 하늘과 땅은 둘 다 똑같게 소중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하늘이 귀하고 소중한 만큼 땅도 귀하고 소중하다. 우리에게 모두 다 필요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둘 다 우리에게 모두 다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뿐인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여자라는 이유로 반드시 피구를 해야 할 필요도 없고, 남자라는 이유로 군대를 반드시 가야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일단 나부터가 ‘양성평등’을 실천에 옮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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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9
  • 안녕 제제! 안녕 밍기뉴!||류자화(서령초 6-1)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제제는 다섯 살 꼬마다. 나도 동생이 많아서 아는데 정말 다섯 살 때는 왜그리 궁금한 것도 많고 참견하고픈 것도 많은지 모른다. 그런 꼬마가 주인공이라니 정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다. 제제네 집은 무척 가난해서 남들이 다 즐기는 성탄절에도 선물을 못 받을 정도이다. 5살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제제는 자기 나름대로의 세상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제제를 철부지, 말썽쟁이 심지어 악마라고 까지 말하고는 했지만, 제제의 행동들은 세상을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제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제제는 자신이 붙여준 ‘밍기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라임 오렌지나무와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만나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포르투갈 사람인 동네 아저씨 마누엘 발라다리스를 만나서 우정을 키우고 사랑을 배우게 되는데 나중에 제제는 그를 자신의 애칭인 ‘뽀르뚜까’라고 부르게 된다. 어느 날 제제는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배운 좋지 않은 한 마디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 흉측하고 안 좋은 말을 들은 제제의 아버지는 제제를 때리며 야단치게 되고, 노래를 불러 즐겁게 해 주려던 제제의 다짐은 무너지고야 만다. 그만큼 순진한 마음을 가졌던 제제는 어린아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꾸중과 매의 다스림의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뽀르뚜까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게 된다. 뽀르뚜까의 사랑으로 즐겁게 생활하던 제제는 사람이 사는데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나큰 슬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자기 가족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겼던 뽀르뚜까가 열차 사고로 죽은 것이다. 이 충격으로 제제는 오랫동안 절망을 느끼며 앓게 되는데 앓고 난 뒤 어린 꼬마에서 소년이 되가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도 그동안 자라서 어른나무가 되어 있었고, 자신의 어린시절과 작별을 하듯이 라임 오렌지나무와도 작별을 해야 했다. 이렇게 지은이는 감수성 예민한 제제를 통해 한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감정 등을 얘기 하였다. 제제는 인생에서 슬픔, 기쁨, 인생의 공통점등을 발견함으로써 어린세계를 떠나는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말하고 자신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불행하든 행복하든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슬픔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제제가 어른이 되어서는 제제 같은 아이들을 이해해주는 뽀루뚜까 아저씨 같은 멋진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린 아이의 눈에는 현실속의 가난 속에서도 동화 같은 꿈을 찾아 꿈을 꾸고 어른보다 보는 세상이 더 크고 상상력이 더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이제 어린 꼬마들을 볼 때마다 제제가 생각 날 것 같다. 안녕! 제제 너를 만나 잠시나마 순수한 세계로 돌아갔었어. 안녕! 밍기뉴 너는 영원한 내 마음의 라임 오렌지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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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9
  • 똑같지 않은 매력 창가의 토토||유인선(석림초 6-5)
    책표지에 그려진 귀여운 여자 아이의 얼굴이 더 친근감을 주어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들게 한 ‘창가의 토토’책을 좋아하는 내게 담임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다. 일본의 작가 구로야나기 데츠코가 쓴 ‘창가의 토토’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주인공 토토는 학교에 가자마자 퇴학을 당하였는데, 토토가 퇴학을 당한 이유는 수업시간에 책상 뚜껑을 백 번도 더 열었다 닫았다 하였고, 창가에 서서 친동야를 부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토토는 학교에 처음 와서 모든 게 신기하게 보여서 호기심에 그래본 것일 수도 있는데, 왜 아무도 이해해주질 않을까 이상하기도 하였다. 결국 토토는 학교에서 쫓겨나 전학을 갔지만 너무나 힘들고 속상했을 것이다. 내 주위에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산만한 친구가 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이해하기보다는 피하려 해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나도 그 아이와 별로 부딪히고 싶지 않아 가까이 하지 않을 때가 많긴 하지만 ! 피하기만 하는 것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토토는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도모에 학원 원장선생님께서는 토토에게 할 말들을 모두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토토를 대하는 원장선생님이 정말로 토토를 생각해 주시는 너그러운 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토토에게도 토토를 이해해주고 따라주는 친구, 선생님과 여러 사람들이 생겼다. 이렇게 토토를 이해해주고 따를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에서의 재미있는 활동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도모에 학원 원장선생님의 노력도 컸던 것 같다. 원장 선생님은 일반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발한 생각으로 아이들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 줌으로써 아이들이 토토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업내용 중에는 학교 수영장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하게하고, 학교의 강당 안에서 텐트를 치고 자게 한 일 등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 저절로 웃음짓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알몸으로 수영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장애가 없는 아이들! 몸은 똑같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원장선생님의 배려와 생각은 정말 깊으신 것 같다. 또 다과회를 여는 것, 자기만의 나무를 정해 이야기를 하는 것, 산과 들과 바다의 도시락을 싸오는 것, 다른 학교와 다르게 장애인 아이들에게 유리한 운동회….나도 이런 학교에 가서 한 번쯤 수업도 받고 원장선생님도 만나보고 싶었다.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살 수 없다. 외국인 신부들도 많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다. 이제는 다민족 국가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살아가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와 조금만 다르면 이해하려 하기보다 불편해하고 함께 하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토토는 자신에게 맞는 학교와 선생님을 만나 행복할 수 있었다. 토토가 도모에 학원을 가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들에게 여전히 따돌림을 받아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도모에 학원과 비슷한 대안학교가 있다. 그런데 대안학교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같은 것만 필요로 하거나 평등해야만 한다고 하면 더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도모에 학원이나 대안학교와 같은 조금은 특별한 학교가 필요한 것 같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생활하고 무언가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조금 부족한 토토지만 토토의 개성을 보고 진심어린 마음을 보게 된다면 정말 재미있고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토토와 같은 아이가 있다면 정말 친한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내 상상의 세계엔 어느새 조금은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토토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신 원장선생님이 초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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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9
  • 양성평등 사회로 가는 길||양예진(언암초 6-2)
    얼마 전 뉴스에서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어렵다는 시험에서 여자들의 합격률이 남자들을 뛰어넘고 있으며, 수석과 차석 등을 여자들이 휩쓸고 있다는 소식을 뭔가 특이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다루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 같은 여자로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남자와 여자를 나눠서 생각하는 것 같고, 또 여자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남존여비 사상으로 수많은 남녀차별이 이루어져 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첫 손님이 여자면 그 날은 재수가 없다.’ ‘정월 초하룻날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 ‘여자 말띠와 범띠는 필자가 세다’. ‘여자 용띠는 성질이 흉악하다.’등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는 이런 표현들은 그 당시 여성들이 얼마나 천대받고 차별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프랑스에서는 잔다르크가 영국으로부터 조국을 지켰고, 퀴리부인은 과학자로 활동하며 노벨상을 2번이나 받았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여왕의 지휘아래 세계 최강의 제국을 이루었다. 그 때 우리나라에선 얼마나 많은 여자 영웅들이 사회의 차별과 천대 속에서 조용히 사려졌을까? 그 만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을까? 정말 아쉽기만 하다. 지금 세계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외국에는 여성 대통령과 총리도 있고 장관이나 국회의원들도 많다고 한다. 반대로 당연히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호텔의 일류 요리사들이나 디지이너 등에서 남자들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자 파출부와 미용사까지 생겨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 바탕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능력을 제일 중시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 엄청난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와 아직까지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면서 여자들의 능력을 무시하며 차별하는 사회의 경쟁은 누가 봐도 뻔한 결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성평등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를 살펴보면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진정한 남녀평등은 양성 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마음으로 남자와 여자 즉 서로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반자로 생각해서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집안일을 같이하는 것도 쉬운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아주 옛날 사람 같지만 집안일을 잘 도와주신다. 진정한 존중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회 제도적인 개선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많은 사회적 제도와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우리나라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여자의 능력이 높아서 많은 일들을 훌륭히 해내는 경우가 많은데도 아기를 낳으면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탁아시설이나 육아 휴직 등이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여성들 스스로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약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옛날에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지식 정보화 사회로 머리를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여자와 남자는 이제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어머니도 직장 일을 하고 계시지만, 항상 당당하시고 멋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더 이상 흠이 되거나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이소연 언니가 여성이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제는 여성이라서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21세기에 여성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세상의 반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남녀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사이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차별 없는 양성평등 시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인류 발전에도 기여하는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잔다르 크나, 퀴리부인이 나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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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9
  • 충지협 월례회 청양서 개최||청양군수, 부의장, 교육장 등 참석
    충남지역의 대변지로 풀뿌리 민주신문인 충남지역신문협회(회장 이평선 충청세종신문대표, 이하 충지협)은 9일 백제신문 주최로 김시환 청양군수, 청양군의회 김종관 부의장, 충남도청양교육청 김동한 교육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청양 모 식당에서 월례회를 갖고 청양의 대표 축제인 청양고추·구기자축제의 성료를 축하하고 낙후된 청양의 발전에 힘 모아 기여키로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시환 청양군수는 “한국의 알프스 청정 청양을 찾아주신 충남지역 대표 정론지인 충지협회원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지난 제9회 청양고추·구기자축제에 여러분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인사했다. 충지협 이평선 회장은 “김시환 군수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칠갑산 정기와 맑고 깨끗한 청양에서 열린 청양고추·구기자 축제의 성료를 축하드린다”고 답례를 했다. 이어 이 회장은 “청양은 충남지역에서도 가장 낙후됐음에도 군민을 보면 항상 밝고 희망차 보인다. 앞으로 도민체전 개최로 인한 효과를 본다면 앞으로 청양은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 충지협은 청양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선 충지협회원들의 결속과 충남도현안에 대해 깊은 의견이 오갔으며, 충남의 대변지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입을 모았으며, 다음월례회는 당진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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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10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 만들 터”||본지 창간 3주년 기념식 성료
    본사 이기우 대표이사와 변웅전 국회의원, 정영권 자문위원협의회장을 비롯한 자문위원, 지역기자들이 이날 영예의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본지 창간3주년 기념식 및 제3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시상식이 지난 5일 오후 7시 잠홍동 서산부페웨딩홀 4층에서 개최됐다. ▶화보 3면 이날 기념행사에는 변웅전 국회의원과 유상곤 시장을 비롯한 서산지역 각 기관 및 단체장 그리고 애독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창간기념을 축하했다. 김명순 지역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박복수, 윤희암, 이상일씨 부부, 유영환씨 등 4명이 제3회 자랑스런 서산인상을 각각 수상하고 부상으로 순금메달과 농협 서산시지부에서 제공한 우리농산물 상품권을 받았다. 이어 계속된 기념식에서 본사 이기우 대표이사는 신문사 발전에 공적이 큰 이정호 자문위원과 조재종 지역기자, 황선철 지역기자에게 각각 표창패를 수여했다. 이어 계속된 내빈 축사에서는 서산타임즈에 대한 찬사와 격려가 쏟아졌다. 유상곤 시장은 “3년이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참다운 지역언론의 발자취를 남기며 모범을 보여왔다”며 “앞으로 지역민의 사고와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교육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당부한다”고 했다. 이철수 의장은 “서산타임즈가 창간3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지역발전에 기여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며 “앞으로도 서산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언론,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신문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변웅전 국회의원은 “서산타임즈는 시민여론을 가감없이 반영, 시민들이 신뢰하는 수준의 정론을 펴왔다”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서산시민의 알권리 충족과 올바르게 사회현상을 감시 비판하며 지역 발전을 이끌어온 이기우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 더욱 발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변 의원은 “서산타임즈의 발전을 위하는 길은 우리 모두가 독자가 되는 길”이라며 “오늘 이 순간 우리 모두 유료독자가 되자”고 제안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본사 이기우 대표이사는 기념사를 통해 “지난 3년은 끝없는 서산사랑, 건전한 지역신문을 표방하며 언론의 사명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며 “독자 곁으로 좀 더 가깝게 다가서고 서산을 대표하는 신문의 권위에 혁신과 창조를 더하기 위해서 모두가 변화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자유로운 생각과 치열한 노력으로 혁신을 낳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서산타임즈의 경쟁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울색소폰동호회와 조이앙상블은 본지 창간3주년 축하를 위해 연주와 축가를 불러 행사장의 분위기를 한층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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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9
  • ◆ 창간3주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참석해 주신 분(가나다 순) ▲가도현 (합)동양전기소방 대표 ▲가세로 당진경찰서장 ▲강춘식 서산시생활체육협의회회장 ▲공병철 독자 ▲권남희 ▲김양헌 동양화가 ▲김영복 독자 ▲김용순 용머리 풍물단원 ▲김장선 고북면 양천리 청년회장 ▲김정웅 운산 평생건강원 대표 ▲김정규 자연건강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진성 서령초 교장 ▲김흥식 20전투비행단 준위 ▲도임구 20전투비행단 준위 ▲류관곤 서산시의원 ▲류제석 도비농산대표 ▲모철순 서산시의원 ▲박계교 충청투데이 기자 ▲박남진 모아정보 대표 ▲박병운 서산시체육회 사무국장 ▲박상무 서산시의원 ▲박주양 서전레미콘 영업팀장 ▲박완근 예림화랑 대표 ▲박창용 서산교육청 관리과장 ▲변웅전 국회의원 ▲백남승 서산시게이트볼연합회장 ▲백종신 서산시 환경보호과장 ▲서병선 서산시체육회 부회장 ▲서형석 20전투비행단 준위 ▲성승경 서산시 공보담당 ▲심영석 매리퀸 대표 ▲신준범 서산시의원 ▲안영순 수평리 부녀회장 ▲양관현 ▲염옥순 ▲유기동 20전투비행단 준위 ▲유동열 양천리 번영회장 ▲유상곤 서산시장 ▲유석순 노래교실 강사▲유영의 KNC외국어학원 ▲윤길수 독자 ▲이병찬 부석면장 ▲이상목 서산시 시정담당 ▲이성로 학돌초 교감 ▲이수영 서산시 복지과장 ▲이이선 우남종합건설 대표이사 ▲이정희 서산시 문화회관장 ▲이종성 (주)린데코리아 과장 ▲이철수 서산시의회 의장 ▲이희집 석남동장 ▲임덕재 서산시의원 ▲임설빈 서산시의원 ▲장명학 거북산악회장 ▲장옥선 ▲전동휘 위드치과 사무장 ▲전용자 서산시농가주부모임회장 ▲정세자 서산시여성단체협의회장 ▲정은숙 독자 ▲정제호 전 음암중교장 ▲정창현 서산축협조합장 ▲조인호 서산시 경제항만과장 ▲조한구 서일중ㆍ고 교장 ▲차성남 충남도의원 ▲최남은 ▲최장환 음암중기 대표 ▲최홍균 운산 성심식당 ▲한경상 농협중앙회 서산시지부장 ▲한만길 서산시 축산해양과 ▲한용상 지곡면장 ▲황수자 ▲허성례 독자 ◆화환ㆍ화분 보내주신 분 ▲강춘식 서산시생활체육협의회장 ▲국제로타리 3620지구 충서로타리클럽 ▲권기정 CJ헬로비전충남방송 대표이사 ▲김득곤 서산소방서장 ▲김용호 대산농협조합장 ▲김인섭 해미면장 ▲김준환 서산시 민원처리과 ▲박계교 충청투데이 기자 ▲박상섭 영플라워 ▲백남승 서산시게이트볼연합회장 ▲백성현 대산라이온스클럽 회장 ▲성우종 (주)도원 E&C 대표이사 ▲소원사랑모임회 ▲석낙서 운산면장 ▲안원기 서산시 비서실장 ▲이기우ㆍ김웅 법무사사무소 ▲이은우 서산시체육회 수석부회장 ▲임붕순 중도일보 기자 ▲장인희 서산시문화체육시설관리사업소장 ▲조남원 서산시축구협회장 ▲조흥원 VIP골프동호회장 ▲최종만 재경서산시향우회장 ▲한경상 농협중앙회 서산시지부장 ▲한용상 지곡면장 ◆축전 보내주신 분▲김명환 법무사 서산지부장 ▲김선구 서산시의회 사무국장 ▲김영수 서산시 공보전산담당관 ▲김택진 서산시의회 의정담당 ▲김환성 서산시의회 부의장 ▲문철주 서산시 주민지원국장 ▲이상욱 서산시 부시장 ▲이상호 서산시 자치행정국장 ▲이종만 서산시 보건소장 ▲정상덕 서산시 기획감사담당관 ▲조원모 서산시 건설도시국장 ▲조인호 서산시 경제항만과장 ▲최진각 서산시 지역발전본부장 ▲편인환 서산시 농업기술센터 소장
    • 기획
    • 특집
    2008-09-09
  • ■ 「김정규」의 일본 농촌연수기||1997년 ‘농업ㆍ농촌 진흥조례’제정한 북해도
    필자(맨 앞)가 북해도청에서 농업담당자로부터 북해도 농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듣고 있다. 札幌市 中央區 北3條西 6丁目에 주소를 둔 북해도청에 도착하여 농업담당자로부터 북해도 농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듣게 되었다. 그 중 농산물의 유통과 앞으로의 농업ㆍ농촌의 방향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 유통 : 홋가이도의 농산물은 도외 판매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비율은 2002년 현재, 쌀이 73%, 밀 88%, 야채 60%, 꽃꽂이용 꽃가지가 약62%다. 출하지는 토쿄, 오사카, 나고야 등의 대도시 주변이다. - 식품가공 : 식품제조업은 2002년에 도내 전 제조업 출하액의 41%를 차지할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도립식품가공연구소등의 연구기관이 고부가가치화나 저비용생산을 위해서 연구하고 있다. - 판매 : 지역에서 생산된 식료품을 그 지역에서 먹자고 하는‘지산지소운동’의 전개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홋가이도에서는 이것을 ‘애식운동’이라고 불러 도내 쌀소비량이 1997년의 38%로부터 2004년에는 60%까지 회복하고 있다. 도산 식품재료를 사용해 광고에 협력하는 호텔ㆍ여관을 ‘북쪽의 식품재료를 고집하는 숙소’라고 하여 등록하고, 레스토랑 등에는 ‘홋가이도 먹거리대사’라고 인정하고 있다. - 홋가이도의 농업ㆍ농촌의 방향 : 홋가이도의 농업ㆍ농촌은 풍부한 대지와 뛰어난 기술을 살려, 생산성이 높은 전업적인 경영을 주체로 발전해왔다. 또 지역의 기간산업으로서 관광이나 식품제조의 관련 산업을 지탱하는 것과 동시에 국토보전이나 양호한 경관의 형성 등의 다면적인 기능 발휘로 본도의 경제, 사회의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홋가이도는 전국에 앞장 서 1997년에 ‘농업ㆍ농촌 진흥조례’를 제정했다. 그 중에 농업ㆍ농촌을 ‘장래에 계승해 가야 할 도민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동시에, 수익성이 높은 지역농업의 확립, 다양하고 여유가 있는 농업경영의 촉진 등을 기본적 시책으로서 내걸고 있다. 2004년에는 ‘식’,‘환경’,‘사람’,‘지역’의 네 개의 시점을 중시한 농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향한 도내 관계자 공통의 지침인‘홋가이도 농업ㆍ농촌 비전21’을 책정했으며, 2005년에 ‘먹거리의 안전ㆍ안심 조례’를 제정하여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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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8
  • 우리마을 지킴이 운산 5리 한영희 이장||성공한 농촌관광마을 만들기에 전력 질주
    대산읍 운산5리 한영희(62ㆍ사진)이장은 마을이장이란 직책 외에 녹색농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이란 직책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새마을지도자 3년, 이장 9년을 맡아 오면서 하천공사, 2차선 도로포장 등 마을 환경개선사업을 비롯해 각종 특색 사업을 추진한 덕에 갖게 된 직책이다. 2003년도 주민들과 합심해 농협중앙회에 사업계획서를 제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팜스테이마을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정보화마을 선정,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선정되는 눈부신 공을 세웠다. 특히 회포정보화마을의 경우 정부에서 3억 원의 지원을 받아 희망 가정에 55대의 컴퓨터를 설치했으며 정보화센터를 적극 활용하여 전자상거래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 올 7월과 9월에 대전 용터 정보화마을과 농산물 직거래 장터 행사를 벌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육쪽마늘, 고추, 호박, 현미, 고구마 등의 농산물을 선보였는데 장터에 나온 주민들이 다 대만족하며 농산물을 구입했습니다. 우선 믿을 수 있는 제품이란 확신을 갖게 하는데 성공한 것이 좋은 성과를 이끌어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회포정보화센터에서 인터넷 상으로 홍보를 열심히 한 게 효과를 본 것 이지요”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벌써 이장 임기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그는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준공을 마친 회포마을 녹색체험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바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도시민들에게 제공할 특색 있는 체험거리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농촌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계절별 체험프로그램을 비롯해 볏가리대, 참샘용왕제 등의 마을 고유 민속전통문화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 도시민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관광열차도 운행해야 되고 참 할일이 많습니다. 일만 많이 벌여 놓아 후배들에게 짐만 져주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지만 다 마을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모두 열심히들 따라주고 있습니다. 초창기라서 많은걸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회포마을은 분명히 전국적으로 성공한 농촌형 관광도시가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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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8
  • [서산의 발견-마을기행 42] 운산면 신창리||가축개량사업소 농장에서 이국정취 느껴
    운산면 신창리(이장 박영진)는 1914년 행정개편 당시 고창동, 동신리, 벌리 등을 합하여 한 동리를 만들면서 동신리에서 신자를, 고창동에서 창자를 취하여 신창리라 불리게 됐다. 서산지역 제일의 사찰로 일컬어지고 있는 개심사가 마을에 위치하고 있고, 농협 가축개량사업소의 드넓은 목장이 펼쳐져 있는 이국적인 풍경 탓에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마을이다. 649년(의자왕 4)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개심사는 고려조의 혜감국사(1240-1319)와 조선조의 처능대사(1617-1680)에 의하여 당시 전국적인 사찰로 이름을 떨쳤다. 이런 과거로부터의 유명세 때문 이였는지 지난 1950년대 이전만 하여도 개심사를 일생에 한번 가보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전설이 서산과 태안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오지로 알려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불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지고도 있다. 현재에 들어서는 극락왕생 기원과 더불어 보물 143호인 대웅전과 보물 1264호 영산회개불탱 등의 문화재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불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창리는 여러 가지 마을 지명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개심사 입구마을 이란 뜻을 가진 동구말은 20여 가구가 거주하던 마을 이었지만 1978년 6월 신창저수지가 축조되면서 대부분 없어졌고, 그 후 개심사가 관광지로 유명해 지면서 새로이 작은 마을이 생겨났다. 또 신창리의 중심지역인 2,3반 지역을 고창동이라 부르고 있는데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마을 주민 중에서도 아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창(昌)자의 의미가 번성한다는 뜻인 것으로 미루어 마을의 번성을 기원하는 지명으로 유추하고 있다. 한편 신창리는 내포문화권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도에 개심사 진입로 3.4km를 확포장 할 예정이고, 마을주민 및 여행객을 위한 다목적 회관을 건축하고 있어 향후 새로이 변화한 마을의 모습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신창리 사람들 마을 전체가 목장에 둘러싸여 있는 신창리는 165세대 382명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벼농사를 비롯해 축산농, 과수농이 주업을 이루며 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가야산 올바른 정기를 받아 산수가 좋고 인심은 더욱 좋다는 주민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박영진(64) 이장 =마을을 지나고 있는 개심사 진입로는 길이가 3.4km인데 인근 관유리, 홍천리, 삼송리 주민들도 산책로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지원을 받아 곳곳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호응이 좋습니다. 내년에 도로 확포장이 끝나면 도로변에 꽃을 심고 가로수도 식재해 주민은 물론 서산 시민들도 한번쯤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해 관광명소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박정현(70)씨 = 태안에서 5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 큰 도로가 마차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였으니 이런 동네 도로야 오죽 했겠습니까? 69년부터 목장에서 일을 시작해 30년 넘게 일하다 정년퇴직 했죠. 아무래도 목장이 들어서서 마을이 발전됐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목장에서 일하면 품삯으로 밀가루를 주곤 했었죠. ▲모숙자(68) 여노인회장 = 여자노인회원이 41명인데 요즘은 노인회 허가 내기도 어렵다고 하네요. 아직 허가가 없는 상태라 시에서 지원이 없어요. 회원들이 5천 원씩 모아서 기름값도 대고 하는데 항상 불안하죠. 옛날에 배우지 못한 한글을 배우느라 분주한 회원들도 많은데 요즘은 실력이 많이 향상 됐습니다. ▲임광호(70)씨 = 10년 전부터 삽교천 물을 고풍저수지로 끌어다 쓰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뭄이 들어도 농업용수 걱정 안 해도 되고, 홍수기에는 수량조절로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죠. 세월에 장사 없다고 저수지 옹벽도 많이 노후화 됐습니다. 어렵더라도 빨리 추진했으면 좋겠네요. ▲이병열(70)씨 = 요즘 참 살기 어려워졌어요. 농사 지어 파 한 단 내다 팔아야 인건비도 안 나옵니다. 이 상황에 비료, 농약 값은 왜 이리 오르는지.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들 농촌 살린다고 한마디씩 하더니만 지금은 농촌 이야기 하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어요. 옛날보다 살기 어렵다는 말은 안 나오도록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한경숙(50) 부녀회장 = 농사짓느라 바빠 회의에도 불참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해서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서울 아파트단지와 직거래를 하고 있어 그나마, 수익이 정상 경로로 판매하는 것보다 높은 편입니다. 매월 15일을 부녀회 정기모임일로 정하고 봉사활동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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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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